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싫어했다.

무신론자인 아버지와 절에 다니는 어머니 영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청소년기 말미인 10 후반에 접한 불교 철학에 매료된 때문이기도 것이다.

성스러워야 교회나 집회에 모여 소리지르고 손뼉치고 노래를 부르다 울부짖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영락없이 미친 자들 보여질 밖에 없었고, 너무도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단순히 개신교를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열심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논쟁이나 토론을 벌여 30 정도는 교회에 다니지 않게 만드는 전과도 세웠다.

그렇게 수십년을 보내고 50 나이를 훌쩍 넘긴 어느 , 잠깐 교류가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14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14 만에 만난 그녀의 청으로 다른 사람과의 면담을 돕기 위해 가던 길에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30 정도 해야할 일을 먼저 하고 가야된다는 말이다

중간 과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날 나는 대림동의 어느 건물 9층에 있는 작은 교회에 앉게 되었다. 역시 노래부르고 손뼉치고

너무도 싫은 자리인지라 예배실 뒤쪽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빨리 30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들리는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남자가 떠들다가 잠시 여자 목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여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때나 지금도 무슨 노래인지 알지못하는 노래가 소절도 지나지 않았을 같은 짧은 시간,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예배가 끝나고 나서도 멈추지를 않았다. 창피스럽고 괴이한 마음에 닦고 닦아도 소용이 없었다.

부활절 사순절 기념 부흥성회 마지막 , 금요일 저녁 예배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기도 했고 이야기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날의 눈물은 그로부터 2 정도 매일 눈물 속에 사는 생활의 신호였다. 2 동안은 미친 사람이 되었다. 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내가 아침 저녁으로 두시간 넘게, 매일 시간 이상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대림동의 교회와 여의도에 있는 대형교회 군데를 다녔는데, 공부는 주로 시스템이 갖추어진 여의도에서 했다. 성경학교, 성경대학, 성경대학원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뭔가 부족한 해서 다시 과정을 한번 반복헸다.

신구약 필사를 했고, 5일짜리 성령학교 , 역시 5일짜리 영적전쟁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32 철야기도를 했다. 문제 덩어리인 대형교회의 장점이라면 매일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를 있다는 것이다.

난생 처음 교회에 나간 3주만에 방언을 하게 됐는데, 나는 그후로도 동안 내가 하는 이상한 짓이 방언이라는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 성도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를 했다

 

날부터 3 정도  정수리 부근에서부터 양쪽 어깨쭉지 견갑골 사이까지 뜨겁고 찌르르한 강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매일 주기도문 1000 암송하기도 시도했고, 기도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으면 정수리 위쪽 공중이 열리며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고, 어느날부터 피가 머리 위로 떨어지고 몸을 적시는 생생한 느낌이 느껴지더니 분의 고통이 그대로 내게도 느껴지면서 너무도 고통과 슬픔에 소리내서 울부짖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낮에는 거의 고장난 수도꼭지 처럼,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고 기도만 하려고 하면 환상이 나타나서 울부짖는 일들이 매일 계속 반복돠었다. 눈물 이후 4 정도는 그렇게 보낸 같다. 그토록 싫어하던 교회에 완전히 미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부터 조금씩 교회와 목회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들리는 하늘의 음성과 그들이 듣고 실천한다는 음성이, 내용이 상반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 거의 신격화된 대형교회 설립자인 원로 목사가 퇴장하는 현장에 있다가 수백명 도열하고 성도와 경호원들 사이로 나서며 , 마귀새끼야!!”라고 악을 썼다.

그리고 나서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 대형교회의 해악에 대해 그처럼 신랄한 비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 대형교회에 다닐 없다는 말이다

 

주변을 시작으로 작은 동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군데를 이상 가지 않았다. 많으면 , 아니면 번만 갔다. 그렇게 해서 150 군데가 넘는 교회를 전전했다. 그리고 만큼의 목회자와 설교와 성도들을 직접 만날 있었다.

중에는 매일 시간 하나님과 대화한다 목회자도 있었다. 부부 목사인데, 남편은 담임목사 직분을 맡고 아내는 교육을 전담하고 있었다. 매일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이는 아내인데, 것을 핵심 소재로 심야 집회도 운영한다.

매일 매시 하나님께 여쭙고 듣는다는 그녀는 안타깝게도 사석에서나 공개석상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기독교 믿으면 부자고 불교 믿으면 가난하다는 등의 주관적인 말을 수시로 거리낌 없이 했다.

안되는 신자들 절반 이상은 10~20대의 청년들인데, 그들에 대한 그녀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의 것이다.

과연 사람들과 귀에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은 같은 분일까…?

최근 중에서 이상 교회에 다닌 유일한 경우인데, 이유는 남편인 담임 목사가 가족 생계를 헌금에 의존하지 않고 별도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이지, 교회나 목회자가 아니다.

기도를 통해 들리는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자의식의 속삭임인지 스스로 냉정하고 처절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 아니라면 그것은 마귀의 유혹에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교회와 성경과 기도와 예수를 앞세워서 명예나 이익을 취한다거나 혹세무민하는 것은 모두 마귀의 유혹이며, 성령 모독이다.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그리고 예수께서는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언제나 선택 통해서 미래를 결정하라고 하신다.

최초의 피조물에게 에덴에서 하신 처럼..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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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한 장의 스케치다. 


주어진 것은 

한 장의 도화지와 

지우개 없는 한 자루의 연필 뿐.


도화지 절반 정도를 채울 때 쯤  

지우개가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삶은 한 장의 스케치다. 

지우개 없는 연필로 그리는..  



Posted by 망중한담
TAG 명상, ,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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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ouldn't be better



now a tear

leaves you only a trace

and the sun

finds its way to your face

 

It couldn't be better,

it couldn't be better, Lord

than it is right now

 

and the one

that you gave all your charms

finds his way

to the depth of your arms

 

it couldn't be better,

it couldn't be better, Lord

than it is right now

 

it couldn't be better,

it couldn't be better, Lord

than it is right now

than it is right now

than it is right now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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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ng



아들아

넌 알고 있니?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들아

넌 알고있니?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최상의 행복

최고의 선물이었어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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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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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또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동서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어 온 선지자들의 예언이다.

예언들은 말세적 징후에 대해 공통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영혼 보다 물질이 중시되고 대형 자연재해와 전쟁과 기근, 원인 모를 질병 등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권위를 앞세워 강성해진 종교와 성직자들의 타락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예언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가장 존경받고 가장 신뢰받는 대상인 종교와 종교를 빙자한 성직자들의 타락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과 그로 인한 영혼의 타락 때문이다.

영혼의 타락이야말로 모든 종교가 가장 경계하는 본질적 타락이며, 그 자체로 지옥과 등치되는 죄악 중의 죄악이다.

 

사람의 감정도 뉴튼의 법칙 유사한 관성이 작용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계속 좋아하고자 하고, 자신이 믿는 것을 계속 믿고자 하는 관성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일단 믿음을 준 종교와 성직자로부터 전해지는 타락은 기존 믿음의 관성에 의해 새로운 믿음으로 자리잡아 간다.

절묘해 보이지만 천박한, 그리고 진리의 가면을 쓴, 타락을 향한 믿음이다.

 

말세에는 신의 일꾼임을 빙자한 성직자가 전염병 처럼 창궐한다고 했다.

 

 

 

"중도 아니요, 속인도 아닌 '박쥐 중', 혀를 가지고도 법을 설하지 못하는 '벙어리 염소 중', 중의 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머리 깎은 거사', 지은 죄가 무거워 천도(해탈)할 수 없는 '지옥 찌꺼기', 부처님을 팔아 살아가는 '가사 입은 도둑'. 말법 시대에는 가사 입은 도적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진짜 승려는 세속에 머문다."

(선가귀감 禪家龜鑑)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8:11)

 

1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거만하고, 신성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않고, 충성스럽지 않고,

3 비정하고, 합의하려 하지 않고, 중상하고, 자제하지 않고, 사납고, 선을 사랑하지 않고,

4 배반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교만으로 우쭐대고,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하고,

5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6 그들 가운데서, 남의 집안에 슬그머니 들어가 죄에 빠져 있는 약한 여자들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여자들은 여러 가지 욕망에 이끌려,

7 항상 배우기는 하지만 결코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딤후 3:1-7)

 

 

 

 

십자가 대신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

10.26 이후 처음으로 교회서 박정희 추모 예배 열려

 

 

 

““독재니 어쩌니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정말이야 독재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하나님이.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 하라 하셨어요. 얼마나 이가 많았는지 몰라요. 이런 걸 해결한 분이 고 박정희 대통령임을 믿습니다. 아멘””

 

지난 10 25일 서울시 도곡동의 한 교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예배가 열렸다. 교회에서 박 전 대통령 추모 예배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배당의 십자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화로 가려졌으며, 그 앞에서 추모객들의 기념 촬영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추모 예배는 묵상기도 이후 국기에 대한 경례 등 일반 예배에서 볼 수 없었던 식순이 들어 있었고, 찬송가가 아닌나의 조국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후략)

▶뉴스타파 기사 원문보기

 

 

 

'세월호 이후'의 한국교회는

 

 

 

부활의 계절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세월호 이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개신교의 죽음과 부활을 논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올해 초, 한국교회에 대한 어느 신학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오늘의 교회는 영적 치매 상태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다 잊어버렸다. 영적 자폐다. 자기들 속에만 갇혀 버렸다. 영적 방종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 있다. 한마디로라면 영적 파산이다. 과장일지 모르지만 기독교가 백해무익한 시대가 됐다."… (후략)

뉴스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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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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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만 있어도 헛되지 않을 삶 - 同志

 

영상 : 동지 my fellow worker

 

 

복 중에 제일 큰 복이 부모복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일생에서 건강과 경제와 화목함,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이 세가지가 거의 삶의 모습과 질을 결정하게 된다.

 

아쉽지만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 우리같은 흙수저들에게 삶이란 끝없는 도전이었고 모험이었고 전쟁이었다.

잠깐의 성공과 성취도 있었지만 어리석음과 교만에 빠진 우리에게 그것들이 오래 남아 있어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교만을 깨닫기까지는 형언할 수 없는 추락과 고통과 상실을 겪어야만 했다.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고 넋이 나간 채 끝없는 터널같은 암흑의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평범하고 평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평범을 놓쳐버린 어리석음에 후회하며 가슴을 칠 때 쯤, 모든 상실과 추락의 원인을 함께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때 늦은 철이 들었다.

 


 

 

"끝나지 않았으면 끝난게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상 속에 있고 여전히 우리는 먹고 숨쉬고 무엇인가에 기대하고 무엇인가를 꿈꾸며 생존하고 있다.

끝나기 전에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닌,

언제 끝날지 예정이 없는,

그러나 그리 길것 같지도 않은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가..

 

스쳐간 많은 사람들.

어리석은 격정으로 스쳐 보낸 그 고귀했을 인연들,

교만의 칼날에 베어져 버린 이 아픔의 흔적들..

 

깨달음 가운데 남겨진 삶이라면

그것이 아주 잠깐만 허락된 시간일지라도

누군가의 동지(同志)로 살다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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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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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짐승이 쓰는 편지



정유년.
또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한다.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산술적인 구분을 하는 이유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뇌신경의 이분법적 신호체계 때문은 아닐까?

연휴 첫날, 몇 년 만에 만난 40년 지기와 저녁을 먹고 테이블 한 개 있는 조그만 찻집을 찾았다.
그날 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무엇이 소중하며,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 왔는가에 번민했다.
사람, 기억, 사물, 성찰..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수 많은 생각들이 행진하는 개미떼처럼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

끈 떨어진 연처럼, 비산하는 먼지처럼
근본을 잃고 본질에서 유리된 채로 얼마나 지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한번도 그것들을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불명확한 어느 시점부터 五感의 노예가 되어 삶을 허상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성찰로부터 유리된 채 천천히 속물화하다가 말하는 동물이 되고 말았다.

종교적 전율과 환상들 조차 영악한 위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교리와 규율과 관습에 따랐지만 그 경이롭고 뜨거운 영감을 삶에 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신이 무너지기 전에 내면에서는 이미 악취가 풍겨나고 있었을 것 같다.
교만이 게으름을 만나면서 시작된 本性의 부패..

이미 때 늦어 치유 불가의 말기가 아니라면 회복하고 싶다.
아니다, 회복 불가의 중증이라고 해도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
성찰은 행위를 통해서 삶에 투영되고 그것이 말하는 동물 아닌 사람의 삶이지 않은가..

그렇게 3일 밤낮이 지나갔다.

--------------------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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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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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땅에 들려 주고 보여 주신 것들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본 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편에 서서 天里에 맞지 않는 그 어떤 권력이나 사람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義를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으신 Jejus Crist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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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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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 아침이 오고 언제나 새 어둠이 찾아 온다

저마다 다른 아침 그리고 특별한 어둠이다.

되풀이되는 것은 규칙뿐이지만 그것 조차도 꼭 같지 않다.

삶은

나고 죽는 사이에 펼쳐지는 처음의 연속이다.

마주치는 처음에 대한 선택의 과정이다. 煩解-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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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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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자연에 대한 도전과 극복, 서양 문명의 이면에는 파괴가 있다

 

 

문명은 선(善)이고 야만은 악(惡)인가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야만의 사전적 의미는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나 그런 종족 또는 교양이 없고 무례하거나 그런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명이란 자연상태 또는 자연을 벗어나는 것이고 야만이란 자연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문명국 또는 문명인은 야만에 대해 매우 비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들 사고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문명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 형이하학적인 오만은 문명을 선으로, 야만을 악으로 단정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고 그 오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역사는 야만(자연)에 대한 파괴와 정복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문명을 자랑하고 문화인임을 자부하는 '서양문명인'들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서양문명은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도 있다. 그 공로는 다름 아닌 '편리함'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류생활의 편리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문명이 가져다 준 편리함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문명의 역사는 결코 선(善)이 아니었다.

 

 

 

선(善)이란 목적과 방법이 선해야 한다. 그래서 침략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타인을 죽게 만들며 사회를 파괴하는 전쟁은 목적과 방법 모두가 악(惡)이다.

 

원시와 고대사회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대문명과 산업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유럽 신지식 문명인이었던 신교도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야만에 대한 태도는 어떤 것이었던가?

그들은 원주민들을 적대시하였고 학살하였으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재산과 문화까지도 모두 파괴했다. 자연을 경외하며 자연과 동화적인 삶을 영위하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문명인인 신교도 이주민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개척'이라는 문명적 수식어로 꾸며졌다.

유럽 문명과 아메리카 문명의 야만에 대한 역사는 잔혹하고 반 인륜적이며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훼손한 역사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사냥해서 전 유럽과 미국 대륙에 유통시킨 '대륙적 인신매매'의 주범도 바로 이들 문명인이었다.

문명화된 도구를 이용한 제국주의는 지구상의 상대적 비문명,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약소국들에 대한 경쟁적 침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주의적 관념을 중시하던 동양, 아시아 세계를 침략하고 약탈과 수탈을 한 것도 바로 그 문명국, 문명인들이었다.

이들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패권주의로 양상을 바꾸었을 뿐, 오늘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서양문명)이란 이질적인 것에 대한 파괴와 유린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문명이란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일 뿐

 

 

 

문명이란 현실세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 중 물질계를 중심으로 한다. 서양문명의 근간에는 자연을 극복과 개척의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연을 인간 삶을 위해 존재하는 피지배의 대상 쯤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동서양의 관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불후의 예술작품들에 대하여 서양인들은 '위대한 창조'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예술작품, 조형물을 창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자연이 담고 있는 모습에서 나머지 부분을 덜어 냈다'는 것이 동양적 관념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문명이 비하하고 침략의 대상으로 삼았던 '야만', 동양의 관념이다. 어떤 것이 더 문명적이고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관념인가?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편리함 만으로는 개인이 행복하거나 만족한 삶을 누릴 수도 없고 인류의 화합과 공존에 보탬이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공통의 생존기반인 자연, 환경에 이롭지도 않다.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편리함일 뿐이다.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시절 구산스님(1910~1983)은 반야심경강의 서문에서 '과학문명은 서양수하고 정신개발은 동양기하다(科學文明 西洋秀 精神開發 東洋基)'고 설파했다. 이 말을 이해한다면 문명과 야만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오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육신과 정신은 인간을 이루고 있는 두 요소다.

육신은 물질로써 형상을 이루고 정신이 원리로써 내면을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은 무엇일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쾌락과 만족, 형상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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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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