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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사칭' 김흥기, 보수진영 '댓글기지' 구축 시도 확인

 

정치적 의사표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권리이지만 정치활동에 정부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 또한 소위 '보수' 단체 활동에 대한 정부의 묵인, 방조와 불법적 지원에 대한 문제제기와 명백한 사실확인이 필요한 일이다. <편집자 주>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점선 안)가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출범식에서 보수우파 세력의 사이버청원 운동을 제안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학연 홈페이지

 

 

지난달 9일 국회서 보수우파 사이버청원 운동 제안 '역사교과서 전쟁' 강조

 

'댓글부대' 논란과 관련하여 <경향신문>과 숨바꼭질을 해온 국정원 출신 김흥기씨의 '진면모'가 드러났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그가 내년 대선을 1년 6개월 정도 앞두고 보수우파 세력들의 목소리를 동원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고 다닌 그를 민정수석실에서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 의혹과 마찬가지로 김씨의 배후에도 청와대가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미래부가 엉터리 정책보고서를 제출한 그에게 1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는데도 감사원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면죄부를 부여한 바 있어 그를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김씨가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댓글부대를 연상시키는 사이버 집단청원 운동을 제안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확보했다. 김씨의 동영상은 300여명의 학부모와 전국 74개 교육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출범식에서 촬영된 것이다. 당시 행사는 평소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에 반대해온 보수성향의 학부모와 교육단체들이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 만들기와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하에 전학연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출범하기 위해 열렸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의 개회사에 이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경자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상임대표 등에 이어 김씨는 전학연 대외협력위원장 자격으로 맨 마지막 연사로 등장했다. '교육개혁을 위한 청원플랫폼'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집단청원 방식을 소개한 김씨의 프리젠테이션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전학연' 출범 행사에 연사로 등장

 

김씨는 "오늘 제안은 전학연의 활동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파워풀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은 것"이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인데, 하필 인민민주주의를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와 함께 살고 있다"며 초반부터 색깔론 공세를 폈다.

15분간 이어진 그의 강연은 여소야대가 된 국회에서 어떻게 하면 보수우파 세력들의 요구와 지지를 하나로 끌어모아 입법활동에 반영시킬 것인가에 집중됐다. 그는 "우파의 각 단체들과 협회들을 보면 전부 다 제각각 할동을 한다"며 "우리의 활동방향은 각개약진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연 중간에 보수세력들의 나아갈 길로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자 청중들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치며 호응을 보냈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로 절치부심한 보수우파 세력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동원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174개 보수단체가 링크된 애국닷컴 홈페이지 청원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청원서. 청원에 서명하고 전체보기 기능을 누르면 전체 서명자가 엑셀파일로 전환되고 출력도 가능하게 돼 있다. /애국닷컴 홈페이지

 

 

청원 사이트, 상당한 조직·인원 확보 암시

 

그는 "여기(청원 사이트)에서 서명을 하면 서명하는 개수가 바로 바로 10만, 20만 올라가고 그걸 출력하면 바로 그것을 가지고 국회에 청원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의 제안은 흡사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예고 마지막 날 동일한 양식의 찬성의견 서명지들이 무더기로 교육부에 배달됐던 '차떼기 서명'을 연상시켰다. 차이점이 있다면 차떼기 서명이 오프라인 인쇄소에서 이뤄진 반면 김씨의 집단청원을 위한 서명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서명 전파를 위해 청원 사이트를 각종 SNS 사이트와 연결시키고 댓글을 통해 토론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은 말이 청원조직이지 '댓글부대' 조직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김씨는 청원 사이트를 움직이기 위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도 구축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조직 구성원은 이미 많이 차 있다"며 "하지만 오늘 굳이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청원 사이트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상당한 정도의 조직과 인원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실제로 전학연의 이희범 사무총장은 "2월이나 3월쯤 김씨가 찾아와 집행부들이 있는 가운데 사이버 청원운동을 제안했고, 다들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김씨가 전학연에 제안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은 어떻게 운영될까.

 

김씨는 슬라이드 화면을 통해 구체적인 조직 구성도까지 보여주면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은 운영위원회, 기획위원회, 자문위원회로 구성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위원회별 기능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청원서 작성·사이트 운영·대국회 활동은 기획위원회가, 지지세력 결집은 운영위원회에서, 교수와 연구진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의제별 자문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문)위원회는 국회 18개 상임위원회와 1대 1 함수관계로 만들어 놓았다"며 청원 조직이 단지 교육뿐 아니라 모든 이슈를 염두에 두고 활동할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로 그는 "운영위원회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헌법적 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 힘을 모아서 투표로 힘을 모아주면 된다"고 했다.

물론 김씨가 제안한 보수우파의 사이버 청원조직이 실제로 얼마나 파괴력을 갖고 움직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캠프에서 활동을 했고, 2013년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을 보면 허왕된 계획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그는 2013년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미래발전포럼 상임의장을 맡아 선거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김씨가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와 계약을 체결한 시기는 김씨가 스스로를 경영 책임자로 소개한 그린미디어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내에 짐스(GIMS)라고 불리는 시스템 구축을 시도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당시 이들이 1년간의 비밀작업 끝에 2015년 1월 제출한 용역보고서에는 공식적으로는 수출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이버 여론조작에 악용될 수 있는 'K룸 설치' 계획이 제시돼 있다. 용역보고서를 보면 K룸은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배포하는 일종의 '빅브라더' 역할을 담당하고, 100평 규모에 20명의 운영위원이 상주하는 계획으로 돼 있다. 김씨가 국회에서 제안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김흥기씨가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애국세력들을 위한 청원 사이트 구축을 제안하면서 역사교과서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GMW연합 블로그

 

 

김씨는 <경향신문>의 '댓글부대 의혹' 제기로 K룸 설치가 무산된 후 지난해 9월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아 국정홍보 월간지 ㄷ화보 회장 취임을 시도할 때도 20여명 규모의 연구소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서울 강남 연구실에서 2시간가량 김씨를 만났던 ㄷ화보 사장 김모씨가 지난해 9월 19일 작성한 다음과 같은 메모에도 이와 관련된 흔적이 보인다. '요구, 지지, 정책, 예산, 법률, 각계 협회, 단체, 학회, 세력 과시하면서 요구사항 주장, YES 찬성자만 수용. NO는 처음부터 불가 <청원> 정치집단 바꿔야'.

김씨가 지난해 9월 ㄷ화보 김 사장을 상대로 안 비서관 이름을 팔며 제안했던 사업 구상이 올 6월 그가 국회에서 보수우파 세력들을 상데로 제안한 사이버 청원운동 조직 구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그동안 "안 비서관은 김씨와 일면식도 없다"며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했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청와대의 침묵은 김씨가 안 비서관 이름을 빌려 시작한 활동을 최소한 암묵적으로 승인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지난 2월에는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노동개혁'에 힘을 보태기 위해 청년희망재단이 후원하고 우익청년단체가 개최한 행사에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과 함께 공동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씨가 6월 전학연 출범식에서 새로운 교육청원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강조했던 것은 역사교과서 문제였다. 김씨의 강연이 이뤄진 행사장에는 보수우익단체 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운동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도 참석했다. 공교롭게 그가 등장하는 무대에는 어김없이 박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와 함께 전희경 의원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 의원실은 "행사장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 의원은 김씨를 모르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안 비서관과 김씨와 관계를 해명할 때와 동일한 어법이다.

김씨는 전학연 출범식에서 '대한민국 교육 현장은 전쟁 중'이라는 슬라이드 화면을 보여주면서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건국대통령이 누구인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자도 적혀 있지 않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단체는 함께 세를 몰아줄 때는 다같이 세를 모아줘야 하고, 같이 서명도 해주고 같이 항의시위도 해주고, 1000원이든 5000천원이든 성금도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그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서명, 시위, 모금까지 망라한 보수우익 세력의 통합 사이버 기지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애국연합 홈페이지 '애국닷컴'에 샘플

 

실제로 김씨가 제안한 청원 게시판은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애국연합) 홈페이지인 '애국닷컴'에 샘플이 올려져 있었다.

 

애국연합은 스스로를 "2013년 8월 재향군인회, 한국자유총연맹, 재향경우회,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등 애국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오피니언 리더, 애국시민이 연합하여 결성된 비영리단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애국연합 사이트에는 현재 174개 단체가 링크돼 있다.

전국에 16개 지부를 두고 진보진영을 상대로 고발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전문가, SNS 사이버감시단, 1인시위 활동가 조직을 갖추고 있다.

김흥기씨가 '댓글부대' 논란과 관련해 지난 5월 <경향신문>을 고소할 당시 고소대리인이었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이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다.

특히 '미완성 샘플. 확산 금지'라며 애국닷컴 청원게시판에 올려저 있는 사이버 청원서를 보면 앞으로 이들의 활동방향이 대략적으로 보인다. 샘플용 청원서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주세요(10만명 청원)'라는 제목 아래 이 시장을 공격하는 온갖 비난글이 제시돼 있다. 해당 비난글 밑에 서명과 함께 댓글을 다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김씨가 제안한 사이버청원 조직이 겉으로는 입법청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로서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댓글부대' 기지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에게 "이래도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고 다닌 김씨의 활동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할 것인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엉터리 정책보고서로 김씨에게 1억원을 지원한 미래부도, 말도 안 되는 예산집행을 '적정하다'고 판단한 감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권력기관과 법 위에 군림하며 거의 대놓고 우파세력의 '댓글기지'를 만들려는 김씨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질서는 무너져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7.11 09:44:00

수정 : 2016.07.11 09:52:24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 김신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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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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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새누리의 '조직적 은폐'

끝까지 벽만 쌓은 여당…'세월호 특조위' 종료

 

ㆍ오늘 만료시한…여야, 기한 연장 이견에 진상규명 '발목'

ㆍ여 "야, 대통령 행적 제외 조건 허위사실 말해 협상 곤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30일 정부가 통지한 '활동 만료 시한'을 맞는다. 하루 앞둔 29일에도 여야는 특조위 활동기한을 두고 평행선만 달렸고, 유족들은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외쳤다.

 

세월호 참사 후 805일, 세월호특별법 시행 후 545일 동안 조직적 '태업'에 가까울 만큼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정부·여당과 쪼개진 여론 속에 세월호 진실이 갇히는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특조위 출범부터 '강제 종료'까지 1년6개월간 가장 큰 벽은 사실상 정부·여당이었다. 갈등의 전조는 출범 때부터 나왔다. 특조위에는 정부·여당의 반대로 수사권·기소권은 빠진 채 조사권만 부여됐다. 예산·인력 문제를 두고도 여권의 '세금 도둑' 공세가 이어졌다. 해양수산부는 핵심 직책을 정부 파견 공무원이 맡도록 하는 시행령을 내 논란을 불렀다. 갖은 줄다리기 끝에 특조위는 법 시행 후 7개월이 지난 2015년 8월에야 인력과 예산 확보를 마무리했다.

 

조사 과정도 걸림돌투성이였다. 정부 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는 번번이 막혔다.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집단 사퇴'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포함한 구조작업 지연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출범 당시부터 이어진 여야의 '활동기한' 다툼은 끝까지 진상규명 발목을 잡고 있다.

법률상 특조위 활동기한은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부터 최대 1년6개월이다. 정부·여당은 세월호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야권은 실질적 구성을 마친 8월을 활동 개시 시점으로 본다. 20대 국회 들어 여야는 세월호 활동시한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특별법 개정 문제를 두고 협상을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야당이 '여당이 대통령 행적 조사 제외를 연장 조건으로 걸었다'는 허위 사실을 말하는 이상 현재로서 협상 재개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세월호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이개호 의원은 이석태 특조위원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조사기간 연장을 위한) 여야 간 논의를 계속 진행하고,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내에 소위를 만들어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30일 이후에도 여야는 향후 특조위 조사 활동이 가능한지를 두고 논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여당은 30일 이후 특조위가 활동 보고서와 백서 작성 기간 3개월에 돌입한다고 보지만, 야당은 '조사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당에서도 인양된 선체에 대한 특조위 조사는 보장하는 방안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 제기된 '제주해군기지용 철근 선적 의혹' 등 새롭게 불거진 의혹들도 진상규명 활동 필요성을 환기할 수 있는 고리다.

 

최근 특조위는 참사 당시 세월호에 선적된 철근 410t 중 일부가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물량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검경 합수부가 앞서 밝힌 것보다 124t이 많은 데다, 앞서 국방부는 해군기지행 철근 선적을 부인해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여당 내에서도 철근 선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검찰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얘기여서 깜짝 놀랐다"며 "관계당국에서 정확하게 조사해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6.29 23:31:00

수정 : 2016.06.30 00:45:32

유정인·김한솔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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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보다 정부에 더 큰 책임

특조위, 검·경 누락한 세월호 철근 해군기지 운반 확인

수상한 '철근 400톤', 합수부 은폐 의혹 사실로 드러나

 

세월호특조위가 계속 활동해야만 하는 이유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정부의 태도를 꼽게 된다.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진상조사 방해와 은폐왜곡 및 축소조작 시도가 드러남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주범이 정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사진=자료사진)

 

 

세월호참사 당시 과적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혔던 철근 일부가 제주해군기지로 향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게다가 확인된 철근의 무게가 앞서 검·경합동수사본부(합수부)의 조사 결과와 100톤 이상 차이가 나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 종로구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화물량 및 무게에 관한 진상규명 조사보고서'를 상정해 채택했다.

 

특조위 조사 결과, 침몰 당시 세월호에는 모두 2215톤의 화물이 적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세월호가 출항 전 승인받은 987톤보다 무려 1228톤이나 과적한 것.

 

◇ 검·경의 거짓말 드러나 "침몰시점·원인 다시 규명해야"

 

세월호에 실린 것으로 이번에 드러난 철근 무게는 모두 410톤으로, 사람 5천명 가까이에 해당하는 무게다.

 

특조위는 침몰 전날 선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적재된 화물의 전체 내역과 중량을 조사하는 한편, 화물업체 등에 대해 전수조사해 이같이 결론 내렸다.

 

이는 합수부가 발표한 286톤보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조사 결과 합수부가 모두 124톤의 철근 적재를 누락한 것으로 특조위는 전했다.

 

합수부 발표에서 37톤이 실렸다던 건설자재 H빔 역시 특조위 조사 결과 53톤이나 세월호에 실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세월호의 복원성을 다시 계산해 침몰시점과 원인을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화물의 적재위치와 고박상태가 침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중"이라고 밝혔다.

 

◇ 과적원인이 유병언 과욕때문? 정부, 책임 피하기 어려워

 

(사진=김광일 기자)

 

 

세월호에 과적된 철근 중 일부가 제주해군기지로 운반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부에 과적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특조위는 배에 실린 철근을 생산한 제철소들의 기록에서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업체의 발주경력을 확인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특조위 관계자는 "해군 측에서 일절 답을 하지 않고 있어 어려움이 있지만 해군기지로 향하던 철근이 실제 얼마나 됐는지 현재 자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세월호 상습 과적의 원인은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의 과욕 때문에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해군기지 건설용 자재의 과적이 확인된 이상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간업체의 욕심을 넘어서서 정부기관의 무리한 요구로 과적을 했을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세월호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출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해군기지 건설용 자재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 얘기다.

 

CBS노컷뉴스

2016-06-27 21:21

김광일 기자 ogeera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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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가 죄인 취급 받는 사회

'세월호특조위 활동기간 연장' 야3당 공언 하루 뒤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 연행

 

 

 

6월 25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문화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야3당은 이구동성으로 세월호특조위의 활동 보장을 약속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세월호 진상규명, 대북 정책,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여소야대 국회가 됐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올해 11월 20만 민중총궐기를 성사시켜 헬조선의 절망을 뒤집자"고 호소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문화제가 끝난 6월25일 저녁부터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특조위 강제해산 절차 철회' 등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을 시작한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6월 26일 오후 3시 경, 경찰과 종로구청은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차양막을 강제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웅기엄마 윤옥희씨가 연행됐다. 또 다른 유가족 2명은 실신해 119가 긴급출동하기도 했다.

 

 

영상 : 광화문청사 앞 세월호유가족 연행(유가족방송 416 TV)

 

 

경찰은 차양막 강제철거의 이유가 '도로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즉 도로교통법 위반의 이유로 철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8부는 "일정 기간 고정적으로 설치될 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설치하는 것이 곧바로 도로법이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을 판단하고 적용하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행정부, 경찰은 사법부의 법적인 판단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것이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다.

 

세월호유가족 농성장에 들이닥친 경찰의 공권력 집행은 은행나무에 매단 노란리본을 철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란리본이 도로교통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인해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절규하게 만드는 공권력

 

 

주권자의 눈물 : 정부로 인한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은 800일째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를 빙자한 이기주의, 절대 허용해선 안된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어사전)

즉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국민 상호 간의 이해 조정, 사회질서 수립 및 유지에 있다는 의미다.

만일 정치가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특정의 집단적 가치관을 옹호하며 3권분립의 민주주의 대원칙에 입각한 법치주의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정치를 빙자한 집단적 이기주의일 뿐이며 반역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정치의 대상은 국민이다. 그러나 국민이 단순히 정치 또는 통치의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것의 주체이며, 통치의 대상이기 이전에 권력의 발원인 것이다.

헌법은 제 1조 ①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과 국민이 대한민국 국가형성의 뿌리라는 것을 불가침의 사실로 천명하고 있다.

 

 

공권력 집행은 사법적 판단의 범위 내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중앙해양경비안전본부(구 해양경찰청) : 해경홈페이지 캡처

 

 

세월호특조위 활동에 대한 숱한 방해와 정부의 비협조 가운데서도 세월호 참사는 행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참사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세월호청문회를 통해 참사 사고 초기의 정부 대응은 초등학생의 재난에 대한 대응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월호참사 당시 정부의 재난 및 구조 관계자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무책임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책임의식과 태도에 분노하며 그들의 뻔뻔함과 당당함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대통령이 해체를 공언했던 해경이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간판만 바꾼 채 사고 관련자들 또한 대부분 포상 또는 영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납득할 수 없고 용인할 수 없는 몰상식의 극치이다.

 

관련 세월호 참사 주역 해경 처리, '분명 뭔가 있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세월호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키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가 과연 국민의 정서와 법치주의 상식에 합치하는 일인가에 찬성할 수 없다.

정부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냉대와 그들의 시위, 농성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과 세월호 유가족이 세월호 선체인양 작업 중인 상하이셀비지의 '센첸하오'에 승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 싼 정부의 대응은 그 자체가 거대한 의혹의 '복마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 및 사후처리에 관한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국가불신의 화근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도리를 회복하고 세월호 진상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3.1독립만세운동

 

 

주권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정치와 공권력 집행에 대하여 주권자의 시각으로 바로 보고 판단해야만 한다. 주권의식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바로 알고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적 노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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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정확하게 얘기해야죠, 욕을 먹더라도.."

 

제1차 세월호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서 참사 당시의 구조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故 김관홍 민간잠수사

 

 

세월호 1차 청문회에 출석해서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자고 화 조절이 안된다"고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구조 당시의 불합리했던 구조 상황을 증언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 씨가 6월 17일 오전 7시 52분 경에 숨진 채 발견됐다.

당일 새벽 3시 경에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아 자살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라고 한다.

 

김관홍 씨는 청문회 증언에서 뉴스를 보고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달려 갔고, "국민이기 때문에 간 것이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다"라고 했던 인물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구조 지휘와 열악한 구조환경이었지만 그 것 조차도 왜 도중에 쫓겨나야만 했는지, 남아있는 희생자를 왜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침몰 희생자와 가족 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사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죽음이다.

얼마나 더 많은 억울한 죽음을 지켜 봐야 하는지, 정부의 사후 관리에 문제는 없는지,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재난안전 시스템에 대한 세밀한 점검이 얼마나 긴급하고 필요한 것인지 또 한번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세월호 진상조사는 참사 희생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반드시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영상 제 1차 세월호 청문회 민간잠수사 故 김관홍, 정광근 증언

 

 

영상 : 민간잠수사 故 김관홍 씨 세월호 청문회 증언 중 민간잠수사 소감 (1분 15초부터 고 김관홍 잠수사 발언)

 

 

故 김관홍 잠수사 소감 전문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자고, 화 조절이 안 되니까

그러다가 7월달 경에 지금 현재 유가족, 가족 분들을 만났어요.

만나 가지고 "고맙다"고, "고생했고, 고맙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정신과 치료제를 끊었어요. 그 한 마디에.

정신과 치료제라는 게 치료가 안 되어요. 약이라는 건 화만 눌러 놓는 거지. 그 한 마디가 저에게는…

 

저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제 직업이, 제가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국가 국민이기 때문에 한 거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저희가 왜 마지막에,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11구가 남아 있을 당시에 왜 나와야 했는지, 왜 저희가 그런 식으로 쫓겨나야 했는지, 우리는 포기 못 했는데, 그들은… 왜 저희가 나가야 했는지, 저는 그걸 묻고 싶고요. 가족분들한테… 저희는 구조 업무를 한 게 아닙니다. (울음) 좀 더 빨리 찾아서...찾아드리려고 했을 뿐이고…

 

고위 공무원들에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 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왜 기억이 안 나는지.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그 자리에 계시는데, 일명 저희는 노가다에요.

그런 사람보다 더,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하고 싶은 얘기가 천불같은데. 가족분들하고 저희,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단순한 거에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정확히 얘기를 해야죠, 상황은. 욕을 먹더라도.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관련보도

한겨레신문 숨진 잠수사 세월호 청문회 마무리 발언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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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해체'는커녕 세월호 책임자들 줄줄이 승진

'엄벌하겠다'더니 해임된 건 서해해경청장 뿐…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은 '넘버 투'로 영전

 

해경을 엄벌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단 한명만이라도 살아돌아오라는 국민들의 바램이 분노로 바뀌며 무책임한 정부로 향하던 때였다. 박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4월17일, 해경의 소극적 구조작업에 항의하는 가족들 앞에서 "조사할 것이고 원인규명도 확실하게 할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반드시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했었다. 세월호 침몰 한달여 뒤인 5월19일엔 전국민이 TV를 지켜보는 앞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해경은 해체하고 관피아와 민관유착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해양경찰은 간판을 바꿔달았다. 꼬박 6개월간 '해경 해체'라는 굿판을 벌인 후 국민안전처 산하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자리를 바뤘다. 그러나 떠들썩한 모양새와 달리 '해체'는 처음부터 없었다. 간판만 바뀌었을 뿐 조직도 사람도 유지됐다. 원래 국민들이 요구했던, 구조 방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 해경 책임자들은 줄줄이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 2013년 12월 발간된 '해양경찰 60년사'에 등장했던 현직 지휘부. 사진제공=416연대 부설 세월호참사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본청의 주요 책임자들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과 최상환 차장, 이춘재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경비과장, 고명석 대변인(장비기술국장), 이용욱 정보수사국장, 황영태 상황실장 등이다. 서해청엔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유연식 상황실장, 이평현 안전총괄부장이 있었다. 그리고 김문홍 목포서장과 이명준 청와대 치안정책관(파견)이 해경의 주요 책임자로 꼽힌다.

 

관련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김서중-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재난 관련 메뉴얼과 청와대 보고"

 

김석균 청장은 2014년 11월 국민안전처 출범과 동시에 해경청장직을 퇴임했다. 해경청장은 경찰청장과 달리 2년 임기제도 아니어서 그의 퇴임은 경질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실제 이후의 행보도 '반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을 통해 학술총서를 내거나 고향인 하동에서 강연을 다니는 등 훗날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김진-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해경 지휘 및 명령체계"

 

 

애초에 해경에선 더 올라갈 자리가 없었던 김 청장 이외에 다른 책임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춘재 당시 경비안전국장은 2015년 7월 남해해양경비본부장을 거쳐 2015년 12월29일 해양경비안전조정관 전담직무대리로 올라갔다. 현재 해경의 '넘버2'로 불린다. 이춘재는 김석균 해경청장을 비롯한 해경 수뇌부의 구조 방기 행태에 대한 실질적인 열쇠를 쥔 인물이다. 그는 여인태 본청 경비과장으로부터 승객 상황에 대한 중대 보고를 받고도 퇴선명령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123정'엔 문자상황보고시스템이 없음에도 이 시스템을 통해 지시를 전달해 혼선을 초래했다.

이춘재는 세월호가 이미 45도를 넘어 계속 기울어 있고, 선내에 승객들이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여인태 경비과장으로부터 들었다. 세월호 청문회에서 그는 이같은 사실을 김석균 청장도 "안다"며 "(김석균 청장과)같이 있었다"고 답변했다가, 이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말을 뒤집었다.

 

 

관련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1일차 김서중 김석균 해경청장,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703기 등 항공기 구조구난 임무)

 

 

관련 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1일차 이호중 유연식 서해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 , 이춘재 해경경비안전국장

 

 

관련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3일차 오후 14 신현호-해경 김수현 김문홍 이춘재(이춘재 관련 : 7분 19초부터)

 

 

이춘재에게 123정으로부터의 중대 보고를 전달했던 여인태 본청 경비과장은 지난해 1월 여수해양경비안전서장에 취임했다. 여인태는 김경일 123정장의 현장보고를 듣고도 퇴선명령이나 선내 집입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감사원 조사에서 "상황처리에 있어 상황 지휘를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제가 독단적으로 직접 123정에게 선내 진입하여 탈출하라는 등의 지시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대부분의 승객이 선내에 남아있고 배가 계속 기울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같은 상황을 다른 곳에 전파하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고명석 장비기술국장은 그해 11월 국민안전처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15년 12월29일 치안감으로 승진해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장(서해해경청장)에 올랐다.

 

▲ 왼쪽부터 조형곤 목포해경 상황담당관, 이춘재 해경 본청 경비안전국장, 유연식 서해해경 상황담당관.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세월호 침몰 사흘후인 4월19일 "현재 계약된 '언딘'이라는 잠수업체는 심해 잠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구난업자"라며 "전문성은 해경과 해군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는 해경이 언딘의 리베로호가 도착하기 전까지 언딘 협력업체의 미니 바지선인 '2003금호'호를 현장에 알박기했던 시점이다. 이 알박기로 인해 구조수색 작업은 빈번히 중단됐다. 이후 5월초 언딘은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언딘은 구조업체가 아니다"라며 "사고 초기에 구조가 완료됐다고 해서 인양하기 위해 현장에 임했다"고 고백했다.

황영태 본청 상황실장은 2015년초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1505함장을 거쳐 올해 1월 3002함 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영태는 세월호 침몰 당일 "6천톤짜리가 금방 침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 승객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 본청 상황실장이었던 그는, 세월호가 선수만 남기고 침몰한지 2시간여가 지난 오후1시 해수부 등이 전원구조와 같은 의미의 '350명 구조'라는 동떨어진 상황전파를 한 데도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침몰 당시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됐던 이명준 총경은 올해 1월8일 서귀포해양경비안전서장에 임명됐다.

 

해경의 고위 책임자들중 세월호 참사로 해임된 것은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뿐이다.

반면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안전총괄부장이던 이평현은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장이 됐다. 그는 사고 첫날 수사본부장을 맡았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로 확대된 이후엔 수사부본부장이었다. 그는 16일 밤 언딘측과 해경의 합동회의를 마친뒤 진도체육관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우리는 언딘만 믿습니다."라며 사태 초기 국면을 구조 실패로 몰아갔던 인물이다. 그는 수사초기 선원들을 해경의 집과 모텔 등에 투숙시킨 의혹과 관련해서도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서해해경청 상황담당관이었던 유연식은 동해해경서 5001함장을 거쳐 지난해 7월 완도해양경비안전서장에 취임했다. 그는 "세월호에서 승객 퇴선 여부를 묻는데 어떻게 해야되느냐"는 진도VTS센터의 전화를 받고 "퇴선 여부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했다. 그는 상황파악도 하지 않고 퇴선 책임을 선장에게 떠넘겨버렸다. 감사원은 유연식이 "진도VTS 센터가 홀로 세월호와 교신하도록 내버려두어 세월호와 구조 본부 및 구조 세력 간 직접 교신을 통해 사전 구호 조치를 지시할 기회를 일실하였다"고 지적했다.

 

관련 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1일차 장완익 이춘재 해경경비안전국장, 유연식 서해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1분 23초부터 유연식 증인)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은 국민안전처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기획운영과장으로 갔다가 동해해양경비안전서 1513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서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123정이 속한 목포해경서장으로 최초의 현장지휘자였지만 현장으로 가지 않았고 부적절한 지시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감사원은 징계의결서에서 김문홍이 "이미 조치했던 원론적 내용에 불과"한 조치들을 명했고 "현장 지휘를 태만히 했다"며 해임을 요구했었다.

 

관련영상 : 1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이호중-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

 

 

최상환 해경 차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직위해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제협력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다른 해운비리 사건에 연루돼 해임됐다.

<도움주신 분='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미디어오늘

2016년 06월 14일 화요일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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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MBC 파업 당시 '종북 노조' 여론전 개입"

언론노조-MBC 노조, 원세훈 등 국정원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 고발

국가정보원이 지난 2012년 문화방송(MBC) 파업 당시 여론 조작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파업 당시 '종북 몰이' 여론전의 피해를 입은 MBC 노조원들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직원들을 국가정보원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MBC 파업 당시 국정원의 여론전 개입 사실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재판 과정을 통해 알려졌다. "국정원 직원들의 온라인상 정치개입 혐의가 개인적인 일탈 수 있지 않냐"는 재판부의 지적에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MBC노조 파업에도 개입했다"고 답했고, 이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의 MBC 파업 불법 개입 정황은 이미 여러 차례 포착된 바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3년, 'kkokkonut'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국정원 직원이 포털사이트에 '안티MBC카페'를 개설하고 "제작비로만 몰래 20억 횡령해놓고 파업하고 있는 귀족노조 MBC!"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검찰이 작성한 범죄일람표에서도 국정원은 2009년 2월과 9월 미디어법과 관련 언론노조를 '좌익언론단체', '김정일이 선동한 폭동세력'으로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2012년 문화방송 장기 파업 당시 MBC 사옥 안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는 노조 조합원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언론노조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국정원 트위터 계정 등을 추가로 파악했고, 그 결과 검찰과 법원이 국정원 직원 계정으로 인정한 8개의 계정이 2012년 9월부터 11월 사이 언론노조MBC본부를 '종북노조'로 비방하거나, '이중생활 불법선거운동, 사생활 폭로 등'을 언급하며 허위 사실을 직접 유포하거나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이번에 확인된 8개의 계정은 국정원 대선개입 재판 2심 판결문 별지 '트위터 계정 일람표'에 나온 계정과 동일하다며" "명백히 국정원법 위반, 허위사실 적시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이번 국정원 상대 소송은 단순한 이슈파이팅 소송이 아니"라며 "'청와대-국정원-공영방송뉴라이트이사-공영방송낙하산사장'으로 이어지는 국가권력의 조직적인 언론장악 공모를 철저히 밝혀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고소장 접수에 앞서, 2012년 장기 파업을 이끌다 해직된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파업에도 개입하지 않았을까' 의심했는데, 명확해졌다"며 "고소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아직 조사 중이고 확인 중인 내용들도 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

2016.05.20 14: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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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 경비정 CCTV 본체 찾았다

"CCTV 없다" 해경 거짓말 들통

 

목포해경이 지난 19일 밤늦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박종대씨에게 보낸 공문. / 박종대씨 제공

 

참사 당일 해경 구조 실패 이유 밝힐 지 주목

"거짓이면 책임지겠다"…해경 관계자 허위 답변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목포해양경찰서(현 목포해양경비안전서) 소속 123정 폐쇄회로(CC)TV 본체를 해경 측이 보유 중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2014년 4·16 참사 이후 2년여만에 추가적인 CCTV 검증 가능성이 열리면서 사고 당일 해경의 구조 실패 책임이 보존 영상을 통해 공개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지난 19일 오후 9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52)는 목포해경으로부터 '세월호 구조 현장에 출동한 123정의 CCTV 본체는 우리 과(해상수사정보과)에 보관 중임을 통보합니다'라고 적힌 공문을 받았다. 박씨가 2014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줄기차게 정부를 상대로 달라고 요구했던 123정 CCTV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보관 중"이라고 알려온 것이다.

당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수사에 참여했던 대검찰청 관계자는 지난 16일 "CCTV 본체는 목포해경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목포해경은 지난 5월초부터 총 3차례에 걸쳐 유족 박씨와 경향신문 측에 "123정 CCTV는 본서에 없다"고 통보했다. 목포해경 관계자는 "CCTV(본체)도, 자료(영상)도 없다"며 "거짓이면 책임지겠다"는 말까지 했다.

 

영상 : 제2차 세월호 청문회에서 세월호에 설치된 CCTV 영상에 대하여 심문하고 있다. CCTV 영상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후 지난 19일 오후 3시 경향신문 보도(▶[단독]행방불명된 123정 CCTV 영상··검찰 "목포해경에", 목포해경 "없다")가 나간 뒤 불과 몇시간만에 '본체 없음'에서 '본체 보유'로 공식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꿨다.

목포해경 관계자는 "CCTV 관리 소홀은 아니다. 소홀했다면 123정 CCTV 본체가 없어졌어야 하는데, CCTV 본체는 분명히 우리 서에 있다"면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측에서 공식적인 루트로 요구하면 논의를 거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관련 물품을 정리해 놓은 목록이 없었느냐'는 추궁에는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게 아니라 임의제출 형식으로 CCTV 본체를 가져가 목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임의제출을 했던 증거물들을 따로 정리해놓은 목록은 없다"고 답변했다.

 

영상 : 제1차 세월호 청문회. 당시 비상임위원인 이호중 교수의 해경에 대한 청문 소감. "아무것도 안했다"

 

앞서 참사 직후 해경이 최초 구조 장면이 촬영된 CCTV 화면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123정 항해팀장의 검찰 진술조서 등에 따르면 해당 경비정에는 4대의 CCTV가 달려 있었다. 후미에 달린 CCTV에 찍힌 영상은 이미 유가족을 통해 공개됐다. 그러나 기관실 안을 촬영한 나머지 CCTV 영상을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당시 해경은 "이 CCTV 영상은 함정 자체 안전용으로서 공개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영상 : 제1차 세월호청문회. 당시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의 답변. 세월호특별법과 세월호특조위의 권한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 발뺌과 막말들.

 

세월호 유족 측을 대리해온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당선인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123정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면서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왜 끝까지 공개 여부를 검토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신속하게 CCTV 본체와 영상을 공개해야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 박씨는 조만간 다시 목포해경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예정이다. 박씨는 "없다고 반복하다가 이제서야 있다고 하니 당연히 더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면서 "CCTV 본체가 없는 것처럼 거짓말한 한 데 대해서도 사과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향후 123정 CCTV 본체와 영상 입수에 나설 방침이다.

 

경향신문 [단독]

입력 : 2016.05.20 13:28:00

김원진·조형국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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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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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밧줄 미스터리, "묶었으나 잡아당기진 않았다"

해경 123정장, "후진 지시한 것 맞다"면서도 밧줄은 진술 오락가락… 사라진 영상 6분도 의혹

 

영상 : 해경 123정이 밧줄로 세월호를 묶고 후진, '침몰유도' 논란의 영상

 

해경 123정의 세월호 전복설로 진행중인 항소심 재판에서 김경일(구속) 전 해경 123정장이 4일 "후진을 지시한 것은 맞지만 밧줄로 당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정장은 해경123정이 2차 접안 이후 이동하면서 좌우로 뒤틀리는 동안 세월호 선수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며 전복되는 장면이 담긴 KBS 보도 영상(드래곤에이스 CCTV)에 대해서는 "123정의 한쪽만 엔진이 들어있었기(가동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전 정장은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 심리로 열린 김현승씨의 명예훼손 소송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김 전 정장은 세월호 구조책임자로 현장에 출동했지만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책임과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돼 현재 해남교도소에 복역중이다. 또한 김현승씨는 앞서 해경 123정이 세월호를 전복시켰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했다.

김경일 전 123정장은 현장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세월호 선원을 구조한 뒤 후진하는 과정에서 배를 잡아당긴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현승씨의 변호인인 김종보 변호사는 박상욱 경장의 진술조서를 제시했다. 조서에는 검사가 박 경장에게 '박 경장이 조타실 출입문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동영상을 보게 되면, 123정에서 김종인 경위가 세월호에 연결되어 있는 홋줄을 다른 의경들과 함께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장면은 홋줄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잡고 있으며 진술인이 홋줄을 풀기 위해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홋줄을 놓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어떤가'라고 질문하자 박상욱 경장이 '예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를 두고 김종보 변호사는 "123정이 세월호에 묶인 밧줄(홋줄)을 잡아당긴 것이 사실인가"라고 신문했다.

김경일 전 정장은 "잡아당긴 것이 없다. 우리 배가 잡아당겼다는 것이냐. 아니다"라며 "엔진을 자주 쓰니 (123정의) 선수와 세월호가 안벌어지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밧줄을 왜 묶었는지 모르지 않느냐'는 신문에 김 전 정장은 "지금 생각해보니 간격이 벌어지면 구조 작업을 못하니 안벌어지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 같다. 거의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김경일 전 해경123정장. 사진=이치열 기자

 

당시 후진을 지시했는지에 대해 김 전 정장은 "지시한 것은 맞다"며 "내가 후진하라고 할 땐 선수에 줄이 안보였다. 있었으면 줄을 걷으라 했을 것. 없었으니 후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인은 '결국 후진하면서 잡아당기는 형국이 됐으며, 많은 의혹이 생긴 것 아니냐'고 신문하자 김 전 정장은 "우리 홋줄이 굵기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원모양을 보이며) 이 정도다. 이 정도 굵기로 배를 끌 수 있겠느냐. 말같지 않은 소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는 해경123정이 세월호에 1차 접안한 후 선원들을 구조하고 전남 어업지도선 707호에 인계한 뒤 다시 2차 접안을 통해 일부를 구조하고 나오는 과정이 촬영된 CCTV 영상이 논란이 됐다.

 

KBS가 지난 2014년 5월31일 <뉴스9> '침몰 직전 7분… 해경 뒤로 빠져?'라는 뉴스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민간상선인 드래곤에이스의 CCTV 영상을 KBS가 입수해 보도 한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면, 123정이 연돌에서 흰 연기를 뿜어내면서 상당한 동력으로 후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123정이 멀어지면서 세월호 선수 중앙 높은 흰색 기둥이 해수면에서 30도 정도로 기울어 있다가 바닷속으로 잠긴다. 또한 세월호 선수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123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잡힌다. 123정이 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장면도 나온다. 다만 화면이 흐릿해 해경123정과 세월호가 밧줄로 이어져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고, 영상이 짧게 인용돼 있어 확실한 판단을 하긴 어렵다.

이 당시 후진을 지시한 것이 맞느냐는 변호인 신문에 김 전 정장은 "예"라고 답했다. 그러나 123정 연돌에 굴뚝이 나오는 것에 대해 김 전 정장은 "연기가 하얗게 나온다. 저건 무부하 상태이다. 엔진을 켜둔채 그대로 놔두면 (저렇다). 엔진이 두 개이지 않느냐. 동시에 두 개를 못쓴다. 둘 중 하나만 켜면(좌우로 많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영상엔 세월호 마스트가 잠기고 선수가 살짝 움직이며, 조류의 반대방향인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는 지적에 김 전 정장은 "(123정이) 후진해서 저 정도 각이 생긴다는 것은 힘이 안들어가서 도는 것이지, (123정) 앞에 힘이 있으면 배가 오히려 안돈다. 엔진을 좌우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2014년 5월31일 방송된 KBS <뉴스9> 영상 갈무리

 

이에 변호인은 '세월호가 모든 동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저렇게 움직였다는 건 뭔가가 힘을 가했기 때문이 아니냐', '주변엔 123정 뿐이었다. 123정 때문에 동력을 밧줄로 세월호에 작용시킨 것 아니냐'고 따졌으나 김 전 정장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밧줄이 걸려있는지와 관련변호인은 "(밧줄이 없이) 후진한다면 일직선으로 쭉 뒤로 빠졌을 텐데 좌우로 갔다가 빠진다"며 "세월호가 연결됐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있다. 김 전 정장은 홋줄을 맸는지 몰랐다고 했지 않느냐"고 신문했다. 김 전 정장은 "엔진 쓰면 (좌우로) 빨리 안돈다"며 "우현 한쪽 엔진만 썼으니 돈 것이다. 배를 빼보면 안다"고 답했다.

해당 영상의 시각은 4월16일 오전 10시11분부터 10시18분까지로, 해경123정의 이민우 순경이 촬영한 영상에는 누락돼 있는 영상이다. 해경이 검찰에 제출한 동영상 파일 목록을 보면 2014년 4월16일 10:11:36부터 7초가량 촬영된 동영상 다음 영상이 10:17:04부터 4초가량 촬영된 동영상으로, 그 사이 6분 정도가 빈다고 변호인이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정장은 "그 때 6분? 모른다"라고 답했다가 변호인의 이어진 신문에 "모르는데, 이민우 순경도 작업할 땐 찍지만, 작업 안할 때는 안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 정장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 도착한 직후 10분 동안 세월호에 접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계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앞쪽으로 가다가, 후진하다가 조타실에 사람이 보여서 계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처음 구조한 선원에 대해 그는 "처음엔 선원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또한 1차 접안 이후 배가 후진하는 과정에서 박상욱 경장과 조준기 조타수가 123정에 옮겨타지 못하고 바닷속에 뛰어든 경위에 대해 김 전 정장은 "그 때는 우리 배가 세월호 선수쪽에서 직각으로 섰기 때문에 선수를 못봤다"며 "다 탄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도 김 전 정장이 후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후 세월호 2차 접안 때 승객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선미가 아닌 3층 객실 옆으로 접안한 이유에 대해 김 전 정장은 "계류할 자리가 저기 뿐이어서였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접안 이후 김종인 부정장이 세월호와 123정을 2번째 밧줄로 묶는 동영상을 상영한 뒤 누가 밧줄을 묶으라고 지시했느냐는 변호인 신문에 김 전 정장은 "현장에서 알아서 한 것 같다"며 "용도는 잘 모르겠다. 세월호와 벌어지지 않게 하고 작업하기 용이하게 하게끔 묶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정장이 밧줄을 묶었는지 여부와 현장 구조작업 지휘를 김종인 부정장 또는 현장에서 알아서 한 것이라고 증언함에 따라 재판부는 다음 재판에 김종인 부정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기로 했다.

 

미디어오늘

2016년 05월 05일 목요일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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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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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리본, 컴퓨터 문자로 영원히 남는다

'리멤버 416' 유니코드 등재

전세계인들 문자로 쓸 수 있어

 

'리멤버 0416'(Remember 0416)이라는 이름으로 유니코드 '채택 (후원)문자'로 등재된 세월호 리본. 유니코드협회 누리집 갈무리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이 된 '노란 리본'이 전세계가 공유하는 컴퓨터 '유니코드 문자표'(사진)에 영원히 남게 됐다.

20일 유니코드협회와 4·16연대에 따르면, 국내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리멤버 0416'(Remember 0416)이라는 이름으로 유니코드협회의 '채택(후원) 문자'로 등재됐다. 유니코드는 국제 산업표준으로 정해둔 문자 코드다. 한글과 알파벳을 포함해 전세계 모든 언어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월호 리본이 유니코드 문자로 등재됐다는 것은 세계 모든 컴퓨터에서 세월호 리본을 문자처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유니코드 번호 '1F397'인 이 문자는 원래 '기억의 리본'(REMINDER RIBBON)이라고만 지칭됐다. 그러나 최근 한 후원자가 유니코드협회에 기부금을 내고 이 문자를 '리멤버 0416'이라는 채택 문자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코드협회는 누리집을 통해 한번 채택 문자로 등록되면 그 효과가 영구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4·16연대는 노란 리본이 '리멤버 0416'으로 등록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배서영 4·16연대 사무처장은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를 하면서 1주기 때보다 관심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줘 세월호가 모든 이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유니코드 등재 역시 그런 공감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고, 익명의 후원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니코드 '1F397'로 등록된 세월호 리본

 

 

한겨레신문

등록 :2016-04-20 19:24

수정 :2016-04-20 21:26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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