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헛발질, 박근혜 정부 무리수, 여당 색깔론 공통 목표는?
퍼즐을 맞춰보자. 국정원의 헛발질과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 그리고 새누리당의 색깔론이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인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가 끝나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전해주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북한이 러시아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 미사일을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국정원, 러시아와 외교 마찰 촉발 파문)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에 투입된 현금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선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그 다음엔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이 나섰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10일에는 "개성공단이 김정은 정권의 현금자동지급기가 되었다"고 말했고, 다음날엔 "20년 전 햇볕정책을 정치권이 인내하면서 지켜봤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남북경협,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 등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의원 역시 "사실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 무상지원이 궁극적으로 대륙 간 탄도탄 실험을 하게 한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저희 분석"이라고 말했다.
국정원과 통일부,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발언을 삼단논법으로 정리해보자.
'북한이 러시아에서 미사일 기술과 부품을 구매해 미사일을 만들었다→그 돈은 개성공단에서 나온 것이다→개성공단은 김대중-노무현이 만든 것이다'
이게 우연적인 연쇄 반응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고도의 정치 기획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부가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했을 때, 국정원의 보고가 주요하게 반영되었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청와대는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보고 받고 이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결정적 구실로 삼았을 공산이 크다. 이걸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점도 잘 알았을 테고.
▲ 개성공단 남한 인원들이 11일 밤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남한으로 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정확한 정보였다면…
국정원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주요 부품은 러시아에서 도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러시아에서 들여왔다는) 상당한 자료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게 정확한 정보였다면, 한국은 상당히 중요한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북한 로켓이 러시아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러시아도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러시아에 외교적 항의뿐만 아니라 정부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제재"에 러시아의 동의를 압박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낯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러시아가 미사일 개발 기술을 넘겼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뒤이어 러시아 외무부 미하일 울리야노프 비확산•군비통제 국장은 한국 측에 증거 제시를 요구하면서 "만일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공식적으로 기존 발표를 취소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조언한다"고 충고했다. 그러자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와전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건 이렇게 '퉁'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끝장 제재'를 이끌어내겠다며 외교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외교관들이 러시아 외교관들을 만나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국정원의 헛발질을 해명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사드 논란'에 이어 또 하나의 외교 참사로 기록될 만하다. 참고로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이다.
개성공단이 '도깨비 방망이'인가?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됐고, 작년에만도 1320억 원이 유입됐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 19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는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10일 통일부 장관의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통일부는 "전체 임금 중 북한 당국이 교육과 의료 등에 대한 공공서비스 관련 인력지원과 사회간접시설 구축비용으로 쓰는 '사회문화시책비'로 30%를 가져가고 남은 70%를 현물(물품교환권)과 현금으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다"고 설명했었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입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성공단이 '돈 나와라 뚝딱'하면 무한대로 돈을 쏟아내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일까?
기실 북한의 핵과 로켓 대부분 자체 기술과 자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농축 및 재처리 시설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놓고 있다. 탄도미사일 기술 역시 1980년대에 이집트로부터 스커드를 도입해 이를 역 설계하는 방식으로 자체 기술을 축적해왔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부과했음에도 불과하고 별 효과를 보지 못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로켓 기술과 부품을 사왔다거나 개성공단 수익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했다는 추론 자체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말해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정리하자면, 정부와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황당한 언행과 정책은 단 한 가지를 목표로 두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장기 집권 플랜이다.
선거용 북풍과 색깔론은 오래된 얘기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겪고선 이것밖에 믿을 게 없다는 인식이 집권 세력과 그 지원 세력 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이러한 권력 의지 앞에서 안보니, 통일이니, 경제니, 민생이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정치적 수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꼬리가 몸통을 계속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런 식의 정치 기획이 통할까? 그건 알 수 없다. 일단 북한의 핵실험 및 로켓 발사와 남한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정부 여당의 실정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상당수 언론도 '노이즈 마케팅'을 열심히 해준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떨어질 공산이 대단히 커진다. 여권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이게 아닌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나쁜 정치 기획에 맞설 수 있는 방법도 결국 선거이다.
'똑똑한 국민이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종잇돌'을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익이 아니라 사익 추구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정치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 세력의 권력 의지를 넘어설 수 있는 국민적 의지가 커질 때, 비로소 '헬조선'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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