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와 삿대

 

입항 전 모습. 이 모습이 '탄때'로 인해 오래 묵은 노숙자의 몰골로 바뀌는데는 두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발파 작업이 끝나고 채탄이 시작되었다.

막장에는 다이너마이트 발파로 무너져 내린 석탄이 쏟아져 내려와 있다.

선산부들은 톱과 도끼, 작은 괭이 같이 생긴 깍귀로 동발 작업을 시작한다.

반장 박씨는 자신이 처음 막장 일을 시작했을 때는 곡괭이와 쇠막대, 삽으로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다이너마이트가 있어서 '양반'이라고 했다.

선산부들은 아무렇게나 내리 찍는 것 같이 보여도 매우 정교하게 동발을 깍아 귀를 맞추고 있다.

 

바닥에는 가로 세로 1.5m 정도에 두께가 3mm 쯤 되어 보이는 철판이 깔려 있다.

'J'가 삽질 시범을 보여 준다. 삽은 끝이 넙적한 '오삽'이다.

광차 한대를 바짝 대 놓고 광차와 90도 방향으로 자세를 잡은 다음 삽질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삽질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매일 수천번의 삽질로 석탄을 퍼 담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J'의 삽질은 특이했다.

"삽질도 팔로 하는게 아니라 허리를 쓰는거여.." 자세히 보니 허리뿐이 아니고 온 몸을 쓰는 것 같다.

 

'광부의 삽질'은 특이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을 한쪽 허벅지 깊숙이 대고 몸으로 미는 방식이다. 만일 팔 힘으로 삽질을 한다면 팔이 배겨 내지 못할 작업량이다.

 

기가 막힌다.

1.5톤 내지 2톤에 가까운 석탄을 순전히 삽질만으로 퍼 담는데 20여 분 쯤 걸리는 것 같다. 문제는 중간에 허리를 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갱도와 막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만을 허락하는 높이이기 때문이다. 구경만 하고 섰는데 벌써 몸이 뒤틀린다.

 

광차 한대를 채운 'J'가 같이 밀자고 한다. 광차의 폭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정도다. 광차를 밀고 2크로스 까지 나왔다.

폐쇄된 쪽에 세워 놓았던 빈 광차를 빼고 그 자리에 탄을 채운 광차를 밀어 놓은 다음에 다시 막장으로 갔다.

"이번엔 자네 차례여"

삽을 잡고 눈여겨 봐 둔대로 삽질을 시작했다. 삽질이라기 보다는 흉내다. 그런데 이상하다. 'J'는 아무 힘도 안들이고 번쩍거리듯이 끝낸 작업이다. 스무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온 몸에 쥐가 나는 것 같다. 방수복을 입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벌써 속옷까지 흠뻑 젖었음을 느낀다.

막장의 온도는 평균 섭씨 10도 안팎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서늘한 온도다.

 

땀은 문제가 아니다. 팔꿈치에서부터 힘이 빠져 나간다. 광차를 밀고 올라올 때 하고는 다른 고통이 온 몸을 휘감는다.

 

"ㅎㅎㅎ, ㅎㅎㅎ" 사람들이 뭐가 재미있는지 시시덕거리면서 약을 올린다.

보다 못한 반장이 한마디 한다. "J야, 니가 좀 해줘라"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우선 살아야 한다.

'J'의 삽질은 마치 춤을 추는 것 처럼 가볍고 자연스럽다.

창피스럽다. 힘깨나 쓴다고 씨름이며 팔씨름으로 우열을 가리고 우쭐했던 기억들은 무참하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처음 작업했던 '동원탄좌 영일덕대 1096한' 평면도. 궤도가 단선이기 때문에 크로스2 지점에 광차를 대기시켜 놓고 한대씩 막장에 투입한다. 크로스에서는 몸을 움직여서 광차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두번째 광차에 탄을 채웠을 때 반장 박씨가 지시한다.

"처음이니까 'J'가 같이 나가" 광차 한대를 둘이서 같이 밀고 나가라는 말이다. '동행지도', 마음이 놓인다.

 

크로스2까지 나왔다.

갱도는 갱구에서 막장까지 약간 오르막 경사가 진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입항할 때 그렇게도 힘이 들었던 것이다. 2톤이 넘는 광차를 밀고 오르막을 올라와야 했던 것이다.

"나갈 때는 쉽겠다. 굳이 둘이 같이 갈 필요가 있을까..?"

'J'가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한마디 한다. "들어올 때는 힘들고 나갈 때는 위험해"

크로스1에서는 굴진작업 팀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광차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확인해야 되기 때문에 일단 정지하고 레일 위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크로스2에서 출발한 광차에 둘이 올라 탔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광차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오른 발 밑에 칫대 밟아" 오른발을 살짝 내려보니 페달 같은게 있다. 말하자면 브레이크 페달이다.

"가속이 너무 세게 붙으면 칫대가 말을 안들으니까 속도 조절을 잘해야 돼"

 

광차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밀거나 올라탈 수 있는 폭이다. 적재함 아래 양쪽에 칫대(브레이크 페달)가 있다.

 

'J'는 달리는 광차 위에서도 쉴새 없이 교육한다. 광차를 타고 가다가 절대로 머리를 높이 쳐들지 말라던가 만일 칫대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양 발을 레일 위에 올려 놓고 "레일을 타라"고 했다.

갱도의 높이는 광차 상단부에서 약 40cm~50cm정도다. 섣불리 고개를 쳐들었다가는 동발을 들이 받을 수 있다.

크로스1에서 귀를 대고 굴진팀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소리의 상태에 따라서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계속 반복하면서 외우려고 애쓴다.

갱구로부터 약 500m 지점, 천연가스로 폐쇄된 폐갱 앞을 지나칠 때쯤 광차의 속도는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들릴 만큼 빨라졌다.

"칫대 밟아"

힘껏 칫대를 밟았지만 광차는 쉽게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슬며시 겁이 난다.

"레일 타자, 레일 위로 발 내려"

발바닥이 뜨거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될 때쯤 광차가 느릿해졌다. 발 쪽에서 고무장화 타는 냄새가 올라 온다. 'J'의 '햇돼지' 교육은 실전이다.

 

밖으로 나왔다.

'검탄' 조씨가 와서 탄질과 중량을 확인하고 적는다.

 

'조구'는 채굴한 석탄을 모으는 '집하장'이다. 영세한 덕대탄광은 거의 수동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조구'에 가니까 레일 끝이 위로 구부러져 있어서 광차를 밀면 앞 쪽으로 세워 석탄을 내리 부을 수 있는 구조다. '조구'의 아래 쪽에는 석탄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삼척탄좌나 동원탄좌 같이 큰 회사 직영은 전동 광차를 쓰고 대부분의 작업을 기계장비로 한다고 한다. '덕대(하청)'는 대부분을 몸으로 한다.

 

돈보, 생애 첫 자괴감

 

작업한 석탄을 조구에 부어 놓고 다시 막장에 왔다.

'J'는 아까 석탄을 퍼 담은 광차를 타고 나갔다. 다시 삽질을 시작한다. 'J'가 없으니 왠지 불안하다.

새까만 막장이 노래지는 상태가 두번쯤 지나서야 삽질이 끝났다. 'J'는 벌써 돌아 와서 흩어져 있는 석탄을 삽으로 모으고 있다.

"혼자 갈 수 있지? 내가 나갈 때 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막장 작업은 4명 1조로 기본 할당량이 있고, 기본량을 초과하면 성과급이 나온다. 나 때문에 작업이 지연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내심 불안하지만 광차를 밀었다. 이제 혼자다.

크로스2에 왔다. 그리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광차에 탄 상태로 슬쩍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J'에게 배운대로 했다.

 

'덜컥.. 뚜닥!'

광차가 멈췄다. 내려서 살펴보니, 아뿔싸! 탈선이다. 큰일이다. 용을 써서 다시 레일 위로 올려 보려고 했지만 야속하게 광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돈보'는 광차가 탈선한 것이다. 레일과 광차의 네 바퀴가 수평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같은 탈선이지만 레일과 바퀴가 가로질러 있는 상태는 '돈보'가 아니라 '삿대'라고 한다. '삿대'는 돈보에 비해 복구도 어렵지만 광차 속력에 따라서 탈선 시에 양 옆 동발과 광차의 충돌까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대형사고'다.

 

잠시 후에 'J'가 왔다. 갱도가 막혀서 더 나갈 수도 없다. 갱도는 광차가 있으면 양 옆으로 40cm 정도의 공간 밖에 없다.

"돈보 졌네, 허.. 참.." '돈보'는 광차가 레일을 이탈한 탈선 사고다. 이리저리 상태를 살피던 'J'가 막장으로 올라 간다.

선산부 두 사람이 쇠막대와 삽을 들고 함께 내려왔다. 도망치고 싶다. 내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돈보'로 한시간 쯤 허비했다.

 

"오늘은 담배 피울 시간도 없겠다. 'J'야, 들어 올 때 가방들 가지고 와라"

점심(사실은 저녁이다. '을반'은 저녁 일곱시 반이 중식시간이다)을 막장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작업량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서 반장 박씨가 'J'에게 묻는다. "저 아래 캐빈 쳐 놓은 근처에 비가 오던데, 잘 보고 있지?" "거 아무래도 감독한테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아까 보니까 이슬이 내리던데요"

이 사람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지? 굴 속에서 비가 오고 이슬이 내리다니..

아하.. 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이런 농담을 하는가 보다.

"밥 먹고 나가서 얘기해. 보수반 들어 가기 전에"

 

'이슬'은 동발 위로 앉은 지붕(널판지=다루끼) 사이로 미세한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빗댄 탄광 은어다.

'비'는 '이슬' 보다 굵은 가루, 작은 괴탄과 흙과 탄가루가 섞여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슬'이 내리는 곳은 붕괴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한다. 보통 '비'가 오다가 '이슬'로 바뀐다고 한다. 그 전에 보수해야 하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여기저기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실제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는 곳이 바로 탄광이다. 그 중에서 붕괴 사고는 대부분 '매몰'로 이어지고 매몰사고가 일어나면 사고지점 안 쪽의 광부들은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그것이 바로 '탄광'이며 '광부'인 것이다. 탄광에서 '고참'의 존재는 '안전'과 같은 의미가 있다.

 

막장의 '점심'. 실제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다. 수킬로미터 지하의 '해저갱' 등에서는 나오고 들어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점심을 막장에서 해결한다.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탄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설명을 들었지만 무섭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무서움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몸이 지쳐 있다.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장화를 벗었다. 양말을 벗어서 짜니까 주르륵 물이 떨어진다. 보통 물이 아니다. 몸 안의 물, 내 몸의 엑기스, 땀이다. 발이 퉁퉁 불어있다.

방수복 안의 작업복과 셔츠, 속옷이 푹 젖어서 몸이 더 무겁다. 가만히 있으니까 으실으실 추워진다. 힘들어도 작업을 하는게 더 낫겠다.

 

삽겹살에 막소주 한주발.

어제 먹은 그 잔인했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내 마음을 아는지 반장이 한마디 한다.

"일 끝나고 햇돼지 잡자" 햇돼지 잡자는 말은 신참 신고식하자는 탄광 은어다.

 

반장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④ 지옥문 '노부리'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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