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돼지"…자유경제원 '귀족엘리트주의'와 상통
자유경제원 일각서 '천민민주주의' 논리 설파
자유경제원은 1996년 10월 1일에 설립된 경제연구원으로써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을 주최한 것으로 유명하며, 뉴라이트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및 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친일성향의 극우경제단체로 알려져 있다. <편집자 주>
2016년 3월에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시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 중에 후에 각 문단의 맨 앞 글자가 이승만을 풍자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자유경제원 측은 시상을 취소하는 한편, 출품 작가들에 대한 고발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
"민중은 개·돼지와 같이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망언을 한 교육부의 나향욱 국장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당시 발언과 관련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자유경제원을 중심으로 우매한 대중을 일부 엘리트가 이끌어야 한다는 소위 '천민민주주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자유경제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회원사들의 출원금 등으로 운영되는 비영리재단법인으로, 재계와 학계 주요 인사들이 이사 등으로 포진해 있으며 이 단체 소속 전희경 전 사무총장은 20대 새누리당 국회의원로 정치권에 진출했다.
◇ "민주주의 자체가 천민민주주의"…엘리트 우월의식
지난 4월 6일 '자유경제원 개원 19주년 기념토론회' 현장. 발제자로 나선 강원대 신중섭 윤리교육과 교수는 '천민민주주의' 논리 설파에 열을 올렸다.
신 교수는 '천민민주주의는 극복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지난해 자유경제원에 '천민민주주의' 관련 글을 기고한 필진 25명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천민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천민이 주인 된 세상이 민주주의다. 그래서 역으로, 민주주의가 지탱되려면 귀족(nobility)이 그 척추를 이루어야 한다. 떼로 하여금, '천하고 상스런 떼의 논리'에 막아주는 존재가 귀족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귀족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자유경제원 개원 19주년 끝나지 않는 선전선동, 침식당하는 민주주의' 캡처
신 교수는 또 "무책임한 대중을 천민민주주의의 주원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며 "대중이 우중(愚衆)으로 전락하고 그들이 아무리 천박하고 미개(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 잘못 쓰면 큰일 난다)하게 굴더라도 '귀족'들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그 사회는 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인용해 '귀족'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귀족은 교양, 상식, 소신, 애국심, 책임감, 비전, 배려 등 천민성과 대조되는 가치들을 체화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엘리트를 말한다. 그들은 정치인일 수도, 관료일 수도, 군인일 수도, 기업인일 수도 , 학자일 수도 있다"고 '귀족'의 정의를 소개했다.
결론부에서는 "자유주의를 확산시켜, 천민민주주의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유주의 시민'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귀족, 즉 엘리트에 의한 대중의 지배를 강조했다.
신 교수가 정리한 25개 필진의 글 중에는 "아인슈타인도, 스티븐 호킹도 다 한 표다. 백치 아다다, 벙어리 삼룡이도 다 한 표다. 이게 정상이냐.(중략)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이 눈앞에 있는데 태연하게 골라놓고 좋은 것을 애써 외면하며 '참 잘 골랐네요' 서로 위안하는 멍청한 짓이 민주주의"라는 숭실대 남정욱 문예창장과 교수의 글도 포함 돼 있다.
민주주의 사회를 천민이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하고, 민심(民心)을 '천하고 상스런 떼의 논리'로 치환하면서 귀족이 사회 지배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대목에서 나 정책기획관의 망언과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김인영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신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87 민주화 항쟁'까지 폄하한다.
그는 토론문 결론부에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대중의 정제되지 않은 요구를 모두 따르라는 8년전 광우병 촛불시위는 소위 '6월 항쟁'이라는 시위가 만들어 낸 '87 민주화 체제'가 가진 병리현상의 일부이다. (중략) 87체제의 극복 없이 광우병 촛불시위라는 '탈선한 직접민주주의'의 극복도, 심지어 한국경제 저성장으로부터의 탈출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자유경제원 홈페이지 캡처)
◇ "투표자는 사회 몰락의 주범"…곳곳에 퍼진 엘리트 의식
대중을 '우매한 존재'로 여기는 엘리트층의 우월의식은 자유경제원 밖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산대 김행범 행정학과 교수는 자유경제학회 '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이런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유권자가 쥔 표에 매여 정치인 역시 그토록 천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정치 실패의 진범은 정치인이 아니라 투표자인 것"이라며 "민주주의 신으로 자처해 온 투표자(voters.대중)야말로 우리 사회 몰락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그 어리석음이 이번에는 어떤 미신에 잡혀 어떤 괴이한 선택을 할지 또 숨죽이며 지켜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의 지원을 받은 단체와 일부 교수들이 공식적으로 나 정책기획관과 일맥상통한 주장을 설파하는 것으로, 이번 나 정책기획관의 망언 논란은 단순히 개인의 시대착오적 발언으로 촉발된 게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이같은 관점은 주류 공무원이나 학자들 사이에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성공회대 유철규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 한 공무원이 한국의 사교육 문제가 시끄러운 이유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며 "일부 공무원들과 학자들 사이에는 엘리트 우월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각은 굉장히 전근대적인 관점"이라며 "이들의 주장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정래 작가는 '풀꽃도 꽃이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 99%가 개나 돼지 새끼라면, 그의 세금을 받아먹고 사는 그는 누구인가. 바로 기생충이거나 진딧물일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비단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사회가 그렇고 나 정책기획관이 승진하면서 올라온 세월 동안의 교육부 분위기가 그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6-07-13 06:00
김구연•강혜인 기자 kimgu88@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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