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정체성 가운데 '친일과 친일파'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영향력 있는 소속 의원들 스스로도 밝혔듯이 새누리당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이익집단'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당명과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미화하고 정당성을 대변하는가 하면 친일매국행위를 '애국'으로 둔갑시키거나 '불가피한 선택'으로 강변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고, 반면에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하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빨갱이' 또는 '종북'으로 분류, 선동•성토해 왔다.
이런 정체성과 이념은 정부정책으로도 반영되어 왔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같은 것이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 JTBC 뉴스룸 [ 이번엔 '친일인명사전' 논란…새누리 즉각 철회하라 ]
"빨갱이 나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치단결합시다"
새누리당을 대표하는 지도부와 소위 '보수'를 자칭하는 극우세력이 반대여론을 죽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골메뉴는 '빨갱이', 그리고 '종북'이다. '빨갱이'란 공산주의자, 특히 북한체제를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종북'이라는 말 또한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이므로 빨갱이와 종북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동의이어(同意異語)다.
그러나 실제로 '빨갱이'로 지칭되고 '종북'으로 지명된 사람들 가운데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체제 추종'이 증명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해 '빨갱이' 또는 '종북'이라는 표현을 했다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만일 '빨갱이'나 '종북'이 증명될 수 있다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현행 법체계와 국정원을 위시한 수사기관의 수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졸렬한 선동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임종국 선생은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생하고 1956년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시작품 <비 碑>(文學藝術, 1956.11.)와 <자화상 自畵像>(思想界, 1960.1.) 등이 추천되어 시작 활동을 하였다.
1929 경남 창녕 출생
1952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59 《문학예술》誌에 시 <비(碑)>발표로 등단, 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詩作 활동
1965 굴욕적 한일회담을 계기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연구 시작
1966 《친일문학론》 《이상전집》 출간. [친일문학론]을 낸후 그의 친일연구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군사,예술 분야 등 사회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고 임종국은 친일파 개인의 친일행적뿐 아니라 그 집안의 친일내력까지도 연구했다.
1968 고려대학교 4학년 재입학
1969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70 《발가벗고 온 총독》 출간(선문출판사)
1974 《한국문학의 사회사》 출간(정음사)
1978 《醉漢들의 배》 출간(평화출판사)
1980 《韓國社會風俗野史》 출간(서문당). 여전히 친일파가 활개치는 세상, 친일파와 비굴한 학계의 외면 속에 아사 지경에 이를 만큼 가혹한 생활고와 학자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오직 연구에만 전념한다. (천안의 한 외딴집 요산재(樂山齋)에서 병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계속된 집필 활동)
1981 《정신대 실록》 출간(일월서각)
1982 《일제침략과 親日派》 출간(청사)
1984 《밤의 일제침략사》 출간(한빛출판사)
1985 《일제하의 사상탄압》 출간(평화출판사)
1986 《한국문학의 민중사》 출간(실천문학사)
1987 《친일논설 選集》 출간(실천문학사)
1988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1》 출간(일월서각)
1989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2》 출간(일월서각).
1989 '친일파총서' (전10권) 발간을 계획하고 1994년 완간 계획으로 저술 중 폐기종으로 타계.
일제 강점기에 임시정부의 김구, 의열단의 김원봉을 비롯하여 홍범도, 김좌진, 윤세주, 이회영 등 투철한 조국애와 민족정신으로 항일독립투쟁의 선봉에 섰던 수 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면 친일파들이 득세한 나라에서 죽어가는 민족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외로운 고난의 투쟁, 임종국의 삶은 그 어느 독립투사 못지 않은 민족사의 빛이었다.
서울대의 이어령, 고려대의 임종국
임종국은 대학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되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친일파들의 천하에서 '친일문학론'을 출간함으로써 비열한 풍요가 아닌 의로운 궁핍을 선택했다. 평생 친일 매국의 역사를 찾아 내고 입증하며 죽어 가는 민족혼을 회생시키고자 '고난하지만 빛나는 삶'을 선택했다. 그의 의로운 고난은 수 많은 제2의 임종국, 역사독립군을 양성하고 배출하였으며 오늘도 그 대열은 멈춤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임종국의 숫자 '4389'
임종국 선생의 업적 중 하나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매국노의 숫자가 바로 4389다. 일제의 주구가 어찌 4389명에 불과하겠냐만, 최대한의 동족적 관용으로 걸러진 첫번째 숫자이며 뒤를 잇고 있는 역사독립군들에게 남겨진 과제이기도 하며, 또한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의추진위원 숫자이기도 하다.
거짓 역사, 비틀어진 역사의 피난민으로 살 것인가?
일제에 의해 우리 역사는 축소되고 왜곡되고 변질되고 삭제되었다. '조선사편수회'의 목적은 바로 일제를 합리화하고 일제의 주구들을 양성하기 위한 '한반도역사조작'이었다.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일제의 비열한 조작에 동조하고 세뇌된 친일 매국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 땅의 민족혼은 회생이 불가능한 '의식불명'의 직전까지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여기에 임종국 선생이 민족사의 새 동아줄을 맬 굵고 긴 쇠막대를 박은 것이다. 민족혼의 기사회생이 시작된 것이다.
백년도 못살 인생, 불의에 방관하며 비루하게 살다 갈 것인가, 민족사의 동아줄로 후대의 빛이 될 것인가?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를 받았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 변절 문인이다. 또한 이 상의 제정을 제안한 문효치 이사장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문종구의 증손자다. 작년 8월에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통해 친일 후손임을 밝히고 증조부의 죄과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른바 '친일 공과론'은 친일매국노와 그 후손들이 '면피용'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논리이다. "잘못이 있지만 잘한 것도 있으니까 잘한 것은 칭찬하자"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친일매국노의 잘못은 최고최악의 민족과 국가반역으로써 대부분 극형에 처해져야 할 중죄다. 만일 그들의 '잘한 일'을 칭찬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잘못한 일'을 단죄하고 나서 생각해 볼 일이다.
범죄자는 형벌을 받아야 하고 범죄행위로 얻은 모든 것은 몰수되어야 하며 거기에 덧붙여 추징까지 하는 것이 정상적인 해결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현재까지도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한 인사들이 발견되는 즉시 가차없이 처단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논평을 내고 철회를 요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전문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 육당, 춘원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
한국 문단에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문인협회(문협)가 지난 7월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문효치 이사장이 제안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별 이의 없이 가결했다고 한다. 또 내년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무정' 발표 100년을 기념해 심포지엄도 열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누구인가?
최남선(☞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은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서 일제의 역사왜곡과 식민사학 수립에 협력하였으며, 1938년부터 5년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친일 고위관리를 양성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시작으로 임전대책협의회 등 각종 친일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징병·징용·국방헌납 등 전쟁동원을 선전하는 시국강연과 좌담회에 단골 강사로 참석하였고 〈보람 있게 죽자〉 외 수많은 친일논설을 발표하였다. 하늘이 준 재능을 민족 반역의 길에 내다버린 안타까운 지식인인 것이다.
이광수(☞친일인명사전 수록내용)는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내선일체와 조선문학〉 〈황민화와 조선문학〉을 쓰는 등 조선문학을 일제의 선전도구로 만드는 데 앞장섰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자 가야마 미쓰오(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꾸고 〈창씨와 나〉를 기고하는 등 창씨제도를 적극 선전하였다.
1943년 징병제 실시가 공포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출진할 것을 권유하였고, 〈지원병장행가〉 〈징병제의 감격과 용의〉 등을 기고하여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신념으로 일제에 협력한 최고의 친일 이데올로그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일제하 행적은 이번 문협의 결정이 몰가치적이고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이들의 죄는 온 민족의 신뢰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서도 신념을 꺾고 앞잡이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 아까운 재능을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응하는 일에 남김없이 쏟았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1919년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항일의 상징적 인물이었음에도 친일 변절의 길로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설혹 '문학적 공로'가 있다 한들 어떻게 이들의 죄상을 가리겠는가? 더구나 민족지도자로 행세해온 지식인의 변절은 그 악영향이 일신의 부귀영화에 집착한 매국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후세가 이들에게 한층 더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기념하는 상에는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를 표상으로 삼아 본받자는 의미일 터인데, 과연 육당과 춘원이 남긴 자취가 그렇게 향기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문효치 이사장은 "육당과 춘원의 친일 부분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며,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두 분이 작품으로써 문학사 건설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인데 친일 행적 때문에 문학적 자산까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문학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형적인 '공과론'으로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친일파와 친일비호세력들의 변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문학적 자산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문 이사장의 핑계와 달리 최남선과 이광수에 대한 연구는 차고도 넘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최남선과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되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물론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된 특급 친일파라는 사실이다.
국가와 민간이 거듭 반민족행위자로 못박은 자들을 기념하는 상을 굳이 제정하려는 문협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공연하게 역사쿠데타를 자행하는 세력에 편승하여 무엇을 도모하려 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문 이사장은 작년 8월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증조부 문종구의 친일에 대해서 반성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그의 어려운 고백에 찬사를 보내면서 문인으로서 자존감을 살린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지금도 선대의 과오를 대속한 문 이사장의 발언이 거짓이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 때의 진정성을 잃지 말기 바란다.
시대정신은 과거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에 있다. 백번 생각해 봐도 이번 육당과 춘원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 결정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다. 한국문인협회는 반역사적이며 반문학적인 이번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문학인의 시대적 책임을 다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면 더 이상 문학이 될 수 없다. 다산은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포하려 하자 교육부가 12일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나섰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중고등학교에 대한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나서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014년 말 서울시 의회는 2015년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기로 하고 예산 1억8천만 원을 책정했다. 이미 사전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를 제외한 583개 중.고교가 배포 대상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까지 동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예산이 1년 넘게 집행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세력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해를 넘겨 예산이 불용처리될 지경에 이르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일 어렵사리 구입 예산 교부에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 알려지자 먼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 학부모단체들이 '정치 사전' 운운하며 배포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 수구언론들이 일제히 강제배포라고 부당성을 지적하며 거들었다. 11일에는 급기야 자율교육학부모연대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단체가 서울행정법원에 예산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정해진 수순이었을까? 교육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12일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절차를 문제 삼으며 배포중단을 강박하고 있다.
배포를 반대하는 논리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친일인명사전』의 정치적 편향성이다.
둘째,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다.
셋째,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시각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친일인명사전』이야말로 객관성과 엄정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친일인명사전』은 철저하게 전거에 입각해 서술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박정희 장지연 장우성 엄상섭 홍순일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한결같이 원고패소로 판결한 것도 『친일인명사전』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객관성과 엄밀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친일인명사전』에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밀접한 이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로 『친일인명사전』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 임문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스승 백철을 비롯해 다수 지도위원 운영위원들의 선대와 스승들이 등재되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의심하는 자체가 터무니없는 시비에 지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연구소를 종북좌경으로 음해하는 자들의 주장과 달리 월북인사를 포함한 북한 정권의 고위급도 다수 이름이 올랐다.야권의 정치인들에게 관대했다는 비난도 억설일 뿐이다. 신기남 의원의 선친 신상묵, 홍영표 의원의 조부 홍종철 등이 이를 반증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야권의 정치인들은 선대를 대신해 과오를 깊이 반성한 데 비해, 여권의 정치인들은 친일행적에 대한 부정을 넘어 애국자로 둔갑시킨다는 점이다.
『친일인명사전』보유편과 개정판에는 초판에서 자료의 한계로 인해 일시적으로 보류하였던 지방과 해외의 반민족행위자가 다수 추가될 예정이다.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오랜 논의를 거쳐 확정한 선정기준에 부합한다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친일인명사전』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사례와 증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 2009년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왼쪽부터)이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했다.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 발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공신력이 없는 일개 민간단체라는 폄하도 설득력이 없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각 분야의 근현대사 전공교수와 전문가 180여명이 참여한 학계를 망라한 조직이며, 이를 뒷받침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최대의 근대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권위있는 연구기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신력은 정부부처나 사법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심지어 검찰조차 연구소에 인물정보 조회를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사업 재검증, 국가보훈처의 서훈 심사대상자에 대한 친일행적 조회, 문화관광부의 '이달의 문화인물' 검증, 여성가족부의 '한국 최초의 여성인물' 검증 등 그 예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거꾸로 말하자면 정부는 수천 건에 이르는 인물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조회했다는 것이 아닌가. 국가보훈처가 2011년 4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한 엄청난 결정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친일인명사전』 배포가 교육현장의 자율권 침해라는 교육부의 주장도 가소롭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각급학교에 대한 도서 배포 등 여러 차례 특정 이익단체를 지원한 전례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무한 배려를 생각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
또 각종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는 모양인데 교육부가 언제부터 현장의 자율권을 그다지도 존중했는지 되묻고 싶다. 그렇게 자율권을 존중한다면 자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제나 걷어치우기 바란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창립25주년기념 특별좌담회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의 의의를 이렇게 비유했다.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했다(맹자 등문공 하)는 말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고 나니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친일청산'을 한사코 반대하며 난신적자의 길을 굳이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역사란 불편한 진실도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필자소개>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를 진행했다. 친일문제와 한일관계 등 근현대 과거사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법정에 선 역사정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 「74년 조직(세칭 '인혁재건위')사건의 운동사적 의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의 의미와 쟁점」 등의 글이 있고, 『일제협력단체사전』,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 경희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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