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아, 소연아, 예슬아, 아빠는 포기하지 않을거야, "보고싶다"

 

'바라만 봐도 아픈 바다', 하지만 떠날수 없는 동거차도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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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아, 소연아, 예슬아! 보고싶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전남 진도 동거차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바다를 향한 "보고싶다"는 외침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지난 14일 밤. 사고 해역에서 2.6km 떨어진 동거차도 '보퉁굴' 언덕에 단원고 희생자들의 '아빠'가 있었다.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이 아빠 최성용(55)씨, 예슬이 아빠 박종범(50) 씨, 그리고 소연이 아빠 김진철(53)씨가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해 8월부터 동거차도 바닷가쪽 언덕에 천막을 치고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불허로 그동안 인양과정을 참관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그나마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기 위해 이 곳에 감시 초소를 마련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동거차도행이라는 윤민이 아빠 최씨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어 직접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니까 우리 가족들은 믿음이 안 가잖아요.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을 대하는 정부를 보면 도저히 믿음이 안 가니까."

 

인양 업체인 상하이 샐비지의 야간 작업이 이어지자 아빠들은 의자에 앉아 직접 구입한 망원 카메라를 켰다.

 

그러나 밤안개가 짙어지면서 크레인 불빛은 별빛만큼 작아졌다. 그나마도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밤, 아빠들은 인양 감시 대신 배 안에 있던 300명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외로움과 슬픔을 달랬다.

 

"아이들 이름 부르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2년이란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보낸 아픔은 무뎌지지 않았다. 예슬이 아빠 박씨는 "내 아이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적어도 아이를 마음 속에서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예슬이 아직 여행중이라고 그래요. 아직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에요. 우리가 이사하고 예슬이가 꿈에 한 번 나왔어요. 짐을 싸더라고. 너 어디가려고 짐을 싸냐 하니까 아무 말 없이 짐만 싸..."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그동안 희생자 가족들의 인양 참관을 반대했던 해양수산부는 지난 14일 작업에 방해가 없는 선에서 유족들의 인양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가족들은 세월호가 인양되는 7월까지 동거차도 천막에서 감시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인양을 감시하냐고요? 역으로 우리가 정부에게 되묻고 싶어요. 피해자 가족들이 당연히 알 권리인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왜 험지로 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CBS노컷뉴스 [영상]

2016-04-16 17:05

조혜령 기자·강혜인 수습기자·스마트뉴스팀 김세준 기자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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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최대의 '실수'... 또다시 선거는 닥치고

참사 2주기, 여당은 무슨 낯으로 표를 달라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구조와 향후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14년 4월 17일, 대통령의 진도 체육관 방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다시 기억을 해보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을 앞에 놓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며,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 (실종자 수색과 관련하여)  마지막까지 우리가 찾겠다고 그렇게 약속드리고 왔습니다. 실종자 가족께서 이제 끝내도 된다 하실 때까지 할 거니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에도 실종자 구조와 수색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급기야는 자식 잃은 부모들이 "제대로 작업을 하라"며 진도대교를 향해 밤새워 걸었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그것으로 상황 끝

 

 2014년 5월 9일 오전 3시 50분 경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경찰에 가로 막히자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가족협의회는 5월 16일 이른 새벽에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면담 일정을 통보 받았다고 한다. 당시 유가족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에서 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다.

5월 8일 저녁에 KBS를 항의 방문한 후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밤새도록 요구했을 때 따뜻한 물 한 사발도 건네지 않았다. 그런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면담에 섣불리 대응한다면 면죄부만 주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면담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영정이 있는 분향소를 대통령이 다시 방문한 이후에야 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을 했다.

 

명분이야 어찌되었건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고, 그것은 우리 가족이 진상규명을 위해 한 활동 중에서 최대의 실수가 되어 버렸다고 나는 주장한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지만, (참사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이후 언론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이 참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 없는데 마치 다 해결한 것처럼 보도를 했고, 정확히 3일 뒤에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은 종결되었고, 이후 행해진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사실상 승리했음은 이미 알고 있는대로다.

 

대통령의 약속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저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 놓았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회의 국정조사를 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국정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도록 억지를 쓰며 발목을 잡았다. 청문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를 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열망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는 특별법 제정을 방해했고, 특별법에 보장된 조사기간을 단축하고 예산을 삭감해 버렸다. 심지어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야 할 특조위 위원에 특조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불량' 조사위원을 추천했다.

 

특조위가 요청한 '특검 요청'을 일언지하에 깔아뭉개 버렸다.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인양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애간장을 지금도 녹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들이 행한 일의 끝도 전부도 아니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김무성 대표, 유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되돌아 보라

 

2014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린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세월호 유가족 창현 아빠가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 제정 꼭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1일 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유가족들을 향해 "심심한 사과"를 언급했다고 한다. (<민중의 소리> 세월호 유가족에 사과? 김무성의 '만우절 거짓말' 참조) "2년 전 세월호 사고를 생각하면서 저미는 가슴을 안고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개가 웃을 노릇이다.

 

참사 유가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구 후보자 김명연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유세를 하던 중 그런 말을 했나 보다.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 그들이 이 참사의 문제점을 밝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중 2%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지금껏 유가족들을 이상한 집단으로 몰아붙이다가 선거에서 한 표가 아쉬울 때 저렇게 뻔뻔스럽게 말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맞기는 맞는지, 사람이 모인 집단이 맞는지, 이런 생각마저 든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내려갈 사람이지만(솔직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친박이 득시글거리는 정글 속에서 눈치 없는 김무성 대표가 선거 후에도 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도 현직 당 대표가 그런 말을 했다면, 표를 의식하여 변방 한 구석에서 마이크 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자들 불러 놓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을 권한다.

 

그곳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당당하게 탄압했던 것처럼 마음이 변한 이유를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지난 날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며 무릎까지 꿇은 창현 아빠의 외침을 외면한 이유도 설명하고,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가족들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사법체계를 흔드는 그런 결단을 제가 어떻게 내릴 수 있겠나. 어떻게 민간인, 그것도 피해자 가족이 참여하는 민간인에게 어떻게 수사권을 부여할 수 있겠나"라고 했던 지난날 발언의 배경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한다.

 

국회의 '정부 시행령 시정 요구권'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이 찍히자 유 원내대표의 손을 놓아버린 것에 대해서도 변명해야 하고, 대통령이 그렇게도 기억하기 싫어하는 7시간에 대한 의견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정도 된다면 나는 그들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선거가 D-1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가슴 저편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빨리 이 땅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뭔지,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찾아서 실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마이뉴스

16.04.11 21:46l

최종 업데이트 16.04.11 22:19l

글: 박종대(jdp1053)

편집: 이준호(jun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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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떠날 수 없는 유족들 - 동거차도 움막 아빠들의 하루

그 바다를 지키는 이유…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전해야죠"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움막 안에서 지난 6일 세월호 유가족 최경덕씨와 강병길씨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난 6일 오전 올라탄 한림페리3호. 남해바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갑판에서 담소를 나누는 관광객 30여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형색색 나들이복 차림이었다. 뱃길이 시작되자 아기자기한 무인도가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진도 팽목항을 떠난 지 2시간30분. 멀리 7번째 섬 동거차도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담당 승무원이 나직이 "여기가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바다"라고 안내했다. 갑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대화도 뚝 끊겼다.

"아이구, 세상에나…." 한숨이 터져나오고 안타까운 듯 가슴을 치는 사람도 보였다. 더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금방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동거차도에 내렸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딸린 2.91㎢ 크기의 섬엔 35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다 만난 할머니는 "산 잔등에 가느냐. 저 세월호 사람들 좀 제발 도와달라. 너무 불쌍한 아비들 아니냐"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산자락을 가리키며 "노란 리본이 조롱조롱 달려 있으니 따라가라"고 일러줬다.

산벚꽃이 환히 핀 마을 뒷산 대나무숲과 동백 군락지를 지나 30여분 비탈을 올랐다. 산마루엔 소형 몽골텐트 2개와 움막 하나가 강풍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작은 인기척이 움막에서 흘러나왔다. 다가섰다. 비닐 바람막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세 남자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제각기 열여덟 살 아들을 잃은 단원고 2학년 4반 학부모들이었다. 승묵이 아버지 강병길씨(50), 하용이 아버지 빈운종씨(47), 성호 아버지 최경덕씨(47).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들은 10㎡ 남짓한 움막 안에서 모포로 한기를 쫓고 있었다. 장소가 마땅찮아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 패널을 깔고 지은 터라 움막은 계속 뒤뚱거렸다.

 

세월호 인양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움막에 설치한 카메라 렌즈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왔으니 하룻밤 묵고 가시오."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기자 양반도 천장에 묶어내린 밧줄 하나 몸에 붙들어 매시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렸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6일째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은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구난구조회사인 '상하이 샐비지'가 시작한 인양 광경과 과정을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세월호 선박 자체가 참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 증거물이라고 판단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이 일을 맡고 있다. 강씨 등은 벌써 4번째 동거차도에 왔다고 했다.

바다는 '4·16' 그날보다 더 험했다. 갑자기 높아진 파도가 발 아래 절벽을 때렸고, 짙은 안개가 섬을 칭칭 휘감았다. 시계가 뿌연 속에서도 강씨는 영상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화면을 확대해 살핀 뒤 그때그때 4·16가족협의회에 보고한다고 했다. 항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단다. 빈씨는 찬밥과 라면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물을 끓였다. 냄비에서 막 김이 올라오던 오전 11시20분, 강씨가 소리쳤다. "하얀 선박이 샐비지 바지에 접근하고 있어. 못 보던 배인데, 저게 뭐야. 바지에서 크레인으로 큰 짐짝을 옮겨 싣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배 난간에 '德意'(더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중국에서 새로 온 작업선이었다. 이렇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인양 현장은 오후 4시20분 파란색 컨테이너가 작업선에 내려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관측되지 않았다. 강씨는 "바지 위에서 수많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뱃머리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고 뒤편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감춰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정성껏 상황 하나하나를 모아 나중에 진상을 밝히는 검증자료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해질녘부터는 폭우가 쏟아졌다. 100㎜ 이상 내린다는 예보를 전해줬지만, "그보다 더 큰비도 맞아봤다"며 느긋해했다.

저녁식사는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칫국과 깻잎, 멸치볶음, 김 등이 아이스박스 뚜껑에 차려졌다. 밑반찬은 안산집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다고 했다. 움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입에 떠넣던 국물을 쏟기도 했다. 밥을 먹은 뒤엔 '부처손 차'가 나왔다. 1㎞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다 바위틈에서 캐왔다고 했다. 빈씨와 최씨는 차 대신 약봉지를 꺼내 털어넣었다. 빈씨는 지난해 초 어깨를 수술했고, 무릎과 허리까지 무리가 가면서 진통제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도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땀을 많이 흘려 약을 끊을 수가 없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최경덕씨가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요.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만나 정부가 한 거짓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빈씨도 "그동안 받은 온갖 박해와 냉담, 악의적 오해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304명 그 아까운 목숨들을 산 채로 수장시켜 놓고도 거짓말을 해대고, 반성도 할 줄 모르는 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도록 놔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소시민적 생활자세를 탄식하기도 했다. 최씨는 "월급 잘 받고,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하고 드라이브하면 그게 최고 행복인 줄 알았다"면서 "이웃과 사회, 국가에 무관심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고 결국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운명이었다. 예산과 조사기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시작된 특조위 활동이 6월이면 정지된다는 것이다.

빈씨는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4·13 총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여전히 세월호 사고가 단순 해상 교통사고이거나 선사 측의 탐욕, 선장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정도로 보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건전한 비판세력이 선택받도록 도와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씨도 "지금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세월호로부터 의미있는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촘촘한 국가안전망을 짜려면 특조위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정을 넘겨 잠시 비가 그치자 바다로부터 '쿠웅~ 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소리가 뭐냐'고 묻자 "왜 그런지, 작업을 주로 야간에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니 움막을 찾은 어머니들이 "인양을 낮에 해야지, 밤에 하느냐"고 벽에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선체 인양 작업은 2014년 11월 수색이 중단된 뒤 281일이 지난 지난해 8월19일 시작됐다.

미수습자 9명과 선체 인양 비용으로 851억원을 받기로 하고 상하이 샐비지가 맡았다. 이 회사는 세월호 침몰지점 바로 위에 1만t급 바지를 베이스캠프로 차려 놓고, 최대 7000t급의 작업선 4척을 동원하고 있다. 투입된 잠수사만 96명이나 된다. 그동안 선체 안에 남아 있는 유류를 제거하고 유실방지망을 보완한 후 지난달 2일부터 세월호 주변을 가로 200m, 세로 160m, 높이 3m로 감싸는 펜스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미수습자나 각종 유품의 유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달 초부터는 수중 선체 무게를 줄이는 부력 만들기에 나섰다. 선체에 구멍을 뚫어 내부로 대형 공기주머니 27개를 넣고, 선체 바깥엔 대형 풍선 9개를 다는 작업을 이달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이렇게 부력을 만들게 되면 현재 8300t에 이르는 선체 중량을 3300t으로 줄일 수 있어 인양하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밑에 여러 개의 리프팅 빔을 설치한 뒤 인양 밧줄을 바지 크레인에 잇게 된다. 이어 수중에 플로팅도크를 가라앉힌 후 세월호를 약간 끌어올려 도크에 앉힌 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다. 정부는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육지에 끌어온다는 로드맵을 짜고 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동거차도를 오가면서 본 팽목항에는 추모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방파제엔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바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새로 걸렸다. 단원고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인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얼굴과 그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평소 하루 10여명이 찾던 분향소 추모객도 30~40명으로 늘고, 주말엔 100명이 넘고 있다. 7일 경남 양산에서 온 김춘희씨는 "늦게나마 가신 영령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기 당일인 16일엔 전남도·진도군·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추모식과 종교·문화단체가 여는 추모제가 열린다. 참사 후 내내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60)"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 안전장치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4명이 돌아오지 못한 팽목항에 다시 노란색 물결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4.10 22:56:00

수정 : 2016.04.11 09:37:00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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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 투성이 선박관리제도

청해진해운 간부, '승객'에는 관심없고 '배'에만..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청문이 끝났다.
비리나 부정 등의 직접 책임소재에 대한 회피성 답변을 별개로 하더라도 선벅 관리에 관한 법제도, 선박을 관리 및 감독하는 해당 관청과 기관의 부처간 업무 연계나 협력관계, 그리고 업무의 유기성 등에 대한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항간에 계속 회자되던 '세월호 실소유주는 국정원'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청해진해운의 간부들은 사고 후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나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석 증인 

성명

직책

(세월호 참사 당시)

(인양관련 증인은 최근)

김재범

청해진해운 기획관리팀장

김정수

청해진해운 물류팀 차장

홍영기

청해진해운 해무팀 대리

김영소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남호만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증인'갑'

세월호를 인수해 온 1등 항해사

박성규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송기채

청해진해운 여수지역본부장

안기현

청해진해운 해무이사

이상락

한국선급 등록선업무팀장

이성희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장

이율성

한국선급 기본기술팀장

전종호

한국선급 선임검사원

조용선

한국선급 수석검사원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1-김진 '세월호 도입 인허가 및 관리감독'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2-박종운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관계'

 

제2차 세월호청문회 2일차 오전 3-권영빈 '청해진해운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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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조위, 재판증거와 다른 사실 발견

세월호 사고 '시간의 재발견'

청해진해운 '선내 대기방송' 지시

제2차 세월호청문회 오후 시간은 세월호 참사 당시의 선장과 1등항해사, 2등항해사, 조타수, 여객실 직원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김석중 위원은 세월호특조위 자체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CCTV에 찍힌 시간과 실제 시간과의 오차를 '검찰과 법원'이 재판의 근거로 삼은 내용과 2분 여의 편차가 있음을 확인했다.

긴박한 세월호 사고 당시의 상황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편차라는 것이다.

성명

참사당시 직업

강원식

세월호 1등 항해사

강혜성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

김영호

세월호 2등 항해사

박한결

세월호 3등 항해사

이준석

세월호 선장

오전에 진행됐던 제주VTS의 AIS관련 질문에 대해 유지보수업체와 제주VTS센터장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답변(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에 이어 오후 청문에서도 1등항해사와 2등항해사의 '잡아떼기'가 이어졌다.

참사 당시의 여객부 직원은 '양심선언'이라는 뉘앙스로 '대기방송'을 지시한 것이 청해진해운 본사의 담당 대리 요청이었다고 증언했으나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는다.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1 김서중 '세월호 조타기 에러문제, 선장 및 선원들의 사고 대응'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2 장완익 권영빈 '통신장비 유지보수 및 녹음데이터 편집의혹'

 

세월호 2차 청문회1일차 오후 3 김서중 '사고시간, CCTV'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4 김서중 '선내 대기방송'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5 장완익 '평형수, 구조조치'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6 박종운 '퇴선명령, 평형수'

 

세월호 2차 청문회 1일차 오후 7 권영빈 '선내 대기방송'

 

세월호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심심한 위로를 올립니다.

세월호 참사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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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 개최 공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31조제1항에 따라 아래와 같이 청문회를 개최합니다.

2015년 12월 14일 월요일부터 16일 수요일까지 서울 YWCA에서 제1차 청문회를 개최한데 이어 개최되는 2차 청문회입니다.

○ 명칭 :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

○ 일시 : 2016년 3월 28일(월) 09:30 ~ 29일(화) 18:00

○ 장소 : 서울특별시청 8층 다목적홀

○ 주제 : 4·16세월호참사의 원인 및 관련 법령제도적 문제 규명

 

①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②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문제점

③ 침몰 후 선체 관리 및 인양

 

※ 붙임 : '첨부파일' 참조

 

1) 위원회에서 의결한 청문회 증인 및 참고인 명단

2) 청문회 방청 신청 안내

3) 청문회 녹음·녹화·촬영·중계방송 신청 안내

 

이승환 세월호 추모 영상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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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탈출하라 대공 방송" 거짓 보고…왜?

지난 회에 둘라에이스호 도착 이후 언제라도 퇴선 지시만 내려졌다면 전원 구조는 가능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퇴선 지시는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퇴선 방송을 한 적도 없고, 구조를 위해 도착한 해경 123정이 퇴선하라는 대공 방송을 한 적도 없고, 123정 승조원들이나 헬기 항공구조사들이 세월호에 올라타 메가폰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육성으로라도 퇴선 지시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록을 한 번 봐주세요.

ⓒ검찰

 

10시 5분 목포상황실"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는 상황을 문자상황방에 입력하여 상황을 전파, 보고합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 퇴선 지시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신고 이후 목포해양경찰서(목포서) 상황실, 서해지방청찰청(서해청) 상황실, 본청 상황실 등은 해경 내부망인 문자상황보고시스템(코스넷)을 이용하여 서로 상황을 전파, 보고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해경 채팅방을 만든 것입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10시 5분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숫자를 조금 다르게 입력한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양경찰 공무원이, 그것도 정확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상황실에 근무하는 경찰 공무원이, 굳이 키보드를 눌러서 입력을 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문제, 가장 안타까운 문제를.

누구에게 정보를 받았을까요? 그 누구는 도대체 어디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전달받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은 실수나 착각의 범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는 명백한 의혹으로 확정하고자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목포 상황실에서 문자상황방을 담당했던 해경은 확인이 가능합니다. 다수의 진술을 통해 당시 문자상황방 담당자는 목포서 상황실 B조의 이모 경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당장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포해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10시 조금 넘은 어느 시점부터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진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은 곳곳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우선 경찰청입니다.

 

ⓒ박영대

 

위 상황보고서는 경찰청(해양 경찰 말고 육지 경찰을 말합니다) 112종합상황실의 상황보고서(3보)입니다. 우선 여기에서도 10시 18분에 세월호 선장이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선내 방송"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해경에 이어 경찰청도 전파하고 있습니다.

또 목포서 상황실은 단지 "탈출하라고 대공 방송 중"이라고만 보고했지만, 경찰청은 '선장'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면서 탈출 선내 방송의 주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이미 9시 46분경 세월호 조타실을 빠져나와 123정에 올라탔습니다.

그 외 이 상황보고서의 발송일자는 4월 16일 10시 13분인데. 10시 18분의 일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타로 이해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언론입니다. 역시 10시 조금 넘은 시점부터 언론에서도 일제히 탈출 선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세월호의 모든 갑판과 난간이 물에 잠겨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다 물에 잠긴 시간이 10시 17분경이고, 마지막 표류자가 구조되는 시간이 10시 21분경입니다. 즉 10시 조금 넘은 시간은 사실상 세월호가 전복되는 시간대입니다.

해경의 123정과 헬기, 초계기(CN-235) 등은 이 과정을 뻔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언론은 이 과정을 취재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한 목소리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일을 전파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탈출 선내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 전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의혹을 구성합니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해경, 경찰청, 언론이 하나같이 거짓 상황을 전파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오늘 하나의 의혹을 확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듯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잔뜩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상규명을 위해 6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의 서명을 통해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현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28일과 29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세월호 특조위의 제2차 청문회가 개최됩니다. 침몰 원인이 주된 주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문제점,

△침몰 후 선체 관리 및 인양

의 문제와 관련된 증인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으로 정부가 제시했던 것들이 과연 타당한지, 침몰 당시 선원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세월호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도입되었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인양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묻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인양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시민분들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팩트TV, 416TV, 오마이TV, CBS 노컷뉴스, 고발뉴스, 국민TV, 주권방송 등이 청문회를 생중계한다고 합니다. 방청을 오셔도 좋고 중계를 시청해 주셔도 좋습니다. 청문회 이후라도 관심 있는 특정 주제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가져 주실 때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청문회 지나고 뵙겠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 리스트 모두보기▶

프레시안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④]

2016.03.25 08:00:35

박영대 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위원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키는 힘입니다

"<프레시안>은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뭔가 홍보가 잘 안 돼요.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다가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픽도 산뜻하지 않고요. 젊은 친구들도 다가갈 수 있는, 그래서 친구가 많아지는 <프레시안>이 됐으면 해요."

2013년 6월,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이 언론 협동조합이 됐습니다. <프레시안>의 기사에 만족하셨다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도전에 주목 바랍니다.

조합원 / 후원회원 가입화면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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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국정원, 10여차례 "접대" "정기모임" 문서 나와

세월호 참사 한달 전에도 "국정원 접대" 기록… 선사 운영에 개입 의혹, 출금전표는 폐기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 이전 3년간 최소 열두차례 이상의 모임을 가졌고, 국정원 직원에 대한 접대 자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청해진해운의 여러 내부보고 및 결재서류를 통해 확인됐다. 청해진해운의 '출장업무일보'라는 문서에 의하면 여객영업팀 정ㅇㅇ 대리는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여전인 3월5일 백령도 출장을 간 자리에서 국정원 직원을 접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문서엔 "국정원(세기:안보관광 담당자) 접대"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세기"는 국정원의 또다른 이름인 "세기문화사"를 가리킨다. 문서에 나오는 "안보관광"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세월호에 대한 보안측정이 있었던 2013년 3월에도 청해진해운이 국정원 직원에게 식비 등을 제공한 정황이 있다.

▲ 청해진해운 직원이 2014년 3월7일 작성한 출장업무일보. 3월5일에 국정원을 접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013년 4월2일자로 작성된 '세월호 보안측정 검수시 부식비용'이라는 기안서류에는 "세월호의 정상운항을 위한 국가 보호장비 보안측정 검수를 위해 1항차를 관련 기관동행 운항 (국정원,기무사,항만청,IPA 외) 측정시 검사원들의 부식비를 아래와 같이 사용하였기에 보고 드리니 검토 후 재가 바랍니다."라고 되어있다.

위 두 자리에서 접대에 사용된 돈의 액수는 확실하지 않다.

청해진해운은 정부기관을 상대할 시 김혜경 차장이 관리하는 비자금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해 사용했고 출금전표는 김한식 대표와 박기청 상무 등이 확인 후 폐기한 것으로 돼 있다.(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회 증인신문조서 등)

공식적으로는 세월호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측정이 있었던 3월18일~20일, 청해진해운이 '김재범 부장 외 출장경비(3.18~20세월호 국정원 보안점검)'명목으로 134만8천원을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134만8천원의 세부 항목은 식비 74만8천원과 잡비 60만원으로만 표시돼 있다.

연안여객선을 운항하는 중소기업인 청해진해운의 내부 문서에 "국정원 접대"가 나온 것도 이상하지만, 더 큰 의혹은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잦은 접촉이다. 청해진해운 내부 공식문서에 기록된 "면담" "미팅" 등만 4년간 11차례에 달한다. 이는 국정원 직원들과 청해진해운 측의 전화통화나 문서수발신을 제외한 순수한 대면 접촉 횟수다.

청해진해운은 국정원과의 미팅을 연간계획서 상의 한 항목으로 포함시켜 놓기도 했으며, 2012년 업무일지엔 청해진해운 직원이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이라고 기록한 대목도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청해진해운 내부 공식문서들로부터 추출한 국정원과의 일자별 접촉은 다음과 같다.

2011년 1월28일 "국정원 점심식사 미팅(2월 왕복이용 협의 외)"

2011년 9월9일 "백령노선 관계자미팅(국정원)"

2012년 1월9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2년 1월18일 "국정원특별점검"(오하마나호로 추정)

2012년 1월27일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2013년 2월7일 "국정원 미팅"

2012년 2월13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3년 2월21일 "어제 국제터미널 국정원 사무실에 김ㅇㅇ 부장과 다녀왔습니다"

2013년 3월 18-19일 "세월호 국정원 보안점검"

2014년 1월20일 "국정원 미팅(1/20 월)"

2014년 3월5일 "국정원(세기:안보관광 담당자) 접대"

2014년 3월5일 '출장업무일보'의 "안보관광"이나 2011년 "왕복이용" 등의 표현에 비춰보면,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관광상품을 이용했던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2012년 1월과 2월에 있었던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이나 같은달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국정원 미팅"은,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선박운영에 개입했던 게 아닌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 검찰이 확보한 청해진해운 이성희 제주지역본부장의 수첩 사본. 2013년 2월22일자에 "국정원과 선사대표 회의 라마다Hotel 12시"라고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검찰이 확보한 청해진해운 이성희 제주지역본부장의 수첩 사본엔 2013년 2월22일 "국정원과 선사대표 회의 라마다Hotel 12시"라고 기록돼 있다. 2011년부터 2014년 3월까지 총 12차례의 접촉이 이뤄진 셈이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2년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청해진해운과의 어떤 관계도 부인하고 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보고계통도'에 국정원이 들어있는 것에 대해서도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작성·승인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며, (청해진해운 측이)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하여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사고 발생일인 2014년 4월16일과 17일 양일간 청해진해운의 기획관리부장, 해무팀 대리, 물류팀 차장에게 총 7차례 전화를 걸어 이들 직원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고, 국정원이 통화한 직원들 중엔 '해양사고보고'와는 무관한 화물담당자도 있었다.(관련기사: 세월호 참사 직후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7차례 의문의 통화)

무슨 이유로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잦은 접촉을 가졌는지, 청해진해운 문서상의 "접대"가 실제 이뤄졌는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보인다. 국정원은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대해"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미디어오늘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6년 03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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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물에 잠기기 직전"이라는데 "기다리라"?

 

지난 회에 이어 문모 경사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문모 경사는 두 번의 신고전화를 더 받습니다. 우선 9시 14분경 시작된 37초 동안의 통화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09:14:21

 

여자1 : 지금 저희 배 기울어져가지고 갇혔거든요?

해양경찰 : 예, 어디에 갇혔다고요?

여자1 : 세월호요, 세월호! 인천항

해양경찰 : 예, 예.

여자1 : 저희 단원고인데요.

해양경찰 : 예, 지금 저희 경비정이 다 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월호 쪽으로

여자1 : 예, 감사합니다. 빨리 와주세요!

해양경찰 :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전화주신 분 승객이신가요? 승객?

여자1 : 네?

해양경찰 : 승객이세요? 승객?

여자1 : 예, 저희 지금 고등학생이에요.

 

지난 회에서 이야기했던 9시 4분 승무원과의 통화 이후 10분이 지난 상황에 걸려온 전화입니다. 신고자는 배가 기울어져서 '갇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신고자의 인적사항부터 시작해서 배의 상태가 어떠한지, 신고자는 배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지금 배에서 어떠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등등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겨집니다만, 경비정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문모 경사는 중복 신고라고 생각했고, 경황이 없었고, 이런 침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어 미처 생각을 못 했다고 해명합니다.

 

다음으로 9시 22분경 시작된 53초 동안의 통화입니다.

 

09:22:53

 

남자1 : 예, 배 지금 잘하면 넘어갑니다. 지금, 저기, 저..

해양경찰 : 예,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전화.. 여보세요? 상황을 좀 말씀을 해주세요. 지금 현재 상황.

남자1 : 지금 배가 지금 50도 이상 저, 저..

해양경찰 : 50도 이상 기울었다고요? 예, 예. 여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지금 귀선 상황 계속 신고를 받고 있거든요. 지금 이동 중이니까요,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남자1 : 예.

해양경찰 : 지금 뭐 좀 안전, 최대한 안전하게 어디 좀 잡고 계세요. 여보세요?

 

9시 4분경 승무원이 40도, 45도라고 이야기했고 20분도 지나지 않아 50도 이상 기울었다고 신고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가 빠른 속도로 침몰하고 있다는 것인데, 배의 상황을 더 알아보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없이 이동 중이라는 것, 그리고 어디 좀 잡고 있으라는 이야기뿐입니다.

 

이 통화에서는 신고자인 '남자1'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신고자는 선원이었는데, 당시 세월호 조타실에 있던 2등 항해사였습니다. (본 연재 1회에서 스즈키복을 입고 무전기를 들고 있던 그 사람입니다.) 2등 항해사 김모 씨가 조타수 조모 씨의 휴대전화로 해경에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월호 조타실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세월호 근방에 도착해서 세월호에서 승객들이 탈출시키면 구조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했음에도 세월호는 둘라에이스호와 교신해 구조 대책을 세우지는 않고 진도VTS에 해경이 언제 도착하는지 만을 묻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2등 항해사 김모 씨는 122로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만약 이때 세월호 조타실에서 둘라에이스호와 교신하면서 승객들을 퇴선시켰다면 전원 구조가 가능했습니다.

당시 유조선인 둘라에이스호에는 기름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해수면과 갑판 사이 높이도 높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둘라에이스호에는 당시 세월호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선장선원재판 1심 10회 공판조서 둘라에이스호 문모 선장 증인신문조서>

 

문: 만약 증인의 유조선에 그렇게 구조한 사람이 있었다면 몇 명까지나 수용할 수 있었는가요.

답: 구명뗏목으로 탈출한다면 몇 명이 아니라 세월호 선박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문: 증인의 배와 해수면 간 상당한 높이가 있는데, 라이프 래프트에 탄 승객들을 어떻게 증인의 배로 끌어올리는가요.

답: 사다리가 준비돼 있고, 그때 당시는 둘라에이스호가 적재상태여서 수면과의 높이가 1. 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중략)

문: 세월호 침몰 당시의 기상상황, 조류, 수온에 비춰 봤을 때 승객들을 즉시 퇴선 시키면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요, 아니면 그런 상황에서는 승객들을 빨리 퇴선시켜도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봤는가요.

답: 그 당시에는 주간이어서 시야도 좋고, 파고도 0.5m 이내로 잔잔했습니다. 한겨울도 아니어서 수온도 그렇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퇴선 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둘라에이스호는 이후에도 계속 현장에 있다가 12시 30분에서 13시 사이에 떠났습니다. 꼭 이때가 아니더라도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기 전 언제라도 퇴선 명령만 내려졌다면 전원 구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후에는 둘라에이스호 외에도 어업지도선, 어선 등이 속속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듯 중요한 문제를 제쳐 두고 세월호 조타실에서 2등 항해사가 해경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고 50도 이상 기울었다는 것, 배 넘어갈 것 같다는 것 등만을 전합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해경에게서 들은 경비정이 7~8마일 남았다는 사실을 통화 이후 다른 선원들에게 전달하지도 않습니다.

 

<선장선원재판 1심 25회 공판조서>

 

검사

문: 다른 선박은 필요 없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해경 경비정이 7마일, 8마일 정도 남아 있어서 곧 도착한다고 하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요.

답: ....

 

재판장

문: 보통 사람 같으면 기다리던 해경이 7마일, 8마일 정도 왔다면 기뻐서라도 다른 선원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답: 당황해서 7마일, 8마일을 들은 기억이 없어서••••••.

문: 피고인은 단지 조난당한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화 통화한 것인가요.

답: 예.

문: 피고인은 해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서 상황을 전파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요.

답: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서 있기 힘들다 보니까 "어 어어. 저 저저"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제 이야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서 있기 힘들어서 7마일, 8마일을 못 들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못 들을 수 있습니다.

 

목포해경으로 걸려온 신고 전화 한 가지 더 소개하겠습니다. 이 전화는 9시 6분경 B조의 박모 경사가 받은 전화입니다.

 

09;06:38

 

남자1 : 아니,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빨리 좀 오셔야 될 것 같은데

해양경찰 : 지금 경비함정이랑 가고 있습니다. 지금 환자도 있는가요?

남자1 : 예, 예. 지금 현재 완전히 기울어서 물에 잠기기 일보 직전!

해양경찰 :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저희 경비함정 가고 있습니다.

남자1 : 여기 사람이 한두 명 탄 거 아니거든요, 지금요?

해양경찰 : 예,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저희가 조치하고 있습니다.

남자1 : 예, 예. 신고는 다 들어갔죠?

해양경찰 : 구명동의 입고 구명동의 입고 최대한 차분하게 선장 지시 따르고 계십시오.

남자1 : 구명동 입을 지금 상황도 못 돼요.

 

신고자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물에 잠기기 일보 직전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구명동의 입을 상황도 안 된다'는 등 매우 절박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데, 박모 경사는 알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박모 경사는 신고자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중간에 자르기까지 하면서 이미 알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취지의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 진술조서를 통해 밝혀져 있습니다.

 

문제는 신고자와의 통화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목포서 상황실 직원들은 신고자들의 전화를 끊은 뒤 나중에 다시 한 번 연락해 신고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작업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나중에 보시겠지만 현장으로 출동한 123정은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미 한번 통화를 했었던 세월호 승객들과 다시 통화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해양긴급전화 122 운영 규칙입니다. 

 

<해양긴급전화 122 운영 규칙>

 

제8조(임무) 122 접수요원은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122 신고처리

2. 신고사건에 대한 추적종결수배 및 해제

3. 해양긴급전화 122에서 접수처리되는 모든 신고사항에 대한 기록유지

4. 해양긴급전화 122 관련 각종 통계의 작성 및 보고

 

여기서 추적은 신고접수를 받아 상황을 파악하고 전파하는 것, 종결은 인명이 안전하다고 확인되고 구조세력이 구조를 마친 것을 말합니다.

 

추적과 관련해 목포서 상황실은 신고자들의 인적 사항이나 배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종결과 관련해 목포서 상황실은 신고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의혹으로 확정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으므로 그냥 석연치 않은 수준의 일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목포서 상황실에서 아직 확정할만한 의혹은 등장하지 않은 듯합니다. 다음 주에는 한 가지 의혹이 확정될 것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목포서 상황실 3에서 계속)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 리스트 모두보기▶

 

프레시안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③]

2016.03.17 14:13:38

박영대 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위원

 


▷ 세월호 의혹의 확정-2 보러가기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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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 방송에 해경 "그렇게 해주세요"

이 글은 민중의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에서 연재하는 '세월호 의혹의 확정' 시리즈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 및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들에 대하여 합리적 접근과 분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는 작업입니다.

다 같이 이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면 보다 빨리, 보다 정확한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방청인으로 참석한 유가족들이 단원고 희생자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스1

 

2014년 4월 16일 오전 08:52:32

 

전남119 : 예 119입니다.

신고자 : 살려주세요.

전남119 : 여보세요.

신고자 : 여보세요.

전남119: 네 119상황실입니다.

신고자 : 여기 배인데 여기 배가 침몰되는 것 같아요.

전남119 : 배가 침몰해요?

신고자 :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전남119 : 자..잠깐만요. 자..지금 타고 계신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예요? 아니면 옆에 있는 다른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예요?

신고자 : 타고 가는 배가요. 타고 가는 배가

(하략)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단원고 학생 최모 군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119로 신고를 합니다.

당시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전라남도 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의 조모 지방소방위. 그는 목포해양경찰서에 통화를 연결하였고, 그래서 8시 54분경부터 신고자, 119직원, 목포해경의 3자 통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08:54:07

 

전남119 : 예 수고하십니다. 여기 119상황실인데요.

목포해경 : 네

전남119 :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신고가 왔는데요.

(중략)

전남119 : 신고자분 지금 해양경찰 나왔습니다. 바로 지금 통화 좀 하세요.

목포해경 : 여보세요. 목포해양경찰입니다. 위치 말해주세요.

신고자 : 목포해양경찰. 잘 안들려요.

목포해경 : 위치! 경위도 말해주세요.

전남119 : 경위도는 아니고요 배 탑승하신 분. 탑승하신 분.

신고자 : 핸드폰이요?

목포해경: 여보세요. 여기 목포해경 상황실입니다. 지금 침몰 중이라는데 배 위치 말해주세요.배 위치. 지금 배가 어디 있습니까?

신고자 :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지금 이곳

목포해경 : 위치를 모르신다고요? 거기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경도하고 위도

신고자 : 여기 섬이 이렇게 보이긴 하는데.

목포해경 : 네?

신고자 : 그걸 잘 모르겠어요.

(하략)

 

목포해경 쪽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목포서 상황실의 고모 경사였습니다. 그가 바로 학생에게 경도와 위도를 물어본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는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해경이 학생에게 경위도를 물어보니까 듣고 있던 119직원이 '배 탑승하신 분', 즉 승객이니까 경위도를 물어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재차 경위도를 묻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의 일은 실수나 착각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 고모 경사는 배 이름과 학생 이름, 승선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를 물어보았고, 주변에 있는 선원을 바꿔 달라고 하였는데 학생이 찾아봐도 없다고 하여 통화를 종료하였습니다. 학생은 같은 학교에서 350여 명 정도가 승선해 있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목포서 상황실, 정확하게는 목포해양경찰서 경비구난과 상황실은 상황담당관 1명과 그 밑으로 5명씩으로 편성된 3개조(A, B, C조), 총 16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각 조의 5명은 상황실장, 상황부실장 겸 122접수요원(Ⅰ), 122접수 전담요원(Ⅱ), 그리고 상황요원 2명의 구성이었습니다.

 

<목포서 상황실 구성>

 

상황담당관은 조모 경감

A조는 상황실장인 이모 경위, 부실장 김모 경사, 임모 경사, 오모 경장, 김모 경장

B조는 상황실장인 백모 경위, 부실장 박모 경사, 박모 경사, 유모 경장, 이모 경장

C조는 상황실장인 이모 경위, 부실장 고모 경사, 문모 경사, 김모 경장, 장모 순경

 

A, B, C조가 2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였고, 근무, 휴무, 대기의 차례로 진행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는 B조에서 C조로 교대가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는데, 8시 30분부터 C조가 근무를 시작하여 8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B조와 C조가 합동근무를 하면서 인수인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8시 52분은 아직 B조 근무시간이지만 이미 근무를 시작했던 C조의 부실장 고모 경사가 단원고 학생의 전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고모 경사가 학생과 통화하는 동안인 8시 57분에 C조 상황실장 이모 경위는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해경 123정에 출동 명령을 내립니다.

고모 경사가 신고 전화를 받으면서 주변 근무자들이 신고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복창하였고, 이모 경위는 그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9시 4분이 되면 중요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바로 세월호 승무원 강모 씨가 122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이 강모 씨가 바로 마지막까지 "가만히 있으라" 방송을 한 사람입니다.) 이 전화는 C조의 문모 경사가 받습니다.

 

09:04:40

 

해양경찰 : 예, 목포 해양경찰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중략)

해양경찰 : 예, 그 혹시 사람 같은 거, 사람이 빠졌습니까? 지금 현재?

강** : 예, 지금 사람이 배가 기울어서 사람이 한 명 바다에 빠졌고요.

해양경찰 : 한 명이 바다에 빠졌어요? 지금 구명동의나 그런 거 빨리 다 그거 해서 여객선,

강** : 지금, 지금 저희가

해양경찰 : 예.

강** : 배가 40도, 45도 지금 기울어서 도무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안돼요.

(중략)

해양경찰 : 예, 그 상황을 지금 최대한 빠진 사람을 그래도 좀 구조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

강** : 예.

해양경찰 : 예, 그거 좀 조치 좀 취해주십시오. 그.. 어떻게 파악을 하셔가지고.

강** : 지금, 지금 저희가 움직일 수 있으면 상황파악을 하겠는데,

해양경찰 : 예.

강** : 움직일 수가 지금 없어요, 지금 배가 45도 정도 기울어 있어서, 지금.

해양경찰 : 그런데 왜 지금 배 속력은 어떻습니까? 지금 속력은?

강** : 지금 엔진을 지금 다 끈 것 같아요. 지금 엔진 돌아가는 소리는 안 들리거든요?

해양경찰 : 아, 그래요? 그런데 속력이 지금 저희가 파악했을 때는 속력이 좀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여보세요?

강** : 지금 가고 있지는 않아요, 엔진을 꺼서

해양경찰 : 예, 알겠습니다. 지금 저희, 저희 경비정 있는 데로 지금 다 이동하고 있거든요? 조금만 참으시고 다들 구명동의를 입으시라고 입으라고 다 지금 전파를 해주십시오.

강** : 지금 입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배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해양경찰 : 움직일 수 없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대한 안전할 수 있게 그쪽 그 언제든지 하선할 수 있게 바깥으로 좀 이동할 수 있게 그런 위치에 지금 좀 잡고 계세요, 일단은.

여보세요?

강** : 지금 선내에서 움직이지 마시라고 방송을 계속 하고 있고요.

해양경찰 : 예, 예. 그렇게 해주세요. 예, 예.

강** : 지금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안 돼요, 배가 지금 많이 기울어져 있어가지고.

(하략)

 

3분 1초 동안 이루어진 이 통화는 당시 세월호와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배가 40도, 45도 기울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사람이 한 명 바다에 빠졌다는 것, 배가 기울어 움직이기 힘들어서 구명동의를 입거나 하선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지금 선내에서 움직이지 마시라고 방송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이러한 정보가 세월호의 일반 승객이 아닌 선원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신뢰도도 높은 정보였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정보들을 알게 된 문모 경사는 다음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놀랍게도 이 중요한 정보들을 상황실장이나 누군가 다른 이에게 전파하지 않고 본인만이 홀로 고이 간직합니다. 이전과 같은 내용의 중복 신고라고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 있다는 승무원의 말에 문모 경사는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답하였습니다. "예예 그렇게 해주세요"는 상대방의 말을 분명하게 들었을 때 하는 이야기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에 대해 문모 경사는 신고 전화를 제대로 못 알아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선내 방송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재질문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선내 방송을 해 달라고 유도를 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자신이 선내 방송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내 대기 방송'은 세월호 참사 전체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합니다.

매우 이른 시간인 9시 4분경에 목포해경은 세월호에서 '선내 대기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고 이를 전 세력에게 전파했어야 합니다.

 

몇백 명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는 대형사고의 상황에서, 상황실에 근무하는 경찰이, 단지 잘 못 들었다고 해명하는 것은 뭔가 불충분하게 생각되지 않나요?

 

지난 회에 사람은 실수할 수도, 착각할 수도,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잘 못 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에 문모 경사 역시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문모 경사는 이후 두 번의 신고 전화를 더 받습니다. (목포서 상황실 2에서 계속)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 리스트 모두보기▶

 

프레시안 [세월호 의혹의 확정 ②]

2016.03.11 09:54:11

박영대 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위원




▷ 세월호 의혹의 확정-1 바로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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