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 나만 잘살면 된다는 망국의 풍조가 만연

부친의 친일행적까지 기록한 친일문학론은 고발장 아닌 성찰을 촉구한 진실의 기록

 

영상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임종국(林鍾國) 선생 약력

 

임종국 선생은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생하고 1956년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시작품 (文學藝術, 1956.11.)자화상 自畵像(思想界, 1960.1.) 등이 추천되어 시작 활동을 하였다.

 

1929 경남 창녕 출생

1952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59 문학예술에 시 <()>발표로 등단, 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詩作 활동

1965 굴욕적 한일회담을 계기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연구 시작

1966 친일문학론》 《이상전집출간. [친일문학론]을 낸후 그의 친일연구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군사,예술 분야 등 사회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고 임종국은 친일파 개인의 친일행적뿐 아니라 그 집안의 친일내력까지도 연구했다.

1968 고려대학교 4학년 재입학

1969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70 발가벗고 온 총독출간(선문출판사)

1974 한국문학의 사회사출간(정음사)

1978 醉漢들의 배출간(평화출판사)

1980 韓國社會風俗野史출간(서문당). 여전히 친일파가 활개치는 세상, 친일파와 비굴한 학계의 외면 속에 아사 지경에 이를 만큼 가혹한 생활고와 학자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오직 연구에만 전념한다. (천안의 한 외딴집 요산재(樂山齋)에서 병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계속된 집필 활동)

1981 정신대 실록출간(일월서각)

1982 일제침략과 親日派출간(청사)

1984 밤의 일제침략사출간(한빛출판사)

1985 일제하의 사상탄압출간(평화출판사)

1986 한국문학의 민중사출간(실천문학사)

1987 친일논설 選集출간(실천문학사)

1988 日本軍朝鮮侵略史 1출간(일월서각)

1989 日本軍朝鮮侵略史 2출간(일월서각).

1989 '친일파총서' (10) 발간을 계획하고 1994년 완간 계획으로 저술 중 폐기종으로 타계.

1992 임종국 선생 제6회 심산상 수상 (수상저서 : 친일문학론≫≪일제침략과 친일파)

2003 KBS1TV 인물현대사 '임종국'편 방영(연출 김정중)

2005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출범(회장 장병화)

2005 보관문화훈장 추서 <편집자 주>

 

 

 

 

 

한민족은 원래 인심이 넉넉한 민족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이 지경이 됐다.” 임종국 선생은 나라와 민족을 망친 인물로 이성계, 이완용, 이승만을 꼽았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고 그대로 요동정벌에 나섰다면 대륙의 기질을 가진 우리 민족은 웅대한 민족이 됐을 것인데 이성계가 반역하는 바람에 당파 싸움이나 하는 좀스러운 민족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다.

친일파 이완용은 가렴주구로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이승만은 독립운동 세력을 말살하고 친일파들이 순식간에 친미파로 둔갑해 득세하면서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되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망국의 풍조가 만연해졌다고 탄식했다.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 임문호는 최린(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독립선언에 참여했다가 친일파로 돌아선 뒤 천도교 최고 지도자가 된 인물)의 수제자였는데 천도교가 친일로 돌아서면서 당수였던 아버지도 친일 노선을 따라가야 했던, ‘변절 친일파의 한 사람이었다.

 

영상 : 뉴스타파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1~3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에서 친일파를 단죄하는, 그 무겁고 버거운 삶의 무게

 

 

 

 

일제 하의 항일 독립투사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의 역사독립군 임종국 선생의 삶 또한 고단하고 아픈 나날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벗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다음엔 형제가 떨어져 나가고, 또 그 다음엔 돈이 떨어지고, 그 다음엔 아예 쌀과 원고지마저 떨어졌다.

선생의 정신은 오롯했으나 삶의 비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찔리고 찔리고 또 찔리면서 선생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글을 쓰다 피를 토하고, 토한 피를 수건으로 닦아 내며 다시 글을 쓰고, 글을 쓰다가 병마에 쓰러지고 쓰러졌다 일어서 다시 글 쓰기를 반복했지만 고단한 삶을 앞세운 병마는 녹녹치 않았다. 어느날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과연 선생의 피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삶의 무게가 역사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수 있다

 

 

 

새파랗게 날 선 일본도와 총으로 무장한 일제의 군인과 순사 앞에 선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그저 당신과 당신의 가솔들이 무탈하게 이 험악한 고비를 넘어가 주기를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제의 조선 강탈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며 속히 고난의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그들에게 서슬퍼런 군부 친일세력의 쿠데타는 감은 눈, 다문 입을 더 굳게 여미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삶의 무게를 역사의 그것 보다 무겁게 받아들인 채, 회피하고 굴종하면서 속히 지나가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나서 끝내 주기를 원했던 그 험악하고 처참한 상황들은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끝나 주지 않았다.

친일파들의 생존과 기득권 유지를 향한 야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극악무도하고 교활하게, 치밀하게 사회 전반의 영향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친일이 친미로 변신하고 매국이 애국으로 탈바꿈되면서 반민족 매국 행위로 쌓아 올린 기득권(권력과 금력)을 영구적으로 세습화하기 위하여 범 친일세력이 똘똘 뭉쳐서 언론을 장악하고 안하무인으로 역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

순간만 넘기면 홀가분할 줄 알았던 삶의 무게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약을 먹을 수는 없듯이 아무리 삶이 괴로워도 회피하거나 용인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우리는 선대로부터 삶의 무게가 역사의 무게 보다 무거울 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독립군그 대열의 선봉에 서자

 

현재에 안주하는 안이함과 삶의 무게를 역사의 무게 보다 무겁게 치부하는 비굴함으로는 후대에 더 큰 삶의 무게와 굴종을 남겨 줄 뿐이라는 것이 우리가 선대로부터 받은 교훈이다.

옳은 것을 옳게 하지 못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방치한다면 어느 사이엔가 온통 옳지 못한 것들에 포위되고 말 것이다.

나를 위하여, 내 가족을 위하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위하여 더 이상 비굴하지 말자.

역사독립군의 선봉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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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농락하지 마라

 

 

 

한국문인협회가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을 의결했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를 받았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 변절 문인이다. 또한 이 상의 제정을 제안한 문효치 이사장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문종구의 증손자다. 작년 8월에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통해 친일 후손임을 밝히고 증조부의 죄과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른바 '친일 공과론'은 친일매국노와 그 후손들이 '면피용'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논리이다. "잘못이 있지만 잘한 것도 있으니까 잘한 것은 칭찬하자"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친일매국노의 잘못은 최고최악의 민족과 국가반역으로써 대부분 극형에 처해져야 할 중죄다. 만일 그들의 '잘한 일'을 칭찬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잘못한 일'을 단죄하고 나서 생각해 볼 일이다.

범죄자는 형벌을 받아야 하고 범죄행위로 얻은 모든 것은 몰수되어야 하며 거기에 덧붙여 추징까지 하는 것이 정상적인 해결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현재까지도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한 인사들이 발견되는 즉시 가차없이 처단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논평을 내고 철회를 요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전문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 육당, 춘원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

 

한국 문단에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문인협회(문협)가 지난 7월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문효치 이사장이 제안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별 이의 없이 가결했다고 한다. 또 내년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무정' 발표 100년을 기념해 심포지엄도 열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누구인가?

최남선(☞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은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서 일제의 역사왜곡과 식민사학 수립에 협력하였으며, 1938년부터 5년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친일 고위관리를 양성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시작으로 임전대책협의회 등 각종 친일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징병·징용·국방헌납 등 전쟁동원을 선전하는 시국강연과 좌담회에 단골 강사로 참석하였고 〈보람 있게 죽자〉 외 수많은 친일논설을 발표하였다. 하늘이 준 재능을 민족 반역의 길에 내다버린 안타까운 지식인인 것이다.

 

이광수(☞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는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내선일체와 조선문학〉 〈황민화와 조선문학〉을 쓰는 등 조선문학을 일제의 선전도구로 만드는 데 앞장섰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자 가야마 미쓰오(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꾸고 〈창씨와 나〉를 기고하는 등 창씨제도를 적극 선전하였다.

1943년 징병제 실시가 공포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출진할 것을 권유하였고, 〈지원병장행가〉 〈징병제의 감격과 용의〉 등을 기고하여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신념으로 일제에 협력한 최고의 친일 이데올로그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일제하 행적은 이번 문협의 결정이 몰가치적이고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이들의 죄는 온 민족의 신뢰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서도 신념을 꺾고 앞잡이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 아까운 재능을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응하는 일에 남김없이 쏟았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1919년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항일의 상징적 인물이었음에도 친일 변절의 길로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설혹 '문학적 공로'가 있다 한들 어떻게 이들의 죄상을 가리겠는가? 더구나 민족지도자로 행세해온 지식인의 변절은 그 악영향이 일신의 부귀영화에 집착한 매국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후세가 이들에게 한층 더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기념하는 상에는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를 표상으로 삼아 본받자는 의미일 터인데, 과연 육당과 춘원이 남긴 자취가 그렇게 향기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문효치 이사장은 "육당과 춘원의 친일 부분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며,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두 분이 작품으로써 문학사 건설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인데 친일 행적 때문에 문학적 자산까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문학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형적인 '공과론'으로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친일파와 친일비호세력들의 변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문학적 자산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문 이사장의 핑계와 달리 최남선과 이광수에 대한 연구는 차고도 넘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최남선과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되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물론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된 특급 친일파라는 사실이다.

국가와 민간이 거듭 반민족행위자로 못박은 자들을 기념하는 상을 굳이 제정하려는 문협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공연하게 역사쿠데타를 자행하는 세력에 편승하여 무엇을 도모하려 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문 이사장은 작년 8월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증조부 문종구의 친일에 대해서 반성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그의 어려운 고백에 찬사를 보내면서 문인으로서 자존감을 살린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지금도 선대의 과오를 대속한 문 이사장의 발언이 거짓이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 때의 진정성을 잃지 말기 바란다.

 

시대정신은 과거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에 있다. 백번 생각해 봐도 이번 육당과 춘원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 결정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다. 한국문인협회는 반역사적이며 반문학적인 이번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문학인의 시대적 책임을 다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면 더 이상 문학이 될 수 없다. 다산은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2016. 8. 2.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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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신적자'들이 떨었다고 전해라

친일인명사전 배포저지 대소동

 

▲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포하려 하자 교육부가 12일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나섰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대한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나서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014년 말 서울시 의회는 2015년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기로 하고 예산 1억8천만 원을 책정했다. 이미 사전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를 제외한 583개 중.고교가 배포 대상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까지 동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예산이 1년 넘게 집행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세력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해를 넘겨 예산이 불용처리될 지경에 이르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일 어렵사리 구입 예산 교부에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 알려지자 먼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 학부모단체들이 '정치 사전' 운운하며 배포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 수구언론들이 일제히 강제배포라고 부당성을 지적하며 거들었다. 11일에는 급기야 자율교육학부모연대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단체가 서울행정법원에 예산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정해진 수순이었을까? 교육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12일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절차를 문제 삼으며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있다.

 

배포를 반대하는 논리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친일인명사전』의 정치적 편향성이다.

둘째,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다.

셋째,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시각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친일인명사전』이야말로 객관성과 엄정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친일인명사전』은 철저하게 전거에 입각해 서술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박정희 장지연 장우성 엄상섭 홍순일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한결같이 원고패소로 판결한 것도 『친일인명사전』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객관성과 엄밀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친일인명사전』에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밀접한 이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로 『친일인명사전』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 임문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스승 백철을 비롯해 다수 지도위원 운영위원들의 선대와 스승들이 등재되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의심하는 자체가 터무니없는 시비에 지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연구소를 종북좌경으로 음해하는 자들의 주장과 달리 월북인사를 포함한 북한 정권의 고위급도 다수 이름이 올랐다. 야권의 정치인들에게 관대했다는 비난도 억설일 뿐이다. 신기남 의원의 선친 신상묵, 홍영표 의원의 조부 홍종철 등이 이를 반증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야권의 정치인들은 선대를 대신해 과오를 깊이 반성한 데 비해, 여권의 정치인들은 친일행적에 대한 부정을 넘어 애국자로 둔갑시킨다는 점이다.

 

『친일인명사전』보유편과 개정판에는 초판에서 자료의 한계로 인해 일시적으로 보류하였던 지방과 해외의 반민족행위자가 다수 추가될 예정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오랜 논의를 거쳐 확정한 선정기준에 부합한다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친일인명사전』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사례와 증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 2009년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왼쪽부터)이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했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 발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공신력이 없는 일개 민간단체라는 폄하도 설득력이 없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각 분야의 근현대사 전공교수와 전문가 180여명이 참여한 학계를 망라한 조직이며, 이를 뒷받침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최대의 근대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권위있는 연구기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신력은 정부부처나 사법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심지어 검찰조차 연구소에 인물정보 조회를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사업 재검증, 국가보훈처의 서훈 심사대상자에 대한 친일행적 조회, 문화관광부의 '이달의 문화인물' 검증, 여성가족부의 '한국 최초의 여성인물' 검증 등 그 예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거꾸로 말하자면 정부는 수천 건에 이르는 인물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조회했다는 것이 아닌가. 국가보훈처가 2011년 4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한 엄청난 결정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친일인명사전』 배포가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교육부의 주장도 가소롭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각급학교에 대한 도서 배포 등 여러 차례 특정 이익단체를 지원한 전례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무한 배려를 생각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

또 각종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는 모양인데 교육부가 언제부터 현장의 자율권을 그다지도 존중했는지 되묻고 싶다. 그렇게 자율권을 존중한다면 자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제나 걷어치우기 바란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창립25주년기념 특별좌담회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의 의의를 이렇게 비유했다.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했다(맹자 등문공 하)는 말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고 나니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친일청산'을 한사코 반대하며 난신적자의 길을 굳이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역사란 불편한 진실도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필자소개>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를 진행했다. 친일문제와 한일관계 등 근현대 과거사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법정에 선 역사정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 「74년 조직(세칭 '인혁재건위')사건의 운동사적 의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의 의미와 쟁점」 등의 글이 있고, 『일제협력단체사전』,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 경희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 2016-02-16> 통일뉴스

 

☞기사원문: '난신적자'들이 떨었다고 전해라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 (乙巳五賊)' 등과 함께 국권과 민권을 일제에 팔아 넘긴 자들은 조선 말기의 난신(亂臣)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사리사욕을 치장하기 위해 현재의 외교정책이었던 '사대주의'를 비방하면서도 친일사대주의를 신봉하였고, 역사왜곡과 언어 및 전통문화 파괴를 통한 민족정신 말살의 선봉에 섰다.

광복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과 야합하여 민족주의자들을 학살, 제거하는가 하면 허위, 왜곡과 조작으로 용공과 종북 프레임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다.

애국(愛國)이란 애민(愛民)이며 역사와 전통에 대한 숭상이다.

난신적자(亂臣賊子) 친일파는 생존을 위해 상식을 파괴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며 정통성을 적대시한다. 그들의 태생적 한계는 적반하장으로 나타난다.

- 편집자 주 -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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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와 밀실의 가면집필자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패러디 영상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바로가기)

 

대체 왜? 정부는 집필자들의 정체를 숨기는 것일까요?

복면집필자,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복면집필자는 원로학자, 역사 관련 교육자 및 연구자 또는 인접 학문 교원일 수도 있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띄는 특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첫째, 거만한 자

최근 자신이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척 근엄한 얼굴을 하는 사람

 

둘째, 졸린 자

지난 겨울부터 잦은 출장과 세미나를 이유로 자리를 비우고 무척 피곤해하는 사람

 

셋째, 떠는 자

예민하게 주위를 경계하거나 불안에 떠는 사람.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하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숨어있는 집필자를 찾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제보입니다.

그리고 복면집필자들에게도 꼭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제라도 복면을 벗고 '떳떳한 역사가', 그리고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돌아 오십시오. 그것만이 '역사교과서국정화'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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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혈서조작설 유포, 강용석 정미홍 일베회원에 "손해배상하라" 화해권고

법원 1심에 이어 또 다시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명예훼손 인정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5일 법원조정센터 조정을 통해, 민족문제연구소가 강용석 변호사와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일간베스트 회원 강아무개 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강 변호사 등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굴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가 조작·날조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전파하여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2014년 7월 소송을 당했다. 서울지법은 23일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조서를 통해 강 변호사는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 일베회원 강씨는 3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지급하라며 화해권고를 결정했다. 다만 이 결정은 강제사항이 아니며 2주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있으면 정식재판이 다시 개시된다.

이 결정은 1심에 이어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강 변호사 등의 명예훼손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2015년 10월 27일 서울지법 민사39단독 최경서 판사는 이 사건 1심에서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리고 강 변호사는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 강씨는 30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지급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손해배상 금액 등에 대해서는 담당 변호사와 협의를 거쳐 이의신청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박정희 혈서조작설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는 것이 이번 법원의 결정을 통해 재차 확인되었다"며 "언론과 인터넷 상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연구소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가 없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연구소는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보수단체활동가 방O경씨에 대한 법적절차가 진행중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보수단체활동가인 방O경씨는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군복을 입고 일본도를 차고 있는 박정희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한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방O경씨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연구소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왔다고 한다. 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러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는데 박정희 사진조작설 뿐만 아니라 "주사파", "빨갱이", "부모가 공산당원" 등 연구소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비난과 저주의 내용을 담고있다. 연구소는 동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며 조만간 민사소송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보수단체활동가 방O경씨의 트윗

 

민족문제연구소는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음해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법적 책임을 추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최고권력자에서부터 정부여당의 관료와 정치인들, 보수단체와 일베회원 그리고 극우언론에 이르기까지, 연구소와 무관한 허위사실들을 무책임하게 유포 확대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등록일: 2016.03.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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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 연합군이 목격한 일본군 위안부는 어땠을까

"일본 병사들이 나온 집을 보니 그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조선에서 온 여성이라는 뜻의 '메이-초센'이라 불렀다"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돌봐주겠다고 하자 고마워했다"

모리스-스즈키 호주국립대 교수 국제학술지 기고 논문

호주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의 전쟁 경험담을 담은 육성 파일이 올라와 있다.

호주 참전용사 앵거스 맥두걸은 1984년 인터뷰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혀 트럭에 실려 싱가포르 창이 전쟁포로수용소에 끌려간 경험을 전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맥두걸이 뜻밖의 말을 꺼낸다.

"그런데, 트럭 안에 있던 여자애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면담자가 놀라 되묻자 맥두걸은 당시 트럭 안에는 포로 말고도 '위안 소녀들'(Comfort girls)이 있었다고 답한다. 맥두걸은 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인이나 중국인 같이 보였다고 회상한다.

2차 대전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연합군이 목격한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소개한 논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17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 교수는 최근 국제학술지 「아시아태평양저널」에 '그 여자애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위안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군과 연합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1945년 10월 2일 동티모르 쿠팡의 일본군위안소에서 해방된 26명의 자바인 여성들의 단체 사진. 사진사 K. B. Davis.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이 논문은 호주 전쟁기념관과 영국 전쟁박물관 등이 보유한 연합군 병사들의 증언에 등장하는 일본군 위안부 목격담을 토대로 했다.

이 논문은 조시현 전 건국대 법학과 교수가 번역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논문집 '역사와 책임' 9호에 실릴 예정이다.

◇ 연합군의 눈에 비친 전쟁 속 위안부

맥두걸은 포로수용소로 가는 기차 안에서 25∼30명의 일본군 위안부를 봤다고 증언했다.

이 여성들은 포로들과 같이 군용 열차와 화물운송 트럭을 타고 음식과 물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태국과 미얀마 일본군 위안소로 가는 길이었다고 맥두걸은 말했다.

호주군 일본어 통역자 프레드릭 아르블래스터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 파견됐을 때 항복한 일본군과 같이 있던 여성들을 만났다.

이 여성들에 대해 묻자 일본군 장교는 적십자 요원이나 병원 간호사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아르플래스터는 이들의 복장과 분칠한 얼굴을 보고는 "이전에 본 적 없는 가장 우스꽝스럽게 생긴 적십자 의료진"이라고 핀잔을 줬다. 얼마 후 이들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여성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털어놨다.

이와 비슷한 증언도 있다. 동티모르 쿠팡을 점령한 연합군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 26명을 발견했다. 일본군은 항복하기 전날 밤에 이 여성들에게 적십자 완장을 나눠줬다고 한다.

논문은 일본군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운영한 위안소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식민지 미얀마에서 일한 영국인 판사의 딸인 엘레아노르 클라크는 미얀마에 있을 때 매우 많은 조선인 위안부를 봤다고 회상했다.

클라크는 "일본 병사들이 나온 집을 보니 그곳에 여성들이 있었다"며 "우리는 그들을 조선에서 온 여성이라는 뜻의 '메이-초센'이라고 불렀다"고 증언했다.

영국군 장교 제프리 애덤스는 일본군 포로로 잡혀 태국의 힌다토 온천 휴양지에서 대나무로 된 작은 방들을 만드는 작업에 투입됐다. 트럭을 타고 온 많은 수의 위안부들이 방에 끌려가서는 콘돔을 입으로 불면서 시험하고 나서 일본군 병사들을 맞는 것을 봤다고 애덤스는 회고했다.

뉴기니에서 일본이 위안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 전쟁 후 갈데없이 버려진 위안부

논문은 위안부들이 일본의 항복과 함께 버려졌다는 증언도 담았다.

영국 왕립포병대 출신인 윌리엄 윌슨은 미얀마의 정글에서 일본군이 두 명의 '게이샤 소녀'를 사살해 묻어버린 것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영국군 소령 조지 메일러-호와트는 어느 일본군 위안소에서 빠져 나온 '겁에 질린 조선 소녀들 무리'를 발견한 상황을 회고록에 적기도 했다.

"이들은 납치돼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일본군 병사들의 노예가 되도록 강요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이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미얀마어 통역자를 통해 돌봐주겠다고 말하자 아주 고마워했다."

종전 후 미얀마에 복무한 한 영국 장교는 조선인 위안부 5명을 만난 경험을 전했다.

일본군이 후퇴하는 혼란 속에서 탈출한 이들은 이 영국 장교에게 보호를 간청했다. 그는 "이들은 흙투성이였지만 바나나돈(banana money:점령기에 발행된 일본군 화폐)을 '어찌어찌' 확보해 열대의 폭우로부터 보호하려고 콘돔 속에 넣어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논문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전시 성폭력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이들의 경험을 외면하면서 '이 여성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려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모든 면에서 정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주로 의존했다"며 "이번 논문을 통해 연합국 군인들의 증언에서도 위안부의 존재가 발견된다는 것이 확인됐으니 이에 관한 후속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종군화가 도날드 프렌드의 1945년 소묘 작품. 자바 섬에서 보르네오로 이송된 수척한 자바 원주민들을 묘사했다.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kamja@yna.co.kr

<2016-02-17> 연합뉴스

 

자료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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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1.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 우리 근현대사 재조명 열기

2015년은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 을사늑약 110년 등 오욕의 우리 근현대사를 반성적으로 돌아 보는 한 해였다.

2. 교육부 '이 달의 스승'사업 좌초

광복70주년 기획으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선정 발표한 '이 달의 스승'사업이 사실상 폐기되고 말았다.

3. 일본 전범기업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저지운동

일본이 전범기업 산업시설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하여, 제 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독일 본에서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부정적 유산과 미래가치' 특별전과 세미나를 개최하고 등재의 부당함을 알리는 여론전을 전개했다.

4. 가짜 독립운동가 위훈 삭제

일부 건국공로훈장 수훈자들의 공적이 거짓임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민문연 김영진 회원의 제보와 대전지부의 진상규명 노력으로 공적을 가로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대전 김태훈에 대한 서훈이 8월에 취소되었으며, 애국장을 받은 김정필의 증손은 증조부가 독립운동과 무관하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가짜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입즐되고 있는 것이다.

5. 친일문제 대중적 관심 고조

친일파를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역대 7위인 1270만 관객을 동원하고 뉴스타파가 제작한 <친일과 망각> 4부작 탐사 보도가 유튜브, 팟캐스트로만 104만 뷰를 기록하는 등 2015년은 친일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 난 한 해였다.

6. '야스쿠니반대도쿄촛불행동' 10년

올해로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반대하는 도쿄 촛불행동이 10년을 맞이했다.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시민들은 2006년 5월 23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사무국 : 민족문제연구소)을 결성한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8월 "야스쿠니 반대! 합사 철회!"의 촛불을 들어 왔다.

7.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투쟁

민문연이 사무국을 맡고 있는 '역사정의실천연대'는 국정교과서 문제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5년 8월 20일, 전국 단위의 '한국사국정교과서저지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후 한국사 원로교수들을 필두로 교육계와 학계의 국정교과서 반대 및 집필거부 선언을 조직하고, 국정교과서 문제점을 집중 홍보하여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을 높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8. '박정희 혈서' 조작설 유포 명예훼손 소송 승리

2015년 10월 27일 서울지방법원은 민문연이 강용석 변호사와 정미홍 전 KBS아나운서, '일간베스트'회원 강 아무개 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로 판결했다. 강변호사 등은 민문연이 발굴하여 <친일인면사전>에 수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가 조작, 날조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전파하녀 2015년 7월 피소됐다.

9.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선친 김용주 친일 논란

유력한 대권 후보 중 한 명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일제시기 행적을 둘러싸고 치열한 진실 공방이 전개됐다. 김무성 대표가 일부 언론의 선친에 대한 친일혐의 제기에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을 발간하고 선친을 애국자로 포장하는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 간 것이 발단이 됐다.

10. 일본 시민사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동참 뜻 모아

2015년 11월 14일 도쿄에서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의 활동가 연구자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 발족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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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 빼앗긴 아버지, 남겨진 아들이 말한다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지난 2015년 9월 26월(수) 오전 10시 정동 프란치스코성당 1층에서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 박정희 정권에 빼앗긴 아버지, 남겨진 아들이 말한다' 대담회가 열렸다. 방송인 김미화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대담회에는 박정희 유신시대에 아버지를 빼앗겨 빨갱이 혹은 간첩의 자식으로 40여년을 살아내야 했던 장호권 씨(장준하 선생 자제), 최광준 씨(최종길 교수 자제)가 참여하여 2시간여 동안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루어졌으며 유가족으로서 단호한 어조로 유신의 부활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올해, 선거혁명,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이 보내는 신년 메시지

 

새해, 갑오농민혁명 때 농민들이 불렀던 민중가요 "갑오세(甲午)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병신)되면 못가리"를 되새기며 올해, 선거혁명,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자, 갑시다. 뜻을 모아 다 함께! 아자! 아자!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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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국정화란 무엇인가?"

11.14 민중총궐기 대학로 연설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박한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전국민의 혼이 나간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전 국민의 혼을 빼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정신병원인거죠.

황교안 총리의 국정화 확정고지 발표 "학생들의 99.9%가 좌경학습을 받고 있고, 그 좌경학습의 배후에 있는 대한민국 90%의 역사학자가 좌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정화를 반대하는 전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좌경"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정교과서는 공안이 탄생시킨 것

8종이나 되는 교과서, 1종으로 통합해야 한다,

북한의 남침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국론이 일치해야 되므로 국정화해야 한다,

현재의 검인정교과서 중 교학사 교과서를 빼고 나머지는 다 좌경이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2천 60군데나 틀리고도 버젓이 검인정을 통과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두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부의 국정교과서 내용은 이미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표에서도 잘 드러난 내용입니다.

"국론을 통일시키고",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시킨 20세기의 기적인 동시에 성공국가다"

대한민국이 성공국가라서 여러분은 행복한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정적 주인공은 바로 60년대와 70년대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놀라운 경제 고도성장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공신화 국가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박근헤 대통령은 "앞으로 만들어질 교과서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균형있게 서술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뜯어 보면,

5.16쿠데타와 독재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그 당시에는 절대적인 기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민주주의 보다는 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주장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무었인가?

결코 경제선진화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4.19혁명은 '가난한 자에 의한 민주주의', 따라서 일어 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빵이 더 급한데 왜 4.19를 일으키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유신 독재는 왜 했느냐, (이 모든 내용은 교학사 교과서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나온 내용 그리고 새누리당 사람들이 얘기한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후진국을 도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하다 보면 말이 많고 속도가 늦어지게 되니까 효율적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 국론을 통일 시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필요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선진국으로 빨리 갈 수 있었다"라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산업화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 유신독재는 불가피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유신체제는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고도성장 덕분에, 그리고 전구환 정권 시기의 3저 호황의 힘을 빌어서 중산층이 만들어 지고, 이 중산층이 대학도 나오고 대기업에도 다니면서 화이트칼라 계층이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은 누가 일으켰느냐? 학생들이 시작했지만 넥타이를 맨 대기업 직원들이 나오는 바람에 한국에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라는 것입니다.

 

이런게 시험문제로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올까요?

한국의 민주화는 어떻게 가능했는가?라고 묻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한국의 민주화는 산업화 덕분에 가능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국 민주화의 기반은 누가 만들었는가?

'독재자와 재벌이 민주화의 기반을 닦았다'는 이 놀라운 얘기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관관계론'입니다.

이거 속으면 안되는거죠

민주화 세력에 의해서 산업화가 늦어지므로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의 걸립돌이라는 내용이 조선일보 기사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군형있는 서술'입니다.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너무 많은데, 앞으로는 이들이 어떻게 경제성장에 기여를 했는지 서술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재벌찬양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교조, 심지어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 누구나 다 좌경으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재벌을 찬양하는 이 교과서가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수능시험, 각종 공무원 및 국가고시 시험에 이 국정교과서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대기업의 입사시헙에 나옵니다.

결국 이 국정교과서는 늙은 수구세력이 청소년들을 자기들의 정치 기반으로 삼으려는 추악한 정치노력일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국정화를 꿈꾸는 거대한 역사쿠데타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막아야 됩니다.

이제 30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말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돌려 줍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입니다.

'국정교과서에게는 퇴마사가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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