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비판 '보복인사', 사드 '보도지침' 논란
'정상화 망령' 기도한 KBS 정연욱 기자 느닷없이 제주도로 발령
정연욱 KBS 기자는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제하의 특별기고를 게재했다. KBS 보도국 국‧부장급 간부들이 주축인 'KBS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모임'(이하 정상화모임)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정 기자가 비판한 정상화모임은 지난 3월에 결성됐다. 정지환 KBS 보도국장, 최재현 정치외교부장 등 핵심 국‧부장급 이상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고 그 규모도 130여명 수준에 달한다.
언론 기고 이후 이틀이 지난 15일, 정 기자는 18일자 KBS 제주총국 인사발령을 받았다. 이에 언론노조 KBS본부 등 내부에서는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입조심을 강조하되, 덮어놓고 입을 닫는 것이 늘 무난한 태도일 수는 없다.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이 경솔함과 무례의 소치인 것 못지않게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 역시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란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세속사제이자 문필가였던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가 <침묵의 기술>이란 저서에서 '나쁜 침묵'에 관해 이야기한 대목이다. 침묵의 가치를 성찰한 글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침묵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란 태도'와 다름없다고 냉정히 지적했다.
디누아르가 살아있다면 공영방송 KBS의 침묵을 어떻게 평가할까. 김시곤 전 보도국장과의 통화 녹음 파일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인 양 외면하고 있는 바로 그 침묵 말이다. 6월30일 사회2부에서 작성한 <언론노조, 이정현 전 홍보수석-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통화 녹음 공개>란 제목의 단신은 여전히 출고를 위한 승인을 받지 못한 채 KBS 안에 갇혀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거쳐 닳고 닳은 채 허공으로 사라졌을법한 철 지난 소식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뉴스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기묘한 침묵이다. 이 침묵을 깨려는 치열한 시도는 역설적으로 KBS 내부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보도 개입' 보도를 촉구하는 기자들의 기수 성명이 잇따랐다. 하지만 단지 '잇따른 성명'으로 KBS 기자들이 공동의 문제의식을 안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침묵을 깨야한다는 공개적인 문제제기에 상당수 기자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가장 원초적인 정의(定義), 공공의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보도한다는 대원칙을 외면한 침묵에 적지 않은 기자들이 공범으로서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부조리를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상화'의 망령이다. '정상화'란 지난 3월11일 결성된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을 지칭하는 KBS 기자들의 공공연한 은어다. KBS 보도국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입된 'KBS기자협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일부 집행부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결성된 이 모임은 특이하게도 가입자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명단에 국·부장단을 포함한 보도국 간부들까지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보도국을 지휘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책임자들이 평기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명서'를 주도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목적을 알 수 없는 실명 공개 결성문이 게시된 뒤로 보도국 내부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뚜렷하고 명백한 경계선이 그어졌다. 정상화와 정상화가 아닌 기자, 혹은 정상과 비정상 기자. 전례 없이 피아를 갈라놓은 경계선이 생긴 뒤로 살가운 소통은 아예 사라졌다. 오랜만에 마주친 기자들끼리 어색한 웃음만 주고받고 헤어졌다는 서글픈 후일담이 잇따랐다. KBS 특유의 가족적인 유대감으로 얽혀있던 조직이 순식간에 불신으로 얼어붙었다. 간부들이 포함된 '정상화'가 비가시적이고도 일상적인 감시를 하고 있다는 공포,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통제되는 일종의 '판옵티콘'이 공영방송의 심장부에서 구현됐다. 때문에 KBS의 거대한 침묵에 저항한다는 것, 다시 말해 김시곤 전 국장과 이정현 전 수석의 통화에 관한 내용을 보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이 '정상화'에 대한 반대선언으로 해석되는 부당한 맥락이 성립됐다. 저널리즘의 상식에 입각한 문제제기 조차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지금 KBS 보도국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 최초로 경계선을 그은 기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을 묵인하고 있는 모든 기자들이 공범이다. 침묵은 침묵을 먹고 자라 마침내 KBS를 집어 삼켰다. 앞서 언급한 디누아르는 침묵을 열 가지 종류로 분류하며 이렇게 단언했다. "혀가 굳어버리고 정신이 먹먹해져 아무 할 말이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이 멍하게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둔한 침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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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협회보 13일자 정연욱 KBS 기자 기고글. |
사드배치 관련 중•러 반발소식 전한 KBS 김진수 해설위원 방송문화연구소 발령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중국·러시아의 반발 소식을 KBS 뉴스해설로 논평했던 김진수 KBS 해설위원은 방송문화연구소로 18일자 발령을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15일 오전 성명을 내고 "지난 11일 고대영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종말고고도지역방어체계(사드) 관련 한국방송 '뉴스해설'에 불만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보도본부와 해설국 차원에서 2명의 해설위원들에게 주의를 주고 인사 조치를 통보했다"며 "고 사장은 불법적인 '보도 개입'과 '찍어내기'식 인사 시도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새노조는 성명에서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에 대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장한 '청와대의 통상적인 업무'가 현재 고대영 사장에게도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이번 사드 해설에 대한 간섭과 통제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면 고 사장은 더이상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미 9시 뉴스는 오래전부터 사드와 관련해 청와대, 국방부 옹호 논리로 점철돼 버렸지만 그나마 신중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전해오던 뉴스해설마저 한목소리로 통일됐다"며 "사드 문제에 대한 '보도 지침'이 현실화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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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KBS 해설위원의 11일자 KBS뉴스해설. (사진=KBS) |
또한 15일 아침 뉴스 해설과 관련 "예민하고 찬반 논란이 거센 사드 문제에 대해 반공단체 대표인 임인수 호국보훈협회 회장을 객원해설위원으로 내세워 뉴스 해설을 맡겼다"면서 "해설 내용 역시 사드문제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북한 핵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며 사드 배치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개념도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언론노조 역시 성명을 내고 "고대영 사장이 객관적 사실과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청와대의 입장만을 감싸는 이유는 명확하다"면서 "고대영 사장을 내세워 청와대가 KBS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관련보도
▶ 한국기자협회 KBS, '이정현 녹취록' 침묵 비판한 기자 보복인사
▶ 미디어오늘 KBS, 이정현 보도비판 기자와 사드 논평 해설위원 '숙청'
▶ 민중의소리 KBS 고대영 사장, 이번엔 '사드 보도지침' 논란
▶ 한겨레신문 KBS, 이번엔 '사드 보도지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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