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엄마가 너를 세상에 부르려 커튼 드리워진 방으로 들어 간 후
아빠는 이쪽에서 57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며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서성거렸단다.
숨 죽이는 숭고한 기다림.
큰 엄마의 양 팔에 안겨 네가 다가 왔을 때
아빠는 양 볼에 뜨거운 물이 흘러 내리는 급성 안질에 걸리고 말았지.
샛별 처럼 반짝거리는 너의 두 눈 망울과
유난히 길고 새까만 너의 머리카락을 대하고
아빠는 마치 터져 버릴 것 같은 희열의 심장병도 생겼고,
어느덧 스무 해가 지나
네가 2막을 향해 첫 걸음을 시작하는 순간.
아빠는 하늘 아래 가장 행복한 자아도취의 정신병까지 얻었구나.
아가야
세상의 한 걸음 앞에서 너를 기다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빠는 이제 너의 뒷 편을 갈무리 해야겠구나.
꼭꼭 접어
깊은 품 안에 넣어 다니고 싶었던 20년.
아빠는 오늘 이름 모를 병에 걸려 구름 위를 걷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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