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사칭' 김흥기, 보수진영 '댓글기지' 구축 시도 확인

 

정치적 의사표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권리이지만 정치활동에 정부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 또한 소위 '보수' 단체 활동에 대한 정부의 묵인, 방조와 불법적 지원에 대한 문제제기와 명백한 사실확인이 필요한 일이다. <편집자 주>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점선 안)가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출범식에서 보수우파 세력의 사이버청원 운동을 제안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학연 홈페이지

 

 

지난달 9일 국회서 보수우파 사이버청원 운동 제안 '역사교과서 전쟁' 강조

 

'댓글부대' 논란과 관련하여 <경향신문>과 숨바꼭질을 해온 국정원 출신 김흥기씨의 '진면모'가 드러났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그가 내년 대선을 1년 6개월 정도 앞두고 보수우파 세력들의 목소리를 동원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고 다닌 그를 민정수석실에서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 의혹과 마찬가지로 김씨의 배후에도 청와대가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미래부가 엉터리 정책보고서를 제출한 그에게 1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는데도 감사원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면죄부를 부여한 바 있어 그를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김씨가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댓글부대를 연상시키는 사이버 집단청원 운동을 제안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확보했다. 김씨의 동영상은 300여명의 학부모와 전국 74개 교육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출범식에서 촬영된 것이다. 당시 행사는 평소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에 반대해온 보수성향의 학부모와 교육단체들이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 만들기와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하에 전학연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출범하기 위해 열렸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의 개회사에 이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경자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상임대표 등에 이어 김씨는 전학연 대외협력위원장 자격으로 맨 마지막 연사로 등장했다. '교육개혁을 위한 청원플랫폼'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집단청원 방식을 소개한 김씨의 프리젠테이션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전학연' 출범 행사에 연사로 등장

 

김씨는 "오늘 제안은 전학연의 활동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파워풀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은 것"이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인데, 하필 인민민주주의를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와 함께 살고 있다"며 초반부터 색깔론 공세를 폈다.

15분간 이어진 그의 강연은 여소야대가 된 국회에서 어떻게 하면 보수우파 세력들의 요구와 지지를 하나로 끌어모아 입법활동에 반영시킬 것인가에 집중됐다. 그는 "우파의 각 단체들과 협회들을 보면 전부 다 제각각 할동을 한다"며 "우리의 활동방향은 각개약진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연 중간에 보수세력들의 나아갈 길로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자 청중들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치며 호응을 보냈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로 절치부심한 보수우파 세력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동원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174개 보수단체가 링크된 애국닷컴 홈페이지 청원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청원서. 청원에 서명하고 전체보기 기능을 누르면 전체 서명자가 엑셀파일로 전환되고 출력도 가능하게 돼 있다. /애국닷컴 홈페이지

 

 

청원 사이트, 상당한 조직·인원 확보 암시

 

그는 "여기(청원 사이트)에서 서명을 하면 서명하는 개수가 바로 바로 10만, 20만 올라가고 그걸 출력하면 바로 그것을 가지고 국회에 청원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의 제안은 흡사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예고 마지막 날 동일한 양식의 찬성의견 서명지들이 무더기로 교육부에 배달됐던 '차떼기 서명'을 연상시켰다. 차이점이 있다면 차떼기 서명이 오프라인 인쇄소에서 이뤄진 반면 김씨의 집단청원을 위한 서명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서명 전파를 위해 청원 사이트를 각종 SNS 사이트와 연결시키고 댓글을 통해 토론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은 말이 청원조직이지 '댓글부대' 조직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김씨는 청원 사이트를 움직이기 위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도 구축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조직 구성원은 이미 많이 차 있다"며 "하지만 오늘 굳이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청원 사이트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상당한 정도의 조직과 인원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실제로 전학연의 이희범 사무총장은 "2월이나 3월쯤 김씨가 찾아와 집행부들이 있는 가운데 사이버 청원운동을 제안했고, 다들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김씨가 전학연에 제안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은 어떻게 운영될까.

 

김씨는 슬라이드 화면을 통해 구체적인 조직 구성도까지 보여주면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은 운영위원회, 기획위원회, 자문위원회로 구성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위원회별 기능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청원서 작성·사이트 운영·대국회 활동은 기획위원회가, 지지세력 결집은 운영위원회에서, 교수와 연구진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의제별 자문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문)위원회는 국회 18개 상임위원회와 1대 1 함수관계로 만들어 놓았다"며 청원 조직이 단지 교육뿐 아니라 모든 이슈를 염두에 두고 활동할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로 그는 "운영위원회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헌법적 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 힘을 모아서 투표로 힘을 모아주면 된다"고 했다.

물론 김씨가 제안한 보수우파의 사이버 청원조직이 실제로 얼마나 파괴력을 갖고 움직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캠프에서 활동을 했고, 2013년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을 보면 허왕된 계획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그는 2013년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미래발전포럼 상임의장을 맡아 선거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김씨가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와 계약을 체결한 시기는 김씨가 스스로를 경영 책임자로 소개한 그린미디어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내에 짐스(GIMS)라고 불리는 시스템 구축을 시도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당시 이들이 1년간의 비밀작업 끝에 2015년 1월 제출한 용역보고서에는 공식적으로는 수출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이버 여론조작에 악용될 수 있는 'K룸 설치' 계획이 제시돼 있다. 용역보고서를 보면 K룸은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배포하는 일종의 '빅브라더' 역할을 담당하고, 100평 규모에 20명의 운영위원이 상주하는 계획으로 돼 있다. 김씨가 국회에서 제안한 청원 오프라인 조직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김흥기씨가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애국세력들을 위한 청원 사이트 구축을 제안하면서 역사교과서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GMW연합 블로그

 

 

김씨는 <경향신문>의 '댓글부대 의혹' 제기로 K룸 설치가 무산된 후 지난해 9월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아 국정홍보 월간지 ㄷ화보 회장 취임을 시도할 때도 20여명 규모의 연구소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서울 강남 연구실에서 2시간가량 김씨를 만났던 ㄷ화보 사장 김모씨가 지난해 9월 19일 작성한 다음과 같은 메모에도 이와 관련된 흔적이 보인다. '요구, 지지, 정책, 예산, 법률, 각계 협회, 단체, 학회, 세력 과시하면서 요구사항 주장, YES 찬성자만 수용. NO는 처음부터 불가 <청원> 정치집단 바꿔야'.

김씨가 지난해 9월 ㄷ화보 김 사장을 상대로 안 비서관 이름을 팔며 제안했던 사업 구상이 올 6월 그가 국회에서 보수우파 세력들을 상데로 제안한 사이버 청원운동 조직 구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그동안 "안 비서관은 김씨와 일면식도 없다"며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했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청와대의 침묵은 김씨가 안 비서관 이름을 빌려 시작한 활동을 최소한 암묵적으로 승인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지난 2월에는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노동개혁'에 힘을 보태기 위해 청년희망재단이 후원하고 우익청년단체가 개최한 행사에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과 함께 공동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씨가 6월 전학연 출범식에서 새로운 교육청원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강조했던 것은 역사교과서 문제였다. 김씨의 강연이 이뤄진 행사장에는 보수우익단체 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운동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도 참석했다. 공교롭게 그가 등장하는 무대에는 어김없이 박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와 함께 전희경 의원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 의원실은 "행사장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 의원은 김씨를 모르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안 비서관과 김씨와 관계를 해명할 때와 동일한 어법이다.

김씨는 전학연 출범식에서 '대한민국 교육 현장은 전쟁 중'이라는 슬라이드 화면을 보여주면서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건국대통령이 누구인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 자도 적혀 있지 않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단체는 함께 세를 몰아줄 때는 다같이 세를 모아줘야 하고, 같이 서명도 해주고 같이 항의시위도 해주고, 1000원이든 5000천원이든 성금도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그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서명, 시위, 모금까지 망라한 보수우익 세력의 통합 사이버 기지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애국연합 홈페이지 '애국닷컴'에 샘플

 

실제로 김씨가 제안한 청원 게시판은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애국연합) 홈페이지인 '애국닷컴'에 샘플이 올려져 있었다.

 

애국연합은 스스로를 "2013년 8월 재향군인회, 한국자유총연맹, 재향경우회,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등 애국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오피니언 리더, 애국시민이 연합하여 결성된 비영리단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애국연합 사이트에는 현재 174개 단체가 링크돼 있다.

전국에 16개 지부를 두고 진보진영을 상대로 고발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전문가, SNS 사이버감시단, 1인시위 활동가 조직을 갖추고 있다.

김흥기씨가 '댓글부대' 논란과 관련해 지난 5월 <경향신문>을 고소할 당시 고소대리인이었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이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다.

특히 '미완성 샘플. 확산 금지'라며 애국닷컴 청원게시판에 올려저 있는 사이버 청원서를 보면 앞으로 이들의 활동방향이 대략적으로 보인다. 샘플용 청원서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주세요(10만명 청원)'라는 제목 아래 이 시장을 공격하는 온갖 비난글이 제시돼 있다. 해당 비난글 밑에 서명과 함께 댓글을 다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김씨가 제안한 사이버청원 조직이 겉으로는 입법청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로서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댓글부대' 기지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에게 "이래도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고 다닌 김씨의 활동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할 것인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엉터리 정책보고서로 김씨에게 1억원을 지원한 미래부도, 말도 안 되는 예산집행을 '적정하다'고 판단한 감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권력기관과 법 위에 군림하며 거의 대놓고 우파세력의 '댓글기지'를 만들려는 김씨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질서는 무너져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7.11 09:44:00

수정 : 2016.07.11 09:52:24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 김신애 통신원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