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에 박근혜가 뛰면 뛸 수록
주권도 정치도 경제도 회복 불능이 될 뿐
병신년(丙申年) 새해 첫날 대통령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국무총리 황교안 등 80여명과 함께 떡국을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24년 만에 타결됐고 여러 나라와 FTA(자유무역협정)도 맺어서 경제영토도 크게 확장된 만큼, 이런 외교적 성과들이 실제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국민들이 더욱 큰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각 부처가 세심하게 정책과 민생을 챙겨 달라."
"위안부 문제가 24년 만에 타결됐다"는 것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의 주장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외교부장관과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최종적•불가역적 합의'를 발표하자 나라 안팎에서 비판이 들끓었는데도 박근혜는 마치 그것들은 모두 헛소리라는 듯이 '24년 만의 타결'을 자화자찬한 것이다.
아베가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는 12월 28일로 끝났다"고 공언했는데도 박근혜는 단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부가 당사자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본 정부가 내겠다는 10억엔에 우리의 고통과 수난을 팔아버렸다"고 분노했고, 시민사회에서는 "100억원을 우리가 모아 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은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는 국회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한 국제법 전문가는 "그 합의가 조약의 성격을 띤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박근혜는 우이독경으로 일관했다.
'12•28 합의'가 일본 아베 정부와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은 국내외 진보적 언론의 한결 같은 평가였다.
두 나라가 중국의 '대국굴기'를 억제하고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견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한•일 간에 오랜 세월 '목에 가시'가 되어 있던 위안부 문제를 단칼에 처리해버렸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박근혜 정권은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주권국가의 지위를 포기해버린 셈이 되었다. "미국•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위해 최대의 경제동맹인 중국과 등을 지게 되었다"는 비판에도 설득력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조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박근혜가 한국의 정치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집권세력 안에서도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을 '배신자'로 몰아 추방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함으로써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주권자인 국민 다수를 '혼이 없는 인간' 또는 '비정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오직 자신과 '충신들'만이 정의롭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그야말로 독선적인 언행을 일삼은 것이다.
박근혜는 지난 1일의 '떡국 조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올해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 짓는 해인만큼 4대 개혁의 튼튼한 받침대 위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서로 긍정적 효과를 내서 국민이 바라는 성과를 많이 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래 3년이 가까워지도록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성과를 내기는커녕 공염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박근혜 자신만 모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특히 경제는 올해 안에 1997년의 '환란' 못지않은 위기에 부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8.6%가 그런 전망에 동의했다고 한다(<조선일보> 1월 1일자).
박근혜를 향해 자주 직설적 비판을 가해온 경제학자 이동걸(동국대 초빙교수)은 <한겨레> 2015년 12월 27일자 칼럼('착취형 성장정책의 파국적 종말')에서 박근혜의 대선공약이 거의 모두 부도수표가 되었다고 잘라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시작도 전에 내팽개쳐버렸고 (···) 반값 등록금은 무늬만 반값인 채 끝났고, '깃털 뽑기' 식 서민 증세와 담뱃세 인상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복지 없는 증세'로 둔갑하고 말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행복주택, 행복전세도 대부분 변질되거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말 뒤집기의 선수다."
박근혜는 지난 1일 조찬에서 아래와 같이 '독려'했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된다.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사명이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아쉬움이 없이 뛰고 또 뛰었다고 돌아볼 수 있도록 올 한해 열심히 뛰자."
박근혜가 병신년에 열심히 뛸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역사쿠데타는 강행할 것이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 특히 그 자신의 '행방불명 7시간의 행적'은 특조위의 조사 대상에서 아예 지우려 할 것이다. '친박'으로도 모자라 '진박'이 되어야 새누리당 공천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갖은 방책을 동원한다는 것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박근혜와 그 추종자들의 기대대로 새누리당이 오는 4월 총선에서 개헌선을 확보한다면 장기집권이나 이원집정제 도입을 기도하리라는 점도 억측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가 '뛰고 또 뛸수록' 많은 국민들은 불안해질 것이다.
그런 불안을 말끔히 씻어내려면 민주·진보진영이 하나가 되어 총선에서 승리한 뒤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야권을 향해 주권자들이 "하나가 되라"는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입력 : 2016-01-04 10:11:24
노출 : 2016.01.04 13:53:36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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