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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 - 아름다움 (Beautiful)/생각/마음/영혼

막장에서 본 세상 ① ‘까망세상’

경험은 관념의 씨앗

'까망세상' 탄광촌 고한에서 다른 세상을 보다

고한 박심리 전경. 당시 사진이 없어서 1996년 사진을 빌려왔다. 이 무렵만 해도 동네가 비교적 밝은 느낌이다. '까망세상'에서 벗어 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동네에 '동원탄좌 영일 덕대 1096항'이 있었다. 이후에 '스몰카지노'가 생겼다가 사북의 '본카지노' 개장과 함께 문을 닫고 현재는 '하이원 리조트'가 영업 중이다.

 

1979년 말, 대한민국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두어 달 전에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과 12.12 사태 등으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시기입니다.

청량리 역에서 심야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에 내린 곳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지금은 고한읍)입니다.

1979년 말에는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친절하게도 객석 마다 재떨이가 붙어 있었고 겨울에는 열차 안이 늘 담배 연기로 자욱했던 시절입니다. 심야열차를 타면 술과 담배를 나눠 마시고 피우며 낯선 이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었던 특유의 '서민문화'가 있었지요.

강원랜드가 들어 선 사북과 똬리굴(추전터널)로 유명한 추전의 중간에 위치한 고한은 전형적인 탄광촌입니다.

고한역은 고한의 양쪽으로 늘어 선 야산 중 한쪽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네를 기준으로 야산이지, 해발 고도는 서울 근교의 산 정상쯤 됩니다.

새벽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신선합니다. 대부분 불이 꺼진 고한역 아래 시장의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개월 간의 '까망세상'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탄광촌 여인숙, 옆방의 잠꼬대 소리까지 들리는 개방형 방음시설

 

여인숙은 2층구조였고, 1층에는 접수창구와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공간, 2층에 10여개의 작은 방들이 객실입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두 장의 목재 합판 중간에 스틸로폼을 채운 '샌드위치 판넬'입니다. 옆 방에서 잠꼬대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매우 개방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점심 무렵에 약속이 되어 있는 'O'를 만나기 위해 여인숙을 나서자마자 별천지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을 전체가 까만색입니다. 산도 거리도 도로도, 심지어는 개천에 흐르는 물까지도 온통 까만색인 '까망세상'인 것입니다.

본래는 흰털을 가진 강아지들도 모두 '쥐색'입니다.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주로 여성들의 옷 만이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별천지'가 바로 말로만 듣던 탄광촌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한 번화가'에는 유난히 술집이 많았습니다. 지방색이 나는 '요정'도 있고 룸쌀롱을 비롯해서 고깃집까지 마치 '술꾼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풍경입니다.

베이지색 바지에 콤비 상의와 감청색 코트를 입고 있던 저는 한 눈에 봐도 이방인이었습니다. 까망세상의 이방인에게 베이지색 옷이 검은 '탄 때'로 얼룩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

 

'O'로부터 탄광 소개를 들었습니다. 경험 삼아 하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것과 그런 만큼 수입은 제법 짭짤하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일반 근로자 수입에 비해 평균 1.5배, 많게는 두배 이상의 수입도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탄광촌은 세 개의 반으로 나뉘어 1일 3교대로 일합니다.

'갑을병' 세 개의 반이 역순으로 교대를 하는데, 갑반은 오전 여덟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을반은 네시부터 열두시까지, 병반은 열두시부터 다음날 오전 여덟시까지 일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갑반이 병반으로, 병반이 을반으로, 을반이 갑반으로 작업시간이 바뀝니다. '가다 가와리'라고 불렀던 '반 교대'가 일주일 간격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일반 근로자의 두배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려면 '만근'을 해야 됩니다. 한달에 이틀만 빼고 출근하는 것이 바로 만근입니다.

거기에 '채탄실적'이 가감됩니다. 정해진 채탄량 보다 많으면 '성과급'으로 추가 수입이 생기는 것입니다.

월 58만원에 연탄 백장 교환권, 당시 사무관급 공무원 월급이 40만원 안팎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입입니다. 일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지에 대한 생각 없이 "와~~ 많다"고 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숙하고 천진한 백면서생 다운 모습인지요.

일할 탄광과 기거할 하숙집을 정해 놓고 내일 여인숙으로 오겠다는 'O'와 헤어져 돌아와 외출한지 두어 시간 만에 얼룩무늬가 된 베이지색 바지를 벗어서 여인숙 여종업원에게 세탁소에 맡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O'가 내일 올 때 임시로 입을 옷가지를 챙겨 오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O'는 다음날 오지 않았고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고한의 세탁소는 옷을 맡기면 3~4일 뒤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주야로 들리는 옆 방의 소음을 음악 삼아 주인 아주머니와 여종업원이 '양은 쟁반'에 얹어다 주는 조촐한 밥을 먹으면서 지낸 3일, 까망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소위 '창녀'로 불리우던 이 고마운 여종업원과는 훗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만들어집니다.

3일 뒤에 'O'가 왔습니다. 제가 일하게 될 곳은 '박심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곳에 있는 '동원탄좌 영일 덕대 1096항'이라고 합니다.

덕대란 당시의 대표적인 석탄 채굴권자인 동원탄좌 또는 삼척탄좌로부터 하청을 받아서 운영하는 영세 채탄업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원탄좌나 삼척탄좌에 비해 작업 환경이나 조건이 매우 나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일단 기대감과 호기심에 설레었습니다.

하숙집은 후불제로 월 만오천원에 여섯명이 한 방을 쓰고 도시락도 싸 주는 조건입니다.

'O'가 가져온 옷은 요즘 같으면 재활용에도 내놓기 어려울 만큼 헌, 파랑색 바탕에 양 팔과 다리 측면에 본래는 흰색이었을 잿빛 두줄이 박힌 '츄리닝' 한 벌입니다. 이 츄리닝으로 까망세상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야호~ 내일이면 나도 막장 후산부다!


탄광 막장 작업은 석탄을 캐서 운반해 나오는 일입니다.

선산부 두명, 후산부 두명의 총 4명이 1개 반을 이룹니다. 선산부는 다이너마이트 발파 작업과 동발 설치 작업을 전담하고 후산부는 선산부를 보조하는 동발 등 작업 자재 나르기와 다이너마이트 발파작업으로 쏟아져 내린 석탄을 삽으로 퍼서 '광차'에 싣고 갱도 밖 '조구'까지 운반하는 일을 전담합니다.

선산부는 비교적 전문적인 일을, 후산부는 막일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두 명의 선산부 중 한 사람이 '반장'입니다.

작업에 들어가기(입항) 전에 '고야집(본항 입구에 설치된 두평 가량의 목조 함석지붕의 가건물)'에 모여 가방을 내려 놓고 반장으로부터 그 날의 작업 계획을 듣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네 칸 도리"

 

네칸은 세워질 동발의 칸수 입니다. 동발은 한 개의 무게가 40~50K쯤 되는 통나무인데 양 옆에 기둥 두개를 가로질러서 질러서 위에 한 개, 총 세 개의 통나무를 사용합니다. 세 개의 통나무가 바로 '한 칸'의 기준이 되는 거지요.

한 칸의 동발을 세우고 나면 위에 널판지('다루끼'라고 부름)를 촘촘히 올려서 지붕을 만들어 줍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석탄과 잡석들을 막아 주고, 그 것들이 쌓이고 채워지면 하중에 의해 동발의 지탱력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못이나 철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끼와 톱과 끌만으로 조립하는 일종의 '대목 작업'이 선산부의 기술입니다.

기본 작업량이 세 칸이라고 합니다. 세 칸 이상부터 '성과급', 가외 수익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칸 작업에 보통 4톤~5톤, 광차 2~3대 정도 분량의 석탄을 실어 냅니다.

동발 <자료출처 : 한겨레신문>

 

동원탄좌나 삼척탄좌 같은 큰 업체는 갱도 입출항 및 채탄 운반 작업을 모두 '전차'로 하지만 '덕대'는 사람이 광차를 직접 밀고 다닙니다.

쇠붙이로 된 작은 수동기차, 광차의 자체 무게가 1톤이 넘는데 한번에 2톤 가량의 석탄을 삽으로 퍼 담고 본항 밖의 '조구'까지 운반하는 것이 '후산부'의 일입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동원탄좌 영일덕대 1096항'은 '본청'인 동원이나 삼척탄좌와 달리 본항 갱도의 높이가 160cm정도인데, 왠만한 남자 어른은 안전모를 쓴 채로 똑바로 서지를 못하고 양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30도 정도 옆으로 숙여야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입니다.

'본항'은 중간에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크로스'라고 불렀던 이 지점에서 하나는 탄맥을 찾아서 굴을 파는 '굴진작업' 막장으로 가고 하나는 찾은 탄맥에서 석탄을 캐는 '채탄작업' 막장으로 가게 됩니다.

 

덕대 탄광 막장 후산부의 복장

막장 광부의 장비 <자료출처 : 석탄박물관>

 

막장 선산부의 뒷모습(방진 마스크는 없었음. 작업복도 실제는 방수복을 겉에 입었음) <자료출처 : 석탄박물관>

 

덕대 탄광 막장 후산부의 복장은 위로부터 ①안전모(광부는 노랑색, 감독은 백색 안전모) ②안전모 전면에 거는 캡램프('캐프 불'이라고 불렀음) ③목에 두르는 땀 닦는 수건 ④방수복('탄가루' 방진용으로 입은 '땀복'과 비슷한 옷) ④충전용 축전지(허리벨트 뒤에 착용, 캡라이트와 고무피 전선으로 연결, 무게 약 2kg, 한번 충전으로 20시간 정도 사용한다고 했지만 하루 여덟시간 이상 사용해 본 적은 없음) ⑤면장갑 ⑥면장갑 위에 끼는 고무장갑 ⑦고무장화

방진 마스크나 안전화가 지급되지 않았고 의무화 되어 있지도 않았던 때라 진폐증과 안전사고에 노출된 채로 하루 여덟시간 씩 작업을 했던, 그야말로 '막장 광부'의 복장인 셈입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② '막장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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