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박주민 변호사의 입당 발표 이후 많은 이들이 보였던 반응이었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밀양의 송전탑 반대 운동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까지, 그는 우리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맨 몸의 저항'의 자리에 늘 함께 서 있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사무차장이 그의 입당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공식 경력이었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거리의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왜 지금, 정치에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입당 4일째인 지난 28일 박주민 변호사를 만나 갑작스런 여의도행(行)의 이유를 들었다. 이제야 조금씩 '멘붕'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황야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라는 박주민 변호사는 쉬운 길도 많았지만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야권에게 쉽지 않아 보이는 4월 총선 전망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했다.
야권의 여러 정당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새누리당의 압승을 막아야한다는 현실적 가능성과 야권의 분화에서 비롯된 변화의 가능성이 그의 발걸음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끌었다.
물론 현실의 녹록치 않음은 누구보다 박주민 변호사 스스로 잘 안다. 비례대표 출마든, 지역구 출마든 그 어느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은 박주민 변호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사무차장인 박주민 변호사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프레시안(최형락)
"'4년 후에 꽃가마 타고 들어가라'는 말 듣고 오히려 더 가야겠다 결심했다"
프레시안 : 입당 발표에 놀란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입당하게 된 건지 먼저 얘기해 달라.
박주민 : 지난해 말 즈음, '더불어 민주당이 인재영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리스트에 박주민 변호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는 무슨 얘기인지도 정확하게 몰랐고, 제의가 정말 온 것도 아니었다. 다른 당에서 제의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었는데, 지인이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 얘기를 하면서 그 제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했다.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당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또 저는 평소에도 정치의 중요성을 얘기해 왔었다. 사회운동을 하다 정치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포심이 컸다. 첫째 외부에서 제가 원하지 않는 저에 대한 규정이 이뤄질 것이고, 둘째로 도전했다가 혹시라도 실패하면 정치와 시민사회 양쪽으로부터 유배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은 많이 했는데, 결국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도망간다면 항상 정치가 중요하다고 했던 말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를 더럽게 생각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누구든 뛰어들어야 한다고 얘기해 왔는데, 정작 저는 구정물 튈까봐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더불어민주당의 제안 전에는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안 했었나?
박주민 : 강정이든 밀양이든, 세월호든 일을 하다 보면 국회라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필요한 법은 없고, 있는 법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누르고 있지?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었다. 다만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못 했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제안이 왔던 건 지난해 초였다. 전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가면서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압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되면 제가 하고 있는 일이나 하려고 하는 일들도 너무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았다. 지금이 바로 어떤 시기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권은 분열돼 있고, 여권은 유례없이 강하고, 이때 오히려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야권의 총선 전망이 안 좋다는 판단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인가?
박주민 : 사실 무모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밖에서 일하고, 그러다 보면 4년 후에 꽃가마 타고 들어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나 개인은 명망도 쌓고 상처 하나 입을 일 없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좀 비겁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더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레시안 : 야권의 여러 당 가운데 왜 더불어민주당이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주민 : 총선에서 여당이 절대적 다수당이 되면 종전보다 더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정당의 역할이 필요하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은 잘 못 했지만, '탈당 러시'가 내게는 오히려 가능성으로 보였다. 이 흐름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이 바뀔 수 있겠다. 체질 개선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적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 두 가지를 다 보게 된 것이다.
"지하철 놔드리겠다는 얘기만 하면서 총선 기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프레시안 : 다른 일들도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일해 왔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상의할 때는 어떤 반응이었나?
박주민 :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우리한테는 소중한 사람인데, 너 이용만 당하고 빈털터리로 올 게 뻔 하니 안 갔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응원한다, 들어가서 열심히 잘 해라"며 축하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오히려 제가 걱정되는 건 '내가 출마함으로 인해 세월호 전체가 욕을 먹지 않을까'였다. 유가족 총회 때 단상 위에 올라가 얘기할 기회를 얻어 그런 얘기를 했다. 가족들은 "우리가 욕 한두 번 먹고 사냐"고 하시더라. 오히려 "박 변호사가 잘 돼서 세월호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셔서 마음이 좋았다.
프레시안 : 유가족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그렇게 고마운 존재는 아닐 수도 있다.
박주민 : 맞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세월호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서로가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당에서 왜 해주는 게 없지? 하하하. (웃음)
프레시안 : 영입 제안이 올 때 당에서 약속한 게 없나?
박주민 : 전혀 없다. 영입된 인사들 모두 보장 받은 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고민 중이다. 다 만만하지가 않더라. 주변에서 "어렵다 어렵다" 얘기를 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디를 가든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왕이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지역을 나가든, 비례 대표로 출마를 하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다가 떨어지든 말든 해야 할 것 아닌가. 지하철 놔드리겠다 얘기만 하며 총선 기간을 보내야 한다면 좀 답답하다. (웃음)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도 변호사 출신인데 인연이 있었나?
박주민 : 전혀 없었다. 세월호 농성할 때 처음 뵈었다. 입당한 날 같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문 대표가 "불편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당이 바뀔 가능성이 많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좋은 방향으로 바뀔 거라고 하셨다.
프레시안 : 당이 비상대책위 체제로 개편했다. 비대위는 어떻게 보나?
박주민 : 잘 하실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당내에 시민사회 진영의 목소리를 반영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걱정은 있다. 그래서 당의 선거 전략과 방향이 애매하고 불분명할 수도 있는 중간 쪽으로 가는 것 아닌가 싶다. 대중정당을 지향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지만 중요한 문제에서는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 정당이 중도를 지향하거나 외연을 넓힌다고 해도, 자기 자리에 뿌리를 굳건하게 내리는 것이 우선이다. 뿌리도 없는데 어떻게 가지와 잎을 펼치나.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에 더불어민주당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프레시안 : 야권 연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박주민 :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원칙 없이 무조건 표를 얻기 위해, 의원수를 확보하기 위한 연대보다는 원칙이 있고 내용이 있는 연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민의당, 지역 중심 사고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주민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앞서 야권의 분열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는데, 다시 한 번 입장을 정리해 달라.
박주민 : 당 안에 여러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돼 있지만, 경우에 따라 필요한 때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본다. 기존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부분이 약했다. 일부 의원들의 탈당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분화 과정으로 생각한다. 또 국민의당이 좀 더 분명한 중도 정당으로 자리 잡는다면, 전체적인 한국 정치 지형도 긍정적으로 분화될 것이다. 당의 내부 결집력도 높아지고, 정치권 전체도 분화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중도에 중심을 잡고 새로운 중도 의제를 잡기 보다는, 광주라는 지역 중심으로 사고를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안철수 의원도 애초에 그런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역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퇴보 아닌가.
프레시안 :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은 기대가 커서 그런지 비판도 많이 받는 편이다.
박주민 : 막스 베버는 정당은 자기 매커니즘이 강해서 정당 안에 들어간 사람은 그 시스템에 매몰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강력한 '데마고그', 즉 대중적 지지를 받는 선동가가 나타나면 그 사람에 의해 당은 끌려간다. 어찌 보면 후진적이지만, 그게 또 정당이라는 것이다. 내가 '데마고그'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제가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면 당도 함부로 쳐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굉장히 힘든 길이겠지만, 해보려 한다.
돌아보면, 시민단체 활동하다 국회로 들어가면 그 분과 시민단체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경향을 보이더라. 그 이유를 들어보니, 시민단체가 100을 요구하면 정치적 문법으로 전환되면서 30~40%로 줄어들고, 밖에서는 실망하고 의원은 시민단체를 원망하게 된다고 하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0의 요구를 100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나 역시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 실망과 원망이 교차한다 해도 끝까지 노력할 것 같다. 30~40%을 70~80%로 늘리도록 계속 노력해보자고 얘기할 것 같다. 물론 나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순간, 오히려 실수하겠지. 중요한 것은 누구와 끝까지 네트워킹을 유지하는가 아닐까.
"'탈당 러시' 후 높아지는 당 지지율, 당이 선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
프레시안 : 세월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세월호 특별법 개정 문제가 논란이다. 기한 문제도 있고, 예산도 문제다.
박주민 : 7월 쯤 세월호가 인양된다고 하는데, 특조위는 6월에 업무를 마치게 돼 있다. 특조위가 배를 보지도 못하고 끝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20대 국회가 어떻게 구성될지 예상하기 힘들어서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야권이 조금 더 많은 의석을 가져와 의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좀 쉽게 풀릴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거리의 변호사'였다. 최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일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선거 때 세월호 이슈를 내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주민 : 당에서도 "박 변호사가 당의 약한 고리가 될 것이다, 박 변호사가 해 온 일이 자기 발목을 잡을 것이다"며 걱정하는 얘기도 듣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 유연성도 필요하지만, 세월호 문제나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일들이 야당의 본질적 필요성에 부합한다고 본다. 야당이 자기 본연의 위치에 뿌리를 못 내리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좋은가도 생각해봐야하고, 총선 전략으로 보더라도 필요하다.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니까 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나. 이 당이 더 선명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의 표현이다. 실망하고 등 돌렸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것 아닐까.
프레시안 : 국회에 들어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박주민 : 19대 때 여러 의원들과 같이 추진하다 무산된 일들이 굉장히 많다. 그 중 하나가 국책사업을 할 때 주민 의견을 묻도록 하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주민의 의견을 사전에 묻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는 특히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설득될 때까지 시작을 못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정부 때 비슷한 법이 추진된 적이 있다. 사전에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줄여 전체적인 비용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실패했다.
다시 추진해보고 싶다. 그런 법이 있다면 밀양 할머니들이 목에 쇠사슬 두르지 않아도 된다. 밀양 할머니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공산당'이라고 그런다. 그 분들은 국민을 무시하고 짓밟은 것이 공산당이라고 배웠는데, 박근혜 정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먼저 협의하고 존중하면 밀양 할머니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강정 마을만 해도, 강정 마을 사람들이 제대로 된 마을 총회를 한 번만 열게 해주고 한 표라도 더 찬성이 많이 나오면 포기한다 그랬는데 그것조차 정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또 우리 헌법에 따르면 국제조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돼 있는데, 이 부분이 워낙 모호하다 보니 정부가 조약에 준하는 협약을 마구 맺는다. 위안부 협상도 마찬가지다. 피해 당사자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우리가 도장 찍었으니 양해하고 받아들여라? 그건 폭력이다. 국가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우리도 통상 관련 조약은 절차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외에는 없다. 전부터 이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 밖에도 실질적 지방자치제도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여러 제도 문제도 손을 봐야 한다. 집회 한 번 하려면 바늘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민주 국가인가?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한 번 뽑으면 왕으로 모셔야 하는 나라다. 관련 제도들을 손 봐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일들을 하려면 우선 원내에 들어가야 한다.
박주민 : 제 상품 가치를 어떻게 느낄지, 달다고 느낄지, 쓰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써도 몸에는 좋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서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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