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사고력, 천박한 표현법' 들끓는 온라인

 

 

 

"어렵게 잘 키운 딸, 매장시키려고 작정했나"

 

인기 여배우 최여진 씨 엄마라는 사람(실제 친모인지 호적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글에 네티즌들의 야유와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개고기'

양궁 국가대표 선수이며 런던올림픽 2관왕이기도 한 기보배 선수의 부친이 "개고기를 먹인 날은 성적이 좋았다"고 한 6년 전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최여진 엄마'는 올림픽 스타 기보배 선수를 향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기보배 선수를 빗대 '미개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입에 담기도 민망한 비속어로 게시글을 채웠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의 전통적 관념상 불문율로 되어 있는 '부모욕'까지 해댄 것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최여진 엄마'는 해명 글을 올렸다.

"외국으로 나가면 다 애국자되죠.."라는 표현에서 마치 자신의 행동이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뉘앙스다. 외국생활 당시에 현지인들로부터 들은 '개고기 먹는 나라'라는 말 때문에 창피하고 모욕스러웠다는 것이다.

 

해명 글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다.

외국인에게 문화적 차이와 편견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본인의 '지적한계 (知的限界)'를 추악하게 미화시킨다는 등 비난이 더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명 글을 읽은 네티즌들에게서 오히려 더 거센 비난과 항의가 쏟아져 나오자, '최여진 엄마'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했다. 네티즌들은 '최여진 엄마'가 쇠고기를 구워 식탁 위의 개에게 주는 사진과 글에 대해서도 야유와 비난을 쏟아 냈다.

 

 

"쇠고기는 되고 개고기는 안되는 이유가 뭐냐?"

 

 

 

특정한 음식에 대한 호감, 비호감은 각 나라와 민족 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즉 문화적 차이인 것이다.

곤충과 달팽이, 심지어 애벌레까지 고급요리로 선호하는 민족, 잔혹한 도축이 끊이지 않는 소 도축장의 문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나라,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여 미치게 만드는 '광우병'의 나라, 야생동물을 유희 삼아 사냥하는 사람들.. 정작 주목하고 비난 받아야 할 문제는 '무엇을 먹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육하고 도축하느냐'에 있다.

 

한국에서는 '소(한우)'가 개 보다 더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소는 일생 동안 궂은 농사 일을 도맡아 해주는 힘센 '머슴'이고 자식 학자금을 마련해 주는 재산이며 사람과 짐을 운반해 주는 교통수단의 역할까지 해주는가 하면 장기간의 흉년으로 인한 기아에는 생명을 구해 주는 구호식이기도 한, 한국 농촌의 '동반자'였다.

소에 대한 애정을 소재로 한 작품에 개에 대한 그것 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보더라도 소는 한국사회와 문화에서 '가축' 또는 애완동물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다른 나라에서 한복이 우스꽝스럽다고 비난한다면 입지 말라고 할 것인가? 개화기부터 시작된 '한복 천대'의 풍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활동성이 부족하다는 것과 불편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한복을 제대로 입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한민족과 문화에 대한 악의를 가진 것인지 금새 알게 된다.

서양식 의복에도 예복과 일상복, 운동복이 있듯이 한복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생활에 맞게 진화된 '개량한복'의 우아함과 기능성,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은 서양식 의복과는 그 격이 다르다.

문화적 편견과 자기비하의 한 예이지만, 한복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안다면 '개고기'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하기도 비교적 쉽다.

 

 

핵심은 '문화적 자존감'

 

 

 

문화적 자기비하와 열등감에 길들여진 자들에게는 전통이란 감추고 바꾸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의타적이고 외세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눈치보고 '알아서 기는' 비굴함의 뒤에 자신을 숨길 수 밖에 없다.

내 몸이 중한 것을 모르고서야 어찌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가축, 미물들에 대한 애정 조차도 그것이 어찌 정상적이라 볼 수 있겠는가?

한국인의 전통이라면 밥상 위에 개를 올려 놓는 것은 '불쌍놈의 짓'이다.

다른 사람의 부모를 욕하는 것은 '불구대천의 원수'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여진을 톱스타로 잘 키운 '최여진 엄마'가 부디 민족과 문화에 대한 악의적 편견과 열등감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설사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톱스타 엄마'로서 최소한의 언행적 교양은 잃지 말기를 기대한다.

 

 

관련보도

▶경향신문 여자양궁 기보배, 최여진 엄마 'SNS 욕설' 논란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

▶국민일보 소고기 구워 개먹이는 최여진 엄마 인스타그램 사진… 페북지기 초이스

▶헤럴드경제 최여진 엄마, 끝까지 사과 없었다…계정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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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의 '결단주의'와 민주화의 뿌리 '동화적통합론'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과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한 규범이다. 이 헌법규범에 의해서 국가의 이념과 가치와 기능이 결정되고 운영된다. 국가 운영을 위한 모든 법률은 헌법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제정되고 운영된다. 그렇게 때문에 헌법을 법 중의 법, 모법(母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헌법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크게 1987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헌법가치관적 표현으로 한다면 이른바 결단주의와 동화적통합론으로 구분된다. 둘 다 지나치게 헌법을 규범적 가치관으로 해석하는 법실증주의(한스 켈젠)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제시된 이론이다.

 

결단주의 헌법관은 토마스 홉스(1588∼1679)가 뿌리이며 독일 공법학자인 칼 슈미트(1888∼1985)에 의해서 그 뿌리를 내린 헌법사상이다.

1970~1980년대의 우리나라 헌법관은 결단주의를 따르고 있었다.

결단주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헌법의 근원과 가치를 '헌법제정권력의 결단'이라고 정의한다. 독일 바이마르시대의 극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강력한 통제력에 의한 안정'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카를 슈미트)

 

동화적통합론 헌법관은 히틀러 시대의 독일 헌법학자인 루돌프 스멘트(Carl Friedrich Rudolf Smend, 1882~1975)에 의해 뿌리를 내린 헌법관이다.

국가를 끊임없는 '가치체계의 통합과정'이라고 정의하고 헌법을 '공동 관심사에 대한 합의'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으며 국민(주권자)과 국가(정치권력) 간, 그리고 그들 상호 간의 법가치관 충돌에 대하여 변증법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참고 ▶ 위키백과 카를 프리드리히 루돌프 스멘트)

 

 

 

198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의 헌법학은 김철수, 권녕성 두 학자가 중심이었다.

두 사람 모두 독일에 유학한 대륙법계이며 결단주의적 헌법관을 근간으로 했다.

당시 대부분의 법학자 내지 법학도들은 이 두 사람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에 영향을 받았고 추종하고 있었다.

 

1982년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허영 교수가 귀국해서 연세대 교수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헌법학은 큰 변화를 일으킨다.

허영 교수가 집필한 '헌법이론과 헌법'이 출간된 직후 법학도들은 열광했다. 유신과 신군부의 정권 정당성에 회의를 품고 절망하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허영 교수가 소개한 동화적통합론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허영(헌법학자'))

 

 

 

1980년대 초중반, 동화적통합론의 시대적 가치는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권의 권원적 가치에 대한 탄탄한 이론이 제시됨으로써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합리적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바로 '공동관심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6.10 민주대항쟁'으로 일컬어 지는 역사적 사건, 1987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환점을 탄생시킨 관념적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부터 허영교수의 가치관을 추종하고 석박사 과정을 모두 허영 교수를 지도교수로 연세대에서 이수함으로써 명실공히 '허영 교수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확보하였으며, 헌법학계의 비중있는 인물로 활동했던 헌법학자다.

관료가 되기 전 그가 강단과 문서를 통해 보여 준 가치관은 허영 교수의 그것 처럼 많은 지지와 공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변한 것이다.

그 외에도 정치에 입문하면서 가치관을 버린 사람은 또 있다.

그들의 고매하고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변절자'라 부른다.

 

묻고 싶다. 그대들의 변절이 '시대와의 동화적 통합' 과정인지..

 

 

 

관련기사

▶ 한국일보 정종섭의 '곡학아세'

▶ 뉴스타파 '교통방해' 앞에 무너진 '집회의 자유'

▶ MK뉴스 `동화적 통합론`으로 헌법 민주화 이끈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 프라임경제 헌법학자 미노베, 정무직공무원 정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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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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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기러기아빠 개그맨 배동성의 '실패한 인생'

 

이미지출처 : 한겨레신문

 

 

"아내는 제 아이를 낳아준 엄마잖아요. 애 엄마를 나쁘게 만들어서 제가 좋을 게 뭐 있어요"

90년대 인기를 누렸던 '잘생긴 개그맨' 배동성 씨의 고백입니다.

배동성 씨는 2001년부터 13년 동안 아이들과 부인을 미국에 보내고 뒷바라지 한 '기러기 아빠'였습니다.

 

수입이 좋을 때는 매월 3,500만원 씩 보내주다가 인기가 줄고 수입도 줄어들면서 송금액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제발 들어와 달라"고 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3,500만원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돈이 많았나 보네."라는 반응입니다. 많은 금액인 것은 맞습니다. 미국 기러기 평균 송금액 보다 훨씬 많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기러기아빠 배동성 씨에게 닥쳤을 정말 큰 어려움과 절박함은 송금액수에 가려져 있습니다.

 

아이들 또는 부인을 외국에 유학시키는 것은 '가정'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포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이 부분에 수 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어려움과 절망이 숨어 있습니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가족을 잃어버리는 이율배반의 모순 가운데서 경제적인 부담까지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 기러기아빠에게 펼쳐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아 둔 재산이 충분해서 유학기간 동안 넉넉한 수입이 유지되지 않더라도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절반의 고통은 벗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수시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형편이라면 정서적 괴리감이나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러기아빠 중에서 그 정도의 재산과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한 지붕 밑에서 한 솥 밥을 먹을 때 가족이라고 합니다.

 

'멀리 있는 사촌이 이웃 만도 못하다'는 속담과 같이 기러기아빠의 가장 큰 절박감은 가족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잃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자는 물론 아이들과도 점점 정서적으로 멀어지고 공감대가 약해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 절박감이 직접적으로 기러기아빠의 생활 전반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는 상징적인 존재로 변해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공감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시간 만큼, 어쩌면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간극으로 남는 것입니다.

가족은 이름만 존재하고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쯤이면 모든 것이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도 함께 절감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대화와 소통의 방식이 달라지고 단절된 상태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대부분 오해와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해외 생활에 익숙해진 가족들은 국내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생활에 적응된 기러기아빠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 소란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너무도 달라져 버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그리고 습관.. 긴 여정을 끝낸 기러기 가족의 마찰은 거기에도 불씨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한 힘겨운 여정이 사실은 가족을 잃는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아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번 생은 실패한 삶이다.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살지 말자."

 

배동성 씨의 이 말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처절한 후회와 반성이 농축된 자기를 향한 외침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들려 주고 싶은 얘기일 것입니다.

장기유학, 장기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별거 모두가 가족을 잃는 지름길입니다.

'인생의 실패'라는 자괴감으로 끝난 기러기아빠의 여정,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부부와 가족은 함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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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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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오후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네쑨도르마 네엣순 도아으루마~~"

콧노래 흥얼거리며 신호등 없는 차도를 건너고 육교도 넘어 갑니다.

 

꽃육교

 

군락의 한 쪽 옆에 비켜 선 의연한 자태

 

노랗고 빨간 꽃무리 앞을 지날 때는 그윽한 향기에 취합니다.

꽃 이파리에 귀도 대봅니다. 미세하지만 대기와 어우러진 생명의 잉잉거림과 부스럭임이 들립니다.

'자연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것에 이의없이 공감합니다. 오감만족(五感滿足)의 종합예술, 자연은 생생하고 완벽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른 내(川)는 유유히 흐르고

 

한껏 멋부린 사장교(斜張橋)를 피해 한쪽에 장식처럼 놓여진 돌다리를 건넙니다.

"무너진 돌다리 고쳐 놓자 다들 모여라~ 발 벗고 건너다 아이들이 옷을 적실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릴적 동요가 저절로 나옵니다.

기억 속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노래까지 끌어 내다니.. 자연은 예술이며 예술은 마법 같기도 합니다.

 

돌다리. 흥얼거리는 동요와는 달리 홍수가 져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고요하고 평온하게만 보이던 시내()를 들여다 보면 거기도 역시 분주한 생태계입니다.

 

영상 : 시내(溪)는 수도자를 닮았다

 

정중동(靜中動)이라고나 할까..

내 모습도 저 시내 처럼 내면에는 끓는 망상과 분주함을 담았지만 늘 잔잔하고 평온한 그릇이면 좋겠습니다.

 

영상 : 그네와 관점(觀點)

 

시골 교회 옆 낮은 그네에 앉았습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그네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숨 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녀석, 기대감에 바짝 긴장한 것 같습니다.

 

햇살 좋은 오후는 이렇게 기분 좋은 산책으로 추억 속으로 지고 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추천  ▶ 바이럴 마케팅 ‘잘 파는 것이 생존’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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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중의 막장 노부리

 

<광부 아리랑>

니기미 씨부랄 것 농사나 짓지 강원도 탄광에는 x빨러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노부리 고개를 넘어 간다

산지사방이 일터인데 그리도 할 일 없어 탄광에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을 넘어 간다

이판저판이 공사판인데 한 많고 살움 많은 탄광에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탄광은 말도 많다

 

('노부리'는 본항에서 탄맥을 쫓아 가지 처럼 뻗은 경사진 갱도를 말한다. 통상 본항 보다 더 좁고 낮은 열악한 환경이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

 

 

매일 매시(每時)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지내는 동안 한 달이 지나갔다.

'만근'을 했다. 만근은 한달 중에 이틀만 빼고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임금의 두배 가량 수입이 늘어 난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만근' 제도는 광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몹쓸 제도다.

문제는 '가다가와리 (반 교대)' 때에 심각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을반 작업이 끝나는 시각은 자정이다. 반이 바뀌지 않으면 이튿날 오후 네시 출근이므로 퇴근 후에 자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빼고도 열두 시간 쯤 된다.

만근을 하려면 일주일에 한번은 열두 시간의 휴식을 네시간으로 줄여야만 한다. 예를 들자면 자정에 작업을 끝내고 아침 여덟시까지 출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극한 노동 현장에서 피로와 수면부족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동료들과는 마치 가족과 같은 신뢰와 정이 쌓여 갔다.

어색하기만 했던 그들의 말투와 습관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판단 기준도 그들과 동화되어 갔다. 가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면 혼자 소리없이 웃기도 한다.

 

이반 데미소비치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1918. 12. 11~ 2008.08.03)과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1963초판 발행)

 

매일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살며 세 번의 만근 수당을 받았다. 첫 월급을 받던 날에는 동료들에게 제대로 '햇돼지 신고'도 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계층'이 없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잘 생긴 자나 못 생긴 자나 다 비슷하다.

소득도 비슷하다 기술자 격인 선산부와 후산부의 소득 차이는 별로 없다.

한 달에 한번, 탄광촌은 '돈의 홍수'를 만난다. 상가는 북새통을 이루고 술집마다 만원사례다. 며칠 간은 하숙집도 잔치 분위기다.

힘들인 것에 비해 허무하다 싶을 만큼 물 쓰듯이 돈을 쓴다. 하지만 고단한 광부의 삶에서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부슬부슬 이슬에 내리던 갱구 400m 지점에 문제가 생겼다.

상단을 가로 지른 동발(하리)하나가 꺾어져 갈매기 모양으로 처진 것이다.

보수할 때를 놓친 것인지, 별 문제가 없어서 보수를 안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인다.

그 지점은 광차를 타고 나오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광차에 타고 있는 동안에도 머리를 완전히 들 수는 없다. 그런데 동발이 처져 있으니 자세를 더 낮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덜커덕 달달달달..

가속이 붙은 광차는 귓전에서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의 속력이다.

"이 쯤일텐데.."

살짝 머리를 내미는 순간, 번쩍! 우지끈! @#!$%......

. . . . . . . . . .

. . . . . . . . . .

암흑이다. 귀에서 웽웽 거리며 마치 작은 모터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사고 임을 느꼈다.

캐프불(캡라이트)이 나갔다. 박살이 난 것이다. 코에서는 비릿하고 찐득한 것이 흘러 나오고 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누워 있다가 불현듯이 생각 났다.

"굴진 팀이 나온다!"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애지중지하던 휘발유 라이터, 입항 때 마다 감시를 피해 몰래 감추어 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탄광에서는 매탄 등 천연가스와 석탄 등에 의한 화재 및 폭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입항 시 담배와 성냥, 라이터 등을 휴대하지 못하게 한다.

 

충돌 시 광차가 탈선해서 왼쪽 동발을 들이 받고 레일과 비스듬하게 서있다. 삿대가 진 것이다.

꺾어졌던 동발 부분에서 탄과 괴탄, 잡석들이 쏟아져 내려와 있었다.

오른 손에 라이터를 켜 들고 막장 쪽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자빠지고 넘어지고 뛰면서 소리질렀다. "사고! 사고!"..

 

다행히 크게 다친데는 없었다.

그것 보다 더 다행한 것은 사고에 대해 별다른 질책이나 문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문이 날 경우, 마땅히 보수해야 될 것을 방치한데 대한 책임 추궁이 염려 때문일까? 감독은 전에 없이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일이 나에게서 이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사고 지점 보수 때문에 이틀째 쉬고 있는데 'J'가 왔다.

"상동에 품때기 갈래?"

품때기란 일정한 작업량을 할당 받아서 하는 일종의 한시적 도급이다.

 

막장 중의 막장

 

노부리 입구. 실제로는 어둡고 맨 바닥이거나 경사면에서 석탄을 밀어 내리기 위해 바닥에 U자형 철판을 깔았다..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턴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59항'은 문어발 같은 노부리로 악명이 높은 덕대탄광이라고 한다.

노부리는 본항에서 비교적 약한 탄맥을 쫓아 파 들어간 경사진 갱도다. 대체로 본항에 비해 더 낮고 더 좁다. 낮고 좁은 노부리를 보는 순간에 지옥문이 있다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 호기심 섞인 공포를 느낀다.

자세를 낮추어도 일어설 수가 없기 때문에 작업은 허리를 구부린 채로 하거나 기어 다니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석탄을 퍼 담은 철제 상자에 쇠줄을 달고 그 쇠줄을 멜빵에 연결해서 사람이 끌고 나온다. 쟁기 진 소가 연상된다. 쟁기 대신 철제 쓰레받이를 사람이 메고 기어서 운반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가 막힌다.

마치 지옥으로 들어 가는 문을 보는 것 같다.

1096항에서 몇 달 간 단련되지 않았다면 59항 노부리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일제 시기의 조선인 광부들이 작업했던 방식이라고 한다.

(노부리 중에는 갱도 가운데에 U자형 철판을 깔고 경사를 이용해 석탄을 흘러내리게 해서 조구(석탄 집하지점)까지 운반하는 곳도 있다.)

인간이 위대한 걸까, 아니면 잔인할 걸까.

 

사북사태 (사북 노동항쟁)

 

사북사태 : 10·26사태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으로 고조된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발생하여 80년대 노동자투쟁의 발화점이 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산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탄광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며칠 전부터 '어용노조'에 대한 불만이 태백산맥 일대를 뒤 덮고 있다.

덕대탄광 광부들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노조 문제와 임금문제가 '노동자 탄압과 착취'라는 불만으로 전체 광부들 사이에 들불 처럼 번지고 있었다.

어용노조로 비난의 대상이 된 노조지부장에 대한 불만과 비난의 여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자리에서는 험악한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서울 소식도 심상치 않다.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을 주축으로하는 정치군인들이 집권을 도모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도 전해진다.

"하늘이 이 민족을 또 내치실 것인가..?" 숨막히는 번민이 찾아 왔다.

"뭔가 해야만 된다.."

 

사고는 예고없이 찾아 온다.

 

며칠 만에 정든 1096항으로 복귀했다. 마치 고향에 온 것만 같다. 컴컴한 갱 내의 동발 하나하나가 다 반갑다. 사고가 났던 400m 지점은 말끔하게 보수가 되어 있었다.

반장 박씨가 과묵한 입을 뗀다. "보수기간 중의 반은 '기본칸' 인정해 준다네." 5일 중에 이틀 반을 기본급 유급처리 해 준다는 말이다.

나머지 이틀 반에 대해서는 무급 휴가 처리했다고도 한다. 만근을 할 수 있게 한 일종의 배려다.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다.

 

사고는 초보 때 보다 조금 숙달된 시기에 더 많이 발생한다. 운전도 완전 초보 때 보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시점에 더 사고율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일종의 '방심' 때문일 것이다. 작은 교만일 수도 있다.

흩어져 있는 석탄을 광차에 퍼 담기 좋게 한 군데로 모으는 작업을 한다. '니구리'라고 하는 작업이다. 삽을 사용해야 하지만 때대로 발로 당기고 밀면서 작업하기도 한다.

'니구리' 작업 중에 오른쪽 대퇴부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통증이 왔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하반신을 움직이는 것이 만만치 않다. '대퇴부 탈골'이다.

"큰 병원에 가 보셔야 될 것 같은데.."

동네 건강검진 지정 병원을 갔더니 통증을 진정시키는 주사를 놓아 주고 나서 큰 병원을 가라고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여인숙 아가씨

 

기억 재현. 머리카락을 뒤로 올린 다음에 고정시킨 커다란 헤어브로치가 인상적이다.

 

두시반 서울행 특급열차를 탔다. 특급열차는 완행열차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지정좌석도 있다. 옆자리에 젊은 여인이 앉는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어 올려서 손바닥 만한 브로치로 고정시킨 여인을 보자 목선이 희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어? 안녕하세요?"

여인숙에서의 고마운 기억, 지나가는 판매원을 세워 이것 저것 주문했다.

나이가 네살 더 많은 그녀에게서는 마치 큰 누이를 대하는 것처럼 연륜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시크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나는 XX년이예요."

 

산다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끔 한숨을 쉬기도 하고 화가 난 듯이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기도 하고 한숨을 쉬거나 소리없이 웃기도 하면서 말을 이어 간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다.

"목욕 좀 하세요. 처음 봤을 때는 얼굴이 하얗고 예뻤는데.."

거의 햇볕을 보지 못하고 굴 속에서 일했지만 얼굴이 까맣다. 더 정확하게는 얼룩덜룩하다. '탄때'가 낀 것이다. 탄때는 비누칠을 해서 닦아도 말끔하게 없어지지 않는다. 묵은 빨래 불리듯이 더운 물에 푹 불린 다음에 닦아야 어느 정도 지워진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광부'가 된 것이다.

절뚝거리며 목욕탕을 찾아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근다.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 온다, 눈을 감는다. 활동사진 처럼 지난 일들이 펼쳐 진다.

잠이 온다.

두 시간 뒤에 그녀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진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⑤ 인생은 선택의 과정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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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초 차를 마시며

 

얼마 전에 걸러서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백년초 발효액을 꺼냈다.
석달간 숙성시킨 백년초 발효액은 점성이 매우 강해서 마음 먹은대로 컵에 따를 수가 없다. 강제로 끊어주지 않으면 계속 따라 나온다.

터줏대감인 다구(茶具) 쪽으로 치우고 유리컵을 놓았다.
진보랏빛 백년초 발효액에 사이다를 부었다. 인터넷에서 배운대로 1:10 비율이다
찻수저로 저으니까 거품이 생기면서 생각보다 섞인다.
한모금.
밴년초 향이 안에 가득하다.
사이다의 독특한 짜릿함과 묘한 어울림이 있다.

다구(茶具) 치운 찻상 차보자기가 보인다.
'
처음처럼'
상념이 새벽 호수의 물안개 처럼 일어난다.

내장사 백련암. 백련암 앞마당의 정자에 누워서 뒷산을 거꾸로 보면 마치 호수를 보는 같다하여 대우스님은 '하늘호수'하고 이름 붙였다.

8년 전 백련암을 찾았을 때 일이다.

백련암은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사의 부속 암자다.

내장사 주지를 역임하고 조실로 들어 앉은 대우스님의 차접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스님이 묻는다.

"회사에 '사훈' 있습니까..?"

"아직 없는데요"

"제가 하나 드릴까요? 서울의 큰 기업 부탁으로 생각해 놨던건데 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허허.."

 

꽃이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이지 꾸밈이 아니다.

처럼

가족 처럼

처음 처럼

스님이 주신 '사훈' 회사의 지향점을 넘어서 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찻보자기에 쓰여진 시구 (詩句),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래!
매시가 시작이요, 매처가 출발처다.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좋은날.

 

안을 채운 백년초 향이 몸을 적신다.
'
처음처럼' 향도 따라 퍼진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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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와 삿대

 

입항 전 모습. 이 모습이 '탄때'로 인해 오래 묵은 노숙자의 몰골로 바뀌는데는 두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발파 작업이 끝나고 채탄이 시작되었다.

막장에는 다이너마이트 발파로 무너져 내린 석탄이 쏟아져 내려와 있다.

선산부들은 톱과 도끼, 작은 괭이 같이 생긴 깍귀로 동발 작업을 시작한다.

반장 박씨는 자신이 처음 막장 일을 시작했을 때는 곡괭이와 쇠막대, 삽으로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다이너마이트가 있어서 '양반'이라고 했다.

선산부들은 아무렇게나 내리 찍는 것 같이 보여도 매우 정교하게 동발을 깍아 귀를 맞추고 있다.

 

바닥에는 가로 세로 1.5m 정도에 두께가 3mm 쯤 되어 보이는 철판이 깔려 있다.

'J'가 삽질 시범을 보여 준다. 삽은 끝이 넙적한 '오삽'이다.

광차 한대를 바짝 대 놓고 광차와 90도 방향으로 자세를 잡은 다음 삽질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삽질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매일 수천번의 삽질로 석탄을 퍼 담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J'의 삽질은 특이했다.

"삽질도 팔로 하는게 아니라 허리를 쓰는거여.." 자세히 보니 허리뿐이 아니고 온 몸을 쓰는 것 같다.

 

'광부의 삽질'은 특이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을 한쪽 허벅지 깊숙이 대고 몸으로 미는 방식이다. 만일 팔 힘으로 삽질을 한다면 팔이 배겨 내지 못할 작업량이다.

 

기가 막힌다.

1.5톤 내지 2톤에 가까운 석탄을 순전히 삽질만으로 퍼 담는데 20여 분 쯤 걸리는 것 같다. 문제는 중간에 허리를 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갱도와 막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만을 허락하는 높이이기 때문이다. 구경만 하고 섰는데 벌써 몸이 뒤틀린다.

 

광차 한대를 채운 'J'가 같이 밀자고 한다. 광차의 폭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정도다. 광차를 밀고 2크로스 까지 나왔다.

폐쇄된 쪽에 세워 놓았던 빈 광차를 빼고 그 자리에 탄을 채운 광차를 밀어 놓은 다음에 다시 막장으로 갔다.

"이번엔 자네 차례여"

삽을 잡고 눈여겨 봐 둔대로 삽질을 시작했다. 삽질이라기 보다는 흉내다. 그런데 이상하다. 'J'는 아무 힘도 안들이고 번쩍거리듯이 끝낸 작업이다. 스무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온 몸에 쥐가 나는 것 같다. 방수복을 입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벌써 속옷까지 흠뻑 젖었음을 느낀다.

막장의 온도는 평균 섭씨 10도 안팎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서늘한 온도다.

 

땀은 문제가 아니다. 팔꿈치에서부터 힘이 빠져 나간다. 광차를 밀고 올라올 때 하고는 다른 고통이 온 몸을 휘감는다.

 

"ㅎㅎㅎ, ㅎㅎㅎ" 사람들이 뭐가 재미있는지 시시덕거리면서 약을 올린다.

보다 못한 반장이 한마디 한다. "J야, 니가 좀 해줘라"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우선 살아야 한다.

'J'의 삽질은 마치 춤을 추는 것 처럼 가볍고 자연스럽다.

창피스럽다. 힘깨나 쓴다고 씨름이며 팔씨름으로 우열을 가리고 우쭐했던 기억들은 무참하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처음 작업했던 '동원탄좌 영일덕대 1096한' 평면도. 궤도가 단선이기 때문에 크로스2 지점에 광차를 대기시켜 놓고 한대씩 막장에 투입한다. 크로스에서는 몸을 움직여서 광차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두번째 광차에 탄을 채웠을 때 반장 박씨가 지시한다.

"처음이니까 'J'가 같이 나가" 광차 한대를 둘이서 같이 밀고 나가라는 말이다. '동행지도', 마음이 놓인다.

 

크로스2까지 나왔다.

갱도는 갱구에서 막장까지 약간 오르막 경사가 진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입항할 때 그렇게도 힘이 들었던 것이다. 2톤이 넘는 광차를 밀고 오르막을 올라와야 했던 것이다.

"나갈 때는 쉽겠다. 굳이 둘이 같이 갈 필요가 있을까..?"

'J'가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한마디 한다. "들어올 때는 힘들고 나갈 때는 위험해"

크로스1에서는 굴진작업 팀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광차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확인해야 되기 때문에 일단 정지하고 레일 위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크로스2에서 출발한 광차에 둘이 올라 탔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광차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오른 발 밑에 칫대 밟아" 오른발을 살짝 내려보니 페달 같은게 있다. 말하자면 브레이크 페달이다.

"가속이 너무 세게 붙으면 칫대가 말을 안들으니까 속도 조절을 잘해야 돼"

 

광차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밀거나 올라탈 수 있는 폭이다. 적재함 아래 양쪽에 칫대(브레이크 페달)가 있다.

 

'J'는 달리는 광차 위에서도 쉴새 없이 교육한다. 광차를 타고 가다가 절대로 머리를 높이 쳐들지 말라던가 만일 칫대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양 발을 레일 위에 올려 놓고 "레일을 타라"고 했다.

갱도의 높이는 광차 상단부에서 약 40cm~50cm정도다. 섣불리 고개를 쳐들었다가는 동발을 들이 받을 수 있다.

크로스1에서 귀를 대고 굴진팀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소리의 상태에 따라서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계속 반복하면서 외우려고 애쓴다.

갱구로부터 약 500m 지점, 천연가스로 폐쇄된 폐갱 앞을 지나칠 때쯤 광차의 속도는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들릴 만큼 빨라졌다.

"칫대 밟아"

힘껏 칫대를 밟았지만 광차는 쉽게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슬며시 겁이 난다.

"레일 타자, 레일 위로 발 내려"

발바닥이 뜨거워서 못 견디겠다고 생각될 때쯤 광차가 느릿해졌다. 발 쪽에서 고무장화 타는 냄새가 올라 온다. 'J'의 '햇돼지' 교육은 실전이다.

 

밖으로 나왔다.

'검탄' 조씨가 와서 탄질과 중량을 확인하고 적는다.

 

'조구'는 채굴한 석탄을 모으는 '집하장'이다. 영세한 덕대탄광은 거의 수동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조구'에 가니까 레일 끝이 위로 구부러져 있어서 광차를 밀면 앞 쪽으로 세워 석탄을 내리 부을 수 있는 구조다. '조구'의 아래 쪽에는 석탄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삼척탄좌나 동원탄좌 같이 큰 회사 직영은 전동 광차를 쓰고 대부분의 작업을 기계장비로 한다고 한다. '덕대(하청)'는 대부분을 몸으로 한다.

 

돈보, 생애 첫 자괴감

 

작업한 석탄을 조구에 부어 놓고 다시 막장에 왔다.

'J'는 아까 석탄을 퍼 담은 광차를 타고 나갔다. 다시 삽질을 시작한다. 'J'가 없으니 왠지 불안하다.

새까만 막장이 노래지는 상태가 두번쯤 지나서야 삽질이 끝났다. 'J'는 벌써 돌아 와서 흩어져 있는 석탄을 삽으로 모으고 있다.

"혼자 갈 수 있지? 내가 나갈 때 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막장 작업은 4명 1조로 기본 할당량이 있고, 기본량을 초과하면 성과급이 나온다. 나 때문에 작업이 지연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내심 불안하지만 광차를 밀었다. 이제 혼자다.

크로스2에 왔다. 그리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광차에 탄 상태로 슬쩍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J'에게 배운대로 했다.

 

'덜컥.. 뚜닥!'

광차가 멈췄다. 내려서 살펴보니, 아뿔싸! 탈선이다. 큰일이다. 용을 써서 다시 레일 위로 올려 보려고 했지만 야속하게 광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돈보'는 광차가 탈선한 것이다. 레일과 광차의 네 바퀴가 수평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같은 탈선이지만 레일과 바퀴가 가로질러 있는 상태는 '돈보'가 아니라 '삿대'라고 한다. '삿대'는 돈보에 비해 복구도 어렵지만 광차 속력에 따라서 탈선 시에 양 옆 동발과 광차의 충돌까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대형사고'다.

 

잠시 후에 'J'가 왔다. 갱도가 막혀서 더 나갈 수도 없다. 갱도는 광차가 있으면 양 옆으로 40cm 정도의 공간 밖에 없다.

"돈보 졌네, 허.. 참.." '돈보'는 광차가 레일을 이탈한 탈선 사고다. 이리저리 상태를 살피던 'J'가 막장으로 올라 간다.

선산부 두 사람이 쇠막대와 삽을 들고 함께 내려왔다. 도망치고 싶다. 내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돈보'로 한시간 쯤 허비했다.

 

"오늘은 담배 피울 시간도 없겠다. 'J'야, 들어 올 때 가방들 가지고 와라"

점심(사실은 저녁이다. '을반'은 저녁 일곱시 반이 중식시간이다)을 막장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작업량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서 반장 박씨가 'J'에게 묻는다. "저 아래 캐빈 쳐 놓은 근처에 비가 오던데, 잘 보고 있지?" "거 아무래도 감독한테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아까 보니까 이슬이 내리던데요"

이 사람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지? 굴 속에서 비가 오고 이슬이 내리다니..

아하.. 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이런 농담을 하는가 보다.

"밥 먹고 나가서 얘기해. 보수반 들어 가기 전에"

 

'이슬'은 동발 위로 앉은 지붕(널판지=다루끼) 사이로 미세한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빗댄 탄광 은어다.

'비'는 '이슬' 보다 굵은 가루, 작은 괴탄과 흙과 탄가루가 섞여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슬'이 내리는 곳은 붕괴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한다. 보통 '비'가 오다가 '이슬'로 바뀐다고 한다. 그 전에 보수해야 하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여기저기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실제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는 곳이 바로 탄광이다. 그 중에서 붕괴 사고는 대부분 '매몰'로 이어지고 매몰사고가 일어나면 사고지점 안 쪽의 광부들은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그것이 바로 '탄광'이며 '광부'인 것이다. 탄광에서 '고참'의 존재는 '안전'과 같은 의미가 있다.

 

막장의 '점심'. 실제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다. 수킬로미터 지하의 '해저갱' 등에서는 나오고 들어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점심을 막장에서 해결한다.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탄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설명을 들었지만 무섭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무서움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몸이 지쳐 있다.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장화를 벗었다. 양말을 벗어서 짜니까 주르륵 물이 떨어진다. 보통 물이 아니다. 몸 안의 물, 내 몸의 엑기스, 땀이다. 발이 퉁퉁 불어있다.

방수복 안의 작업복과 셔츠, 속옷이 푹 젖어서 몸이 더 무겁다. 가만히 있으니까 으실으실 추워진다. 힘들어도 작업을 하는게 더 낫겠다.

 

삽겹살에 막소주 한주발.

어제 먹은 그 잔인했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내 마음을 아는지 반장이 한마디 한다.

"일 끝나고 햇돼지 잡자" 햇돼지 잡자는 말은 신참 신고식하자는 탄광 은어다.

 

반장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④ 지옥문 '노부리'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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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끝, 세상 끝

한 줄기 캐프불, 빛의 소중함,

 

슬레이트는 석면으로 만들어 진다. 지금은 인체 유해성 때문에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지붕을 얹기도 했고 심지어는 불판 대용으로 고기를 얹어 구워 먹기도 했다.

 

하숙집은 산동네의 중간 쯤에 자리한 단층 슬레이트 집이다.

'산동네'라는 말이 우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고한에서 딱히 '산'이라는 것을 따로 구분하는게 재미있다.

산 중턱을 깎아 낸 다음 낮은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 블록과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탄광촌 서민주택의 모습이다.

주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택을 운영하지 않는 덕대 광부들이 하숙생이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40대 초반의 퉁퉁한 볼에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여섯명이 함께 쓰는 '하숙방'은 모두 세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좌측에 있는 방이 배정됐다.

호차가 달려서 옆으로 밀면 '드르륵' 소리가 나는, 중간에 갓유리가 끼워진 한지 바른 여닫이 문이다.

"여기서 일할 사람 같이 안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요? 하도 사연들이 많아서리.."

나 같은 사람들, 탄광은 커녕 삽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를 '허여멀건' 사람들이 때때로 탄광을 찾았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을 실감하는데는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첫 출근을 앞둔 저녁에 함께 일하게 될 선산부 김씨와 박씨, 그리고 후산부 'J'와 고한시장 안의 삼겹살 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병'반 작업을 끝내고 내일부터 '을'반으로 바뀌는 덕을 본 것이다. 갑반은 오전 여덟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작업이다. 원래는 오전 여덟시에 병반 작업이 끝나고 당일 오후 네시에 을반 작업에 나가야 된다. 그래야만 '만근'을 할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달에 쉴 수 있는 이틀 중에 '상견례 날'이 포함된다는 것도 복이다. 그 보다 더 큰 복은 원래 상견례 따위는 없다고 한다. 'J'의 덕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다.

 

반장 박씨는 30년의 화려한 경력이다.

내로라 하는 광산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정작 말 수가 적었다. 광부의 아들인 동년배 'J'의 입담으로 마치 오랜 이웃을 만난 것 처럼 친밀감이 생겼다.

178cm의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진 'J'는 (광부들 대부분이 마른 체형이다) "비쩍 말랐어도 제삿상의 북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탄광촌에서의 회식. 지금까지의 이질감은 시작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돌았다. 아니, 술주발이다. 지금의 음식점에서 밥을 담는 그릇 보다 두배쯤 큰 그 시절의 '밥주발'에 찰랑거리게 '백주'를 따랐다. '백주'는 그 시절 잠깐 유행했던 30도 짜리 소주다.

냉수 들이키듯 들이킨 백주 한 주발에 눈알이 돌고 혀가 말린다.

"젊은 친구가 술이 삐리하네" 반장 박씨가 술을 바꾼다. 댓병 막소주. 점입가경이다.

 

눈을 뜨니 열두시다.

하숙방 사람들은 일 나가고 다른 덕대 을반인 허씨와 함께 양은 개다리 소반에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30대 중반의 허씨도 과묵한 사람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힘이 좀 쪼마 들낀데.."가 고작이다.

김치와 취나물, 어묵조림, 두부조림, 고등어 조림에 북어국이다. 아주머니 요리 솜씨가 하숙집 보다 음식점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가 쥐색 작업복과 방수복 각각 두 벌을 준다. '허여멀건' 사람들이 야반도주하면서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한다. 거의 새것이지만 하숙비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옷들이다.

작업복 위에 방수복까지 입고 목에 수건 두르고 방문 앞 신발장 위에 나란히 놓여진 충전기에서 배터리를 빼 허리 뒤춤에 차고 장화 신고 나서니 가로로 좁은 마당에 섰던 아주머니가 목욕가방 하나를 건네 준다. 도시락이다.

"내일부터는 방문 앞에 놓아 둘께요. 일 갔다 오면 빈 도시락도 문 앞에 놓아 두고 빨래는 속옷만 각자하고 나머지는 저기 광주리에 던져 놓으세요."

마당 한 켠에 매달린 거울을 들여다 보니 어색한 광부가 서있다.

 

오늘은 세칸도리

 

하숙집에서 '1096항'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의 거리다. 버스는 하루에 여덟번 다닌다. 버스를 놓치면 '탄차'를 얻어 타거나 걸어야 된다. '탄차'는 석탄을 운반하는 화물차다. 탄광촌에서는 광부들이 '탄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다행히 버스를 탔다.

 

첫 출근이라 그런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이 몇마디 한다. '백바가지'라고 불리우는 '감독'이다. 백바가지는 탄광에서 지존이다.

갱구에서 삼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에 모였다. '고야집'이다. 안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난로가 후끈거린다. 탄광답게 최상급 석탄을 불쏘시개로 쓴다. 최상급 석탄을 성냥불로도 불을 붙일 수 있다.

고야집은 여섯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벤치와 난로 뿐인 간이 휴게실이다.

도시락 가방을 선반에 올려 놓고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서 방수복을 꺼내 입는다.

방수복을 입은 채 출근한 것도 '햇돼지'의 순진함이다.

 

 

"오늘은 햇돼지가 있으니까 세칸도리만 하자구"

반장인 박씨가 작업량을 결정하고 일어 선다. ('햇돼지'는 신참이라는 뜻의 탄광 은어). 어제 삼겹살집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묘한 위엄이 느껴 진다. 선산부 두 사람은 쇠막대(데꼬), 톱, 도끼 따위의 작업공구를 한쪽 어깨에 메고 갱구로 들어가고 'J'가 따라 오라고 한다.

'J'가 일반 리어카 세배쯤 크기로 보이는 쇠구루마(광차)를 가리키면서 "저게 당신 차야"라고 일러 준다.

갱구 좌측편 야적장에서 통나무(동발)와 널판지(다루끼)를 골라 싣는다. 세칸이면 동발이 총 아홉개, 다루끼가 서른개 쯤이다. 자재를 골라 광차 두대에 나누어 실었다.

 

광차와 자재의 무게를 합치면 약 2톤에서 2.5톤 정도 된다고 한다. 앞서 가는 'J'의 뒤를 따라 광차를 밀었다. 광차 높이는 약 120cm 쯤 되는 것 같다.

 

'광차'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탄 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갱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100미터쯤 지나자 외부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안전모에 부착한 캡램프 불빛 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고 판단해야만 된다.

갱도는 높이가 160cm정도다. 바른 자세로 허리를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쪽을 향해서 약간 경사진 갱도를 따라 광차를 밀고 올라갔다.

200미터쯤 지나면서부터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다. 앞 선 'J'는 건들건들 잘도 간다.

500미터쯤 되는 곳 오른편에 해골마크가 선명하게 반사되는 시커먼 굴이 있다. 동발 세개를 가로로 질러 입구를 막은 '폐갱'이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가스로 인해 폐쇄된 굴이다.

 

 

갱구에서 막장까지는 2km 쯤 된다고 한다.

경사진 갱도를 2톤이 넘는 광차를 밀고 올라가는 것이 준비작업이다. 철로(궤도)위에 올려져 있지만 용을 써야만 광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막장까지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탈진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야반도주 했다는 '허여멀건' 사람들 생각이 났다.

나중에 터득하기는 했지만 광차를 미는 것도 '힘' 보다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j'의 응급조치와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갱도는 900미터쯤 되는 위치에서 Y자 형으로 두 갈레로 갈라진다. 오른쪽이 탄맥을 찾아 굴을 파는 '굴진' 막장, 왼쪽이 석탄을 캐는 '채탄' 막장이다. 그 사이에 터득한 쥐꼬리 만한 요령으로 몸을 틀어 광차를 왼쪽으로 돌린다.

 

드디어 막장이다. 광차를 밀고서는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던 막장에 온 것이다. 막장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전 작업반이 세워 놓은 동발과 파내다 만 탄맥 사이에 골방 하나 크기 정도의 공터가 있다.

막장에서는 먼저 입항한 선산부 둘이서 폭파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쇠막대기로 위에 세개, 아래에 세개, 지름 약 5cm에 깊이 약 30cm의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떡'이라고 부른다)를 채운 다음 쇠막대기로 다지고 있었다. 겁이 난다. "저렇게 쾅쾅 쑤셔대다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 어쩌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뇌관('비스'라고 불렀다)을 폭발시키지 않으면 쇠막대기 충격으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지 않는다.

 

'떡'을 다지고 각 구멍에 도화선이 달린 뇌관('비스')를 연결한 반장 박씨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규정상으로는 담배를 소지하고 입항할 수 없다.)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도화선에 갖다 대기 전에 '발파'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막장으로부터 30미터쯤 바깥 쪽에 구부러진 곳으로 나와 다른 선산부 김씨가 나누어 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땅 속 2천미터의 막장에서는 속눈썹에 바짝 갖다 댄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암흑이다. 그래서 그런가, '캐프불(캠램프)'은 생각 보다 밝다.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면서 금새 담배연기 자욱해진 갱도를 비춘다. 환상적이다. 실신했던 몸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다. 담배가 '백해무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나온 반장도 한쪽에 앉는다. 갱도는 네 사람이 뿜어 내는 담배연기와 도화선이 타면서 내는 연기로 뿌옇다.

 

 

"떵.." "떵.." "떵.."

여섯번의 폭발음과 함께 갱도 전체가 흔들린다. 캐프불에 비친 연기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동발 사이로 가루가 떨어진다. 공포가 밀려 왔다. '탄광붕괴', '매몰' 따위 기사들이 머리 속에서 요동친다.

 

여섯 번의 폭발이 끝나고 나서도 굴은 무너지지 않았다. 막장 채탄작업은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시작된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서 보니 연기들이 갱도 바깥 쪽을 향해 서서히 밀려 나가고 있다.

막장에는 발파로 쏟아져 내린 석탄이 수북하고 한쪽에 깔린 지름 약 10cm정도의 고무호스에서 쉴새 없이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외부에서 콤푸레서로 보내 주는 공기였다. 이 바람 덕분에 연기가 밀려나가고 광부들이 질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기호스는 잠수부의 그 것처럼 광부의 생명줄이다.

 

"자, 시작해 보지"

 

이제부터 채탄작업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③ 갱도에 내리는 이슬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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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근본적이고 불가침한 권리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생명과 재산에 대한 안전과 보다 나은 생활에 대한 '사회적 총의'의 결정체다. 이 '사회적 총의'의 내용이 기본권이며 국가의 목적은 기본권 실현에 있는 것이다.

'공동선'에 대한 집합적 의사결정의 결과로 이루어진 단체가 바로 국가인 것이다. 이 사회적 총의는 '헌법'을 통해서 개념화되어 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모든 법령은 헌법에서 규정한 범위 내에서 제정되고 시행되어야 하지만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법 해석'을 통해 헌법의 입법취지와 적용범위를 판단한다.

법학은 법전 속에 있으면서 법령의 집행에 대한 합리성을 따지는 것뿐만 아니라 법의 생성과 변화, 법의 저변을 받치고 있는 가치관과 철학, 법의 제정과 운영, 타국 법률과의 비교를 통한 보편성 발견 등 '법'에 관한 전반적인 명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사법고시'로 통하는 국가고시를 통해 법률가 자격을 주는 제도는 현재의 명문화된 법령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해석법학'의 범주에 속한다.

명망있는 법학자들 대부분이 이른바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거나 변호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의학'의 분야가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학'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가 사원의 운영과 '수도'의 분야로 구분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종교가 '존재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통해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의학이 '인체와 생명현상'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서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기여해 왔듯이 법학은 사회규범인 도덕질서에 대한 근본을 밝히고 제도화하며 제도화된 도덕질서를 운영하는 분야다.

 

현대사회는 '법망'으로 표현되는 촘촘한 법질서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법학은 현대인의 생활과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야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사용한다. 국어의 중요성이나 국어에 대한 관심은 따로 거론할 필요도 없이 국어는 모든 국민이 당연시하는 표현의 질서다.

국어를 공부할 필요성에 버금가는 필요성이 법학에도 있는 것이다. 공부가 어렵다면 최소한의 관심과 상식 만이라도 갖출 필요가 있는 분야다. 특히 헌법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어찌 보면 국민의 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내면에는 두 가지의 함의가 있다. 하나는 권리의 주체, 다른 하나는 의무의 대상이 바로 그 것이다.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주체인 반면에 국가에 대한 마땅한 의무를 지기도 하는 것이다.

 

국민을 구분하는 규범, 다시 말해서 국가에 대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주체로서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규정이 헌법의 규정과 헌법규정에 따른 국적법이다.

 

기본권이란 무엇인가?

 

 

헌법은 제 10조 이하에서 '공동선에 대한 사회적 총의'인 국가가 당연 의무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불가침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이 있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기본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자유권의 표현의 자유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나온 것이 있다.

이와 같이 기본권은 '사회적 총의', 곧 국가의 목적이며 뿌리인 것이다.

좋은 국가란 바로 이 기본권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바른 정권을 가름하는 기준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호하고 누릴 수 있게 하느냐에 있다.

 

'정권'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총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책무를 위임 받은 '대리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선택은 바로 '기본권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정권이 기본권을 침탈하거나 약화시킨다면 그 정권은 '독재정권'이고 정권에 대한 '위임계약 위반'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임관계를 취소할 수 있고 정도에 따라서는 당연 무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탄핵소추제도와 저항권, 혁명권 등으로 설명되고 잇다.

 

국가는, 좁게 표현해서 '사회적 총의'를 대리 운영하는 '정권'은 필요에 따라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다. '공동선'을 위하여 일부 희생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정권)의 기본권 제한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 것인가? 주권자에게 어느 만큼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헌법은 37조에서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국가안녕과 공공질서 유지에 필요한 경우'에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이다. '공동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개인의 권리를 다소 희생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 국가안녕과 공공질서가 무엇이며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의 범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있다.

 

올리버 웬델 홈스 2세(Oliver Wendell Holmes 1841년 ~ 1935년)

 

 

기본권 제한에 대해서는 '위대한 반대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올리버 웬델 홈스(Holmes, Oliver Wendell)가 미국 연방대심원(우리의 대법관 격) 판사(1902~1932)로 재임할 당시의 판결문에서 표현한 '현존하고도 명백한 위험의 원칙''최소 침해의 원칙'이 기준이 되고 있다.

 

부득이하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써, 그 기본권 행사가 국가안녕과 공공질서를 해칠 위험이 명백해야 되고(추상적이거나 모호하면 안된다) 기본권 행사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적 위협이 현재 발생하고 있어야 하며(예측으로 제한할 수 없다), 국가적 위험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경우일지라도 그 기본권의 제한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제한 금지)는 것이다.

 

"집회 및 시위가 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불허한다."는 것이 명백한 '반 헌법적 기본권 탄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당,부당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국가와 국민, 기본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 없이는 생명, 자유, 평등, 행복으로부터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불의한 정권의 노예로 전락할 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빨 건강을 위해 하루 세 번 양치질을 하고 치솔과 치약은 골라 쓰면서도 헌법과 기본권에 대해서는 하루 한 번 관심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권을 무시한 채 법을 집행하는 정권 및 헌법과 법률을 만드는 정치인을 선택한다면 생명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이 이빨 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煩解 –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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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sales)는 '관점과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프로 세일즈맨은 결코 경쟁상품을 비난하지 않는다."

 

 

'판매직'을 일컫는 Sales man은 산업사회의 말초신경이었으며 기업 최전방의 특공대 역할을 했던 '전사 중의 전사'였고 그 위상과 가치는 디지털시대인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세일즈맨, 즉 '판매 전문인'이라는 말과 제도는 1880년대 미국의 금전등록기 회사인 NCR(National Cash Register)의 설립자인 존 패터슨이 최초로 도입하여 발전시켰다.

('존 패터슨'이라는 이름에서 '이태원 살인 사건'을 먼저 떠올리지 않았기를..)

 

'세일즈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존 패터슨의 경험과 조언은 오늘날까지도 세일즈의 바이블로 통한다.

(존 패터슨은 금전등록기를 발명한 후 내셔널 캐시 레지스터(The National Cash Register)를 설립한 후 1906년 최초의 전동 금전등록기를 개발했으며 1974년 'NCR Corporation'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1년 AT&T가 NCR을 인수하였다. 우리나라에는1969년 국내 최초로 한국외환은행 온라인망을 구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컴퓨팅시스템의 부동의 리더 격인 IBM은 터불레이팅 시스템의 창안사인 CTR이 경영부진에 빠졌다가 1914년에 NCR의 토마스 왓슨을 경영자로 영입하여 급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24년에 IBM으로 재 창업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

 

카네기 대화법의 기본이기도 한 이 말은 모든 세일즈맨의 상식 처럼 되어있다.

존 패터슨과 토마스 왓슨, 데일 카네기 등 세일즈와 대화법의 신화를 남긴 사람들은 판매가 아닌 교류가 출발 임을 강조했다. 인간관계를 맺는 기본 자세와 소양에 역점을 두고 출발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세일즈는 상호 교류와 신뢰의 공통분모를 찾아 내고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요지다.

 

모든 사회적 행동이 그렇듯이 정치도 인간관계와 상호신뢰를 근간으로 한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인 것이다.

 

밀레니엄 원년인 2000년 초에 국제직접판매자협회(IADSC) 각국 회장단을 초빙, '밀레니엄 컨퍼런스'를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의 가와라바야시 유스케 회장 등 20여명의 IADSC 회장단과 4박5일을 함께 하면서 정상급 세일즈맨은 마치 '도인'과 같은 경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일즈는 '판매' 이전에 '인성'과 '인격' 도야의 과정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우리 정치계에도 같은 느낌의 진정한 지도자가 있었고 현재도 존재한다.

 

'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삼류 정치인, 정치 이전에 먼저 '세일즈맨 쉽' 부터 가르쳐야 한다

 

권모와 술수, '정적'에 대한 비난과 모욕으로 점철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존경과 신뢰가 아닌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망국적 언론과 야합하는 '천박한 선동꾼'의 모습인 것이다.

세일즈맨으로 비유하자면 아마추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잡상인이요, 지인들에게 구매를 구걸하는 저질 '연고판매'에 천착된 모습이다. 한마디로 혁신 아니면 퇴출 대상인 것이다.

정치인의 언행은 대중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특히 모범적이어야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달인'라는 말에 정치 대신에 '협잡'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저열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아닌 인성교육부터 먼저 받아야 될 인사들이 '국가 지도자'로 행세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의 퇴락과 정서적 해악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

 

 

오리새끼들 틈에 끼어있는 백조는 조롱과 따돌림의 대상이다. 악인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성인(聖人)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인성과 인격의 훌륭함이 돋보이는 극소수의 인사들이 대다수의 정치모리배들 '혀'에 농락 당하고 정계를 떠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린 저질 정치. 주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앙 중에서도 대재앙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모리배의 '혀'가 망동을 멈추지 않는 것은 주권자가 방관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방관을 넘어 선 동조와 지지까지 보태진다면 오히려 그들의 망동은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인의 자격과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대중의 관점과 소양에도 일대 혁신(Innovation)이 필요하다.

인성과 인격을 갖춘 진정한 '賢者'를 잃어버린다면 역사를 잃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하수상한 시절이다.

 

 

- 煩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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