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박근혜, 막장 공천 드라마 '조연'이었네
더민주·새누리 모두 정당의 리더십 붕괴
'이상한 공천' 결과는 정치혐오도 한 몫
20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24일과 25일 이틀동안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 등록을 마쳤습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모든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도 끝났습니다.
해방 이후 70년 가까이 정당정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은 그 정당에 소속한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등 강한 카리스마로 정당을 이끌던 총재들도 공천 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천 탈락자들이 집으로 몰려와 거칠게 항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공천과 관련해 온갖 경우와 사례를 보고 듣고 취재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20대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의 몇 장면은 무척 낯선 것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표와 비대위원들이 결정한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과 순번이 중앙위원회의 이의제기와 순위 투표로 뒤바뀌었습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사실상 당선됐다가 당선권 밖으로 밀려난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당선권 밖에 멀리 떨어져 있다가 당선권 안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후보자들이 27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전남 국회의원 후보자 연석회의'에서 `문제는 경제다'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야당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정체성'의 문제로 해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김종인 대표가 당선권 안에 '중도보수' 성향의 전문가들을 영입하려 했는데 '운동권' 출신 '친노' 성향의 중앙위원들이 반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경제 민주화, 복지국가 등 정책 노선은 더불어민주당 대부분의 정치인보다도 훨씬 더 진보적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사태는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의 '리더십'과 민주적 절차에 관한 문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의원들이 연쇄 탈당을 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물러났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돕던 김종인 대표를 불러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고 또 수용했겠습니까. 말 그대로 더불어민주당은 '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는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의 정당 체제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민주화 운동이나 야당을 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치열한 논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디제이(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새로운 리더를 찾지 못하고 정당의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지도 못하고 있는 야당의 답답한 현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보려던 김종인 대표와, 명분과 절차를 중시하는 중앙위원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갈등을 빚은 것이 이번 사태의 전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종인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사이에는 '세대 격차'와 함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화 격차'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격차는 사실 정체성이나 가치관, 정책노선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따라서 총선 이후 김종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계속 이끌어가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분석한 것처럼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정면충돌한 전형적인 권력투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아바타로 불리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그리고 원유철 원내대표와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 등이 '현재의 권력'입니다. 이에 맞선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은 2017년 정권재창출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넘어서야 하는 '미래의 권력'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 뒤 연 기자회견에서 손짓을 하며 질의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집권여당의 공천에서 이렇게 심하게 파열음이 났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현재의 새누리당은 과거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서 이합집산을 거쳐 변모해 온 정당입니다. 따라서 친일, 군사 쿠데타, 영남, 보수 등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일, 군사 쿠데타, 영남, 보수를 합쳐서 그냥 '기득권'이라고 불러보겠습니다.
기득권 집단은 '상명하복'이 규율의 핵심입니다.
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기득권 정당에서는 공천 후유증이 별로 없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정리했습니다.
우선 대통령에게 절대복종하는 중앙정보부, 안기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 공천 후유증을 가라앉혔습니다. 공천 결과에 불복해 떠드는 사람은 구속이나 세무조사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권력은 채찍과 함께 당근도 활용했습니다.
공천에서 밀려난 사람 가운데 일부는 얼마 뒤 공기업체 기관장이나 간부 자리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득권 정당이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한 뒤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채찍과 당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2000년 한나라당에서 김윤환 등 정치적 거물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일제히 탈당해 민국당을 만들었습니다. 국회의원 공천 후유증이 분당 사태로 이어진 것입니다.
2004년 총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 역풍으로 한나라당 지도부나 공천 탈락자들이나 공천 후유증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자칫하면 100석 미만으로 주저앉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겨 다시 여당이 됐지만 이제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세력이 친박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인사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를 결성해 집단적으로 맞섰습니다.
2012년에는 반대로 친박세력이 공천권을 휘둘러 친이명박 성향 정치인들을 무더기로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이 승복과 불출마를 선택하고 당내 설득에 나서 위기를 겨우 수습했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23일 오후 대구 동구 선거사무소에서 새누리당 탈당 및 무소속 총선 출마의 뜻을 밝히고 있다. 대구/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 |
2016년 새누리당 공천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주먹'이 공천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공연히 '배신자 심판'을 요구했습니다. 이한구 위원장과 친박 성향이 다수인 공천관리위원들은 비박 성향 정치인들을 내쫓으며 온세상을 시끄럽게 했습니다. 밀려난 국회의원들도 조용히 물러서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정면으로 대항했습니다.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전례없는 '무공천' 카드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에 저항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식의 이른바 '막장 공천'이 왜 벌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유승민 의원과 비박 성향 의원들을 쫓아낸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정치적 욕심이 지나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바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동원해 유승민 제거 작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역풍을 맞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소란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힘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권력기관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권력기관 안에도 '내부 고발자' 출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진영)이나 대통령 비서관(조응천)을 했던 사람들이 아예 야당으로 건너가 출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얘깁니다. 대통령의 힘으로 끌고 가던 기득권 정당의 리더십도 이제 거의 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처럼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이른바 '막장 공천'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 전혀 달리 '정당 리더십 붕괴'라는 문제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유효한 가설로 '리더십 붕괴'와 짝을 이루는 것이 있습니다. '정치혐오'입니다.
저는 이번 여당과 야당의 이상한 공천 배후에도 정치혐오가 깊숙히 숨어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정치와 유권자를 이간하기 위해 정치혐오를 꾸준히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정치혐오에 중독된 유권자들은 특히 국회와 정당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때만 되면 습관적으로 '대폭 물갈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중진 국회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장면을 보고 희열을 느낍니다. 일찌기 로마시대에 검투사가 있었고 원형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공천 학살에 희열을 느끼는 우리들과,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보고 즐거워하는 로마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당 내부 주도권 장악이나 권력 다툼에 이런 유권자들의 정치혐오와 물갈이 욕구가 명분으로 동원되기도 합니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은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활용해 당헌·당규도 무시하고 물갈이를 무리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오죽하면 법원이 공천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겠습니까. 그런데 새누리당의 무리한 공천 물갈이는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모두 1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한구 위원장, 황진하 사무총장,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 김회선 클린공천지원단장 등 5명이 당내인사였습니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20일 낮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경선결과 등 공천명단을 발표한 뒤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외부인사 6명은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창조경제) △이욱한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국가혁신) △김순희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 상임대표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이상 국민행복) △최공재 차세대문화인연대 대표(청년)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여성)이었습니다.
공천관리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을 외부 인사로 채운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외부 인사들의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 국가혁신, 국민행복 등 정부 정책과의 연관성을 고려했고, 청년·여성 등 정치적 소수자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를 포함해 구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외부인사들은 현역 의원, 특히 '비박' 성향의 현역의원들을 탈락시키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외부인사들의 이러한 '비박 현역의원 혐오'는 정치혐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와 일치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카이스트 총장과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홍창선 전 의원(72)에게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겼습니다. 공천관리위원 명단은 이렇습니다. 위원장을 제외하고 남성 4명, 여성 4명으로 성비를 맞췄습니다.
정장선(58) 16·17·18대 국회의원, 총선기획단장
우태현(51)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전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김헌태(49) 한림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이강일(49) 행복가정재단 상임이사, 전 서울시의회 윤리특위 위원장
박명희(68) 전 한국소비자원 원장, 전 동국대 교수
서혜석(62) 변호사,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최정애(48) 동시통역사
김가연(36) 법무부 국제법무과 사무관, 시민단체(사) 오픈넷 상근변호사
김종인 대표는 비상대책위원들과 협의하지 않고 자신이 외부의 추천을 받아 직접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기 고질적인 병이 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각기 자기 최고위원이 추천한 사람들이 자기 계파를 챙기느라고 거기서 말썽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내가 누구를 봐주고 그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이번 공천도 그런 점에선 가장 공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공천관리위원회를 밖에서 보호하는 기능만 하면 된다. 심사 과정에서 쓸데없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그런 것만 막아주면 된다."
두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여한 외부인사들이 정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계파공천을 배제하고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를 반영하기 위해 일부러 정치와 거리가 먼 사람들을 공천관리위원으로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여야는 이미 2008년 18대 총선부터 외부의 명망있는 변호사나 학자들에게 공천심사위원장이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각 정당의 이러한 선택이 정당정치를 약화시키고 정치혐오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8, 19, 20대 세 차례의 공천에서 각 정당 공천에 참여한 외부 인사들이 그동안 어떤 역할을 했을끼요? 각 정당 실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외부인사들 중에는 정치와 정당에 대한 기초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후보들의 인상이나 말솜씨만으로 점수를 매기거나 언론을 통해 접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후보들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정치혐오를 드러내며 후보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시민이 어느날 갑자기 유력한 정치인의 공천 여탈권을 쥐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요? 자신이 절대자가 된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느 국회의원이 공천관리위원회 면접을 마치고 이런 소회를 털어 놓았습니다.
"평소 신문 정치면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정치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앞에 앉아서 나의 정치적 성과를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다. 굴욕감을 느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부끄러웠다."
더불어민주당의 유인태 의원이 공천 탈락 직전 교통방송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김종배 : 현역의원 하위 20% 컷오프 외에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또다른 방안을 내놨습니다. 3선 이상 중진의원은 하위 50%, 초재선 의원은 하위 30%까지를 대상으로 정밀심사를 해서 공천 배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인태 : 선거 때만 되면 하여튼 물갈이가 대중의 정서니까요. 물갈이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87년 민주화 이후 한 30년 가까이 여덟번째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처럼 물갈이 많이 한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정치불신은 더 커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고 봅니다.
김종배 : 당내 일각에서 컷오프 확대 방침에 반발하는 일부 의원이 김종인 독재당이라는 표현까지 써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김종인 대표가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유인태 : 그건 비대위와 관계없이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의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뜻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천관리위원들이 정치혐오증이 심한 분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김종배 : 공천관리위원 중에 정치혐오가 많은 분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유인태 : 예. 잘 모르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그래요.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한 거고. 이게 뭐 결론은 김종인 대표 의중이 반영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유인태 의원의 말이 맞다면 정치혐오가 강한 공천관리위원들이 당헌·당규에도 없는 '3선 이상 50%, 초재선 30% 추가 컷오프'를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공천과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김종인 대표에게 돌아가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20대 공천에서 여야 모두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큰 폭의 물갈이가 이뤄졌습니다.
대폭 물갈이를 주도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이었습니다. 정치혐오증을 갖고 있는 외부 인사들이 동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물갈이에서도 김종인 대표와 공천관리위원회 외부 인사들의 공조가 이뤄졌습니다.
아무튼 공천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여야의 이번 공천에 대해 '막장 공천'이라거나 '역대 최악의 공천'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천 파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혐오였는데, 공천 파행을 보고 정치혐오가 또다시 가중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처럼 3선 이상 연임을 금지해야 한다. 재선까지만 허용해야 한다. 아니 아예 4년 단임제로 해야 한다."
"국회의원 숫자를 100명으로 줄여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를 아예 주지 말고 자원봉사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십니까? 이런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면 정치혐오증에 감염된 것입니다.
과거 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공천은 이제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당총재를 겸하던 제왕적 총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나경원 의원,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 등 많은 정치인들이 새로운 공천 방식으로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물갈이 공천을 통해 당내에 세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정치적 이해, 경선 비용을 국민세금으로 지출할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거부감, 정당정치 약화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우려 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치면서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는 도입되지 못했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정치신인 진입 장벽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현역의원들의 욕심도 국민들의 거부감을 부추겼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불발됐지만 각 정당은 당헌·당규에 '상향식 공천'의 근거와 절차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새누리당 당헌은 "압축된 복수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통하여 후보자를 추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당헌에 국민참여경선, 국민경선, 당원경선, 시민공천배심원경선 등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선거인단'을 구성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막판에 몰린 각 정당은 '여론조사 경선'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국회의원 후보자를 결정했습니다.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선호도 조사에 불과합니다. 의사결정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당은 여론조사로 공직 후보자를 결정하는 기상천외한 폭거를 저질렀습니다.
큰일입니다. 혹시 막장공천과 정치혐오가 앞으로도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막장 드라마'라고 욕을 하면서도 그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정치를 혐오하면서 또 동시에 공천학살 잔혹극을 즐기고, 또 그 때문에 다시 정치혐오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록 :2016-03-27 14:19
수정 :2016-03-27 15:02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연재]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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