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동하는 지성 - 시사/정치

경찰이 ‘법 집행’을 ‘단속’으로 안다면 자유는 억압된다

유령 아닌 '유령'으로…"집회 자유" 외치다

ㆍ국내 첫 홀로그램 집회

광화문에 나타난 유령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홀로그램 이용 유령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4일 오후 8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 윤곽이 흐릿한 시민 120여명이 갑자기 등장해 행진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평화시위 보장하라", "집회의 자유는 불법이 아니다" 등 구호를 외쳤다.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3차원 영상(홀로그램) 속 존재였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앰네스티)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을 하루 앞둔 이날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홀로그램 집회를 열었다. 이른바 '유령집회'로 광장에 세워진 가로 10m, 세로 3m 크기의 스크린에 미리 제작한 홀로그램을 비추는 방식이다.

 

영상 : 광화문에 나타난 유령들 경향신문 직접 보기

 

영상은 평화집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의 발언과 참가자들이 행진하는 모습, 구호를 외치는 장면 등 10분 분량이었다. 앰네스티는 이를 세 번 반복해 약 30분 동안 틀었다.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김희진 앰네스티 사무처장"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청와대까지 집회를 할 수 없는 금지구역이 됐다""교통 불편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가능한 건 우리와 같은 유령들뿐"이라고 말했다.

유령집회는 참가자들이 '유령 호소문'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유령을 자처한 시민들은 홀로그램을 통해 "청와대 인근의 집회와 행진이 금지된 것은 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노동법 개정, 쌀 수입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두 차벽과 물대포에 가려지고 말았다"며 "유령집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며, 이제는 진짜 사람들이 누리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앰네스티는 지난달 25일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이 '교통 방해'를 이유로 금지했다.

앰네스티 관계자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유령집회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홀로그램 촬영 신청을 받았다. 앰네스티는 지난달 28일 서울시로부터 문화제를 위한 광장 사용 허가를 받았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집회가 국내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다.

이에 경찰은 신종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현행 집시법에서 시위는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위력을 보여주는 행위다. 따라서 홀로그램 속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은 집시법 위반이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홀로그램을 보면서 시민들이 구호를 따라 외칠 경우에만 제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도 현장에 나와 유령집회를 지켜봤다.

한편 국제앰네스티"한국에서 표현·결사·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계속 억압되고 있다"고 이날 발표한 2015년 세계인권상황 연례보고서에서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경찰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 걷기와 관련해 불필요하게 공권력을 사용하고 물대포로 시위대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2.24 22:22:15

수정 : 2016.02.25 09:48:43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