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의 '결단주의'와 민주화의 뿌리 '동화적통합론'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과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한 규범이다. 이 헌법규범에 의해서 국가의 이념과 가치와 기능이 결정되고 운영된다. 국가 운영을 위한 모든 법률은 헌법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제정되고 운영된다. 그렇게 때문에 헌법을 법 중의 법, 모법(母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헌법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크게 1987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헌법가치관적 표현으로 한다면 이른바 결단주의와 동화적통합론으로 구분된다. 둘 다 지나치게 헌법을 규범적 가치관으로 해석하는 법실증주의(한스 켈젠)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제시된 이론이다.
결단주의 헌법관은 토마스 홉스(1588∼1679)가 뿌리이며 독일 공법학자인 칼 슈미트(1888∼1985)에 의해서 그 뿌리를 내린 헌법사상이다.
1970~1980년대의 우리나라 헌법관은 결단주의를 따르고 있었다.
결단주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헌법의 근원과 가치를 '헌법제정권력의 결단'이라고 정의한다. 독일 바이마르시대의 극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강력한 통제력에 의한 안정'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카를 슈미트)
동화적통합론 헌법관은 히틀러 시대의 독일 헌법학자인 루돌프 스멘트(Carl Friedrich Rudolf Smend, 1882~1975)에 의해 뿌리를 내린 헌법관이다.
국가를 끊임없는 '가치체계의 통합과정'이라고 정의하고 헌법을 '공동 관심사에 대한 합의'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으며 국민(주권자)과 국가(정치권력) 간, 그리고 그들 상호 간의 법가치관 충돌에 대하여 변증법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참고 ▶ 위키백과 카를 프리드리히 루돌프 스멘트)
198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의 헌법학은 김철수, 권녕성 두 학자가 중심이었다.
두 사람 모두 독일에 유학한 대륙법계이며 결단주의적 헌법관을 근간으로 했다.
당시 대부분의 법학자 내지 법학도들은 이 두 사람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에 영향을 받았고 추종하고 있었다.
1982년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허영 교수가 귀국해서 연세대 교수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헌법학은 큰 변화를 일으킨다.
허영 교수가 집필한 '헌법이론과 헌법'이 출간된 직후 법학도들은 열광했다. 유신과 신군부의 정권 정당성에 회의를 품고 절망하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허영 교수가 소개한 동화적통합론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허영(헌법학자'))
1980년대 초중반, 동화적통합론의 시대적 가치는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권의 권원적 가치에 대한 탄탄한 이론이 제시됨으로써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합리적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바로 '공동관심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6.10 민주대항쟁'으로 일컬어 지는 역사적 사건, 1987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환점을 탄생시킨 관념적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부터 허영교수의 가치관을 추종하고 석박사 과정을 모두 허영 교수를 지도교수로 연세대에서 이수함으로써 명실공히 '허영 교수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확보하였으며, 헌법학계의 비중있는 인물로 활동했던 헌법학자다.
관료가 되기 전 그가 강단과 문서를 통해 보여 준 가치관은 허영 교수의 그것 처럼 많은 지지와 공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변한 것이다.
그 외에도 정치에 입문하면서 가치관을 버린 사람은 또 있다.
그들의 고매하고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변절자'라 부른다.
묻고 싶다. 그대들의 변절이 '시대와의 동화적 통합' 과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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