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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 - 아름다움 (Beautiful)/생각/마음/영혼

동류의식과 집단주의

"우리가 남이가"

중국 친구들은 의례적으로 "우리가 남이가" 선창에 "함 해보자"를 외쳤다

 

 

수년 전, 사업의 중국 진출과 함께 북경에 법인을 설립할 당시의 일입니다.

목적 사업이 중국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S.O.C 유관 사업이었기 때문에 외형상으로 '중국법인'의 형식을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이나 외국이나 대부분 국가의 소위 '국책사업'에 있어서는 외국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더라도 시행자는 내국인 또는 내국법인이어야 합니다.

자금과 기술은 우리 쪽에서 투자하고 영업과 대관업무를 중국 친구들에게 위임하는 형태로 '외자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중국법인'의 외형을 갖추기 위해 소유지분 또한 중국 측 51% 대 우리 측 49%로 결정했습니다.

 

사업 참여자 중 중국 측 인사들은 중국 중앙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이었습니다.

'만만디'라는 말, 중국과의 거래를 해 보신 분이라면 익히 아실 일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스타일은 우리와는 매우 다릅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질릴 정도로 같은 회의를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외국, 특히 한국 사업가들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며 대부분 중도에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만만디'에 중국 특유의 저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 회의에서 마라톤 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참 좋은 내용이었다. 나머지는 2차 회의에서 얘기하자." 라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다음날 회의합니다. 상식적으로 전에 진행했던 회의 내용에 이어서 새로운 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같은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회의는 당연히 짧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얘기합니다. "오늘 참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회의에서 나머지를 얘기하자."

그 과정이 다섯번, 열번 계속 반복되면 차츰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자들이 과연 사업에 뜻이 있는 걸까..?"

과거에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이 100% 실패했던 기간이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전패를 기록한 기간이 이십년 가까이 됩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분석되었지만 가장 첫번째 벽이 협의 단계에서부터 한국의 실무자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그들의 태도입니다.

 

중국인과 기업은 왠만해선 협력관계를 바꾸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일단 '파트너쉽;이 결정되고 나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생긴 신뢰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트너를 바꾸기 위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펑요우 朋友'는 '친구'라는 의미의 중국어.

 

그리고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생긴 신뢰를 '펑요우 朋友'라고 합니다. 친구라는 의미의 이 펑요우는 중국인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중국인들은 '펑요우'가 아니면 쉽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처럼 지루하고 의심스러운 회의를 반복하고 나서 '법인 설립과 협업'에 대한 기본 합의를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제가 제안합니다.

"내가 선창하면 당신들은 복창하시오."라고 하면서 우리 말의 뜻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흥미롭다는 반응과 함께 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다음 회의 때나 회식 때는 의례적인 사전행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저의 선창에 "함 해보자!"라는 중국 친구들의 복창으로 말이지요.

 

동류의식과 집단주의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홉스테드(G. Hofsted)가 전 세계 56개 국가의 문화를 몇 가지 지표로 분석한 결과로 보면 한국은 아시아 평균인 24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18점을 받아 강한 집단주의 성향을 보였다. <자료출처 주간경향>

 

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는 '동류의식'이 숨어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펑요우'라는 의미로 사용했고, 경상도에서는 '문디'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동류의식은 인간관계의 공통분모에 대한 공감대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어느 정치인도 과거에 복국집에서 부정하고 불의한 내용의 모의를 하면서 '우리가 남이가"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류의식은 그 구성원의 면면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집단주의로 나타납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들에게도 '우리가 남이가'의 종류의식이 있었을 것이고 반대편에 선 매국노들에게도 비슷한 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동류의식은 '패러다임'으로 고착되고 이어집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남이가'의 집단주의 유형은 극과 극입니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동류의식, 집단주의에 속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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