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위안부 재단지원과 소녀상 철거는 패키지"

일본 관방 부장관 발언 파문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핵심 인사가 "일본군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과 소녀상 이전이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고 공개 주장해 파장이 예상된다.

이는 일본 정부가 약속한 10억엔 출연과 관련, 소녀상 이전이 사실상의 전제 조건임을 드러낸 것이어서 한일간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부(副)장관은 지난 6일 밤 BS후지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과 소녀상 이전 중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에 "소녀상이 어떻게 되느냐, 뭐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한일간 합의문에) 쓰여있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양국간 관계에서 말하자면 패키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아베 총리의 최측근 인사다. 지난해 말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집권 자민당 일부 간부들이 소녀상 이전과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적은 있지만, 정부 고위관리가 이런 입장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기우다 부장관은 이어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이냐는 매우 델리킷한(미묘한) 문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최종적'인 만큼 전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단이 설립돼) 설립기념식을 하는 날에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거기서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이런 발언들을 TV에서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은 '재단 설립=소녀상 이전'이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여론의 힘을 통해 기정사실로 굳히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 정부를 압박함과 동시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보수층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략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재단설립 문제와 소녀상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등록 : 2016.04.07 21:20
수정 : 2016.04.07 21:20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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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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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진정한 보상 여부 당사자만 판단 가능"

"한일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작년 12월 한일 간의 합의가 발표된 직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리더십과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발표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2016년 새해 전화 통화에서는 "국교 정상화 50주년의 해가 가기 전에 이번 협상이 타결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환영의 뜻을 표시내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의 '한일합의 지지' 발언에 대해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박사는 페이스북에 '반기문 총장님, 국민이 분노하고 아파하는 '한일협상 지지 발언' 취소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려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표창원 박사 페이스북 글 바로가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이스마트 자한(오른쪽)위원이 7일 일본 위안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3월 7일(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각)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일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 정부에 공식사죄와 배상을 하라고 권고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 명확한 책임인정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 일부가 세상을 떠났고 일본 정부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위안부 피해문제에 관한 책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비판했다.

특히 일본이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삭제한 점을 지적하면서 교과서에 이를 적절히 반영하고 학생이나 일반인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주문했다.

덧붙여서 "최근 위안부 책임에 관한 일본지도자나 관료의 발언이 늘고 있다""피해자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삼가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3월 8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위원회는 하나의 의견을 냈고, 반 총장은 자신의 견해를 말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위원회가 내놓은 견해가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반기문 총장의 권한이 미치지 않으며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지난해 6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3월 10일(현지 시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안에 대해 "생존자들이 진정한 보상을 받았는지는 그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며 사실상 '미흡'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자이드 대표는 오는 14일 인권이사회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6월 서울에서 개소한 북한인권 현장사무소 현황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다.

 

관련보도

▶경향신문 반기문 "박근혜, 아베가 보여준 리더십 평가"

▶한국일보 유엔 "한일합의로 위안부 해결된 것 아니다"

▶한국일보 유엔인권대표 일침, "위안부 진정한 보상 여부 당사자만 판단 가능"

▶연합뉴스TV 유엔 "반총장 위안부 타결지지 표현은 국제사회 일반 견해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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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향 2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영상 : 슬픈귀향 2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뉴스타파>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에 1층짜리 건물 '은월루'가 있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곳이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1999년만해도 은월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풍월루'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다. 이 두 '위안소' 모두 일본군 군속을 지낸 조선인 윤두만이 일제 해군의 지휘를 받아 만들었다. 일본군 일반 병사들은 은월루, 고급 장교들은 풍월루를 찾았다고 한다.

 

▲ 북한 함경북초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은월루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 두 곳의 영상을 입수해 공개한다. 또 지난 주에 이어 또다른 4명의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도 함께 공개한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1999년, 2015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담아온 영상이다.

 

 

북한에서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부' 전쟁 범죄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1938년 일제 육군성 법무과가 작성한 '군 위안소 종업부 모집에 관한 건'에는 현지 부대 사정에 따라 군 '위안소'를 운영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놈들이 와서 하는 행위가 뭐냐 접수에 와서 먼저 그 앞에 전시된 '위안부' 사진들을 쭉 봅니다. 자기가 지정된 그 번호에 가서 줄을 서게 됩니다. 복도에 있는 놈들이 시간을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못 살게 문을 걷어찹니다.

신낙천 /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 주민

 

1944년에 연합군이 촬영한 이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가 얼마나 잔악한 피해를 입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만삭 소녀가 북한 거주 '위안부' 故 박영심 할머니다. 이토 다카시는 1999년 박영심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했다.

 

▲ 故 박영심 할머니는 일제가 항복한 뒤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오른쪽 임신한 소녀가 박영심 할머니다.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는 218명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끌려가기 전에는 식모, 보모, 가사노동 등의 직업을 가졌던 조선의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이 평범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일종의 군수품 취급을 당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17세에 중국 난징의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3년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 뒤에는 싱가포르에서 1년, 미얀마 전쟁터로 끌려가 2년. 모두 6년동안 지옥 같은 곳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본군의 만행에 저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고통과 상처였다.

 

▲ 故 박영심 할머니(1921-2006)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일본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콱 쨌지요. 뭐 피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중국 병원이 있어서 이거 가서 꿰매고… 상처가 한 50cm 될 것 같아. 그 일본놈이 정말 만행을 한 생각하면… 17살 먹었다고 해도 아기입니다. 아기. 정말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습니다.

故 박영심 할머니

 

▲ 故 곽금녀 할머니(1924-2007)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장교들이 들어와서 막 안고 그런 거 막 싫다 그러니까 이 손을 잡아당겨서 비틀면서… 나이 16살 먹은 아이가 알긴 합니까. 자궁이라는 건 조그맣고 하니까 그런 다음에 처음 깨서 보니까 아래 피투성이가… 걷지를 못하고 그렇게 악독한 행동을 해놓고서는 자기 잘못을 빌지 못하고. 여자 20명이 다 그랬습니다. 16살, 17살 먹은 소녀를 끌어다가…

故 곽금녀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는 매독 예방주사를 맞아가며 일본군에 희생당했다.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매독 주사의 부작용은 불임이다.

 

▲ 故 로농숙 할머니(1920년 생. 생사 불명)는 16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주사 이름이 606호라 그래요. 그런데 그것 맞으면 아이가 안 생긴다고 해서 놓더구먼요. 한 주에 한 번도 놓고 한 달에 두번도 놓고 그렇게 해요. 그 주사 맞으면요 한 30분은 정신이 없어서 드러누워 있어야 해요. 군복을 입고 들어와서 주사를 놓아요.. (일본군이) 제일 많이 올 때가 일요일, 한 30명 씩 오는 날도 있고…

– 故 로농숙 할머니

 

북한의 '일제의 조선 강점 피해조사위원회'는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 여성 등 아시아 각국에서 20만 명을 강제로 끌어와 일본군에게 '성봉사'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활발했던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동아시아 곳곳에 있었다. 1942년 일제 육군성 과장회의 업무일지에는 당시 일본군 '위안소'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등에 400여 곳이나 설치돼 있다고 기록돼 있다.

 

▲ 故 유선옥 할머니(1923-2003)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어디 일절 나가지도 못하게 한단 말이야.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하는 식으로 모가지 툭툭 잘라서 우리 앞에 주고 벤 건 가마에 넣어다 삶더구먼. 삶아서 너네 한 모금씩 먹으라고 먹이더라고 강제적으로 먹여줘요.
故 유선옥 할머니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 기록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99년 이토 씨가 처음 방문했을 때 남아있던 일본군 '위안소'인 '풍해루'는 16년 만에 사라져 밭으로 변해있었다. '은월루도 눈에 띄게 훼손되었다.

 

 

일제 강점기, 그 누구보다 피눈물을 흘리며 평생을 살아온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통스러운 증언을 남긴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시 지옥 같은 나날들을 회상하며 세상에 이야기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난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요구하는 건 보상을 우리 죽기 전에 해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것도 국민 기금으로 하지 말고 나라의 돈으로 하라. 나라가 할 일이지. 국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막 터져오고 또 터져오고 내 배가 찢어진 것 생각하면 어떻게 할지 몰라.

– 故 박영심 할머니

 

뉴스타파 [목격자들] 슬픈귀향 2부

2016년 3월 11일 15시 24분 금요일



'슬픈귀향' 1부 보러가기

 

 

 

Posted by 망중한담

일본군 '위안부'는 단순한 '성 노예'가 아니었다.

'위안부'에게 가해진 반인륜적인 행위들은 일제와 일본군의 실체다.

그들은 조선의 처녀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성노예 뿐만이 아닌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심심풀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그녀들의 육신과 영혼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는 그녀들을 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극우'로 부활하는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인의 내면에 잠재한 '비인간'의 발현일 수도 있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영상 : 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뉴스타파>

 

슬픈 귀향

 

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사람이 갖고 있는 잔악함의 끝은 어디일까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제작진에게는 이같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이토 씨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20년 넘게 취재해왔습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습니다. 특히 99년에 이토 씨가 영상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군의 잔악함이 여과 없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10월 기준, 218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다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이토 씨가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2주에 걸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하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2년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일제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됐습니다.

 

"도교상이라는 놈이 "여기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에게 몸 바쳐 말 잘 들으면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그 장교 놈이 한 며칠 와서 그렇게 성노예 생활을 시작하더구먼. 이제 12살 난 게 어머니 품에서 어린양 노릇하던 아이가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그놈이 들이대니까 아이 아래가 다 파괴돼요. 온통 구들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이래도 군인들이 쭉 들어와서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 리경생 할머니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했던 고문과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었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자신이 열여섯 살에 임신이 되자 일본군은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뒤 자궁을 들어냈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이 배에 아이 있다고. 임신했다고 '저년을 써먹어야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겠으니 저년 자궁을 들어내 파라'"

– 리경생 할머니

 

리경생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북한 지역 곳곳에서 자신도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북한 단체인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70%나 됐습니다. 강제 연행된 경우가 96명으로 44%, 일자리를 미끼로 유인당한 경우가 74명으로 34%, 나머지는 빚에 팔리거나 근로정신대에 모집됐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43명이 공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철부지 13살이 뭘 압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 성기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더니 잡아 둘러 매쳐놓고 그 칼로 쭉 잡아 찢습니다. 그렇게 하곤 자기 할 노릇을 했는지 까무러쳐서 나는 모릅니다. 벗지 않곤 말이 되지 않아."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위안소' 끌려감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일본군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문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였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성고문을 당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옥순 할머니(1920~1998)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당시에 겪었던 고문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이 고문을 받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요. 문신을 독약으로 하는데 어떻게 정신을 안 잃어. 살이 다 헐었어요. 바늘 쏙쏙 들어간 자리죠. 이거 봐. 그 자리에서 열두 명이 죽었는데…"
– 정옥순 할머니

 

'위안부'가 되기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돌아오는 것은 일본군의 가차 없는 학살이었습니다.

 

"한 처녀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너희 개 같은 놈들한테 이렇게 맨날 이 단련을 받겠나?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니까 일본군이 "어 좋다." 그 다음에는 가마니를 하나 끌어다 놓고 졸병을 시켜서 "모가지 잘라라." 모가지 잘라 가마니에 넣고 "팔 잘라라." 팔 잘라서 가마니에 넣고. "다리 잘라라." 다리 다 잘라 담고 몸뚱이도 그저 몇 토막을 쳐서 가마니에 다 주워 담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는 처녀들이 다 악악 소리치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리경생 할머니

 

이런 광기 어린 일본군의 학살에 죽어 나간 '위안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 400명 데려다 놓고 하룻밤에 40명씩 타면서 아이들이 아래 하초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 됐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 팬티만 입혀서 이 하초를 쇠막대기로 다 지졌다. 왜 말 안듣냐고 지지고… 말 듣겠느냔 하고 또 지지고. 그렇게 아래 하초가 다 데여서 번직번직하니 거기 껍데기가 쭉 벗겨졌는데 군인들이 40명씩 또 달라붙더라."
-정옥순 할머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가며 저지른 학살은 '엽기' 그 자체였습니다.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못판에 못을 300개를 심었어요. 그게 못판에 팬티가 다 찢기고 하초에 닿으니까 살에 구멍이 뚫려서 국숫발 같이 피가 팍팍 뿜어요. 그렇게 15명을 죽여 놓고서는 "너희 계집 애들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말 안 듣는 계집애들 죽이는 건 개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다" 그렇게 말했다. 내가 피 눈물이 나와."
-정옥순 할머니

 

리상옥 할머니(1926~2005)는 '위안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성고문과 함께 끌려간 동네 친구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랑 같이 온 탄실이, 영순이. 하루는 신음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 방이 아니고 남의 방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이렇게 죽는 거다'하고 몇 달 지나갔어요.

리상옥 할머니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리상옥 할머니는 그 당시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60년동안 홀로 떠안고 온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2005년 숨졌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도 하나 없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나요? 당신네도 아들딸 있겠지요. 나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았어요. 나는 이제 다른 것 바랄 거 없어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 60년이 됐어요. 60년. 생각해보세요. 나도 남들이 잘사는 거 보면 부럽고 얼마나 가슴이 터져오는지 알아요?

리상옥 할머니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뉴스타파 [목격자들] '슬픈귀향' 1부

2016년 3월 4일 19시 17분 금요일



▷ '슬픈귀향' 2부 보러가기 

 

 

 

Posted by 망중한담

위안부 할머니의 비극…'소녀이야기' 10분만 봐주세요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일제의 위안부 시설에 끌려갔던 고 정서운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김준기 감독의 동의를 얻어 페이스북 한겨레 페이지에 실었습니다.

'소녀이야기'는 일본 경찰에 끌려간 아버지를 구해주겠다는 이장의 말에 속아, 1937년 인도네시아로 끌려간 정서운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 할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8년의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지만,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은 2004년 세상을 떠난 정 할머니의 실제 육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에 끌려간 할머니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소녀이야기'를 본 한겨레 페이지 구독자들은 정 할머니의 슬픈 삶에 공감하면서 "영어나 일어 자막이 들어간 버전도 함께 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이 동영상 게시물은 한겨레 페이지를 통해서만 236만명에게 전달됐습니다. 더 많은 독자분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길 바라며 한겨레 누리집 독자들에게도 공유합니다.

 

한겨레신문

등록 :2016-01-08 15:26

수정 :2016-01-08 16:27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 '소녀이야기' 영문 자막 https://youtu.be/zYjXIye73ks

▶ '소녀이야기' 일어 자막 https://youtu.be/aEm6VYRjmCM

소녀이야기

 

Posted by 망중한담

위안부,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다.

가족과 이웃의 고통이 무시된다면 국익과 경제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최인선 작가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소개합니다.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공장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주나요?

- 먹고 쓰고 어머니에게 보낼 만큼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도 할 수 있다던데..

- 밤엔 온 몸으로 공부할 수 있다

 

배를 타야 하나요?

- 그래

우린 어디로 가고 있나요?

- 가 보면 안다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은데.. 우린 어디로 가고 있나요?

- 입 닥쳐

 

공장에 가는데 머리는 왜 자르죠?

-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는 일할 때 방해되지. 그리고 입 닥쳐 xxx들아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우린 지금 어디로..

- 아가리 닥치라고 했잖아, 이 xxx들아

 

아..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착한 곳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방. 이 작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작게 보인다.

작은 이불

작은 창문

작은 수건

그들 보다 더 작은 나..

 

지금까지 이런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군복 입은 정충들이 내 몸 속으로 파고 들며 살과 피를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다.

아파! 아파! 아파...!

 

난 그렇게 7년 동안 군복 입은 정충들에게 뜯어 먹혔다.

그리고

껍데기만 남겨진 귓구멍 속으로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문이 흘러 들었을 때

작은 방은 내 몸과 함께 핏빛 포말로 흩어져 버렸다.

 

 

순희야..!

미자야..!

복순아..!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글쎄.. 나는.. 엄마가 보고 싶은데......

 

고향으로 가면..

사람들이 우릴 받아 줄까?

 

더럽혀진 내 몸..

혼이라도 받아 줄까?

 

엄...마...!

자료출처 피키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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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ocutnews.co.kr/news/4528157

Posted by 망중한담

軍 위안부협상 전격 타결…한일관계 새국면(2보)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한일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자 난제 중의 난제였던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공개증언하며 그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지 24년여만이다.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겪었고 앞으로도 최종 마무리까지는 진통이 예상되지만 한일관계는 질곡의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새 동력을 얻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1시간 남짓 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기시다 외상은 또 "한국 정부가 전(全)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해,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해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함"에 합의했다.

이로써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은 기시다 외무상이 대신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게 됐고, 합의문에 대한 서명은 별도로 하지 않고 일본 측의 공개 발언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이날 양측의 합의안은 2012년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안했던 '사사에안'보다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관련보도 (제목을 클릭하면 링크 연결)

<경향신문)

한일 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 합의···나눔의 집 “피해자 외면 정치적 야합”

<프레시안>

위안부 평화비, 결국 철거 수순 밟나

-일 외교장관, 위안부 문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 합의

<오마이뉴스>

일본 외상 "위안부 문제, 일본정부 책임 통감"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군위안부 '협상 타결' 발표

<한국경제>

韓·日, '군 위안부' 담판 최종 타결…일본 "책임 통감"

 

CBS노컷뉴스

2015-12-28 15:42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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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외교부 "日 언론 위안부 보도 터무니없다" 유감 표명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돼 있는 위안부 소녀상.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이전 검토를 시작했다는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 보도에 대해 한국 정부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측으로부터 계속 터무니없는 언론보도들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과연 일본 측이 진정성 있는 자세를 갖고 이번 회담에 임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 실명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조 대변인의 지적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 방한 관련 보도를 시작으로 이날까지 협상 관련 내용이 일본 언론을 통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는 데 대한 항의 성격인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기시다 외상에게 연내 한국 방문을 지시한 사실은 한일 간 공식 발표 합의 없이 일본 언론을 통해 먼저 보도됐다.

일본 언론들은 위안부 해법으로 아베 총리가 편지 형태로 책임과 사죄를 언급하고, 일본 정부가 1억엔(약 9억7,000만원)을 초과하는 새로운 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기금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한국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거나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에 한국 정부를 깊숙이 관여시키는 구상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일본 언론을 통해 나왔다.

한편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일본 언론이 양국간 위안부 문제가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소녀상 이전을 우리 정부가 이미 검토 중이라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벌써부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수정: 2015.12.26 17:55

등록: 2015.12.26 17:55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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