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점’, 친일파를 잊지 말자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후손

 

 

▶오늘날 대부분의 악()은 친일파로부터 나온다.

매국을 용인하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 하늘을 우러러 하루하루가 부끄럽다.  

 

적폐청산 항일음악 토크콘서트

전국투어 (10.27~11.17)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식민지역사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이이화 건립위원장 인터뷰

 

 

(가칭)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취지

 

민족문제연구소와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시민의 힘으로 일궈낸 과거 청산의 역사를 기록하며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권과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친일인명사전의 기적,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지 안내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자리잡게 될 용산은 외세에 짓밟힌 역사와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상처가 켜켜이 쌓인 곳입니다.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 인근

– 규모 : 지하 1~지상5, 연면적 1,570.62(475)

2017 12월 미군기지 철수, 용산일대 역사문화벨트 조성사업 진행중

– 지하철 1호선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 4호선 숙대입구역,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10

 

 

매국을 용인하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 하늘을 우러러 하루하루가 부끄럽다

Posted by 망중한담

자유민주주의를 앞당긴 혁명

 

영상 : 김재규 최후 진술

 

 

김재규 유언 詩

 

<나와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대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 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 내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드렸네.

,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 사랑하는 37백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지도자 김재규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영상 : 손석희 앵커멘트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인 1909 10 26일 바로 오늘입니다. 중국 하얼빈역.

"대한제국의 의군 참모중장으로 전쟁 중 작전을 통해 적장을 사살한 것"

그는 나라 잃은 청년이 아니라 전쟁 중인 군인이었습니다.

 

"국제법에 의거한 군사재판을 열어 달라"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항소하지 말라.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보였습니다.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렇게 해서 그로부터 36년간 계속된 치욕의 역사를 예견하고 거부했던 이들의 맨 앞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그때의 결정적인 한 장면에서만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30년 뒤인 1939 10 16일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위패가 있는 박문사에서 이토의 아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아비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와 같은 자식이라는 비난은 쏟아졌지만 그에게도 곡절은 있었지요….

▶jtbc뉴스 기사 원문보기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26 사태'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1979 10 26일 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 사태'입니다.

10·26 사태로 좀처럼 끝날 거 같지 않던 박정희 유신독재는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이 때문에 김재규를 '의사'로 칭송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의 한 축이던 그가 박 대통령을 저격한 진의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추측만 무성합니다.

 

김재규가 일으킨 '거사'의 결과도 박정희 유신독재를, 포악함과 무도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전두환 군사정권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민중 학살도 이 와중에 벌어진 비극입니다.

 

CBS노컷뉴스와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함께하는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역사는 하루아침에 진보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10·26 사태를 돌아봤습니다….

………. (후략)

cbs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 머리통 속에 박혀 있는 총알이 주는 의미김재규=의인

박정희 암살당한 10.26 '올해로 38주년'...당시 국군서울지구병원장 김병수 장군의 증언

 

 

 

1026. 1979년 당시 오늘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을 암살한 날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망, 땅 속에 매장 되면 뼈가 존재한다. 특히 두개골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박정희도 김재규가 쏜 총에 의해 사살되어 절명(絶命), 국립묘지에 묻혀 있으니 그 뼈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후략)

브레이크뉴스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반역의 씨를 말려야 한다

 

 

 

중세 이후의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반역자 또는 이에 준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해 삼족 구대를 멸족(滅族)하는 제도가 있었다.

 

삼족이란 부계(父系)와 모계(母系) 그리고 처계(妻系)를 말하는 것이며 구족이란 고조, 증조, 조부, 부친, 자기, 아들, 손자, 증손, 현손 까지를 통틀어서 지칭한다.

삼족 구대를 멸한다는 것은 반역자 또는 극악범죄자와 관련된 모든 인적 연결고리를 소멸시켜서 반항과 복수의 작은 씨앗 조차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육신이 가장 대표적인 멸족의 형을 당한 바 있다.

중국은 물론이고 히틀러와 나치 전범에 대한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각국의 공소시효 없는 처단제도 역시 그 근간에는 씨를 말리는의도가 담겨 있다.

 

20세기는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지구 곳곳을 피로 물들였고 수많은 생명이 처참하게 죽거나 유린되었다.

경제 이데올로기가 인류는 둘로 나누어 적대시하기도 했다. 그 혼란한 틈을 타고 동족을 배신하는 민족 반역으로 권력과 금력을 쥔 자들도 나타났다.

동족, 이웃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와 권리를 약탈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운 반역자(反逆者)들이다.

 

유럽과 아시아, 미주와 중동을 가리지 않고 반역은 일어났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제에 빌붙어 사욕을 채운 매국 반역의 무리들이 발흥했다. 친일파라고 불리우는 자들이다.

격변기가 지난 후 대부분의 지역과 국가에서는 반역자들을 처단했다. ‘공소시효 없는 처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반역을 처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역자들이 권력과 금력을 휘두르며 민중 위에 군림하고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는 곳이 있다.

이 격변의 시대에 한반도에 태어난 것은 불행일 수 있다. 하지만 반역을 방관한다면 불행에서 벗어날 자격마저도 포기하는 것이다.

 

 

 

반성 안하는 전두환 측 "<택시운전사> 날조, 광주는 폭동이 분명"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법적 대응 검토"

 

 

 

개봉한 지 6일 만에 관객 동원 500만 명을 기록한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를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악의적 왜곡이 있다면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17년 동안 보좌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7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택시운전사 장면 중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날조됐다" "계엄군이 먼저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에서 집단 발포 또는 발포 명령이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후략)

프레시안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적폐세력에게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말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5일이 지났다. 인수 과정도 없이 취임했지만 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일사천리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는 과거 대통령 그 누구 보다 무겁다.

두고두고 부끄러울 국정농단 사태가 대변해 주듯이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인 적폐가 쌓여 있다.

대한민국의 적폐, 그 중에서도 가장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적폐를 꼽으라면 단연 친일 매국노와 그 잔존 세력이다.

그들이 추악한 반민족 매국행위의 대가로 장악한 권력과 경제력으로 인해 국가 정통성과 사회정의는 지금까지 신음하고 있다. 국론은 완전히 분열되어 사전에서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기형의 보수진보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권력기관은 정권안보의 선봉에 서서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국민과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

적폐세력으로 지목되는 특정의 언론들 또한 본연의 사명인 사실주의와 공정성을 저버리고 편향보도와 왜곡, 조작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주도 하에 재벌들이 담합하여 거대한 반민주 반역 세력을 양성하였으며, 그들의 불법행위를 보호하고 지원해 왔다.

대한민국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로부터 국가질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광복 후 수십년에 걸친 투쟁과 운동으로 빼앗은 민주주의가 다시 과거로 후퇴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하고 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직하고 굳건하게, 힘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가장 정의롭고 헌신적이며 민중적이었던 무소를 잃은 처절한 아픔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여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무소의 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문재인 식 적폐청산' 시동 반발에 정국경색 조짐

국정교과서 폐지에 최순실, 세월호도 재수사 암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정윤회 문건 사건, 세월호 조사 방해 의혹에 대해 재조사를 시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격 폐기하는 등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자유한국당이 정치보복이 의심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새 정권이 들어선지 불과 며칠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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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 또 징계 칼바람, 기자·PD들 대거 인사위 회부

세월호 리포트 검열, ‘6월항쟁다큐 불방 논란 제작진 등 징계 절차

 

 

 

MBC 사측이 지난 3월 리포트 검열 논란이 불거진시사매거진 2580’ 기자와 ‘6월항쟁’ 30주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불방 통보 후 전보 발령된 PD에 대해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유튜브에반성문 동영상을 올린 MBC 기자 3명과탄핵다큐멘터리 불방 사태 등과 관련해 인터뷰했던 PD협회장에게 최근 징계가 결정된 데 이어, ‘제작 자율성을 요구한 기자·PD들에 대한 계속되는 징계 칼바람에 MBC 구성원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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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공산주의자' 발언한 고영주, 칼 대나

검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수사착수...고발 28개월만에 "소환여부는 추후 결정"

 

 

 

검찰이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고소당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당시 사건이 회자되고 있다.

 

고 이사장은 2013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부림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후보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됐다.

 

문 대통령은 고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발언 2 8개월이 지난 지난 2015 9월이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다가 같은 해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도 고 이사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사건은 선거, 정치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로 재배당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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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친일파'는 친일 민족반역자다


'친일파'를 다르게 부르자고 한다. 민족반역자, 반민족행위자, 일제 앞잡이 등등.. 그러나 '친일파' 만큼 국민 정서적으로 익숙하고 함축적인 호칭은 아직 없는 것 같다. 호칭은 바꾸자는 주장은 친일파 후손들의 교활한 여론 '물타기' 계략이다.



친~라는 표현은 보통 ~을 좋아하고 ~과 친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친일파'의 경우에는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과 친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협력하며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나라와 국민의 주권을 침탈하며 동족을 사지로 몰아 넣는데 앞장 선 민족반역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자칭 '보수'라고 하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조직적인 여론몰이에 의해서 '친일파' 대신 '반민족행위자' 또는 '민족반역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반민족행위자 또는 민족반역자라는 개념은 '친일파' 보다 넓은 의미를 갖는다.

반민족행위 또는 민족반역 가운데 '친일 반민족'이나 '친일 반역'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00년대 초부터 100년 이상 사용된 '친일파'라는 호칭을 굳이 포괄적인 의미의 '민족반역자'나 '반민족행위자'로 사용하자는 주장은 이른바 교활한 '물타기'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친일파의 '회의주의'적 여론조작


"회의주의는 인간이성의 쉼터다. 그곳에서 이성은 이념적 방황에 대해 성찰할 수 있지만 그곳에서 영구적으로 정착해 살 수는 없다. 회의주의에 굴복한다면 이성의 동요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



"전체 국민 중에 일제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현실적으로 친일파를 가려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친일파 척결은 무의미한 주장이다."


"그 후손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지금에 와서 후손들까지 문제 삼는 것은 사회 통합 정신이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친일파 척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할 수도 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뺏은 악성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난치라는 이유로, 만성이라는 이유로 건드리지 말자는 궤변이다.

병의 원인은 물론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이 무작정 묻어 두자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병의 원인, 세균들만 살판 난다.

만성병은 서서히 고통과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병이다. 이 나라와 민족이 서서히 고통과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 이전에 맞닥뜨리는 고통, 그것을 이시대의 사람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친일파 후손들은 벌써 2세~3세까지 내려왔다. 아무 죄도 없는 그들에게까지 선대의 죄를 묻는 것은 법적으로도 맞지 않고 인간적으로도 너무 가혹하다. 그러므로 친일파 척결은 이미 그 필요와 의미를 상실했다."


한 마디로 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측은지심에 '회의주의'를 심어 더러운 기득권을 계속 이어가려는 간계에 불과하다.

만일 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잘못과 단절하려면 먼저 선대로부터 받은 매국의 대가, 다시말해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포기하고 내 놓아야만 한다.

이익은 챙기고 불이익만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몰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민족반역, 매국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들의 유전자에서는 법과 도덕과 상식 같은 개념들이 이미 100년 이전부터 사라지고 없는 것이 분명하다.


방심하면 개돼지 꼴 못면한다.

쥐가 고양이 배려하듯이 안이하게 생각했다가는 영영 헬조선에 갇히고 만다.


Posted by 망중한담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발표

 

 

 

 

박근혜 : 세월호 직무유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황교안 : 18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방해, 세월호 구조 직무유기, 통합진보당 해산

양승태 : 재일교포 간첩조작 사건 4, 일본 관련 간첩조작 사건 2

김기춘 : 유신정권 간첩조작사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9

조윤선 :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농단

김종 :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농단

 

이승만·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포함됐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국가 최고 권력이며 최고 지도자 8 가운데 5명이 헌법을 유린한 반헌법 범죄자라는 것이다.

광복 어수선한 틈을 타고 미국 정부와 미군정의 비호 하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결탁하여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숙청, 암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이승만을 시작으로 이후 45 동안 대한민국은 반헌법행위자들의 천하였다는 것이다.

상세 명단 : '첨부파일 170225 반헌법행위자_기자회견자료집-최종 170220.pdf '

 

 

 

 

박근혜, 황교안, 양승태 반헌법 행위자로 지목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양승태 대법원장 등이 국가 권력을 남용해 반헌법 행위를 저지른 인물로 지목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편찬위) 16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열전에 수록될 가능성이 높은집중검토 대상자 405 명단을 발표했다. 405명은 지난해 713 발표한 1 명단 99명이 포함된 숫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는 지난 2015 7 성공회대 민주자료관과 평화박물관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헌법을 파괴·유린한 인물들을 기록하는 열전 편찬사업을 공개 제안하면서 출범했다.

 

1 명단과 달리 현직 공직자 11명이 명단에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구조 직무유기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2 사건에서 반헌법 행위자로 지목됐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18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방해, 세월호 참사 구조 직무유기, 통합진보당 해산 3 사건과 관련해 집중검토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편찬위는출범 이후 1 명단 발표 때까지는 1997 이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한정했으나 최근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대상 시기를 현재까지로 늘려잡았다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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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박정희의 가면

 

 

 

박정희 스위스비자금(600) ‘월남전 전투수당오바마 회신 접수

 

영상 :

 

 

스위스 비밀계좌누가? 어떻게? 얼마나?

 

영상 : jtbc

 

 

 

“박정희 스위스 비자금 수조원대최순실이 세탁

1978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가 발행한프레이저 보고서’(원제한국-미국 관계에 대한 조사’)

 

 

 

…. (노웅래 의원은) “보고서를 보면 박정희 정권은 해외 차관이나 투자 자금을 들여오면서 전체 자금의 10~15%를 커미션(수수료)으로 가로채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이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스위스 최대 은행인 유니언뱅크 등에 여러 사람 명의의 비밀계좌에 개설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이어 “(재미 언론인이었던) 문명자 기자는, 1979 10·26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보안 요원 5명과 함께 스위스를 방문해 비밀계좌의 예금주 이름을 변경했고, 동행한 이들에게 사례비로 5만달러씩 줬다는 것을 제보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도 이 비자금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보기

뉴스 보도 바로보기 <노웅래 "박정희 3조원대 부정축재... 특별법으로 환수해야">

 

 

 

박정희 권력에 기생한 최태민 일가

 

 

 

특검최순실 은닉 재산’ 100억원대 찾았다대부분 차명

최태민 일가 등 국내외 최씨 인맥 광범위 추적 조사

영장 불승인 취소, 항고 포기청 압수수색 결국 무산

박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시한부 기소중지방침

 

 

 

23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수 특검, 이규철·양재식·박충근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씨(61)가 차명 등의 방식으로 은닉한 재산 규모가 최소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소를 중지하는시한부 기소중지처분을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은 사실상 무산됐다.

 

2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특검은 그동안 최씨 재산추적 전담팀을 구성해 최씨의 부친인 최태민 일가 등 국내외 인맥을 조사하는 것은 물론, 국세청·금융감독원·법원 등 관련 기관의 자료도 받았다. 이를 통해 최씨가 숨겨놓은 재산은 100억원대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박근혜·최태민 관계 밝힌 10년 전조순제 녹취록전문(全文)

“모친(母親) 임선이, ‘여자라서 박근혜·최태민 관계에 갈등 겪었지만 돈 때문에 참아

 

 

 

박근혜 비판기자회견 이틀 전 동생 최순영이 돈 봉투 들고 와 회유

김재규 중앙정보부가 감청 등 모든 수단 동원해 최태민 내사

최순실 자매, 10·26 이후 들어온 뭉칫돈 사돈의 팔촌에까지 분산시켜

최순실 자매, 돈 때문에 모친 임선이 사망 사실 숨겨

최태민, 모친 임선이 만난 덕에 인간 돼임선이는 남자였다면 재벌 됐을 것

신군부가 최태민 의혹 조사할 때 수사단장 이학봉이 친구라서 덕 많이 봐

나라 잃지 않으려면 이명박이 돼야 한다. 박근혜는 안 된다

박근혜·최태민, 고기와 물의 관계두 평 규모 방에 들어가 3~4시간 동안 안 나와

 

조순제는 최태민(崔太敏)의 의붓아들이다. 조순제 모친 임선이(林先伊) 1955년 최태민과의 혼인 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조순제(1940년생), 조순영(1947년생)을 낳았다. 이 중 조순영은 의부(義父)인 최태민의 성을 따라 최순영(崔順英)이 됐다. 조순제는 개성(改姓)을 하지 않았다.

 

조순제는 성인이 된 후 최태민을 보좌하며 대한구국선교단 실무를 챙겼다. 1980년대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학교와 육영재단 업무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이었던 한국문화재단 일도 사실상 총괄했다고 알려졌지만, 나중 그는 무슨 이유인지 최태민 일가의 내부고발자가 됐다….

디어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 정권 초기 거액비자금 조성

중정 주가조작-워커힐-새나라차 등 개입

김종필 (중정)부장 주 500만환 쓴걸로 전해져

주한 미대사관 비밀보고서 공개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63년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조성 내막을 포함한 당시 한국 권력 핵심부의 부패상을 상세히 언급한 비밀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무 참사관이 작성하고 서명한 보고서는 빽빽이 기록된 모두 13장 분량으로 미 당국의 정보 공개원칙에 따라 올해 초 비밀해제됐다.

<한국의 부패문제>란 제목의 지난 63 2 20일자 이 보고서는 부패의 구조적 성격  박정희 정권의 군사혁명정신 퇴색상  김종필 중앙정보부장(현 자민련 총재)을 비롯한 일부 권력핵심부 인사의 주변 상황과 동향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공직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고 있다특정인이 너무 오랫동안 케이크를 먹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한국정부의 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패를 척결하려는 군사정부의 시도가 예상대로 대부분 실패, 요정들이 다시 문을 열고 군정과 중정 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했다고 지적한 보고서는 김종필 중정부장의 경우 이런 곳에서 일주일에 5백만환 상당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또 군사정권이 이전 정권처럼 직접적으로 민()을 압박하지는 않으나 스케일이 큰 공작들을 통해 비자금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면서 중정은 지난 62 2월부터 5월까지 주가파동을 조작, 40~50억 환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이 증권조작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10억환이란 이익을 봤다는 설도 있으나 학인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중정은 또 약 5백만 달러가 투입된 워커힐 건설에도 관여했으며 새나라자동차 회사는 중정의 밀접한 대일(對日) 사업과 연계돼 세워졌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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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스위스은행 60억 달러 계좌 명의, 10.26 이후 박근혜로 변경

 

 

 

 

….

“박정희 정권, 스위스 비자금 계좌 있었다

재미 언론인, 미 의회문서 공개...20만 달러 입금 계좌도 명시.

 

박정희 정권이 스위스에 비자금 계좌를 개설해 운용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전면 부정했다. 하지만 이 비밀계좌 명의는 10.26사태 이후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그동안 심심찮게 나온 바 있어 대선 정국에서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7, 1978년도 미국 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 문서 공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와 구체적인 입금 사실을 폭로했다. 이 문서는 1978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묻는 미 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소위원회 설문에 대한 걸프사의 답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안치용 씨는메이저 오일컴퍼니인 걸프사가 지난 1969년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스위스 UBS(유니언뱅크)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1969년 걸프사가 흥국상사 주식 25% 2백만 달러에 인수하려 하자 계약 직전에 이후락이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요구해 이를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서정귀 계좌로 송금했고, 이 돈은 이후락이 찾아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걸프사는 입금 경위를 2페이지에 걸친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 것은 물론,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입금서류 등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서정귀의 스위스 유니언뱅크 계좌번호는 626,965.60D였으며 199750달러는 1969 12월 인출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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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노자(老子)강의가 끝날 때 어머니를 EBS에 모셔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감동적 이었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난 45일 향년 95세로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1910년생이니까 20세기를 거의 완벽하게 채우신 분입니다. 우리 민족의 모든 고난과 영광을 역사와 함께 하신 분입니다.





어머니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 느낀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계시다가 깨끗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숨이 딸깍하는 순간에 육신을 보니까 완벽하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딸깍하는 그 순간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살아 움직이는 경락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얼굴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시신의 얼굴(느낌)은 정말 달랐습니다. 가슴에 귀를 대어보니 심장은 안 뛰고 꾸르륵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막내인 저는 엄마 젖을 오래 빨았는데, 초등학교 때까지도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막내기 때문에 (어머니의) 정이 깊었습니다.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변화는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0.001%의 변화도 안되는 것입니다. 바로 딸깍하는 순간의 변화가 99,999%의 변화였습니다. 죽는 순간의 변화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사이에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 같은 사실입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려면 생명의 작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는 것은 그게 전부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사이에서 변화라는 것은 너무나 미미한 것임에도, 그 안에서 우리는 싸우고 남을 미워합니다.

생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 인간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며 평등한 존재입니다. 생명이 있는가와 없는가, 그것이 인간의 전부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사는 것의 고귀함을 한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돌아가신 자리에서 시신을 옮기지 않고, 전통적인 예식에 따라 그 양반이 사시던 곳, 즉 집에서 했습니다

그대로 백()이 가라앉고 혼()이 날아 갈 수 있다고 믿기에 시신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빈소는 영안실을 빌렸지만 시신을 옮기지는 않고 집에서 염을 하고 입관을 했습니다.

 

누나가 어머니의 수의가 든 함을 가져왔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손수 마련하신 수의 보따리 속에는 80년 전 시집 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와 연두색 저고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옷을 입고 가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수의 같은 이런 수의가 우리 민족사의 마지막 수의일 것입니다.

장례식 집사자는 이렇게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수의는 처음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운명했었을 때 자기의 삶의 터전이었던 그 자리에서 염()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삶의 코스모스에서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스미게 됩니다.

 

코스모스(Cosmos) 질서와 조화의 구현으로서의 우주

 

저는 평생을 기독교신앙으로 살았으면서, 기독교 철학을 공부했으면서,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만 인류 운명을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앙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기독교도 입장에서 본다면 제 행동이나 사상이 이단자 같을 수 있고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빈소에 스님이 찾아오면 저는 염불을 하게 하고 (염불 못할 것이 어디 있어요?!) 교회에서 조문객이 오면 앉아서 찬송가를 부르게 했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 김용옥의 사상에 대해서 개입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어떤 사상을 깨닫게 되어 어머니께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참으로 재미있게 들어주셨습니다. ‘칸트헤켈이니, 무슨 이야기 등 제가 나름대로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몇 시간이건 들어주셨습니다. 어머니처럼 제 강의를 잘 들어 주신 분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평등관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처럼 공부를 하신 분이 아닙니다. 대단한 교육을 받으신 분이 아니지만, 내가 아무리 어려운 이론을 개발했어도 그것들을 모두 이해해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러한 제 모습을 통해서 당신이 교화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어머니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이야기였습니다.

형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단이라 할지 몰라도, 우리 어머니는 100% 나의 사상을 이해하시고 한번도 내가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죽음과호적' 1/4

 

 

진짜 기독교 신앙이라 하는 것은 나를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려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사랑)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선거의 당락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본질과 대의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독교는 증오의 종교가 아니고 사랑의 종교입니다.

구약이 인간에게 증오를 가르쳤다면, 신약은 철저하게 사랑, 무조건 적인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두가 평등합니다. 숨을 딸깍하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고귀한 모습입니다.

 

저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부럽습니다.

벌써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벌서 이렇게 늙어 가는구나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귀하고, 이것이 기쁘고, 이것이 고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동학을 강의할텐데, 동학사상은 오늘의 우리 모습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우리 민족의 Bible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학사상의 모든 가능성은 동학 이전의 최한기(崔漢綺)라는 사상가에 의하여 그 시대적 정신이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 최한기라는 걸출한 사상가에 관한 아주 재미나는 문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것을 중심으로 그분의 족적을 한번 보기로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집 호적등본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정확하게 준호구(準戶口)‘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를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조선왕조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성(국민)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3년마다 호구조사를 했는데, 출생자, 이주자, 사망자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것을 호적중초(戶籍中草)라 하며, 정식 호적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의 기초 자료로써 신청자(호주)가 직접 작성합니다.

 

호주(戶主)라는 말은 일제의 산물이고 당시는 주호(主戶)라고 했습니다.

主戶는 그 호()의 주인이라는 호주의 개념이 아니라 그 집에서 부역, 병역 등의 국역(國役)을 담당할 대표적 인물을 말하는데, 호주라는 말 자체가 남성 중심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여자가 결혼하면 여자의 성()이 없어지는데 한국은 여자 성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주호(主戶) : 단순한 호주의 개념을 넘어서 국역(國役)을 담당

 

우리나라의 호적제도는 완벽하게 양성 평등, 즉 남녀평등제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17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거의 남녀가 평등한, 세계적으로 드문 남녀 평등 사회였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승계했습니다.

19세기 말엽 최한기의 호적에도 남자 쪽 4(四祖)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여자 쪽 4(四祖)(함께) 나옵니다.

 

호적중초(戶籍中草)는 집에서 작성해서 향청(鄕廳 지방의 말단 기관=주민센터)에 제출하는데, 최한기는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한성부에 제출합니다.

이 당시의 한성부는 서울의 호적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전국의 호적을 모두 관리했습니다. 제출된 호적문서는 호적고(戶籍庫 호적을 보관하는 곳)에 보관되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곳의 호적고는 규모가 컸습니다.

 

호적단자(戶籍單子)를 제출하면 받았다는 (접수) 도장을 찍고 관청에서 보관했습니다. 호적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고, 과거(科擧) 보러 갈 때나 송사(訟事) 등에 초본이 필요하면 관청에 가서 필사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함풍(咸豊 중국의 연호) 2(1852) 모월 한성부에서 발급.

(당시 최한기의 주소지) 한성부 (漢城府) 서부(西部), 양생방(養生坊), 송현계(松峴契), 삼통(三統), 삼호(三戶)에 사는 생원(生員) 최한기(崔漢綺). (() > ())

 

호적단자(戶籍單子)는 호주가 손수 써서 향청(鄕廳)이나 한성부(漢城府)에 제출하는 호적원문입니다.

한성부(漢城府=서울)는 태조 5년에 1396년 정도전이 552방으로 나누고 그 이름도 만들었는데, 조선말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과거시험의) 문과에는 대과와 소과가 있었습니다.

소과는 생원시, 진사시로 나뉘었는데, 초시(初試)를 거쳐 회시(會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자를 생원(生員)이라고 했습니다.

 

崔漢綺 호적 서문

崔漢綺 年五十 癸亥生 本朔寧

通政大夫 昆陽郡守 兼晋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光鉉

生父 學生致鉉 學生配觀 曾祖 成均生員之嵩

外祖 本安東 娶朴氏 齡五十三 庚申生 籍蕃南 父 學生宗赫 學生經源 曾祖 學生師完

外祖 通訓大夫 行魯城縣監 兼公州鎭管兵馬節制徒尉 李集明 本慶州 率有幼學柄大 年三十四 己卯生 娶申氏 齡三十七 丙子生 籍高齡 率奴婢秩 五月 年庚子生 不知 母婢一分 一所生

최한기는 나이가 50이며, 계해생이고, 본관은 삭녕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이며 곤양군수와 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무관 벼슬)를 겸직한 광현이다.

사조의 생부는 학생 치현이고, 조부는 학생 배관이다. 증조부는 성균관 생원이며 이름은 지숭이다.

외조부는 김박 이고 (이 당시 호적 기록에 사용된 종이는 호적지라고 해서 질이 좋지 않았는데, 특히 이 종이는 질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의 가운데 자가 없어졌다) 본관은 안동이다.

아내는 박씨이고 나이는 53(최한기 보다 3세 위)인 경신생이며 본관은 반남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학생 종혁, 조부는 학생 경원이다.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죽음과호적' 2/4

 

 

증조는 학생 사완이고, 외조는 통훈대부로, 로성 현감과 공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겸직한 이집명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슬하에 유학 병대가 있는데 그의 나이는 34로 기묘생이고 아내는 신씨이며, 나이는 37, 병자생이고 본관은 고령이다.

 

노비를 여러 명 거느리고 있는데 차례로 말하면, 여자 노비는 이름이 오월이며, 나이는 경자생이고, 그녀의 아비는 알 수 없으며, 어미의 이름은 일분이고 소생이 하나 있다.

 

기유(己酉 1849) 호구상준자(戶口相準者)

이 호적은 3년 전의 호구와 비교하여 같다는 의미

 

최항(崔恒 1409~1474)

삭녕 최씨(朔寧崔氏) 중 유명인사.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훈민정음 해례> <경국대전> 등 찬진.

 

최한기의 호적에 들어있지 않은 아들과 딸들은 반드시 딴 곳에 등재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국가(조선)에서는 호구가 많아야 세수(稅收)가 많았기 때문에 등재하는 쪽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호적을) 줄이려 했던 반면에 조정에서는 늘리려 했습니다. 이런 것은 조선조 호적제도의 문제점이엇습니다.

 

조선조의 호적은 양반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고 과거 때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양반들의 재산인 노비문서도 되었기 때문에 호적에는 노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노비(奴婢) ()=남자 종, ()=여자 종.

 

양반들은 노비의 숫자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천자수모법(賤子隨母法)을 제정했습니다.

고려시대인 1039년 처음 제정된 이 법은 고려시대부터의 풍습이 된 악법(惡法)이었습니다.

어미가 천인이면 비록 아비가 양인이라 할지라도 어미의 신분을 따라 천인이 된 것인데, 노예의 숫자를 늘리려는 데에 이 법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양반들에게는 좋은 법이었으나 국가적으로는 손해였습니다. 노비로부터는 세금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비제도는 조선왕조의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노비제도를 폐지하려고 해도 양반들이 반대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노비제도가 없어진 것은 동학농민혁명 때인 갑오경장 이후 부터입니다. 갑오경장(甲午更張) 당시에, 동학혁명의 요구 중 하나는 노비제도의 폐지였는데, 갑오경장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노비제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17세기 내지 18세기에는 노비의 인구가 확실하게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중 절반이 노비의 후손들입니다. 그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와서 양반 상놈 따지는 것은 전부 사기입니다.

 

종들은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노비 문서의 성명은 대부분이 이뿐이=, 개똥=, 칠돌=七乭(돌 밑에 을의 음을 따서 씀) 등등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다.

 

영상 :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죽음과호적' 3/4

 

 

조선시대의 공문서 결재(決裁)는 한성의 당상관(堂上官 정삼품-지금의 국장급 이상)이 수결(手決)로 했습니다. 서양보다 우리가 먼저 수기(사인 私印)을 했던 것입니다. (도장은 일제의 산물)

그러나 한성 같은 데서는 민원이 많아 사인을 도장화(圖章化)하여 사용했습니다. 최한기의 호적에 나오는 결재 사인(私印)은 수결이 아니고 사인을 도장화한 것입니다.

 

사조(四祖)란 부(), (), 증조(曾祖), 고조(高祖)를 말하는데, 호적에는 먼저 남자 쪽 사조(四祖)가 나오고 그 다음 여자 쪽 사조(四祖)가 나옵니다.

호주인 남자 쪽이 사망했을 때, (지금은 아들이 승계하지만) 고려시대를 거쳐 17세기 중엽까지, 즉 장자상속의 유교 종법사회 이전까지는 완전히 남녀평등이었기 때문에 여자가 승계(상속)를 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입니다.

 

최한기는 44살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부자간의 연령 차이가 16살이었는데, 16살 연하의 아들이 그의 평생 친구였습니다. 책을 저술하면서 아들과 담소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글을 필사하면서 사이 좋게 살았다고 합니다.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살았던 최한기의 말년은 엄청나게 가난해져서 저서를 쓰는데 종이가 없어서 쌀을 외상으로 빌려 종이를 사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최한기가 망한 이유는 책을 너무 많이 사느라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신간 서적이 나오면 한양(서울)의 모든 서점이 최한기에게 가져갔다고 합니다. 최한기는 이처럼 책을 사기 위해서 집도 팔고 패가망신을 했다고 하는데, 다음의 일화를 읽으면 책에 대한 그의 애착을 알 수 있습니다.

 

或言購書多費者(혹언구서다비자) 惠岡曰(혜강왈) 假令此書中人(가령차서중인) 竝世而居(병세이거) 雖千里(수천리) 今吾不勞以座致之(금오불로이좌치지) 購書雖費(구서수비) 不猶愈於齎而適遠乎(불유유어재리이적원호)

어떤 사람들은 내가 책을 사는데 돈을 많이 쓴다고 하는데, 가령 이 책 속의 사람이 수 천리 떨어져 살고 있다면 그 먼 길을 갔다 와야 할 것인데 책을 사면 돈이 들지언정 나는 지금 힘 안 들이고 앉아서 그 사람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구서(購書 책 구입)에 가산을 탕진한 최한기는 말년을 초라하게 보내다가 죽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학문에 대한 열정 속에서 살았던 분이며,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이렇게 개명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상 :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죽음과호적' 4/4

Posted by 망중한담

천즉기 기즉천 (天卽氣 氣卽天)

 

 

 

 

항상 이렇게 강의를 들으려 와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격려 덕분에 이 강의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주 문화일보 기자직을 그만 두었습니다. 2002 12 2일에 발령이 난 이후로 2004 4 3일까지, 문화일보의 평기자로서 1년 반 동안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문화일보의 편집국 분위기는 일체의 외부 간섭이 없었기 때문에 편집국은 그들의 상식 위에서 신문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신문사 측에서 저의 기고문인 도올고성의 주관적 해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기 때문에 제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도올 고성'이라는 칼럼에 실린 제 글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일보는 치우침 없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도올 고성'을 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제라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이라도 하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저의 제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선비는 각필(閣筆)은 할 수 있으나 곡필(曲筆)은 할 수 없다” 하고 문화일보를 그만 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글에는 해석이 들어가 있고 치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치우지 않는다는 기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치우치는 (치우칠 수 밖에 없는) 기사를 어떻게 공평하게 싣느냐가 안 치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태에 대해서 서로 상충되는 견해의 기사라 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아량이야 말로 치우치지 않는 언론의 자세인 것입니다.

 

제가 칼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 중에서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하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서 미국의 재판과정을 볼 때는 법원이 마치 극장 같습니다. 원고 · 검사 · 피고 간에 형사 사건에 대한 공방을 진행하는데, 이 장면에서 법정은 하나의 드라마 무대와 같습니다. 재판은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진행됩니다.

배심원은 다수결로 유죄(Guilty), 무죄(Innocent)가 여부를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을 결정합니다. 중요한 사실 인정은 배심원이 하며, 후속적인 형량결정만 판사가 하는 것입니다.

재판정에 참석한 배심원은 전혀 법률 전문가나 법조인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일반 시민이며, 사법부에서 무작위로 뽑은 사람입니다.

법관이 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에 관한 진위 판단이나 사실인정은 법관이 아닌 그 시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 배심원 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당사자주의 : 형사소송절차에 있어서 원고인 검사와 피고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진행시키는 주의. 직권주의에 대칭되는 말.

 

배심원제도에는 진위 자체의 인위적 결정은 인식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는 생각, 즉 진위 여부나 시비의 판단은 그 사태가 속한 사회의 상식적 컨센서스(Consensus=합의)에 맡기자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영미법에서의 법(Law)은 있는 것(Being)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Becoming)입니다.

법을 존재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생성론적으로 생각합니다.

영미법, 특히 시민의 권리에 관한 민법은 법전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상식에 의해서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불문법(Unwritten Law)이라고 합니다. 영미법은 불문법이며. 관습 및 판례 중심의 법입니다.

 

불문법(不文法 Unwrittenlaw) : 영미법 : 관습•판례 중심

성문법(成文法 Writtenlaw) : 대륙법 : 법전 중심

 

그에 반해서 성문법은 법전 중심이며, 독일과 프랑스 계통의 대륙법을 말합니다.

법전은 하나의 시스템이며, 법관이 그것을 해석하고, 인간사회의 질서, 규범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대륙법 중에서는 참심제도를 두어 국민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서양에서 법이라는 것은 마그나 카르타 이래로 귀족들이 왕권을 제약하기 위해 자기들이 낸 일종의 성명서 같은 것입니다. 그런 성명서들이 역사 속에 계속 쌓여서 법이 된 것입니다. 법은 반드시 그 역사의 내재적 맥락과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법관권위주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헌법학자 뢰빈슈타인은 헌법을 ①규범적 헌법, ②명목적 헌법, ③장식적 헌법으로 분류했습니다.

1948 7 17일에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역사의 내재적 맥락과 관계가 희박한 명목상의 헌법입니다.

법이란 옷과 같은 것으로 신체가 바뀌면 옷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치 어린 아이에게 멋진 어른의 옷을 입혀놓고 어린이가 커서 맞춰지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것(우리 헌법과 같은 것)을 명목적 헌법이라고 합니다.

 

성문헌법으로는 미국의 헌법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은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에 항거하면서, 신대륙에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미국의 사상가 비전을 요약해서 제임스 메디슨을 비롯한 55명의 대표가 필라델피아에 모여 1787년에 성립한 것이 미국 헌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시민들은 그들의 헌법을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모든 민권헌법은 계속 수정될 수 밖에 없고, 계속 수정되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헌법도 Amendment 즉 수정안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헌법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은 이런 말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지만 전두환 시대에 이런 말을 하면 어땠을까? 당시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다. 주권은 독재자에게 있고 권력은 독재자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어야 맞는 헌법이었다는 말입니다.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 '법과 기학' 1/4

 

 

영국의 헌법은 불문율로 되어 있는 불문헌법(Unwritten Constitution)입니다.

세계 역사상 법치와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국에는 헌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그나 카르타(1215), 권리청원(1628), 인신보호법(1697), 권리장전(1689), 왕위계승법(1701) 등이 계속 이어져온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

Status of judicial precedent, text books, law books, the writings of historians and political theorists, the biographies and autographies of statesmen, the columns of every serious newspaper, the volumes of Hansard, the minutiae of every type of government record and publication. This is what is meant by saying the English constitution is unwritten.

교과서, 법률저서, 역사가들과 정치이론가들의 저작, 정치이론가들의 저작, 정치가들의 자서전과 자필문서, 모든 주요 신문의 사설, 정부의 기록 간행물 등등 모두가 영국 불문법 헌법에 속한다.

영국의 헌법이 불문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 정도전에 의해 ‘조선경국전’이라는 이름의 성문헌법이 최초로 만들어지고,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불문법이 있었는데, 공자의 사상에 예()와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子曰(자왈): 道之以政(도지이정), 齊之以刑(제지이형),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道之以德(도지이덕), 齊之以禮(제지이례), 有恥且格(유치차격)

정치로써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법망(형벌)을 피하기 위해 염치를 버리게(부끄러움을 모르게) 될 것이다.

백성을 덕으로서 이끌고 예로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염치도 있고 질서도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의 <경국대전>은 왕의 통치수단으로써의 법이기 때문에 골격은 형법(Criminal Law)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법은 형법이었습니다. 법을 포도청 나졸이 백성들을 때려 잡는 무서운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됐습니다.

 

민법(民法)은 것은 법을 통해서 백성(국민)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사상을 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법을 통해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법을 통해서 역사를 바꾸고, 법을 통해서 혁명을 하고, 법을 통해서 진리를 밝힌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까지)의 법은 형법뿐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 규범이었던 우리의 예()와 법()(백성의 권리를 밝히는) 민법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불문법으로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유교사상은 불문법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법 체제에서 유리되어 갔습니다.

 

조선역사 500년 동안 추구한 것은 4(四端)이었는데, 이것은 서양의 자연법(Natural Law)사상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도덕적 질서를 말합니다.

조선의 주리론(主理論) 전통은 자연법의 추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리론, 곧 자연법 추구는 노모스(Nomos)를 뛰어넘는 피지스(Physis)였습니다.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법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법을 위해 있는 것 같은 이런 난센스(Nonsense)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노모스 Nomos : Latin어로 Melody, 즉 ‘가락’

▶피지스 Physis : Latin어로 ‘자연의 작품’ 또는 ‘물리적인 성질’

 

우리는 조선 사상사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사상사를 강의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모든 (근원적인) 문제가 현재의 우리 현실과 얽혀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500년을 지내면서도 근원적으로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산 후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의 변화가 오기 시작할 때 그것을 감지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는 대표적인 사상가로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琦)라는 인물이 꼽힙니다.

 

▶최한기(1803~1877)의 본관은 삭녕(朔寧), 호는 혜강(惠岡), 19세기 중엽, 새로운 사상 패러다임을 만든 대 사상가. 원래 개성 사람으로, 서울로 이주했다.

 

최한기의 선조는 집은 부유한 편이었지만 10대를 통해 과거급제자가 없었습니다. (家素裕 : 집은 원래 부자였다).

최한기는 어려서 양자를 갔는데, 무과에 급제한 양()증조부인 최지숭(崔之崇)에 이어 양부인 최광현(崔光鉉)도 무과 급제를 하여 벼슬은 곤양군수와 진주진관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습니다.

 

19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사상가인 최한기는 서울 남대문 시장 쪽,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조선상식문답속편>에 의하면, 조선 역사에서 가장 저술을 많이 한 사람이 최한기이며, 저서는 <명란주집>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 권을 저술했다고 하므로 아마 300~400권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보통 3~4책이 한권 임). 그가 저술한 책 중 상당부분이 유실되었으나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최한기는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당대의 명망가들과 교류가 없었고 제자가 없었고 문집도 없었습니다. 정약용은 제자가 있었지만 최한기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조 말에 가장 많은 저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동양 전통 고서 외에도 당대에 출간된 서양의 (인문) 서적은 물론 모든 과학서적까지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 '법과 기학'  2/4

 

 

그리하여 중국 북경 정양문 내의 인화당(人和堂)에서 최한기의 30대 저서인 <신기통> <추측론>을 묶어 <기축체의>라는 이름의 활자 디럭스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조선의 학계에서는 최한기를 잘 몰랐고 19세기 조선에서는 중인들이 가장 깨어있었으며, 그들은 해외여행도 자주했기 때문에 역관(譯官)이나 중인(中人)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인(中人)이란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민의 중간에 있던 신분 계급을 말합니다.)

 

실제로 최한기는 당대의 어마어마한 양반임에 틀림없습니다.

역사적인 대작(大作)들을 저술한 그의 저택 안에는 기화당(氣和堂), 양한당(養閒堂), 장수루(藏修樓), 긍업재(肯業齋) 등의 네 채의 건물과 24명의 종( 13, 11)이 있었습니다.

 

당시(구한말)의 조선은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와 민비(閔妃=명성황후), 대원군, 고종황제 간의 세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던 혼탁한 사회였습니다.

이처럼 엉망인 정치상황 속에서도 최한기는 정치와 권력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인류 평화를 생각하고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다가 갔습니다.

우리는 조선 후기가 최한기와 같은 사상가가 활동할 수 있었던 문화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최한기는 너무도 멋지게 살다 간 희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최한기를 19세기 조선의 Cosmopolitan(=세계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최한기 사상의 특이점은 오륜(五倫)에 일륜(一倫)을 더한 육륜(六倫)이라 하는 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君臣有義(군신유의), 父子有親(부자유친),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 朋友有信(붕우유신)의 오륜(五倫)兆民有和(조민유화)를 더했습니다.

兆民有和(조민유화)란 억조창생, 즉 모든 인간은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최한기는 55세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세계인문지리서인 지구전요(地球典要)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전요(地球典要)에는 나라이름, 수도, 인구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최한기의 유일한 친구는 대동여지도의 저자인 김정호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분 이상의 위대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국민이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근대정신의 소산입니다.

김정호의 지도는 오늘날의 인공위성이 촬영한 것보다 더 정확합니다. 생김새(지형)도 정확합니다.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 그렸을까? 현대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미스터리 투성이입니다.

종래의 지도는 김정호의 지도에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김정호의 친구인 최한기도 정확한 세계지도를 그렸습니다. 모든 나라의 수도, 인구, 정치제도 등을 적었습니다.

 

文一平(1886~1936)의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에는 최한기와 김정호가 남산 꼭대기에 올라 밤의 별을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나눈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두 위인은 기()를 토하면서 말했습니다.

조선의 기를 먹고 살고 있으니 무언가 조선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학문으로서 치안(治安=치민<治民>과 안민<安民>)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닌가!”

조선의 정치가 무엇 하나 돌아가는 것이 있는가? 안동김씨, 풍양조씨들이 전부 사랑방 정치를 하고 있지 않는가? 국정은 날로 혼미해가고 있다. 정호야! 너는 지리(地理 : 땅의 이치)를 맡아라. 나는 천문(天文=天紋=하늘의 무늬=하늘의 질서=모든 보편적 법칙)을 맡겠노라고 기염을 토했다고 합니다.

 

지리를 공부한 김정호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남겼고, 천문을 공부한 최한기는 기학(氣學)을 연구했습니다.

 

천즉기(天卽氣), 기즉천(氣卽天) 하늘은 기로 되어 있고 기는 곧 하늘이다. , 우주는 기다.

 

“나는 기를 연구하겠다.”한 최한기는 평생을 기() 하나의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알았던 (성리학) 이기론의 기가 아니라, 이 사람의 기는 100% 과학적인 기였습니다.

기학(氣學)’은 최한기가 55세 때 연구한 우주론의 대작입니다. 이 책은 19세기 조선의 가장 개명한 사상가인 최한기의 포괄적 우주론을 담고 있다. 최한기의 기학(氣學)’은 정말로 위대한 책입니다.

 

기학(氣學)’ 서두에,

中古之學(중고지학), 多宗無形之理(다종무형지리), 無形之神(무형지신), 以爲上乘高致(이위상승고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학문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무형의 리()와 무형의 신()을 받들었다. 애매모호한 것을 숭상했다.

 

신기(神氣)는 신천(神天=God)에 해당하는 최한기의 기()개념입니다.

혜강 최한기는 하느님도 기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 자체가 형체이며, 신적인 것이므로 모든 것은 유형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혜강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논점은 바로 무무(無無)입니다.

무무(無無), ()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유형의 구체적 증거가 있는 것이고 형태가 없는 것은 무()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유체적인 유형의 근거가 있는 것이고 그 유형의 근거도, 형체가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무형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유형이다. 앞으로 내가 하는 학문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고는 없다.”

이것이 바로 최한기의 근대 과학사상의 출발이다.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 '법과 기학'  3/4

 

 

정도전에서 이퇴계에 이르는 모든 유학적 패러다임은 최한기에 의해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개명(開明), 현실적인, 세계의 학문으로 발전해 가게 됩니다.

개화기의 사상가들(김옥균, 유길준, 박영효 등)은 서양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일본에 가서 서양을 배웠습니다. 서양 제국주의 학문인 진화론의 희생양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도서기(東道西器) 운운하는 유치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東道西器 : 동양의 도에 서양의 그릇, 즉 정신은 동양적인 것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한다는 의미

 

최한기는 조민유화(兆民有和), 즉 지구상의 모든 민족, 종족이 편견 없이 대등하게 교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19세기 당시에도 그는 “흑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같이 대접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서양의 과학은 뛰어나다. 기학에 있어서도 그들은 근거 있는 유형의 기로부터 법칙화시켰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고 잴(계측할)수 있게 해 주었다. 이때까지 우리가 무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서양문명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문명을 깊게 배워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19세기 중엽이라 하면 민란이 가장 많이 일어나고, 외세가 가장 빈번히 침범해 오는 처참한 역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이렇게 위대한 사람,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최한기입니다. 그의 저서는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현재의 어떠한 물리학자의 세계관보다 뛰어난 것이며, 거의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에 상응하는 과학적 우주론이 한국인에 의해 시도된 바는 없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나와서 소리치는 것은 도올 김용옥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저보다 몇 백배 훌륭한 사상가들이 꾸준히, 남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키워 온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바야흐로 이들이 꿈꾸었던 세계를 이룩하려는 역사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한 명도 빠지지 말고 투표장에 가서 귀중한 한 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됩니다.

20세의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한 표의 투표권이 주어지기까지 인류 문명은 희랍인들의 데모크라시로부터 시작해서 2,500년 동안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오늘의 여러분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2.500년 동안 왕정과 투쟁해서 얻은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인 것입니다.

 

현재의 나의 존재를 우연적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기나긴 인류사의 정신문명의 성취 속에 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상 우리는 누구인가 제14 '법과 기학'  4/4

Posted by 망중한담

조선 유학은 인간을 이성의 주체로 파악하기보다 감정의 주체로 파악한다.

 

 

 

지난 시간에 탄핵정국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 시간에도 뭔 이야기를 하나 쳐다 볼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제가 사실은 몸이 상당히 아프지만 강의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의사입니다. 병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현대인의 병은 전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몸 안에서 오는 발병은 전부 다 칠정(七情)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 유학은 인간을 칠정의 주체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선 의학도 인간을 감정(七情)의 주체로 파악했다.

 

조선 사상사의 한 정점인 이제마(李濟馬 1837~1900)도 인간의 질병을 감정의 문제로 파악했다. ( 이제마(李濟馬:1837~1900): 조선조 말엽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창시한 대 사상가)

 

이제마는 인간의 성정에 있어서 애노희락(哀怒喜樂)의 치우친 상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사상의학의 틀을 세우고 인체를 상중하(上中下) 3()로 나누었습니다.

사상의학에서 모든 체질(Constitution)은 선천적으로 오행관계가 치우쳐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제마 4체질 분류

 

1. 태양인(太陽人)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가슴 윗부분이 발달한 체형.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큰 대신에 허리 아랫부분이 약하며, 엉덩이가 작고 다리가 위축되어 서있는 자세가 불안정해 보인다.

다른 사람과 사교하는 데 소통을 잘하는 장점이 있고, 과단성이 있어 사회적 관계에 유능하다.

태양인은 소변량이 많고 잘 나오면 건강하다. 입에서 침이나 거품이 자주 나오면 병이 된다. 담백한 음식이나 간을 보하고 음을 만들어 주는 식품이 맞다. 지방질이 적은 해물류나 채소류가 좋으며 병에는 오가피장척탕이나 미후등식장탕이 좋다.

 

2. 소양인(少陽人)

비대(脾大) 신소(腎小)하며 가슴이 성장하고 충실한 반면 엉덩이 아래로는 약하다.

상체가 실하고 하체가 빈약하며 앉은 모습이 외롭게 보인다. 말하는 것이나 몸가짐이 민첩해서 경솔하게 보일 수도 있고 눈에 정기가 있고 입술은 엷으며 턱은 뾰족하고 성격은 급하면서 쾌활하다.

굳세고 날랜 장점이 있고, 일을 꾸리고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양인답게 굳세고 강인함도 있고 적극성도 있어서 어떤 일에 착수하는데 어려워하지 않는다.

소양인은 대변이 잘 통하면 건강상태이다.

비뇨기 ·생식기 기능이 약하며 일반적으로 배추 ·오이 ·보리 ·밀 ·녹두 ·해삼 ·돼지고기와 찬 음식을 좋아하고, 더운 음식과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한다. 병에는 양격산화탕 ·육미지황탕 ·양독백화탕 ·형방폐독산 등을 많이 사용한다.

 

3. 태음인(太陰人)

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성장하여 서있는 자세가 굳건한 반면에 목덜미 기세가 약하다. 보통 키가 크고, 작은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살이 쪘고 체격이 건실하며 간혹 수척한 사람도 있어도 골격만은 건실하다.

성격은 꾸준하고 침착하며 무슨 일이든 시작한 일, 맡은 일을 이루어 성취하는 데 장점이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하는 재간이 있다.

태음인은 땀구멍이 잘 통하여 땀이 잘 나오면 건강하다.

호흡기와 순환기 기능이 약해서 심장병 ·고혈압 ·중풍 ·천식 등에 걸리기 쉽고 지방질이 많은 식품은 좋지 않다. 고단백질의 식품이 좋고, 채소류 ·해물류가 좋고, 자극성 있는 조미료나 닭고기 ·개고기는 해롭다. 병에는 청폐사간탕이나 태음조위탕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4. 소음인(少陰人)

신대(腎大) 비소(脾小)하며 엉덩이가 크고 앉은 자세는 크지만 가슴둘레를 싸고 있는 자세가 외롭게 보이고 약하다. 보통은 키가 작으나 드물게 장신이 있고 상체보다 앞으로 수그린 모습을 하는 사람이 많다.

유순하고 침착하며, 사람을 조직하는 데 능하다.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고 부드러워 작은 구석까지 살펴서 계획한다.

소음인은 음식소화만 잘 되면 건강하다.

먹는 양도 적고 빙과류 같이 찬 것이나 생맥주 같은 것을 먹으면 설사하기 쉽다. 고추 ·파 ·마늘 ·감자 ·미나리 ·닭고기 ·명태 ·개고기 ·대추 등과 더운 음식, 매운 음식을 좋아하며 찬음식을 싫어한다. 병에는 십전대보탕 ·향사양위탕 ·보중익기탕 ·곽향정기탕 ·소합향원 등이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 : 호흡기관인 Lung(폐장기)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두뇌를 포함한 인간 상초 전체의 기능→금기(金氣)에 해당

 

동양에서는 肺()과 肝(), ()와 腎()는 상극(相剋)관계로 봅니다.

(, 하나가 성하면 다른 하나는 쇠한다는 것.)

 

 

人稟臟理(인품장리), 有四不同(유사부동)

 

1. 肺大而肝小者(폐대이간소자) 名曰太陽人(명왈태양인)

인간에 있어 상초가 강한 사람은 하초가 약하다. 화를 잘 내지만 금방 잊는다. 결벽증이 많고 괴팍하다. 예술가가 많다. 간이 작기 때문에 육식을 피해야 한다.

살이 쉽게 빠지는 스타일. 머리가 크고 엉덩이가 작고 가슴 윗부분이 발달. 가을을 만나면 안 좋다. : 봄을 만나야 좋다. 방향으로 말하면 동쪽. 봄만 되면 펄펄 난다. 금붙이는 안 좋다. 금니도 안 좋다.

태양인 인구 분포는 논할 가치가 없을 만큼 거의 없다.

 

2. 脾大而腎小者(비대이신소자) 名曰小陽人(명왈소양인)

비위가 좋은 사람. 속이 덥다. 소화를 잘한다. 성격이 좋아 욕을 먹어도 소화를 잘 시킨다. 살결이 보드랍고 얼굴이 흰 사람이 많다. 성격이 급해서 기차 시간 한 시간 전에 나가는 사람이다. 화를 잘 낸다. 뒤끝이 없다.

소심하여 일찍 약속장소에 나간다. 성격이 좁고, 화를 잘 낸다. 애노(哀怒)의 감정 표시를 잘한다. 그러나 뒤 끝이 없다. 가슴부위가 성장하여 충실하다. 솔직 담백하고 의협심이나 봉사정신이 강하다. 성격이 급하고, 마무리가 부족하다. 소양인 인구 분포는 30% 정도.

 

3. 肝大而肺小者(간대이폐소자) 名曰太陰人(명왈태음인)

소위 간뎅이가 부은사람. 과감하게 일한다. 술을 잘 먹는다. 이런 사람은 하초가 강하고 상초가 약하다. 사업가, 국회의원 등. 자본주의시대는 태음인의 시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며, 목덜미의 기세가 약하다.

꾸준하고 침착하여 맡은 일은 꼭 성취하려고 한다. 보수적이어서 변화를 싫어한다. 봄을 만나면 아프다. 봄에 조심해야 한다. 봄을 탄다는 것은 체질적으로 봄에 간화가 성해지기 때문이다. 봄에 조심해야 한다.

태음인 인구분포는 50% 정도.

 

4. 腎大脾小者(신대비소자) 名曰小陰人(명왈소음인)

신장이 크고 비장이 작으며 비위가 좋은 사람. 정치가.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 예술가 등. 육식은 좋지 않다. 흡연도 피해야 된다. 돈에 대한 관심이 많다.

()를 버리고 안일한 것을 좋아하는 형으로, 게으르기 싶다. 하체 비만 스타일 - 엉덩이가 크고 어깨가 좁은 형. 유순하고 침착하다. 내성적이며 적극성이 적고 추진력이 약하다.

소음인 인구 분포는 20% 정도.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 '사상의학과 봄' 1 of 4

 

 

 

 

오늘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피하고, 꼭 알아야 하는 최근의 국제정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동북아 국제정세에는 두 개의 문제가 있는데, 대만문제와 남북문제가 있습니다. 대만문제는 이념문제, 통일문제 등이 상당히 복잡해서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만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대만()은 중국문화권 밖에 있었는데 명나라 때부터 중국역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게 됩니다.

 

대만은 원주민이 사는 섬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방어계(南方語系)의 폴리네시안이며, 필리핀 최북단의 Bantam군도와 생활습관 및 언어가 비슷하고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고산족입니다.

대만을 영어로 Formosa, 즉 ‘아름다운 섬’이라 하는데 대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 섬을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Ilha Formosa라고 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이 대만을 처음 발견했지만 이 섬을 최초로 식민 지배한 나라는 네델란드(Netherlands)입니다 Netherlands의 총독이 1624~1662 38년간 식민지 지배를 한 것입니다.

1653년 효종 당시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탔던 상선(商船) Netherlands의 대만 총독부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배였습니다.

 

대륙에서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서자 반청(反淸)운동을 일으켰던 정성공(鄭成功)은 대만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나라가 정성공을 격파하고 대만을 청나라 복건성 관할의 대만부로 만들었고, 이렇게 해서 청나라가 대만을 212년간 지배한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동학(혁명) 이후에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승리합니다. 이토히로부미(안중근의사에 의해 하얼빈 역두에서 저격 피살됨)가 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서 청국으로부터 전쟁배상금조로 대만을 넘겨 받아 1895~1945까지 50년간 식민지 지배를 합니다. 즉 조선 동학혁명의 대가로 일본은 대만을 얻은 것입니다.

 

대만은 일본에 의해 50년간 지배되었지만 식민지 피해의식은 없었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자기들이 한번도 나라를 가져 봤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식민지 피해의식이 없습니다.

대만의 지배자는 스페인→네덜란드→명나라→청나라→일본→중국국민당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대만사람들에게는 식민지 통치자가 바뀐 것이 더 좋았습니다. 특히 일본의 대만통치가 대만인들에게 가장 좋은 정치였습니다. 학교도 세워 주고, 도로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만인들의 저항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통치자들과 50년간 좋은 사이로 지냅니다.

 

대만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1945 8월까지 50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는데, 일본의 패전으로 전승국인 중국에 반환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내란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에는 주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대만을 (중국 국가가 아닌) 국민당에게 넘겨줍니다.

대만을 접수한 국민당 패잔병들은 중국말은 못하고 일본말을 하는 대만인들을 모든 사회분야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만사람들의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게 됩니다.

 

1947 2 27, 저 유명한 대만인 대학살사건이 발생합니다.

양담배를 팔던 한 대만 노파가 국민당 병사에게 무참하게 타살되자 불만에 쌓여있던 대만사람들의 민중봉기가 타이베이시 연평북로에서 일어나는데, 이 민중봉기를 저 유명한 2.28사건이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약 2만 여명의 대만인이 학살됩니다.

 

오늘 날의 대만 사람 가운데 2.28사건과 연루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행정 보도 자료에 28,000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민간 소문에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만 전체의 산하가 피로 물들여졌습니다. 이때부터 38년간 대만은 국민당 정부의 계엄령 하에 놓여있었습니다.

우리는 (국민당이 대만에 세운 정부를) 자유중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 '사상의학과 봄' 2 of 4

 

 

대만 국민의 85% 가량은 본성인(本省人)과 대만인이고 나머지 13% 정도가 외성인(外省人)입니다.

본성인은 청나라 때부터 대만에 와서 사는 사람이고, 외성인은 1945 8월 이후 대륙에서 온 국민당원들과 가족들을 말합니다.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에는 피맺힌 한이 있습니다.

본성인 출신인 이등휘가 1984년 중화민국역사상 최초로 직접선거에 의해서 부총통(부통령)으로 당선되고 (총통인 장징궈의 죽음으로) 1988~2000년까지 국정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대만 독립정신이 고취됩니다.

 

1986. 여전히 계엄령 치하인 대만에서 본성인 130여명이 중심이 되어 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을 창당하는데, 2004년 천슈이벤(陳水扁)이 외성인 후보와의 직접선거에서 승리함으로서 대만 역사상 최초로 국민당이 아닌 야당 출신의 총통이 선출됩니다.

 

본토민(本土民) 중심의 본성인과 대만 원주민은 기나긴 400년 동안 국가의식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민진당의 집권으로 인하여 대만 민중들은 400년 동안의 외세지배로부터 주체적인 나라를 가져야겠다는 갈망을 한 층 높게 가지고 있지만 外省人들은 이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였던 국민당 출신의 외성인들이 하루아침에 친공(親共)의 대륙주의자로 변해버립니다. 이 상황은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코믹한 것인가를 실감케 하는 것입니다. 본성인들이 볼 때는 웃기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자기들에게 반공(反共)을 부르짖다가 이제는 친공산주의자가 되어 “대만은 대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공의 보루였던 대표적 신문,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의 신문들도 대륙의 인민일보(人民日報)와 논조를 같이 하며 “대만은 대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합니다.

일변일국(一邊一國)을 표방하며 그들은 해양국가로써의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한편, “대만은 이미 더 이상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자유중국)은 미국의 힘(영향력)으로 UN상임 5개국의 하나였지만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본토의 중국과 수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2004) 대만의 GNP 22,000,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입니다. 외화 보유고 세계 2, 해외투자 2,000억불의 부국입니다.

 

미국의 최대 목적은 어떻게 하면 중국을 견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빙자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셈이 있다. 한편 북한이 말썽을 부리니 한국과 일본이 MD(미국이 주도하는 대북한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라고 (압박하며)... 이런 문제가 걸려있는 한, 미국은 쉽사리 한국에서 철군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떨어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

대만은 미국에게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다.” 미국은 대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陳水扁(민진당 출신, 본성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陳水扁은 국민당의 옌친(蓮戰)과 본성인 출신의 친민당(親民黨)의 송초유(宋楚瑜)와 대전하다가 결국에는 친민당과 합쳐서 승리했습니다.

 

박빙의 신승(辛勝)이긴 하지만 최초로 본성인에 의한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민진당 후보(천수이벤)의 승리는 그것이 비록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대만 인민의 자주적 열망 확산의 표상이며, 동아시아 역사의 민주세력의 진보를 나타냅니다.

 

중국은 대만을 흡수하는 문제에 급급하지 말고, 대만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자신의 도덕성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대만 사회의 내재적 모순에 상응하는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티베트문제와 고구려 (동북공정) 문제도 그럴 것입니다.

 

고구려 문제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과거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역사로 무리하게 흡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중국은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남북통일의 대비책인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당장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 땅의 역사적 정체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국은 이 문제를 미리 못박아 두자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 때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거대한 제국주의를 운영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세계를 그렇게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살고 있으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힘이 없으면 그대로 멸시당하고 처참하게 당하는 것입니다.

 

강남에 가면 필리핀(출신) 식모들이 많다는데, 필리핀도 막사이사이가 집권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일본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마르코스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필리핀 사람들은 세계의 식모국 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이미지 추락은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도 조금만 있으면 대학을 나와도 그렇게 (식모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힘이 없으면 금방 처참한 나라가 됩니다.

우선 우리는 국방력강화를 해야 합니다. 우선 자주국방을 해야 합니다. (자주국방을) 무엇으로 하느냐, 돈으로 합니다.

자주 국가는 자주국방, 경제 활성으로 가능합니다.

대기업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활동이 제 자리를 찾아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빨리 정치를 개혁해야 합니다.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깔보이면 안됩니다.

 

내 자식을 서울 대학에 보낼 것만 걱정하고 있지요?

세계정세 속에서 하루 속히 제 궤도에 올라가느냐, 인접국이 우리를 깔보지 못하게, (우리의 국력이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지만) 그들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필요로 하게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건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질서가 보장되고 우리나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소통되며 (국제)평화 협력에 실효성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국방력을 키워야 됩니다.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 '사상의학과 봄' 3 of 4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이 빨리 종결되어서 빨리 부패가 청산되고, 썩은 시대가 지나가고, 우리나라가 빨리 경제 및 국방문제에 매진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총선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 도올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표창 받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어김없이 츠르게 될 오는 4.15 총선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보스(Boss)없는 선거

우리나라 최초로 보스(Boss) 없는 정당이 보스 없이 선거하여 보스 없는 정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선거는 보스체제하에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보스가 없습니다. 과거엔 전두환, YS, DJ 등의 보스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정치판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최초의 보스 없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2. 금권 없는 선거

이번 선거는 금권과 결탁되지 않는 최초의 선거가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선거가 얼마나 금권에 썩은 선거였던가를 알 것입니다. 공정선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금권이 최소화 되는 최초의 선거입니다.

 

3. 국민적 관심이 높은 선거

이번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선거가 될 것입니다.

가장 (국민 의식이) 깨어난 선거가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투표를 하는, ‘투표율이 가장 높은 선거가 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우리 역사에 획기적인 진보를 이룩할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역사가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아서 진정한 민생 안정을 이룩하고 부국강병으로 달려갈 수 있는 새날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영상 :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 '사상의학과 봄' 4 of 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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