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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시사/정치

입법부가 외부에서 법률 자문? 만든 사람이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

정의화 의장 직권상정, "외부 법무법인 자문 받았다"

국회 법무담당관실 안 거치고 국가비상사태 규정… 김제남 "국회권위 내팽개친 것" 비판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국회의장이 회부된 안건의 심사기간을 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고 국회법 85조에 따라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근거를 밝히지 못하면서 무효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 의장이 밝힌 유일한 근거는 "심사기간 지정의 요건인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 자문과 검토"를 거쳤다는 것이다. 법률자문을 받은 곳과 검토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전시와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했다면 국민 보호를 위해서도 그에 대한 근거를 내놔야 한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정 의장이 법률자문을 받은 곳은 법무법인 A를 비롯한 복수의 외부 법무법인인 것으로 나왔다.

박흥신 국회 대변인은 "A 법무법인 뿐만 아니라 복수의 법무법인을 통해서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정무 수석실 관계자도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을 자문 받았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A 측은 "고객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법률자문을 받았는지 여부와 자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가비상사태 규정과 관련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국회 공식 법률 자문 기구를 놔두고 외부기관의 판단에 맡겨놓고, 이를 비공개하면서 국회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비상사태 규정은 앞으로도 직권상정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법률자문을 받는 기관은 신중할 필요가 있고, 자문 내용도 투명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회의장실은 법무법인을 통한 국가비상사태 규정 법률자문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 대변인은 "국회 내부 소송이 걸렸을 때 외부에 있는 사람이 인사 조치라던지 이런 판단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바깥에서 자문을 받는게 비이성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내부에서 자문을 받았다면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국회의 공식법률기관인 국회 행정법무담당관실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 법률 자문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국회의 공식 채널이 아닌 일부에서 제기되는 국정원장의 보고나 비공식채널을 통한 자문결과로 직권상정을 했다면 명백한 직권남용이자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내평개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도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진지해야 하고 공식적인 절차와 자문기구를 거쳐 근거를 내놓고 의원들에게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가비상사태가 났다면 이에 준해서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비치하고 공무원과 국회도 이에 준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무얼 하고 있느냐"면서 "법률자문을 외부에서 받았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비상사태라고 공포만 주고 분위기에 따라 믿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관련해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할 경우에만 심사기간을 정할 수 있다는 국회법 85조 조항도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정 의장은 법률자문결과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했다고만 밝혔을 뿐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조항을 보면 기본 협의를 해야 한다. 의회민주주의 문제로 보면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라는 문구에 대해 법체처에서는 이미 비상사태로 인한 위해가 발생될 경우에만 해당되고 발생가능성만으로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 정의화 국회의장. 사진=노컷뉴스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한 법률자문 검토 내용을 하루빨리 밝혀야 하는 이유는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 직권상정 문제가 닥쳤을 때 판단 근거가 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야할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을 내렸다는 근거를 밝히지 못하면 민주주의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외부 자문기관의 검토 내용이라도 있다면 그 내용을 빨리 밝히는 것이 국회의장의 기본 도의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2016년 02월 26일 금요일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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