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끝, 세상 끝
한 줄기 캐프불, 빛의 소중함,
슬레이트는 석면으로 만들어 진다. 지금은 인체 유해성 때문에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지붕을 얹기도 했고 심지어는 불판 대용으로 고기를 얹어 구워 먹기도 했다. |
하숙집은 산동네의 중간 쯤에 자리한 단층 슬레이트 집이다.
'산동네'라는 말이 우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고한에서 딱히 '산'이라는 것을 따로 구분하는게 재미있다.
산 중턱을 깎아 낸 다음 낮은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 블록과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탄광촌 서민주택의 모습이다.
주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택을 운영하지 않는 덕대 광부들이 하숙생이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40대 초반의 퉁퉁한 볼에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여섯명이 함께 쓰는 '하숙방'은 모두 세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좌측에 있는 방이 배정됐다.
호차가 달려서 옆으로 밀면 '드르륵' 소리가 나는, 중간에 갓유리가 끼워진 한지 바른 여닫이 문이다.
"여기서 일할 사람 같이 안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요? 하도 사연들이 많아서리.."
나 같은 사람들, 탄광은 커녕 삽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를 '허여멀건' 사람들이 때때로 탄광을 찾았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을 실감하는데는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첫 출근을 앞둔 저녁에 함께 일하게 될 선산부 김씨와 박씨, 그리고 후산부 'J'와 고한시장 안의 삼겹살 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병'반 작업을 끝내고 내일부터 '을'반으로 바뀌는 덕을 본 것이다. 갑반은 오전 여덟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작업이다. 원래는 오전 여덟시에 병반 작업이 끝나고 당일 오후 네시에 을반 작업에 나가야 된다. 그래야만 '만근'을 할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달에 쉴 수 있는 이틀 중에 '상견례 날'이 포함된다는 것도 복이다. 그 보다 더 큰 복은 원래 상견례 따위는 없다고 한다. 'J'의 덕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다.
반장 박씨는 30년의 화려한 경력이다.
내로라 하는 광산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정작 말 수가 적었다. 광부의 아들인 동년배 'J'의 입담으로 마치 오랜 이웃을 만난 것 처럼 친밀감이 생겼다.
178cm의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진 'J'는 (광부들 대부분이 마른 체형이다) "비쩍 말랐어도 제삿상의 북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탄광촌에서의 회식. 지금까지의 이질감은 시작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돌았다. 아니, 술주발이다. 지금의 음식점에서 밥을 담는 그릇 보다 두배쯤 큰 그 시절의 '밥주발'에 찰랑거리게 '백주'를 따랐다. '백주'는 그 시절 잠깐 유행했던 30도 짜리 소주다.
냉수 들이키듯 들이킨 백주 한 주발에 눈알이 돌고 혀가 말린다.
"젊은 친구가 술이 삐리하네" 반장 박씨가 술을 바꾼다. 댓병 막소주. 점입가경이다.
눈을 뜨니 열두시다.
하숙방 사람들은 일 나가고 다른 덕대 을반인 허씨와 함께 양은 개다리 소반에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30대 중반의 허씨도 과묵한 사람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힘이 좀 쪼마 들낀데.."가 고작이다.
김치와 취나물, 어묵조림, 두부조림, 고등어 조림에 북어국이다. 아주머니 요리 솜씨가 하숙집 보다 음식점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가 쥐색 작업복과 방수복 각각 두 벌을 준다. '허여멀건' 사람들이 야반도주하면서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한다. 거의 새것이지만 하숙비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옷들이다.
작업복 위에 방수복까지 입고 목에 수건 두르고 방문 앞 신발장 위에 나란히 놓여진 충전기에서 배터리를 빼 허리 뒤춤에 차고 장화 신고 나서니 가로로 좁은 마당에 섰던 아주머니가 목욕가방 하나를 건네 준다. 도시락이다.
"내일부터는 방문 앞에 놓아 둘께요. 일 갔다 오면 빈 도시락도 문 앞에 놓아 두고 빨래는 속옷만 각자하고 나머지는 저기 광주리에 던져 놓으세요."
마당 한 켠에 매달린 거울을 들여다 보니 어색한 광부가 서있다.
오늘은 세칸도리
하숙집에서 '1096항'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의 거리다. 버스는 하루에 여덟번 다닌다. 버스를 놓치면 '탄차'를 얻어 타거나 걸어야 된다. '탄차'는 석탄을 운반하는 화물차다. 탄광촌에서는 광부들이 '탄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다행히 버스를 탔다.
첫 출근이라 그런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이 몇마디 한다. '백바가지'라고 불리우는 '감독'이다. 백바가지는 탄광에서 지존이다.
갱구에서 삼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에 모였다. '고야집'이다. 안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난로가 후끈거린다. 탄광답게 최상급 석탄을 불쏘시개로 쓴다. 최상급 석탄을 성냥불로도 불을 붙일 수 있다.
고야집은 여섯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벤치와 난로 뿐인 간이 휴게실이다.
도시락 가방을 선반에 올려 놓고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서 방수복을 꺼내 입는다.
방수복을 입은 채 출근한 것도 '햇돼지'의 순진함이다.
"오늘은 햇돼지가 있으니까 세칸도리만 하자구"
반장인 박씨가 작업량을 결정하고 일어 선다. ('햇돼지'는 신참이라는 뜻의 탄광 은어). 어제 삼겹살집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묘한 위엄이 느껴 진다. 선산부 두 사람은 쇠막대(데꼬), 톱, 도끼 따위의 작업공구를 한쪽 어깨에 메고 갱구로 들어가고 'J'가 따라 오라고 한다.
'J'가 일반 리어카 세배쯤 크기로 보이는 쇠구루마(광차)를 가리키면서 "저게 당신 차야"라고 일러 준다.
갱구 좌측편 야적장에서 통나무(동발)와 널판지(다루끼)를 골라 싣는다. 세칸이면 동발이 총 아홉개, 다루끼가 서른개 쯤이다. 자재를 골라 광차 두대에 나누어 실었다.
광차와 자재의 무게를 합치면 약 2톤에서 2.5톤 정도 된다고 한다. 앞서 가는 'J'의 뒤를 따라 광차를 밀었다. 광차 높이는 약 120cm 쯤 되는 것 같다.
'광차'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탄 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
갱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100미터쯤 지나자 외부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안전모에 부착한 캡램프 불빛 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고 판단해야만 된다.
갱도는 높이가 160cm정도다. 바른 자세로 허리를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쪽을 향해서 약간 경사진 갱도를 따라 광차를 밀고 올라갔다.
200미터쯤 지나면서부터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다. 앞 선 'J'는 건들건들 잘도 간다.
500미터쯤 되는 곳 오른편에 해골마크가 선명하게 반사되는 시커먼 굴이 있다. 동발 세개를 가로로 질러 입구를 막은 '폐갱'이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가스로 인해 폐쇄된 굴이다.
갱구에서 막장까지는 2km 쯤 된다고 한다.
경사진 갱도를 2톤이 넘는 광차를 밀고 올라가는 것이 준비작업이다. 철로(궤도)위에 올려져 있지만 용을 써야만 광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막장까지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탈진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야반도주 했다는 '허여멀건' 사람들 생각이 났다.
나중에 터득하기는 했지만 광차를 미는 것도 '힘' 보다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j'의 응급조치와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갱도는 900미터쯤 되는 위치에서 Y자 형으로 두 갈레로 갈라진다. 오른쪽이 탄맥을 찾아 굴을 파는 '굴진' 막장, 왼쪽이 석탄을 캐는 '채탄' 막장이다. 그 사이에 터득한 쥐꼬리 만한 요령으로 몸을 틀어 광차를 왼쪽으로 돌린다.
드디어 막장이다. 광차를 밀고서는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던 막장에 온 것이다. 막장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전 작업반이 세워 놓은 동발과 파내다 만 탄맥 사이에 골방 하나 크기 정도의 공터가 있다.
막장에서는 먼저 입항한 선산부 둘이서 폭파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쇠막대기로 위에 세개, 아래에 세개, 지름 약 5cm에 깊이 약 30cm의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떡'이라고 부른다)를 채운 다음 쇠막대기로 다지고 있었다. 겁이 난다. "저렇게 쾅쾅 쑤셔대다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 어쩌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뇌관('비스'라고 불렀다)을 폭발시키지 않으면 쇠막대기 충격으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지 않는다.
'떡'을 다지고 각 구멍에 도화선이 달린 뇌관('비스')를 연결한 반장 박씨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규정상으로는 담배를 소지하고 입항할 수 없다.)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도화선에 갖다 대기 전에 '발파'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막장으로부터 30미터쯤 바깥 쪽에 구부러진 곳으로 나와 다른 선산부 김씨가 나누어 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땅 속 2천미터의 막장에서는 속눈썹에 바짝 갖다 댄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암흑이다. 그래서 그런가, '캐프불(캠램프)'은 생각 보다 밝다.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면서 금새 담배연기 자욱해진 갱도를 비춘다. 환상적이다. 실신했던 몸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다. 담배가 '백해무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나온 반장도 한쪽에 앉는다. 갱도는 네 사람이 뿜어 내는 담배연기와 도화선이 타면서 내는 연기로 뿌옇다.
"떵.." "떵.." "떵.."
여섯번의 폭발음과 함께 갱도 전체가 흔들린다. 캐프불에 비친 연기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동발 사이로 가루가 떨어진다. 공포가 밀려 왔다. '탄광붕괴', '매몰' 따위 기사들이 머리 속에서 요동친다.
여섯 번의 폭발이 끝나고 나서도 굴은 무너지지 않았다. 막장 채탄작업은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시작된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서 보니 연기들이 갱도 바깥 쪽을 향해 서서히 밀려 나가고 있다.
막장에는 발파로 쏟아져 내린 석탄이 수북하고 한쪽에 깔린 지름 약 10cm정도의 고무호스에서 쉴새 없이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외부에서 콤푸레서로 보내 주는 공기였다. 이 바람 덕분에 연기가 밀려나가고 광부들이 질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기호스는 잠수부의 그 것처럼 광부의 생명줄이다.
"자, 시작해 보지"
이제부터 채탄작업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③ 갱도에 내리는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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