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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아, 소연아, 예슬아, 아빠는 포기하지 않을거야, "보고싶다"

 

'바라만 봐도 아픈 바다', 하지만 떠날수 없는 동거차도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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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아, 소연아, 예슬아! 보고싶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전남 진도 동거차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바다를 향한 "보고싶다"는 외침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지난 14일 밤. 사고 해역에서 2.6km 떨어진 동거차도 '보퉁굴' 언덕에 단원고 희생자들의 '아빠'가 있었다.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이 아빠 최성용(55)씨, 예슬이 아빠 박종범(50) 씨, 그리고 소연이 아빠 김진철(53)씨가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해 8월부터 동거차도 바닷가쪽 언덕에 천막을 치고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불허로 그동안 인양과정을 참관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그나마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기 위해 이 곳에 감시 초소를 마련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동거차도행이라는 윤민이 아빠 최씨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어 직접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니까 우리 가족들은 믿음이 안 가잖아요.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을 대하는 정부를 보면 도저히 믿음이 안 가니까."

 

인양 업체인 상하이 샐비지의 야간 작업이 이어지자 아빠들은 의자에 앉아 직접 구입한 망원 카메라를 켰다.

 

그러나 밤안개가 짙어지면서 크레인 불빛은 별빛만큼 작아졌다. 그나마도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밤, 아빠들은 인양 감시 대신 배 안에 있던 300명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외로움과 슬픔을 달랬다.

 

"아이들 이름 부르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2년이란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보낸 아픔은 무뎌지지 않았다. 예슬이 아빠 박씨는 "내 아이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적어도 아이를 마음 속에서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예슬이 아직 여행중이라고 그래요. 아직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에요. 우리가 이사하고 예슬이가 꿈에 한 번 나왔어요. 짐을 싸더라고. 너 어디가려고 짐을 싸냐 하니까 아무 말 없이 짐만 싸..."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그동안 희생자 가족들의 인양 참관을 반대했던 해양수산부는 지난 14일 작업에 방해가 없는 선에서 유족들의 인양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가족들은 세월호가 인양되는 7월까지 동거차도 천막에서 감시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인양을 감시하냐고요? 역으로 우리가 정부에게 되묻고 싶어요. 피해자 가족들이 당연히 알 권리인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왜 험지로 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CBS노컷뉴스 [영상]

2016-04-16 17:05

조혜령 기자·강혜인 수습기자·스마트뉴스팀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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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최대의 '실수'... 또다시 선거는 닥치고

참사 2주기, 여당은 무슨 낯으로 표를 달라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구조와 향후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14년 4월 17일, 대통령의 진도 체육관 방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다시 기억을 해보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을 앞에 놓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며,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 (실종자 수색과 관련하여)  마지막까지 우리가 찾겠다고 그렇게 약속드리고 왔습니다. 실종자 가족께서 이제 끝내도 된다 하실 때까지 할 거니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에도 실종자 구조와 수색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급기야는 자식 잃은 부모들이 "제대로 작업을 하라"며 진도대교를 향해 밤새워 걸었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그것으로 상황 끝

 

 2014년 5월 9일 오전 3시 50분 경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경찰에 가로 막히자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가족협의회는 5월 16일 이른 새벽에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면담 일정을 통보 받았다고 한다. 당시 유가족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에서 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다.

5월 8일 저녁에 KBS를 항의 방문한 후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밤새도록 요구했을 때 따뜻한 물 한 사발도 건네지 않았다. 그런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면담에 섣불리 대응한다면 면죄부만 주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면담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영정이 있는 분향소를 대통령이 다시 방문한 이후에야 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을 했다.

 

명분이야 어찌되었건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고, 그것은 우리 가족이 진상규명을 위해 한 활동 중에서 최대의 실수가 되어 버렸다고 나는 주장한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지만, (참사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이후 언론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이 참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 없는데 마치 다 해결한 것처럼 보도를 했고, 정확히 3일 뒤에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은 종결되었고, 이후 행해진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사실상 승리했음은 이미 알고 있는대로다.

 

대통령의 약속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저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 놓았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회의 국정조사를 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국정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도록 억지를 쓰며 발목을 잡았다. 청문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를 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열망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는 특별법 제정을 방해했고, 특별법에 보장된 조사기간을 단축하고 예산을 삭감해 버렸다. 심지어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야 할 특조위 위원에 특조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불량' 조사위원을 추천했다.

 

특조위가 요청한 '특검 요청'을 일언지하에 깔아뭉개 버렸다.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인양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애간장을 지금도 녹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들이 행한 일의 끝도 전부도 아니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김무성 대표, 유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되돌아 보라

 

2014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린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세월호 유가족 창현 아빠가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 제정 꼭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1일 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유가족들을 향해 "심심한 사과"를 언급했다고 한다. (<민중의 소리> 세월호 유가족에 사과? 김무성의 '만우절 거짓말' 참조) "2년 전 세월호 사고를 생각하면서 저미는 가슴을 안고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개가 웃을 노릇이다.

 

참사 유가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구 후보자 김명연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유세를 하던 중 그런 말을 했나 보다.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 그들이 이 참사의 문제점을 밝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중 2%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지금껏 유가족들을 이상한 집단으로 몰아붙이다가 선거에서 한 표가 아쉬울 때 저렇게 뻔뻔스럽게 말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맞기는 맞는지, 사람이 모인 집단이 맞는지, 이런 생각마저 든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내려갈 사람이지만(솔직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친박이 득시글거리는 정글 속에서 눈치 없는 김무성 대표가 선거 후에도 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도 현직 당 대표가 그런 말을 했다면, 표를 의식하여 변방 한 구석에서 마이크 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자들 불러 놓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을 권한다.

 

그곳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당당하게 탄압했던 것처럼 마음이 변한 이유를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지난 날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며 무릎까지 꿇은 창현 아빠의 외침을 외면한 이유도 설명하고,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가족들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사법체계를 흔드는 그런 결단을 제가 어떻게 내릴 수 있겠나. 어떻게 민간인, 그것도 피해자 가족이 참여하는 민간인에게 어떻게 수사권을 부여할 수 있겠나"라고 했던 지난날 발언의 배경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한다.

 

국회의 '정부 시행령 시정 요구권'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이 찍히자 유 원내대표의 손을 놓아버린 것에 대해서도 변명해야 하고, 대통령이 그렇게도 기억하기 싫어하는 7시간에 대한 의견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정도 된다면 나는 그들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선거가 D-1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가슴 저편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빨리 이 땅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뭔지,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찾아서 실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마이뉴스

16.04.11 21:46l

최종 업데이트 16.04.11 22:19l

글: 박종대(jdp1053)

편집: 이준호(jun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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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떠날 수 없는 유족들 - 동거차도 움막 아빠들의 하루

그 바다를 지키는 이유…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전해야죠"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움막 안에서 지난 6일 세월호 유가족 최경덕씨와 강병길씨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난 6일 오전 올라탄 한림페리3호. 남해바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갑판에서 담소를 나누는 관광객 30여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형색색 나들이복 차림이었다. 뱃길이 시작되자 아기자기한 무인도가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진도 팽목항을 떠난 지 2시간30분. 멀리 7번째 섬 동거차도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담당 승무원이 나직이 "여기가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바다"라고 안내했다. 갑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대화도 뚝 끊겼다.

"아이구, 세상에나…." 한숨이 터져나오고 안타까운 듯 가슴을 치는 사람도 보였다. 더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금방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동거차도에 내렸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딸린 2.91㎢ 크기의 섬엔 35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다 만난 할머니는 "산 잔등에 가느냐. 저 세월호 사람들 좀 제발 도와달라. 너무 불쌍한 아비들 아니냐"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산자락을 가리키며 "노란 리본이 조롱조롱 달려 있으니 따라가라"고 일러줬다.

산벚꽃이 환히 핀 마을 뒷산 대나무숲과 동백 군락지를 지나 30여분 비탈을 올랐다. 산마루엔 소형 몽골텐트 2개와 움막 하나가 강풍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작은 인기척이 움막에서 흘러나왔다. 다가섰다. 비닐 바람막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세 남자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제각기 열여덟 살 아들을 잃은 단원고 2학년 4반 학부모들이었다. 승묵이 아버지 강병길씨(50), 하용이 아버지 빈운종씨(47), 성호 아버지 최경덕씨(47).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들은 10㎡ 남짓한 움막 안에서 모포로 한기를 쫓고 있었다. 장소가 마땅찮아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 패널을 깔고 지은 터라 움막은 계속 뒤뚱거렸다.

 

세월호 인양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움막에 설치한 카메라 렌즈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왔으니 하룻밤 묵고 가시오."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기자 양반도 천장에 묶어내린 밧줄 하나 몸에 붙들어 매시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렸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6일째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은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구난구조회사인 '상하이 샐비지'가 시작한 인양 광경과 과정을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세월호 선박 자체가 참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 증거물이라고 판단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이 일을 맡고 있다. 강씨 등은 벌써 4번째 동거차도에 왔다고 했다.

바다는 '4·16' 그날보다 더 험했다. 갑자기 높아진 파도가 발 아래 절벽을 때렸고, 짙은 안개가 섬을 칭칭 휘감았다. 시계가 뿌연 속에서도 강씨는 영상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화면을 확대해 살핀 뒤 그때그때 4·16가족협의회에 보고한다고 했다. 항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단다. 빈씨는 찬밥과 라면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물을 끓였다. 냄비에서 막 김이 올라오던 오전 11시20분, 강씨가 소리쳤다. "하얀 선박이 샐비지 바지에 접근하고 있어. 못 보던 배인데, 저게 뭐야. 바지에서 크레인으로 큰 짐짝을 옮겨 싣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배 난간에 '德意'(더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중국에서 새로 온 작업선이었다. 이렇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인양 현장은 오후 4시20분 파란색 컨테이너가 작업선에 내려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관측되지 않았다. 강씨는 "바지 위에서 수많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뱃머리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고 뒤편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감춰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정성껏 상황 하나하나를 모아 나중에 진상을 밝히는 검증자료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해질녘부터는 폭우가 쏟아졌다. 100㎜ 이상 내린다는 예보를 전해줬지만, "그보다 더 큰비도 맞아봤다"며 느긋해했다.

저녁식사는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칫국과 깻잎, 멸치볶음, 김 등이 아이스박스 뚜껑에 차려졌다. 밑반찬은 안산집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다고 했다. 움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입에 떠넣던 국물을 쏟기도 했다. 밥을 먹은 뒤엔 '부처손 차'가 나왔다. 1㎞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다 바위틈에서 캐왔다고 했다. 빈씨와 최씨는 차 대신 약봉지를 꺼내 털어넣었다. 빈씨는 지난해 초 어깨를 수술했고, 무릎과 허리까지 무리가 가면서 진통제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도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땀을 많이 흘려 약을 끊을 수가 없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최경덕씨가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요.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만나 정부가 한 거짓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빈씨도 "그동안 받은 온갖 박해와 냉담, 악의적 오해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304명 그 아까운 목숨들을 산 채로 수장시켜 놓고도 거짓말을 해대고, 반성도 할 줄 모르는 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도록 놔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소시민적 생활자세를 탄식하기도 했다. 최씨는 "월급 잘 받고,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하고 드라이브하면 그게 최고 행복인 줄 알았다"면서 "이웃과 사회, 국가에 무관심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고 결국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운명이었다. 예산과 조사기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시작된 특조위 활동이 6월이면 정지된다는 것이다.

빈씨는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4·13 총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여전히 세월호 사고가 단순 해상 교통사고이거나 선사 측의 탐욕, 선장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정도로 보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건전한 비판세력이 선택받도록 도와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씨도 "지금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세월호로부터 의미있는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촘촘한 국가안전망을 짜려면 특조위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정을 넘겨 잠시 비가 그치자 바다로부터 '쿠웅~ 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소리가 뭐냐'고 묻자 "왜 그런지, 작업을 주로 야간에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니 움막을 찾은 어머니들이 "인양을 낮에 해야지, 밤에 하느냐"고 벽에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선체 인양 작업은 2014년 11월 수색이 중단된 뒤 281일이 지난 지난해 8월19일 시작됐다.

미수습자 9명과 선체 인양 비용으로 851억원을 받기로 하고 상하이 샐비지가 맡았다. 이 회사는 세월호 침몰지점 바로 위에 1만t급 바지를 베이스캠프로 차려 놓고, 최대 7000t급의 작업선 4척을 동원하고 있다. 투입된 잠수사만 96명이나 된다. 그동안 선체 안에 남아 있는 유류를 제거하고 유실방지망을 보완한 후 지난달 2일부터 세월호 주변을 가로 200m, 세로 160m, 높이 3m로 감싸는 펜스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미수습자나 각종 유품의 유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달 초부터는 수중 선체 무게를 줄이는 부력 만들기에 나섰다. 선체에 구멍을 뚫어 내부로 대형 공기주머니 27개를 넣고, 선체 바깥엔 대형 풍선 9개를 다는 작업을 이달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이렇게 부력을 만들게 되면 현재 8300t에 이르는 선체 중량을 3300t으로 줄일 수 있어 인양하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밑에 여러 개의 리프팅 빔을 설치한 뒤 인양 밧줄을 바지 크레인에 잇게 된다. 이어 수중에 플로팅도크를 가라앉힌 후 세월호를 약간 끌어올려 도크에 앉힌 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다. 정부는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육지에 끌어온다는 로드맵을 짜고 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동거차도를 오가면서 본 팽목항에는 추모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방파제엔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바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새로 걸렸다. 단원고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인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얼굴과 그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평소 하루 10여명이 찾던 분향소 추모객도 30~40명으로 늘고, 주말엔 100명이 넘고 있다. 7일 경남 양산에서 온 김춘희씨는 "늦게나마 가신 영령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기 당일인 16일엔 전남도·진도군·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추모식과 종교·문화단체가 여는 추모제가 열린다. 참사 후 내내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60)"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 안전장치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4명이 돌아오지 못한 팽목항에 다시 노란색 물결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4.10 22:56:00

수정 : 2016.04.11 09:37:00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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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 투성이 선박관리제도

청해진해운 간부, '승객'에는 관심없고 '배'에만..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청문이 끝났다.
비리나 부정 등의 직접 책임소재에 대한 회피성 답변을 별개로 하더라도 선벅 관리에 관한 법제도, 선박을 관리 및 감독하는 해당 관청과 기관의 부처간 업무 연계나 협력관계, 그리고 업무의 유기성 등에 대한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항간에 계속 회자되던 '세월호 실소유주는 국정원'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청해진해운의 간부들은 사고 후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나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석 증인 

성명

직책

(세월호 참사 당시)

(인양관련 증인은 최근)

김재범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김정수

청해진해운 물류팀 차장

홍영기

청해진해운 해무팀 대리

김영소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남호만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증인'갑'

세월호를 인수해 온 1등 항해사

박성규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송기채

청해진해운 여수지역본부장

안기현

청해진해운 해무이사

이상락

한국선급 등록선업무팀장

이성희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장

이율성

한국선급 기본기술팀장

전종호

한국선급 선임검사원

조용선

한국선급 수석검사원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1-김진 '세월호 도입 인허가 및 관리감독'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2-박종운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관계'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3-권영빈 '청해진해운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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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조위, 재판증거와 다른 사실 발견

세월호 사고 '시간의 재발견'

청해진해운 '선내 대기방송' 지시

제2차 세월호청문회 오후 시간은 세월호 참사 당시의 선장과 1등항해사, 2등항해사, 조타수, 여객실 직원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김석중 위원은 세월호특조위 자체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CCTV에 찍힌 시간과 실제 시간과의 오차를 '검찰과 법원'이 재판의 근거로 삼은 내용과 2분 여의 편차가 있음을 확인했다.

긴박한 세월호 사고 당시의 상황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편차라는 것이다.

성명

참사당시 직업

강원식

세월호 1등 항해사

강혜성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김영호

세월호 2등 항해사

박한결

세월호 3등 항해사

이준석

세월호 선장

오전에 진행됐던 제주VTS의 AIS관련 질문에 대해 유지보수업체와 제주VTS센터장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답변(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에 이어 오후 청문에서도 1등항해사와 2등항해사의 '잡아떼기'가 이어졌다.

참사 당시의 여객부 직원은 '양심선언'이라는 뉘앙스로 '대기방송'을 지시한 것이 청해진해운 본사의 담당 대리 요청이었다고 증언했으나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는다.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1 김서중 '세월호 조타기 에러문제, 선장 및 선원들의 사고 대응'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2 장완익 권영빈 '통신장비 유지보수 및 녹음데이터 편집의혹'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3 김서중 '사고시간, CCTV'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4 김서중 '선내 대기방송'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5 장완익 '평형수, 구조조치'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6 박종운 '퇴선명령, 평형수'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7 권영빈 '선내 대기방송'

 

세월호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심심한 위로를 올립니다.

세월호 참사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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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 개최 공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31조제1항에 따라 아래와 같이 청문회를 개최합니다.

2015년 12월 14일 월요일부터 16일 수요일까지 서울 YWCA에서 제1차 청문회를 개최한데 이어 개최되는 2차 청문회입니다.

○ 명칭 :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

○ 일시 : 2016년 3월 28일(월) 09:30 ~ 29일(화) 18:00

○ 장소 : 서울특별시청 8층 다목적홀

○ 주제 : 4·16세월호참사의 원인 및 관련 법령제도적 문제 규명

 

①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②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문제점

③ 침몰 후 선체 관리 및 인양

 

※ 붙임 : '첨부파일' 참조

 

1) 위원회에서 의결한 청문회 증인 및 참고인 명단

2) 청문회 방청 신청 안내

3) 청문회 녹음·녹화·촬영·중계방송 신청 안내

 

이승환 세월호 추모 영상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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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가라앉은 천안함 함수, 이틀 동안 못 찾았나 안 찾았나"

신상철 전 합조단 위원 항소 이유서, "북한 로켓 잔해는 하루만에 찾으면서… 고의 구조지연 의혹 여전"

5년6개월 동안 진행됐던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의 천안함 명예훼손 재판 항소심이 오는 4월부터 열린다.

신 대표는 공소사실 34건 가운데 32건 무죄, 2건 유죄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지만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도 항소했다.

22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신 대표와 검찰 모두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준 부장판사)에 최근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신 대표와 변호인의 항소이유서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가 '해군의 고의구조지연 비판' 글과 '국방부 장관의 스크래치 증거인멸' 고발장 등 2건의 글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신 대표는 이 과정에서 함수의 침몰위치를 표시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의 해도의 수심이 실제 수심과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천안함 백서'에 표시된 함수의 최종 침몰 위치는 해저 등심선 수심 5m와 10m사이 지점에 침몰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아래에는 "함수함체 침몰 위치 37-54-20N, 124-40-59E, 수심 20m"으로 나타나 있다. 수심 데이터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신 대표는 "수심이 5~10m에 불과할 경우 함수가 옆으로 누웠을 때 높이가 10m이므로 헬기 등 항공기의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수심 20m가 잘못인지, 해도가 오류인지 진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대표는 "실제 함수를 해상크레인으로 건져 올릴 때 수심은 대략 13~15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충분히 얕은 곳에 함수가 가라앉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 국방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중에서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틀 동안 천안함 함수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고 신 대표는 지적했다.

또한 천안함 함수가 16시간22분 동안 수면 위에 떠있었는데도 완전히 가라앉은 직후부터 해군이 함수의 위치를 놓친 경위에 대해서도 항소심에서 따질 것이라고 신 대표는 밝혔다.

신 대표는 1심 법정에 출석한 유종철 해경 501함 부함장이 천안함 사고 이튿날(2010년 3월27일) 아침 7시경까지 함수를 지키고 있다가 해경 253호정에 인계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증언한 점을 들어 해경 253호 정장을 불러 △왜 계속 지키지 않고 이탈했는지 △왜 그대로 방치했는지 등을 신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해군 작전사령부는 모니터를 통해 함수의 완전 침몰 시각이 3월27일 13시37분이었다는 것을 파악한 뒤 백령도 현장의 탐색구조단에 위치를 통보해줬다고 심승섭 전 해작사 작전처장이 1심 법정에서 증언했다.

문제는 이 같은 함수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함수 지하 2층의 자이로실에서 당시 순찰근무를 하던 박성균 하사가 발견됐다고 4월24일 발표했다.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과 위치를 실시간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더 이상 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신 대표는 "함수에 '더 이상 남아있는 대원이 없다'는 천안함 함장의 보고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라며 "함수가 떠있는 16시간22분 동안 떠있다 가라앉도록 방치한 결과 혹시라도 생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고귀한 생명을 잃게 내버려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2010년 3월27일 아침 수면위에 뱃머리가 여전히 수면위에 떠있는 천안함 함수와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해경253정. 사진=신상철 전 민군합조단 조사위원의 항소이유서.

박 하사의 모습은 복원된 CCTV 영상 속에 자세히 나타나있다. 실제로 천안함 사고 당일 저녁 후타실과 기관실 등을 다니며 순찰당직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자이로실은 지하2층에 있지만 함수가 뒤집어지거나 옆으로 엎어졌을 때는 가장 수면에 가까운 곳일 수 있다.

또한 함미 선체 발견 역시 이틀이나 늦었으며, 민간 어선이 발견했다는 것에 대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신 대표는 밝혔다.

그는 해군이 최근 크기 1~2m 크기의 북한 로켓 잔해를 사이드스캔소나를 동원해 단 하룻 만에 인양하는데 성공한 데 반해 6년 전 천안함 함수와 함미는 왜 이틀 동안 찾지도 못했느냐고 반문했다.

함미의 침몰지점은 사고지점(폭발원점)에서 불과 180m 떨어진 곳이었다.

이를 두고 신 대표는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틀 동안 찾지 않았던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함미를 발견한 민간 어선 선장 장세광씨는 지난 2011년 신 대표와 변호인단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 "바다로 나가기 전 군에서 좌표를 주었고, 그 좌표를 보고 나갔더니 거기에 천안함이 있더라"고 말했다고 신 대표는 항소이유서에 썼다. 신 대표는 장세광씨를 증인으로 신청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신 대표의 김태영 국방장관 고발장 제출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 신 대표는 김 장관의 총괄적 책임을 묻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대표스크래치 인멸과 관련해 2010년 4월15일 TV로 생중계된 함미 인양 과정에서 '선체하부에 길이방향으로 발생한 스크래치의 흔적을 확연하고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검정색 페인트 속에 있던 분홍빛 페인트가 드러난 것이 대표적인 스크래치 흔적이었다는 것이다.

증거인멸이라고 한 것에 대해 신 대표는 이후 4월 30일 합조단 조사위원 자격으로 평택 2함대에 가서 선체를 보니 보름 전 TV로 봤을 때 있던 함미 선저하부의 길이방향 스크래치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하게 변해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2010년 4월 15일 인양 직후 천안함 함미의 모습. 사진=합조단 보고서, 항소이유서.

▲ 연평해전 때 침몰해 35일간 물 속에 있다 인양된 참수리 357호의 선저와 침몰한 뒤 20일 만에 인양된 천안함 함미의 선저 비교. 사진=신상철의 항소이유서.

그는 "단순히 이물질을 털어내기 위한 정도의 가벼운 워싱(Washing) 정도에 그치지 않고 고압분사(High Pressure Water Jet) 방식으로 외판을 클리닝했을 경우 이물질 뿐만아니라 외판의 선명한 스크래치를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며 "고발장에서 그 점을 언급한 것은 그러한 워싱 혹은 클리닝 작업이 있었는지 여부를 묻고자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 대표"제가 제출한 고발장은 검찰단계에서 기각되고 고발장을 제출한 것 자체가 국방부장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판결을 받았다"며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검찰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신 대표가 허위임을 인식하고도 허위 주장을 반복했다는 1심 구형 당시 최종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창민 검사는 항소이유서에서 명예훼손 피해자에 대해 "국방부 장관은 사고원인 조사 책임자로 특정되고, 합조단 위원은 49명, 해군본부 소속 군인 중 실제 업무에 참가한 군인은 해난구조대 112명, 수중폭파팀 등 83명으로 그 수가 명백히 특정된다"고 주장했다.

최 검사는 "특히 박규창 군수참모부 수송과장은 사고 이후 즉시 침몰 원인 확인 및 구조 작업을 위해 대형 해상크레인을 물색했으며 최영순 해군 특수전여단 현장지휘관은 사고후 바로 현장 출동해 구조작업을 지휘했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해군이 구조작업을 지연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썼다.

최 검사는 "공적 조사에 대한 의혹제기와 관련해 의혹을 밝힐 증거가 없음이 밝혀졌는데도 새로운 정황이나 증거없이 계속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상당성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검사는 "조작 은폐 범죄자 등 악의적 표현을 사용하므로 비방의 목적 또한 인정된다"며 "많은 전문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수행한 역사적 사건의 공적 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상당기간 초래하게 하고 심각한 국론분열을 야기했다. 원심 구형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해달라"고 주문했다.

▲ 지난 2010년 4월24일 해상크레인이 천안함 함수를 인양한 직후 바지선 위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미디어오늘

2016년 03월 26일 토요일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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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탈출하라 대공 방송" 거짓 보고…왜?

지난 회에 둘라에이스호 도착 이후 언제라도 퇴선 지시만 내려졌다면 전원 구조는 가능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퇴선 지시는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퇴선 방송을 한 적도 없고, 구조를 위해 도착한 해경 123정이 퇴선하라는 대공 방송을 한 적도 없고, 123정 승조원들이나 헬기 항공구조사들이 세월호에 올라타 메가폰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육성으로라도 퇴선 지시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록을 한 번 봐주세요.

ⓒ검찰

 

10시 5분 목포상황실"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는 상황을 문자상황방에 입력하여 상황을 전파, 보고합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 퇴선 지시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신고 이후 목포해양경찰서(목포서) 상황실, 서해지방청찰청(서해청) 상황실, 본청 상황실 등은 해경 내부망인 문자상황보고시스템(코스넷)을 이용하여 서로 상황을 전파, 보고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해경 채팅방을 만든 것입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10시 5분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숫자를 조금 다르게 입력한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양경찰 공무원이, 그것도 정확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상황실에 근무하는 경찰 공무원이, 굳이 키보드를 눌러서 입력을 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문제, 가장 안타까운 문제를.

누구에게 정보를 받았을까요? 그 누구는 도대체 어디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달받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은 실수나 착각의 범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는 명백한 의혹으로 확정하고자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목포 상황실에서 문자상황방을 담당했던 해경은 확인이 가능합니다. 다수의 진술을 통해 당시 문자상황방 담당자는 목포서 상황실 B조의 이모 경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당장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포해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10시 조금 넘은 어느 시점부터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진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은 곳곳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우선 경찰청입니다.

 

ⓒ박영대

 

위 상황보고서는 경찰청(해양 경찰 말고 육지 경찰을 말합니다) 112종합상황실의 상황보고서(3보)입니다. 우선 여기에서도 10시 18분에 세월호 선장이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선내 방송"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경에 이어 경찰청도 전파하고 있습니다.

또 목포서 상황실은 단지 "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고만 보고했지만, 경찰청은 '선장'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면서 탈출 선내 방송의 주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이미 9시 46분경 세월호 조타실을 빠져나와 123정에 올라탔습니다.

그 외 이 상황보고서의 발송일자는 4월 16일 10시 13분인데. 10시 18분의 일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타로 이해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언론입니다. 역시 10시 조금 넘은 시점부터 언론에서도 일제히 탈출 선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세월호의 모든 갑판과 난간이 물에 잠겨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다 물에 잠긴 시간이 10시 17분경이고, 마지막 표류자가 구조되는 시간이 10시 21분경입니다. 즉 10시 조금 넘은 시간은 사실상 세월호가 전복되는 시간대입니다.

해경의 123정과 헬기, 초계기(CN-235) 등은 이 과정을 뻔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언론은 이 과정을 취재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한 목소리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일을 전파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 전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의혹을 구성합니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하나같이 거짓 상황을 전파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오늘 하나의 의혹을 확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듯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잔뜩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상규명을 위해 6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의 서명을 통해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현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28일과 2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세월호 특조위의 제2차 청문회가 개최됩니다. 침몰 원인이 주된 주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문제점,

△침몰 후 선체 관리 및 인양

의 문제와 관련된 증인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으로 정부가 제시했던 것들이 과연 타당한지, 침몰 당시 선원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세월호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도입되었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인양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묻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인양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시민분들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팩트TV, 416TV, 오마이TV, CBS 노컷뉴스, 고발뉴스, 국민TV, 주권방송 등이 청문회를 생중계한다고 합니다. 방청을 오셔도 좋고 중계를 시청해 주셔도 좋습니다. 청문회 이후라도 관심 있는 특정 주제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가져 주실 때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청문회 지나고 뵙겠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 리스트 모두보기▶

프레시안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④]

2016.03.25 08:00:35

박영대 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위원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키는 힘입니다

"<프레시안>은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뭔가 홍보가 잘 안 돼요.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다가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픽도 산뜻하지 않고요. 젊은 친구들도 다가갈 수 있는, 그래서 친구가 많아지는 <프레시안>이 됐으면 해요."

2013년 6월,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이 언론 협동조합이 됐습니다. <프레시안>의 기사에 만족하셨다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도전에 주목 바랍니다.

조합원 / 후원회원 가입화면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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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국정원, 10여차례 "접대" "정기모임" 문서 나와

세월호 참사 한달 전에도 "국정원 접대" 기록… 선사 운영에 개입 의혹, 출금전표는 폐기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 이전 3년간 최소 열두차례 이상의 모임을 가졌고, 국정원 직원에 대한 접대 자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청해진해운의 여러 내부보고 및 결재서류를 통해 확인됐다. 청해진해운의 '출장업무일보'라는 문서에 의하면 여객영업팀 정ㅇㅇ 대리는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여전인 3월5일 백령도 출장을 간 자리에서 국정원 직원을 접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문서엔 "국정원(세기:안보관광 담당자) 접대"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세기"는 국정원의 또다른 이름인 "세기문화사"를 가리킨다. 문서에 나오는 "안보관광"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세월호에 대한 보안측정이 있었던 2013년 3월에도 청해진해운이 국정원 직원에게 식비 등을 제공한 정황이 있다.

▲ 청해진해운 직원이 2014년 3월7일 작성한 출장업무일보. 3월5일에 국정원을 접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013년 4월2일자로 작성된 '세월호 보안측정 검수시 부식비용'이라는 기안서류에는 "세월호의 정상운항을 위한 국가 보호장비 보안측정 검수를 위해 1항차를 관련 기관동행 운항 (국정원,기무사,항만청,IPA 외) 측정시 검사원들의 부식비를 아래와 같이 사용하였기에 보고 드리니 검토 후 재가 바랍니다."라고 되어있다.

위 두 자리에서 접대에 사용된 돈의 액수는 확실하지 않다.

청해진해운은 정부기관을 상대할 시 김혜경 차장이 관리하는 비자금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해 사용했고 출금전표는 김한식 대표와 박기청 상무 등이 확인 후 폐기한 것으로 돼 있다.(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회 증인신문조서 등)

공식적으로는 세월호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측정이 있었던 3월18일~20일, 청해진해운이 '김재범 부장 외 출장경비(3.18~20세월호 국정원 보안점검)'명목으로 134만8천원을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134만8천원의 세부 항목은 식비 74만8천원과 잡비 60만원으로만 표시돼 있다.

연안여객선을 운항하는 중소기업인 청해진해운의 내부 문서에 "국정원 접대"가 나온 것도 이상하지만, 더 큰 의혹은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잦은 접촉이다. 청해진해운 내부 공식문서에 기록된 "면담" "미팅" 등만 4년간 11차례에 달한다. 이는 국정원 직원들과 청해진해운 측의 전화통화나 문서수발신을 제외한 순수한 대면 접촉 횟수다.

청해진해운은 국정원과의 미팅을 연간계획서 상의 한 항목으로 포함시켜 놓기도 했으며, 2012년 업무일지엔 청해진해운 직원이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이라고 기록한 대목도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청해진해운 내부 공식문서들로부터 추출한 국정원과의 일자별 접촉은 다음과 같다.

2011년 1월28일 "국정원 점심식사 미팅(2월 왕복이용 협의 외)"

2011년 9월9일 "백령노선 관계자미팅(국정원)"

2012년 1월9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2년 1월18일 "국정원특별점검"(오하마나호로 추정)

2012년 1월27일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2013년 2월7일 "국정원 미팅"

2012년 2월13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3년 2월21일 "어제 국제터미널 국정원 사무실에 김ㅇㅇ 부장과 다녀왔습니다"

2013년 3월 18-19일 "세월호 국정원 보안점검"

2014년 1월20일 "국정원 미팅(1/20 월)"

2014년 3월5일 "국정원(세기:안보관광 담당자) 접대"

2014년 3월5일 '출장업무일보'의 "안보관광"이나 2011년 "왕복이용" 등의 표현에 비춰보면,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관광상품을 이용했던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2012년 1월과 2월에 있었던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이나 같은달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국정원 미팅"은,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선박운영에 개입했던 게 아닌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 검찰이 확보한 청해진해운 이성희 제주지역본부장의 수첩 사본. 2013년 2월22일자에 "국정원과 선사대표 회의 라마다Hotel 12시"라고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검찰이 확보한 청해진해운 이성희 제주지역본부장의 수첩 사본엔 2013년 2월22일 "국정원과 선사대표 회의 라마다Hotel 12시"라고 기록돼 있다. 2011년부터 2014년 3월까지 총 12차례의 접촉이 이뤄진 셈이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2년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청해진해운과의 어떤 관계도 부인하고 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 국정원이 들어있는 것에 대해서도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작성·승인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며, (청해진해운 측이)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하여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사고 발생일인 2014년 4월16일과 17일 양일간 청해진해운의 기획관리부장, 해무팀 대리, 물류팀 차장에게 총 7차례 전화를 걸어 이들 직원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고, 국정원이 통화한 직원들 중엔 '해양사고보고'와는 무관한 화물담당자도 있었다.(관련기사: 세월호 참사 직후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7차례 의문의 통화)

무슨 이유로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잦은 접촉을 가졌는지, 청해진해운 문서상의 "접대"가 실제 이뤄졌는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보인다. 국정원은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대해"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미디어오늘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6년 03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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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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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관람하지 말고 목격하라

[ACT!] 청소년이 본 다큐 <나쁜 나라>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의 과정을 기록한 독립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가 지난해 말 개봉한 뒤 좋지 않은 상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2만 여명이나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2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세월호 사건의 가장 큰 당사자인 '청소년'의 입장에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시도는 많지 않습니다. <ACT!>에서는 청소년이 만드는 마을미디어 '우마미-틴'에서 활동하는 남상백 씨에게 청소년의 시선으로 <나쁜 나라>를 바라본 소감을 들려주길 부탁했습니다. 조금은 신선하고 독특한 리뷰, 한 번 같이 보실까요?

세월호 참사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났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우리나라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었다. 교회에서 의자를 부여잡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2014년 한 해 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서울광장에 늘어섰던 리본들과 추모글귀들 사이에서도 실감하지 못했었다. 리본에 글을 써 나무에 달면서도 실감이 어려웠다. 너무 슬퍼서 실감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별법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특별법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고, 대입 특례에 있어 몇몇 친구들이 분노를 보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보여준 언론과 몇몇 비청소년(성인)의 행태에 우리는 불신과 분노만 쌓였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결단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2015년 4월에는 학급회의에서 세월호 추모를 위한 행동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감사했다. 다수의 아이들이 동의했다. 노란 종이에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하는 편지를 쓰고, 학급 임원들은 우리 반 아이들이 매달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급 게시판에 단원고 희생자들의 얼굴을 게시하셨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그 주에 조회 시간마다 추모 영상을 시청했다. 담임 선생님의 눈물을 처음 본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추모예배도 드렸다. 목이 많이 메던 날이었다. 2시간을 기다려 광화문 광장에서 분향을 했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행진을 하고자 했지만 가로막혔다. 시위에도 뜨겁게 참여하리라 결심하고 간 자리였지만, 막상 차벽과 경찰들을 마주하니 겁이 나더라.

2014년~2015년 상반기까지 내가 몸담고 있던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는 청소년 안전'이 가장 큰 주제였던 것 같다. 1박 2일 워크숍은 물론이고 회의 시작 전에도 안전교육을 진행했다. 안전교육까지는 좋았으나, 온갖 청소년 행사, 축제에도 '안전'이 들어갔다. 안전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아직도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을 종속된 객체로 보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돈을 모아 소녀상을 세우고, 자기 학교의 비리를 눈감지 아니하고, 국가의 민감한 사항들에 거리러 나서는 등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활동은 더더욱 늘어났지만 아직도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쉬움이 많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진행된 저런 활동들조차도 '성숙한 행동(청소년들이 미성숙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에)', '공부보다 못한 행동' 등으로 취급되는 그런 시선들이 나는 불편하다. 청소년의 저런 움직임과 목소리들도 당당히 비청소년들의 행동 못지않은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 세월호 참사는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었나? 이런 아픔을 방지하기 위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의 눈물을 헛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청소년들도, 국민들도 함께 흘린 눈물이었으니.



▲ 영화 <나쁜 나라>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관람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나쁜 나라>를 보고 처음 든 인상은 담담함이었다.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인 연출도, 극적인 반전도, 멋진 주인공도 없었다. 영화적 요소들이 거의 없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담담하게 그려낸 모습들이 나를 더 집중하게 했다. 영화 <나쁜 나라>는 그렇게 담담하게 나를 그 '현장'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팽목항부터 국회까지, 단원고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유가족과 현장을 목격하게 해 주었다.

영화에서 든 인상과 별개로 <나쁜 나라>에서 등장하는 유가족들은 '10억'을 받았다는 모 보험 광고에 나오는 부인처럼 담담하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담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웃고, 떠들고, 짜증내고, 화내고, 심지어 욕설까지 뱉는 유가족들의 모습. '세월호 유가족들도 이제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며 얌전한(?) 유가족을 요구하는 말도 안 되는 몇몇 어른들의 주장에 잠시나마 넘어갔었던 건지, 정말 부끄럽게도 담담하고 얌전한 유가족을 내심 기대했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나름대로 시위에도 참여하고 서명도 하고 SNS에 공유도 하면서 유가족들을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또 유가족분들께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나쁜 나라>는 저런 생생한 유가족 분들의 모습에서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연약하고 아픔을 알지만, 자식들이 있기에 그 아픔을 웃음으로 삼키는 그런 내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자식들을 위해 굽히고, 참고, 때로는 울면서도 자식만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어 보이는 그런 부모님들.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여 영화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 진도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모습들에 한없이 죄송스러워졌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장애물과 부딪치고 있었으며, 더 많은 아픔들을 삼키고 있었다. 손에 입을 맞추는 유민 아빠를 세월호 추모리본을 달고 품어주던 교황의 모습이 국회에서 유가족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매몰차게 들어가 버린 대통령의 모습과 겹쳐 너무나 씁쓸했다.

삼보일배 역시 너무나 처절했다. 기사로, 사진으로 본 모습보다도 처절했다. 부모라서 더 처절했다. 부모이기에 더 처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시민여러분 도와달라고 목이 쉬고 입이 부르트도록 외치시는 그분들을 그냥 가서 안아드리고 싶었다. 

성경의 복음서를 보면 '불량 재판관 이야기'가 나온다. 뇌물을 사랑하고 편파 판정을 즐겨하는, 신도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그런 재판관이다. 어느 날 그에게 과부 한명이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잡고 통사정을 한다. 내게 억울한 일이 있다고, 내 원수가 나의 권리를 빼앗았다고. 불량한 재판관은 당연히 무시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과부는 청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판관은 결국 혼잣말로 '내가 신도 사람도 신경 쓰지 않지만, 과부가 자꾸 나를 귀찮게 하니 권리를 찾아주지 않으면 내가 더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부의 청원을 들어준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재판관이 그리워진다. 이상했다. 영화에서는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유가족들이 밀려난다. 여론에 밀리고 교묘한 합의에 밀리고 이리저리 밀려난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묻히고 높이지 않아도 묻히고, 합법적으로 행동하고 움직여도 콧방귀 하나 뀌지 않는다. 하물며 불량한 재판관조차도 한 사람의 악 받친 외침을 들어주는데, 이 나라는 수백만의 서명도 자식 잃은 부모들의 외침에도 응답은커녕 박대한다. 순수한 연대와 조직을 부수고 해체하려고 한다. 나 같은 청소년들에게까지 왜곡된 정보들로 유가족들을 적대하게 만든다. '나쁜 나라'이다. 불량한 재판관보다도 더 나쁜 '나쁜 나라'의 모습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 '나쁜 나라'에서 필자 혹은 지인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무섭다. '헬조선'으로 칭해지는 이 땅에서 도망을 치려고 하는 또래들도 많다. 하지만 영화 <나쁜 나라>에서는 진도에서부터 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를 마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꼭 내게 함께하자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쁜 나라>는 우리를 그 현장에 초대하고 필터 없는, 왜곡도 없는 생생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그 현장에서 판단하게 한다. 또 선택하게 한다. '나쁜 나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끝없는 광야를 함께 걸어갈 것이냐? 아니면 '나쁜 나라'를 외면하고 나의 삶을 누릴 것이냐고 질문하고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나는 당연히 광야로 갈 것이다.



<나쁜 나라>. 이 영화를 절대 관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목격하자. 유가족들의 모습을, 유가족을 무시하는 우리의 모습을, 또 이 '나쁜 나라'의 민낯을.

<나쁜 나라>를 통해 똑똑히 목격하자.


*이 글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9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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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6.03.22 09:48:52

남상백 우리마을미디어 우마미-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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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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