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초 차를 마시며
얼마 전에 걸러서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 백년초 발효액을 꺼냈다.
석달간 숙성시킨 백년초 발효액은 점성이 매우 강해서 마음 먹은대로 컵에 따를 수가 없다. 강제로 끊어주지 않으면 계속 따라 나온다.
터줏대감인 다구(茶具)를 한 쪽으로 치우고 유리컵을 놓았다.
진보랏빛 백년초 발효액에 사이다를 부었다. 인터넷에서 배운대로 1:10 비율이다
찻수저로 저으니까 거품이 생기면서 생각보다 잘 섞인다.
한모금.
밴년초 향이 입 안에 가득하다.
사이다의 독특한 짜릿함과 묘한 어울림이 있다.
다구(茶具)를 치운 찻상 위 차보자기가 보인다.
'처음처럼'
상념이 새벽 호수의 물안개 처럼 일어난다.
내장사 백련암. 백련암 앞마당의 정자에 누워서 뒷산을 거꾸로 보면 마치 호수를 보는 것 같다하여 대우스님은 '하늘호수'하고 이름 붙였다.
8년 전 백련암을 찾았을 때 일이다.
백련암은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사의 부속 암자다.
내장사 주지를 역임하고 조실로 들어 앉은 대우스님의 차접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스님이 묻는다.
"회사에 '사훈' 있습니까..?"
"아직 없는데요"
"제가 하나 드릴까요? 서울의 큰 기업 부탁으로 생각해 놨던건데 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허허.."
꽃이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이지 꾸밈이 아니다.
내 몸 처럼
가족 처럼
처음 처럼
스님이 주신 '사훈'은 회사의 지향점을 넘어서 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찻보자기에 쓰여진 시구 (詩句),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래!
매시가 시작이요, 매처가 출발처다.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좋은날.
입 안을 채운 백년초 향이 온 몸을 적신다.
'처음처럼'의 향도 따라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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