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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역사/역사 바로알기

김재규 최후진술

자유민주주의를 앞당긴 혁명

 

영상 : 김재규 최후 진술

 

 

김재규 유언 詩

 

<나와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대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 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 내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드렸네.

,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 사랑하는 37백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지도자 김재규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영상 : 손석희 앵커멘트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인 1909 10 26일 바로 오늘입니다. 중국 하얼빈역.

"대한제국의 의군 참모중장으로 전쟁 중 작전을 통해 적장을 사살한 것"

그는 나라 잃은 청년이 아니라 전쟁 중인 군인이었습니다.

 

"국제법에 의거한 군사재판을 열어 달라"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항소하지 말라.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보였습니다.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렇게 해서 그로부터 36년간 계속된 치욕의 역사를 예견하고 거부했던 이들의 맨 앞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그때의 결정적인 한 장면에서만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30년 뒤인 1939 10 16일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위패가 있는 박문사에서 이토의 아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아비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와 같은 자식이라는 비난은 쏟아졌지만 그에게도 곡절은 있었지요….

▶jtbc뉴스 기사 원문보기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26 사태'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1979 10 26일 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 사태'입니다.

10·26 사태로 좀처럼 끝날 거 같지 않던 박정희 유신독재는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이 때문에 김재규를 '의사'로 칭송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의 한 축이던 그가 박 대통령을 저격한 진의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추측만 무성합니다.

 

김재규가 일으킨 '거사'의 결과도 박정희 유신독재를, 포악함과 무도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전두환 군사정권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민중 학살도 이 와중에 벌어진 비극입니다.

 

CBS노컷뉴스와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함께하는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역사는 하루아침에 진보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10·26 사태를 돌아봤습니다….

………. (후략)

cbs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 머리통 속에 박혀 있는 총알이 주는 의미김재규=의인

박정희 암살당한 10.26 '올해로 38주년'...당시 국군서울지구병원장 김병수 장군의 증언

 

 

 

1026. 1979년 당시 오늘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을 암살한 날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망, 땅 속에 매장 되면 뼈가 존재한다. 특히 두개골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박정희도 김재규가 쏜 총에 의해 사살되어 절명(絶命), 국립묘지에 묻혀 있으니 그 뼈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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