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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시사/정치

거리낌 없는 정부, 감출게 없는 정권이 필요하다

"모든 얘기를 다" vs "하고 싶은 말만" vs "아무 말도 안해"

기자들이 보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소통 방식… "지금은 기대감도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제일 편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질문도 취재도 안되고, 그냥 공식 루트를 통해 나오는 이야기만 받아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3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입에서조차 '소통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치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무현, 피곤할 정도로 소통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논쟁을 피하지 않고 즐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A 기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과 관련해서 기자들과 소통이 잦았다. 직접 춘추관으로 와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반면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식의 '스킨 십'은 잘 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기자들과 밥도 먹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0월3일 낮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산행이나 기자단 만찬 등의 형식을 통해 기자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춘추관장을 맡았던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탄핵 국면에도 기자들과 산행을 했고 연말마다 기자단 만찬을 열었다""공식 기자회견에서 당연히 추가 질문을 받았고, 생중계 때문에 언론사에서 그만해야 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더 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같은 소통 방식은 기자들뿐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석진환 한겨레 정치부 기자가 지난해 관훈저널에 쓴 글에 따르면 기자회견을 해도 주류 언론이 비틀어 써서 그 취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불만이 많았던 노 전 대통령은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생방송을 즐겼다. 대통령이 MBC '100분 토론'에 나와 패널들과 논쟁을 벌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때문에 기자들의 일은 넘쳐났다.

당시 국회를 출입했던 종합일간지 소속 B 기자는 "일요일에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국회에 나타나거나 몇 시간씩 기자회견을 열어서 기자들이 농담으로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들 했다"며 "이명박 정부는 하고 싶은 말만 했는데 노무현 정부는 소통이 잦아서 그런지 숨기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숨겼다. 기자 할 맛 났던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이같은 소통방식은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지상파 소속 C 기자는 "대화를 하는 건 좋은데 대통령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언론들이 대통령의 말을 분석하고 비꼬는 기사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B 기자도 "소통의 기회는 많았지만 언론과 청와대 모두 솔직하게 부딪히면서 흥분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정제된 방법으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스킨십은 최고였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론 대응 역시 기업 '홍보팀'과 비슷했다는 평가다. 알리고 싶은 것은 적극적으로 알리되 숨기고 싶은 것은 대답을 피했다.

신정훈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가 지난 2009년 관훈저널에 쓴 글에 따르면 세종시 수정 논란이 한창일 때, 청와대는 기자회견 질의내용을 G20 정상화의와 관련된 것으로 국한해달라고 기자단에 요청했다.

 

▲ 2008년 5월8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신 기자는 "청와대는 그동안 관례적으로 대통령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실 간사단을 통해 질문자를 선정하고 질의내용을 미리 받았다"며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 내용 자체에 제한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 G20 정상회의 이외의 다른 질문을 하면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홍보하고 싶은 내용만 묻고 들으라는 지침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국정 운영과 관련해 대통령의 의중을 알기 위해서 청와대 참모진과 주로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합편성채널 소속 D 기자는 "당시 이동관 홍보수석의 경우, 정권을 같이 창출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이나 상황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백브리핑이나 전화 통화를 통해 세밀한 취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C 기자도 "노무현 정부 때보다 확실히 소통의 빈도가 줄었다"며 "다만 당시 청와대 참모들 중 몇몇은 언론사와 밀접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참모들을 통해 기자들도 대통령의 의중이나 청와대 돌아가는 소식을 취재했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소속 E 기자도 "청와대 참모진이 기자들과 친한 편이었다"며 "추가 질문도 받아주고 대답도 잘해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 "기자들과 친밀도는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경제지 소속 F 기자는 "벨기에 순방 갔을 때, 기자들 이름을 부르며 '아무개 기자, 이거 먹어봐 되게 맛있어'라며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준 건 유명한 일화"라고 말했다. 신정훈 세계일보 기자의 관훈저널 글에도 "(이 전 대통령은) 질문한 기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넣어가며 답변하기도 한다"는 대목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고 참모진이고 '비밀주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기자들은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모들도 '비밀주의' 라고 평가했다.

인터넷매체 소속 G 기자는 "참모들이 재량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 비밀주의라고 해야 할까. 대통령이 실제로 '촉새가 나불거려서' 라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E 기자도 "확실히 빡빡해졌다"며 "참모진에게 질문을 해도 '그 이상은 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권과 같은 새누리당 정권인데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월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모들이 기자들에게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실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D 기자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홍보수석일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정권 창출부터 함께 했고 정치를 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청와대 흐름을 아는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 언론인 출신 대변인은 실제로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친밀도와 관련해서도 지난 정부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가다.

D 기자는 "아무래도 여성이다 보니 기자들과 편하게 산행을 가거나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감안해야 할 부분"이라며 "그나마 대통령과 편하게 눈도 마주치고 악수하고 한두 마디 건넬 수 있는 건 순방 갔을 때 '기내 간담회'다. 불시에 가끔 하신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언론계에서는 '제일 편한 출입처가 청와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C 기자는 "청와대 참모진을 포함해 어느 루트를 통해도 취재가 어렵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제일 편하다""그냥 공식 루트를 통해 나오는 이야기만 받아 적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열리는 공식 기자회견도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횟수가 적은 편이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남은 2년 동안만이라도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G 기자는 "대통령의 공식적인 기자회견이라도 지금보다 많았으면 좋겠다. 좀 더 자유로운 형식에서"라고 말했다. A 기자도 "청와대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현안을 파악하는 게 청와대 기자단"이라며 "가급적 많이 설명해주는 것이 정확한 정보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D 기자는 "노무현 정부 이전만 해도 기자들 몇 명을 비서동으로 불러서 대통령과 기자들이 직접 소통했다"며 "기자들 모두를 부를 수는 없으니, 기자들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라도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이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른 기자들에게도 공유하는 방식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기자들도 질문해봤자 나올 게 없으니 기대감도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2016년 02월 25일 목요일

이하늬·차현아 기자 hanee@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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