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약속도 지키지 않던 박근혜
박근혜 씨가 ‘전’ 대통령이 되었다. 비난에 싸였던 청와대 관저 주거도 삼성동 집으로 퇴거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온 국민의 촉각은 박근혜 씨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하고 과격시위와 폭력을 선동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 여부에 집중했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진다”는 말 만을 남김으로써 헌재의 파면 결정과 수사 중인 피의 사실에 대해서 불복한다는 뉘앙스로 의지를 표명했다.
정책 공약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과 각종 시건사고 및 심지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있어서도 그녀는 많은 약속을 했지만 그러나 제대로 지킨 적은 없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 약속을 한 것이라는 단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만큼 그녀는 신의를 잃었다.
대통령 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씨에게 검찰이 소환을 통보했다.
박근혜 씨 측은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진실성과 신뢰성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이미 본인이 직접 한 많은 약속들을 어겼다.
검찰은 민간인 신분인 중대범죄 피의자인 박근혜 씨에게 ‘엄정한 법과 원칙’을 적용하여 수사하겠다고 한다. ‘권력의 개’라는 오명을 씻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검찰은 요란한 선전구호가 아니라 오직 법치주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만 한다.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면 구속을 포함한 모든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한다.
그것이 대다수 국민의 뜻이며, 법률이다.
검찰, 박근혜 21일 오전 9시30분 출석 통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에게 “3월 21일 오전 9시30분 출석할 것”을 통보를 했다고 15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61·구속 기소)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구속 기소),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 등과 공범관계로 엮인 범죄 혐의는 총 13개다. 죄명으로 보면 지난해 검찰이 입건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등 4가지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추가된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제3자 뇌물수수 등 총 5가지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왜 '21일' 박근혜 소환일까
검찰, '속전속결' 원칙 내세우면서도 '불응 명분 제거' 포석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조사 시점을 오는 21일로 통보한 건 속전속결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불응할 명분을 없애기 위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5일 박 전 대통령 변호인에게 오는 21일 오전 9시 30분 소환을 통보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6일만, 사저로 들어간 지 사흘 만에 소환통보를 하면서도 출석까지 1주일에 가까운 말미를 준 것이다.
검찰은 소환통보 전날 이미 통보 계획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 소환을 두고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지체하지도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이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에 대한 조사 준비 시간과 변호인단 구성 등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할 경우 자칫 체포 가능성 등 긴장감만 높아질 것도 검찰이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 입장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가급적 한 차례 소환으로 마쳐야 하는 만큼 준비기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헌정 사상 4번째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공개소환 여부, 조사 방법 등에 있어 전례를 살펴보겠다고 검찰이 일찌감치 입장을 정리한 것도 논란의 소지를 막기 위한 포석이다.
박 전 대통령 측 손범규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소환날짜를 통보받았다"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짤막한 입장 표명을 했다.
박근혜와 함께 청산돼야 할 것들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로 기록될 것인지 단순히 하나의 사건에 그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일찌감치 송경동 시인이 말했다. “우리가 그냥 박근혜 하나 바꾸자는 겁니까.” 그렇다. 박근혜가 물러났지만 당장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다. 어떤 세상에 살기 원하는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을 압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13일 공판에서 “국민연금 의결권은 청와대와 안종범 경제수석이 지휘했으며 복지부 공무원들이 청와대 동아줄을 잡아볼까 해서 움직였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부하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긴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작 안종범 전 수석은 “나는 지시한 게 아니고 대통령 말을 전달만 했을 뿐”이라며 “내가 지시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이용당했다”면서 “최씨와 대통령과의 친분을 알게 되면서 할 말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불편한 사이였다”고 하소연했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 단장은 “욕심 내지 않고 언젠간 보상받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만 했다”면서 “그런데 최씨 뿐만 아니라 주도적으로 계획·지시한 사람들이 모두 부인을 한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진실이 곧 드러나겠지만 한때 권력에 충성했던 이들이 앞 다퉈 꼬리를 자르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희극과 비극이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은 탓이라면 대통령을 잘 뽑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많은 걸 바꿀 수 있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시스템의 부실과 구조적 병폐를 바로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2013년 5월, 노태강 당시 문화부 국장과 진재수 과장은 정유라씨 관련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한 뒤 “최순실씨나 그 반대쪽이나 둘 다 문제가 많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유진룡 당시 문화부 장관을 불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다짜고짜 노 국장과 진 과장의 좌천 인사를 지시했고 이들이 좌천된 뒤에도 2015년 7월,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며 압박했다. 이들은 결국 명예퇴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1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은 “당시에는 (노 국장 등의) 보고서가 잘 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모 전 수석은 “대통령이 국·과장 이름을 거명하며 인사 조치를 지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면서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유 전 장관과 서로 마주 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시하니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박근혜 주변에는 권력에 빌붙어 영혼을 팔고 국정을 농단하는 수많은 최순실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며 적당히 아부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대가로 한줌 권력을 부여잡고 크고 작은 이권을 주고 받았다. 모두 박근혜와 함께 물러나야 할 이들이다. 우리는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노태강과 진재수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쫓겨날 수밖에 없는 공직 사회를 근본 쇄신해야 한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부패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부당하게 차별 받거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함께 싸울 때 아래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박근혜 체제와 온전히 작별하려면 우리 모두가 좀 더 용감해져야 한다.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앞장서서 싸우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뜨거웠던 지난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광장을 밝혔던 1500만 촛불이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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