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 이명박과 '역대 정부' 박근혜
위안부 협상도, 경제민주화도 역대정부에서 못했다는 박근헤 정권의 오만
"나도 한때"를 입에 달고 산 대통령이 한때 있었다. 비정규직을 만나도, 영세 상인을 만나도, 실업 청년을 만나도 그렇게 말했다. '국민성공시대'를 부르댄 이명박이다. 자기 과시의 오만이자 기만극인 '나도 한때'는 임기 내내 이어졌다.
후보시절 '국민행복시대'를 부르댄 박근혜가 요즘 즐겨 쓰는 말은 '역대 정부'다.
역대 정부 누구도 못한 일을 했노라는 으름장이 그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그렇단다. 잘못된 협상의 첫 단추를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끼운 엄연한 사실마저 생먹는다. 일본과 합의 전에 당사자들과 논의하지 않은 행태에도 성찰은 없다.
'역대정부'론은 마침내 '경제민주화'까지 이르렀다.
청와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집권 뒤 자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를 보장하려고 '규제 완화'만 줄곧 외쳐온 정권 아닌가. 부익부빈익빈, 비정규직과 영세 상인들의 고통, '헬 조선'을 호소하는 청년들의 아픔이 생생한데도 언죽번죽 자화자찬이다. 저들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대통령 담화에 확연히 드러난다.
담화에서 박근혜는 "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라면서 "월남이 패망할 때 지식인들은 귀를 닫고 있었고, 국민들은 현실정치에 무관심이었고, 정치인들은 나서지 않았다"고 훈계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1975년 4월의 베트남과 2016년의 한국 상황을 뜬금없이 견주는 대통령 담화에 자신들은 '조중동'의 하나가 아니라며 사뭇 차별성을 내세우는 신문이 누구보다 용춤 췄다.
중앙일보는 1975년 4월29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부질없이 앉아 갑론을박 토론을 하고 시간을 허송할 때가 아니"라고 한 발언이 박근혜가 "제가 바라는 것은 정치권이 이 순간 국회의 기능을 바로잡는 일부터 하는 것"이라고 한 말과 닮은꼴이라고 보도했다.
박근혜도, 중앙일보도 '월남'정권이 '패망' 직전에 얼마나 부패했고 국민을 기만했는가를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2016년의 한국과 1975년의 '월남'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기실 '월남'과 한국을 견주는 일은 정권 스스로 누워 침 뱉는 꼴이다. 부패하고 신뢰를 상실한 정권이 붕괴된 역사적 사실 앞에 성찰은커녕 지식인, 국민, 국회 탓을 하는 부녀 대통령의 인식이 빼 닮았을 뿐이다. 국민을 기만하며 권력을 더 거머쥐려는 탐욕도 어금버금하다.
박근혜는 '진실한 사람'을 거듭 들먹이고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국회가 제대로 국민을 위해서 작동되지 않겠느냐"고 부르댔다. 총선을 석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 노골적 선거개입이다. 조중동과 권력이 장악한 방송3사의 침묵으로 대통령의 정략적 언행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자본의 이익 추구에 좋은 법안을 입법해달라는 '국민서명운동'에 나서고, 그 현장에 대통령이 나타나 서명하며 '국민'을 거론하는 풍경은 세계적 정치 코미디다.
딴은 대학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미 실현했노라고 무람없이 홍보하는 저들이 아니던가.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과 핵심참모들의 언행은 농락 수준이다.
새삼 조중동과 방송3사의 고위직 '언론귀족'들에겐 묻고 싶진 않다. 대선과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준 동시대인들에게는 정말이지 묻고 싶다. 지금 권력 쥔 자들이 자찬하는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었는가?
경제민주화가 구현되고 있는가?
기업인들의 이익단체가 앞장선 서명운동이 과연 '국민 목소리'라고 생각하는가?
대통령 자리에 3년 넘게 군림했는데도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 경제가 이 꼴이라는 박근혜의 훈계는 역대 정부 최악의 책임 떠넘기기다.
국민성공을 부르댄 이명박의 '나도 한때'가 국민 앞에 자기 과시의 오만이자 기만극이었다면, 국민행복을 부르댄 박근혜의 '역대 정부'는 그 오만과 기만의 '종결자'다.
입력 : 2016-01-19 09:37:18
노출 : 2016.01.19 13:29:18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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