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 직후 세월호 인양, 구속 직후 세월호 이동

 

 

 

박근혜 구속

2017 3월의 마지막 새벽은 수치스럽지만 당연한 국가적 뉴스로 깨워졌다.

새벽 3 3분에 13개 범죄 피의자인 박근혜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박근혜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독재자의 딸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뒤 18년 만에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고 청와대를 나와 청와대 생활과 비슷한 기간을 은둔에 가까운 칩거생활을 하면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한 박근혜는 10년 후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인사문제와 소통능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 사태에 대한 대응 능력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면서 권위와 리더십을 잃었다.

 

취임 후 3년이 지난 2016 4월에 치러진 총선 과정에서 또 한번 소속 집권당의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면서 반감을 사다가 야당에게 패배, 여소야대의 상황이 되면서 그나마 치부를 가려줄 보호막 조차도 부실해지고 말았다.

고 최태민과의 수많은 혐오스러운 루머, 최태민의 사위인 정윤회 관련 의혹과 그 루머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박근혜 측이 동원했던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조치들이 모두 더 큰 올가미가 되어 그녀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과 얽힌 국정농단 사실이 노출되었다.

 

대형 참사와 재난 과정은 물론 국정농단이라는 엄청난 비위사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단 한번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사과나 대국민 소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론과 국회를 무시하고 국정교과서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 부치는가 하면, 매우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일본과 위안부협상을 체결하면서 국민 감정을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뀌게 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은 헌법에 명시적으로 보장된 최고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조직적이고 불법적이며 비열한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분노한 대다수 국민의 저항, 주권행사를 막지는 못했다.

 

국회는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의결하여 2016 12 1일에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되었다.

2016 12 9, 여소야대 국회는 결국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에 탄핵심판을 공식 청구했다.

 

2017 310,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의 대통령 직을 몰수하는 파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박근혜는 대통령 직을 잃은 지 21일만에 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 수감되었다.

 

독재자의 딸로 시작된 불통과 독선의 악연은 국가와 국민을 추락과 절망과 분노에 빠뜨린 채 점차 희미해져 갈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우리에게 아프고 큰 교훈을 남긴 채 또 한 페이지를 넘기려 한다.

 

 

 

박근혜 입감되자 세월호 출항하다

105㎞ 운항좁은 수로 거센 물살 과제로 남아

 

 

 

3년간 가라앉아있던 세월호가 31일 목포 신항으로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3년 전 항해는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지만, 이번 항해는 무사히 끝마치길 국민 모두가 기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세월호 침몰 당시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진도 팽목항은 이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새벽부터 빗줄기가 이어졌다.

▶CBS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떠오르다, 되찾다, 만나다다시 '민주주의'

"다시 만날 봄날, 우리가 퍼 올려야 할 말은…"

 

영상 : 2017. 03. 30. jtbc뉴스룸 앵커브리핑

 

 

그해 봄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 사이에선 마치 불문율과도 같은 규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란 글자가 들어간 노래는 반드시 피할 것. '바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을 것입니다.

 

시인 역시 '가라앉다'라는 단어를 한동안 쓸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감히 손 내밀 수 없는 단어, 발음할 때마다 손이 저리는 단어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어떤 말은 듣는 이들에게 위안을 가져다주지만 또 다른 말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듣는 이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였을까…오늘(30) 아침, 그 침묵의 행보를 차라리 다행이라 여긴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때는 '골든타임' 이라는 말을 수차례 입에 올렸지만, 그 참사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던 사람.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란 말로 맞섰던 탄핵된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그들의 고생에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라 했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사과 아닌 '송구'로 갈음했던 검찰청 앞의 전직 대통령.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졌던 그 대리인들의 폭언에 가까운 말의 화살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 법원의 포토라인에서 그 어떤 발언이 나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우려도 아껴두었고, 차라리 침묵이 모두에게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내일 새벽그 배는 마지막 항해를 시작할 것이고, 탄핵된 대통령의 구속 여부는 판가름날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될 이 봄날에 우리가 다시 퍼 올려야 할 말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떠오르다" "되찾다" "만나다"…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jtbc뉴스 기사 원문보기

 

 

 

세월호 조타수 양심고백화물칸 일부는 천막이 부분으로 상당한 물 유입 추측

 

 

 

세월호 2층 화물칸 일부 벽이 설계도와 달리 철제구조물이 아닌 천막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선원의 옥중 편지가 공개됐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장헌권 목사는 2014 114일 고() 오용석(사망당시 60)씨에게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서 오씨는 세월호 선미 화물칸 2층 벽 일부를 천막으로 대체한 것을 급격한 침몰의 원인으로 꼽았다.

 

오씨는 편지에배가 처음 기운 것도 기운 것이구요. 물이 어디로 유입 되었는가 상세히 조사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뒤에 그림으로 보냅니다라며 세월호 단면 그림을 그렸다.

 

오씨는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이 부분으로 상당한 물이 유입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편 오씨는 2015 11월 대법원에서 수난구호법(조난선박 구조) 위반 등 혐의로 2년형이 확정됐다. 이후 복역하던 중 폐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출소해 투병하다 지난해 4월 사망했다.

▶아시아경제 기사 원문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법원, 뇌물 등 주요 혐의 소명됐다 판단…“증거인멸 우려 있어

전직 대통령으로 3번째 불명예검찰, 내달 17일전 기소할 듯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삼성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청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31일 법원에서 발부됐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지 21일 만이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검찰은 최장 20일 동안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수 있지만,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식 선거일이 시작되는 다음달 17일 전에는 수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  박 전 대통령 구속으로 검찰 수사가 정점을 찍으면서 앞으로 수사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대선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식 선거일이 시작되는 다음 달 17일 전에는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뿐 아니라 롯데·에스케이 등 수사 선상에 오른 다른 대기업 수사도 속도를 내 박 전 대통령 기소 시점에는 이들 기업에도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도 시간을 끌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보기

 

 

 

최순실 의혹부터 박근혜 구속까지

 

 

 

2014

4 8 =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 특혜 의혹 제기

……..

2017

3 31 = 검찰,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뉴스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법은 강제력을 가진 상식과 도덕이며 국민의 공통관심사에 대한 합의

 

 

 

당대 최고의 스승이자 지성인이며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음모에 의해 독약을 마시는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 전에 탈옥을 권하는 수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을 향해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법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에서는 법치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자는 대원칙을 세웠다. 바로 입헌 법치주의다.

흔히 법은 상식과 도덕에 국가가 강제력을 부여한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국민 공통관심사에 대한 동화적 통합의 과정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법에 대한 술어들의 공통점은 약속이라는 점이다. 이 약속은 만장일치는 아닐지라도 대다수의 이성적 합의를 의미한다.

 

오늘은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다.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의 법률적 판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며 단심제이므로 항소할 수 없다. 장기적인 국정중단 상황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현재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여론은 80: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탄핵 찬반의 여론은 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시위를 통해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탄핵반대 집단의 의사표시 중에는 폭력과 강압, 심지어는 테러를 암시하거나 선동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극단적 대립과 충돌을 암시하고 있다.

 

탄핵 인용 아니면 기각, 한법재판소는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고 선고할 것이다. 최고 헌법판단기관의 최고의 헌법판단 전문가들이 내리는 결정이다.

80%의 의사에 반할수도 있고 20%의 요구가 무산될 수도 있다. 어느 집단에 속해있건 두 집단 중 하나는 만족 아니면 불만족을 감수해야만 한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법치주의에 승복하여 국가적 목적과 이익에 따르는 것이 공동선(共同線)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지성과 집단지성 위에서 변증적 역사 진화의 의미심장한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法裁判所)

우리나라의 경우 제헌헌법에서 헌법위원회로 하여금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게 하였고, 2공화국 때인 1960년 개정헌법에 헌법재판소제도가 도입되어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구성되기도 전에 516 쿠데타 발생하여 헌법재판소는 탄생하지 못하였다. 그 뒤 제3공화국 때인 1962년 헌법에서는 법원과 탄핵심판위원회에서 헌법재판권과 탄핵심판권을 행사하였으며, 1972년 헌법과 1980년 헌법에서는 헌법위원회를 두어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현행 헌법(1987년 개정)에 와서야 현재의 헌법재판소제도가 도입되었으며, 1988년 헌법재판소법이 발효되고 재판관 9명이 임명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설립되었다. ( : 憲法裁判所 시사상식사전)

 

 

 

박근혜 대통령,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도 '승복'하라는 조중동

 

 

 

'심판'의 날이 밝았다. 신문들은 일제히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똑같이 '승복'을 말했지만 한겨레와 경향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복 가능성을 우려했다. 반면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야권과 촛불을 겨누며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승복'할 것을 요구했다. 탄핵이 인용되면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광폭 '개헌'행보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10일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오늘, 민주주의 운명의 날"

국민일보 "민주당, 기각돼도 거리로 나간다"

동아일보 "오늘, 분열과 혼돈에 마침표 찍자"

서울신문 "승복의 날이 밝았다"

세계일보 "'정치권부터 승복 선언하고 국민 설득 나서라'"

조선일보 "대한민국, 헌법의 명령 앞에 서다"

중앙일보 "오늘 승복이 법치의 역사 연다"

한겨레 "민심은 80대 20... 법의 심판만 남았다"

한국일보 "승복할 준비 되셨습니까"

기사 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형평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법치주의는 권력자의 무기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입헌제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운영된다. 국가의 모든 구성과 제도는 헌법과 법률에 따르며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소한 국가적 행위도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즉 헌법과 법률은 국가 운영 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적 규범까지 담당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혼인과 출산, 육아를 비롯하여 거주와 이전, 직업과 교통 등 생활 전반이 촘촘한 법의 그물(법망 法網)로 규범을 이루고, 그 규범의 범위 내에서 생활한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3권 분립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세 기구가 각기 동등한 가치와 권원을 가지고 상호 견제와 보완을 통해 운영되는 것이 3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법을 적용하는 법원과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3대 기구인 것이다.

 

법은 국민의 일반적 상식과 도덕에 국가가 강제력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문법주의를 택하고 있다. 법률을 문서로써 정하고 보존, 운영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반의 보편적 상식과 도덕, 그리고 특수한 국가적 상황까지를 모두 법전에 수록하고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필연적으로 경직성을 갖게 된다. 짧고 제한된 문서로써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되기 때문이다.

 

법의 경직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그것을 운영함에 있어서는 동종의 상황에 대한 법해석과 법집행이 같아야만 한다. 이것을 형평성이라고 한다.

또한 집행 대상이나 집행 주체에 따라 법집행의 내용과 경중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이것을 공정성이라고 한다.

 

법치주의는 대한민국 존립의 근본 원칙이다.

민주국가의 법치주의는 법집행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전제로 해서만 유지가 가능하다. 법집행기관, 즉 법집행 주체의 의지에 따라 내용과 경중이 형성성과 공정성을 달리한다면 그것은 민주국가의 법치주의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국가의 근간을 위협하는 반국가적, 반역사적, 반주권적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병기 전 원장국정원, 보수단체에 돈 댔다실토


특검서예전부터 해오던 일지금도 한다고 알고 있다진술

국정원법엔국정원장·직원들 정치활동 관여행위 금지명시

국정원제기된 의혹만으로 답변하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해 4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황교안 국무총리(왼쪽)와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전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병기 전 비서실장으로부터국가정보원이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한테서국가정보원이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특검팀은 지난 12일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작성과 관련해 이 전 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그를 소환해 조사한 바 있다.

특검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2014 7월부터 2015 2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지난 1월 특검 조사에서 국정원의 보수단체 지원과 관련해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은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기조실장한테 그런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계속 그런 지원이 있어왔기 때문에 국정원장이 굳이 터치할 입장은 안 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보수단체 자금 지원 의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전직 국정원장의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 전 실장은 또내가 (국정원장으로) 있던 시절에도 지원을 했고, 지금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상세한 (지원) 내역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에 지원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기사 보기

 

 

 

국정원별도의 블랙리스트제작, 문체부 내려보냈다

 

지난 37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광화문 캠핑촌' 회원들이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국가정보원의 공작정치를 규탄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특검, 국정원도 명단 작성·전달 확인

국정원 직원직접 문건 전달진술

문체부 담당과 오간 문자도 확보

명단엔 주로 야당쪽 활동 관여한 이들

문체부청와대판 명단과 별도 관리

 

정보업무와 무관권력유지에 동원

공공기관 인사 개입 등 정황도

검찰탄핵심판 결과 관계없이 수사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와 별도로 국가정보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보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를 담당하는 국정원이 본래 직무에 벗어나 박근혜 정부의 권력 유지에 동원된 셈이다. 국정원은 특검 수사 초기인 지난 1월부터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2017 3) 8일 특검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특검팀은 국정원이 작성한블랙리스트 명단을 확인하고, 국정원 직원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문체부에 (국정원 작성) 문건을 전달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할 수 없이 문체부에 제공해 지원을 배제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검팀은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과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담당자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도 확보했다.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정권 비판적인 인사들이 일부 빠지는 일이 생기자, 청와대가 국정원도 자체 명단을 만들어 문체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한 촘촘하게 반 정부 인사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처였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국정원에서 블랙리스트 명단을 받았으며, 청와대에서 보낸 명단과 지시사항은 알파벳 ‘B’(), 국정원에서 보낸 내용은 ‘K’(케이)로 표시해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주로 야당 쪽 정치활동에 관여한 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보기

 

 

 

야구방망이에 죽창까지경찰, 선제적 대응 못하나 안하나

'죽이자' 해도 협박죄 적용은 지나치다? 경찰, 소요죄 편파적 대응 논란

 

탄핵 반대 집회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을 앞두고 친박 집회의 폭력성이 도를 넘어가고 있지만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집회에 죽창을 들고 나오자는 주장까지 등장한 상황인데도 경찰은 선제적 제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

◇ 경찰, '소요죄' 편파 적용 논란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친박단체들이 거리낌 없이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요죄 적용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5년 말, 경찰은 집회에서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29년 만에 처음 소요죄를 적용한 사례였다. 내친김에 경찰은 이듬해 1월 배태선 조직쟁의 실장에게도 소요죄를 적용한다.

 

박영수 특검 집 앞에 몰려든 보수단체 회원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반면 경찰은 박영수 특검 자택 앞에서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집회 시위를 벌인 일부 친박단체들에 대해선 소요죄는커녕 입건도 하지 않았다.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극단적인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경찰은 협박죄 적용에서조차 소극적이다.

 

지난달 24일 특검 자택 앞에서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특검이 끝나면 '민간인'이다. 태극기 부대는 어디에나 있다" " XXX은 내가 꼭 응징한다"고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영수 특검 사진에 불을 붙여 화형식 까지 자행한 보수단체 회원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급기야 박 특검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에 불을 지르는 '화형식'까지 자행됐고, 이에 충격을 받은 박 특검의 부인이 혼절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구체적인 대상과 행위를 지목하면서 협박성 발언을 할 경우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박영수 특검'을 특정해 찾아가 '야구방망이'로 실제 해악을 끼칠 위협을 가했으면 협박죄 해당한다"면서 "실제로 수행하려고 했는지 여부는 협박죄 구성요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위협적인 발언이 특검 수사나 헌재 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수사 착수에 신중한 입장이다.

 

정치 원로 박찬종 변호사는 "죽창과 몽둥이 들고 누구를 때리러 가자고 선동하거나, 누구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건 소요죄에 해당한다"면서 "특검 집 앞에서 폭력시위를 하는 것 자체가 범죄인데 왜 경찰이 이를 단속하거나 처벌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뉴스 기사 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식 잃은 부모가 죄인 취급 받는 사회

'세월호특조위 활동기간 연장' 야3당 공언 하루 뒤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 연행

 

 

 

6월 25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문화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야3당은 이구동성으로 세월호특조위의 활동 보장을 약속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세월호 진상규명, 대북 정책,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여소야대 국회가 됐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올해 11월 20만 민중총궐기를 성사시켜 헬조선의 절망을 뒤집자"고 호소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문화제가 끝난 6월25일 저녁부터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특조위 강제해산 절차 철회' 등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을 시작한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6월 26일 오후 3시 경, 경찰과 종로구청은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차양막을 강제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웅기엄마 윤옥희씨가 연행됐다. 또 다른 유가족 2명은 실신해 119가 긴급출동하기도 했다.

 

 

영상 : 광화문청사 앞 세월호유가족 연행(유가족방송 416 TV)

 

 

경찰은 차양막 강제철거의 이유가 '도로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즉 도로교통법 위반의 이유로 철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8부는 "일정 기간 고정적으로 설치될 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설치하는 것이 곧바로 도로법이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을 판단하고 적용하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행정부, 경찰은 사법부의 법적인 판단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것이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다.

 

세월호유가족 농성장에 들이닥친 경찰의 공권력 집행은 은행나무에 매단 노란리본을 철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란리본이 도로교통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인해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절규하게 만드는 공권력

 

 

주권자의 눈물 : 정부로 인한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은 800일째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를 빙자한 이기주의, 절대 허용해선 안된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어사전)

즉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국민 상호 간의 이해 조정, 사회질서 수립 및 유지에 있다는 의미다.

만일 정치가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특정의 집단적 가치관을 옹호하며 3권분립의 민주주의 대원칙에 입각한 법치주의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정치를 빙자한 집단적 이기주의일 뿐이며 반역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정치의 대상은 국민이다. 그러나 국민이 단순히 정치 또는 통치의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것의 주체이며, 통치의 대상이기 이전에 권력의 발원인 것이다.

헌법은 제 1조 ①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과 국민이 대한민국 국가형성의 뿌리라는 것을 불가침의 사실로 천명하고 있다.

 

 

공권력 집행은 사법적 판단의 범위 내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중앙해양경비안전본부(구 해양경찰청) : 해경홈페이지 캡처

 

 

세월호특조위 활동에 대한 숱한 방해와 정부의 비협조 가운데서도 세월호 참사는 행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참사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세월호청문회를 통해 참사 사고 초기의 정부 대응은 초등학생의 재난에 대한 대응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월호참사 당시 정부의 재난 및 구조 관계자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무책임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책임의식과 태도에 분노하며 그들의 뻔뻔함과 당당함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대통령이 해체를 공언했던 해경이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간판만 바꾼 채 사고 관련자들 또한 대부분 포상 또는 영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납득할 수 없고 용인할 수 없는 몰상식의 극치이다.

 

관련 세월호 참사 주역 해경 처리, '분명 뭔가 있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세월호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키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가 과연 국민의 정서와 법치주의 상식에 합치하는 일인가에 찬성할 수 없다.

정부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냉대와 그들의 시위, 농성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세월호특조위 조사관과 세월호 유가족이 세월호 선체인양 작업 중인 상하이셀비지의 '센첸하오'에 승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 싼 정부의 대응은 그 자체가 거대한 의혹의 '복마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 및 사후처리에 관한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국가불신의 화근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도리를 회복하고 세월호 진상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3.1독립만세운동

 

 

주권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정치와 공권력 집행에 대하여 주권자의 시각으로 바로 보고 판단해야만 한다. 주권의식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바로 알고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적 노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보도

▶ 팩트TV 세월호 가족들 농성장 강제 철거하고, '막무가내' 연행한 경찰

▶ 미디어오늘 세월호 농성장 경찰 침탈, 유가족 강제 연행에 실신하기도

▶ 국민일보 김홍걸 "대통령, 세월호 유족 얼마나 미워하면 이렇게까지..."

▶ 서울신문 세월호 참사 800일 '엄마의 눈물'

▶ 민중의소리 [사설]세월호 농성장 짓밟은 인면수심의 경찰

▶ 한국일보 [단독] 세월호 특조위, 현역 의원 등 3명 검찰 고발키로

▶ 미디어오늘 야3당, 1만 시민 앞 "세월호 유족이 언제까지 농성해야 하나"

 

 

 

블로그 인기 포스트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3남인 김홍걸씨가 지난 2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DJ 삼남 김홍걸씨 생애 첫 인터뷰

"서운한 감정 다 버리고 야권이 힘 합쳐 정권교체하라고 당부

이번 녹취에 아버님 모셨던 분들이 개입…인간의 도리 지켜야

내가 누구 아들이니 '더민주' 찍어달라는 식으로 얘기 안할 것"

'동교동'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누가 야당의 정통성을 잇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셋째아들 김홍걸(53) 연세대 객원교수가 자리하고 있다. 1월24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 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법통'의 문제와 얽혀 있다.

김 교수를 1월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평생 처음'이란다. 그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님이 평생 노력하신 게 민주주의 인권, 한반도 평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안고 돌아가셨다. 지금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전 맨 주먹이지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려고 나섰다."

인터뷰는 <한겨레> 정치팀의 송경화 기자와 함께 1시간여 동안 진행했다.

-어머님 이희호 이사장의 건강은 어떤가?

"어제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병원에 들렀다. 골반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안 좋으신데 경과를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동교동에 인사를 갔다가 녹음을 한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뉴스를 보고 놀랐다. 녹취를 누가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왜 그걸 녹취하고, 내용이 또 밖으로 왜 나갔는지. 누가 했든지 간에 왜 내보냈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 그 일에 개입된 사람이 누구 누구일 것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분들이 대부분 저희 아버님을 모셨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머니한테는 실망하실까봐 차마 말씀을 못 드리고 있다. 얼마나 실망스러우시겠나. 그런데 그분들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

-안철수 의원 쪽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관련된 건가.

"네. 짐작을 한다는 거다. 그런 걸 다 알 수 있는 위치니까."

-아버님을 모셨던 분들이라면 복수의 사람들인가?

"그렇다. 언론 쪽에 계신 분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계시고 있더라. 뭐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국민의당이 녹취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는데, 발언의 뜻을 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제가 사과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분들의 양식에 맡기겠다." 

어머니는 제가 정치하는 걸 염려했지만 반대는 안해

-이훈평 전 의원, 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몇분이 '이희호 이사장이 아들의 정치 참여를 만류했다'고 하면서 어머님과 아드님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 어머니는 분명히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했고 제가 이번에 나선 이유 중에 하나도 어머니의 명예에 누가 가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도 있다. 지난번 (안철수 의원 관련) 오보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지금 이 한마디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어머니가 제가 정치하는 걸 반대하셨다고 하는 표현은 옳지 않고 염려를 많이 하셨다는 표현이 옳다. 제 성격이 정치에 맞지 않고 또 제가 집안 일도 챙겨야 될 것이 많고 정치판이 워낙 험하니까 제가 다칠까 봐 염려를 많이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걱정거리가 없고 모든 게 다 안정돼 있고 험난한 걸 다 헤쳐나갈 준비가 돼 있다면 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염려된다, 그렇게는 말씀하신 적은 있다. 그러나 정치를 절대 하면 안 된다, 누구 누구를 위해서 너는 정치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다.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입당하는 걸 반대하셨다는 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 전화는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시면서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드린 건데,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다고 해서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으신 것이다. 거기서도 어머니가 저에 대해 하신 말씀은 '그냥 좀 별탈 없이 아들이 지혜롭게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정도의 염려 말씀이었다. 잘 해야 할 텐데, 그런 투의 말씀을 한마디만 간단히 하신 것이다. 그것을 마치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아들을 데려가지 마라'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평소 어머니 성격을 아시는 분이라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머니를 알 만한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확인 안 해보고도 알 것이다.

제가 입당 다음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께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요즘 워낙 혼탁하고 쓸데 없는 말이 많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시고 '자기 일을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소신껏 하게 놔두라' 이렇게 말씀해달라고 하니 '어, 알았다'고 하셨다."

-이훈평·박양수 전 의원 등은 어머님을 잘 아시는 분들일텐데 왜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가?

"그분들의 마음속은 제가 알 수가 없으니까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짧게든 길게든 아버지를 모셨던 분들은 다 이제 잘 되시기를 저는 바라고 있다. 지금은 좀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분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반대하고 특정 세력을 도와주기 위한 게 아니고 통합해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갔다고 하니까 저는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약속을 지켜주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교동계가 명분은 통합이지만 사실은 더 분열의 길을 걷는다고 보지는 않는가.

"그분들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 또 제가 연락해서 따진다고 갑자기 태도가 바뀔 것도 아니다. 제 입장은 그분들 입장을 존중해줄테니 그분들도 제 입장을 존중해달라는 것이죠. 제가 평소에 과묵하고 아주 친한 사람, 편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을 많이 안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실 수 있다. 또 남의 사주를 받아서 억지로 끌려서 혹은 속아서 이런 걸로 오해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도 제 나름대로 소신이 있고 그 소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거다."

-입당할 때 '더 이상 아버님과 호남을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네거티브한 의도로 얘기한 게 아니고 포지티브한 의도로, 나아갈 방향이 이래야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따라 할 뿐이다. 제가 솔직히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충실히 잘 따랐다고 큰소리 칠만한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하고 싶다. 이제 아버지께서 과거에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시려는 그 대의를 위해서 다른 정치세력에게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시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점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또 돌아가시기 대략 두 달 전에,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안희정 이런 분들을 불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제 그 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 이런 것들은 다 버리고 다른 야권 세력까지도 다 끌어 모아서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해라, 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유지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문병호 의원 등이 지난 4일 오전 마포구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이희호 여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에 비춰볼 때 국민의당에 대한 평가는?

"그 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국민의당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누구 누구에 반대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그런 대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제가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나선 것이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나선 게 아니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나선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죄를 짓는다?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아버지 이름을 팔고 다니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권 보수 세력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성향의 사람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고 하니까…. 아버지의 정신,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을 많이 우려했다."

-입당 때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정통 본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물론 부족한 점이 많고 지지해 주셨던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부분도 많은 것을 안다. 회초리를 맞아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래도 민주 개혁 세력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은 거기밖에 없다고 봤다. 무너진 집이라도 다시 세워서 살 곳을 만들어야지, 조금 헐었다고 그래서 때려 부술 순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비판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의 주관대로 말과 행동을 할 것이다. 내편이니까 두둔해 주고 남의 편이니까 욕하고 이런 것은 안 한다. 불편부당하게 하겠다."

-국민의당은 제3의 중도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말씀드린대로 국민의당은 잘 모르고, 자꾸 뭐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 아마 언론에서도 뭐라고 딱히 규정짓기가 힘드시지 않을까 싶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나. 한때 대북송금 특검으로 갈등도 있지 않았었나.

"아버지께서도 그때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 악의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보지는 않는다. 잘못된 판단이었고, 또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에서 그렇게 압박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하셨을까 싶다. 그 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지 않나."

-두 분 정신이 같은 것이라고 보나?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 사회의 민주화, 권위주의 타파, 한반도 평화 등등. 큰 것에서 동의를 하면 작은 것에서 좀 틀리더라도 그것은 서로 조정을 해가면서 같이 손잡고 가야지, 작은 것에서 맞지 않는다고 분열해서는 안 된다. 민주 개혁 세력이 같이 뭉쳐도 이기기가 쉽지 않은데 분열하면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구겠나."

-통합과 단결을 김대중 정신의 요체로 보는 건가.

"그렇다. 아버님에 대해 한 말씀 드리자면, 아버님이 전쟁 전에 사업가이셨는데 사업가로 꾸준히 하셨으면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었는데 힘든 정치의 길로 나선 이유가 전쟁 때 동족 상잔의 비극을 보시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해서이다. 그 당시에 인민군들에 잡혀서 총살을 당하기 직전에 살아나셨는데 보통 전쟁 때 그런 경험을 겪은 분들은 극우파가 되고 강경파가 되는데 반대로 아버지는 그런 경험을 증오가 아닌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를 시키셨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영입이 아니라 자원봉사

-더민주에 입당하게 된 계기는?

"제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거래도 없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께서도 지난해 두 세번, 저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제가 '정치엔 뜻이 없다 또 상황이 좋으면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내 분란이 심한데 특정 계파, 특정인을 편드는 것처럼 보여서 곤란하다, 다만 대의명분이 있는 좋은 일이라면 나서서 도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만 얘기했다. 한참 된 얘기다."

-그럼 최근에 다시 논의가 된 계기는?

"1월5일 쯤인가 6일엔가 문재인 대표를 잠깐 뵀는데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하기 위해서 본 게 아니고 '권노갑 고문님을 탈당하지 마시라고 설득해야 겠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셔서 조금 말씀드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는 들어와라 마라 말도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문 대표가 요청을 해서 한 게 아니다. 지난번 오보 사건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 그러니까 불편부당하게 판단하는 분들 만나서 의견을 구했다. 그 분들 중에는 정치권 밖에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다들 이번엔 나서는 게 좋겠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하셨다. 또 이번에 감동을 받은 것이 그 분들 중에 한 두 분은 소위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문 전 대표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을 갖고 평소에 그리 좋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아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하니 의외로 잘 생각했다, 그렇게 해라, 하시더라. 그런 분들은 아버님처럼 개인 감정에 치우쳐서 판단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대의에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고 그런 분들이 바로 정말 김대중 정신을 제대로 계승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입당을 제안한 것인가?

"어떻게든 나서서 당을 돕겠다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가 당원이 아닌 걸 모른다. 지난 번 대선 때도 약속한대로 대선 기간 동안만 돕고 그냥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나. 당원이 아니었다. 평생 한번도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입당 형식으로 하면 어떠냐 해서 한 것이고 영입이 아니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일종의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셔간 게 아니다."

-입당 때 출마 문제는 나중에 분명하게 밝히겠다 했는데.

"출마에 별 뜻이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어쨌든 나섰으니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출마가 목적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나선 것이 아니다. 이번에 나서면서 주변 반응을 보면서 좀 놀랐달까 실망했달까 하는 게, 너무 정치판이 혼탁해지니까 순수한 의도로 뭘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예 상상을 못하더라.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아무것도 생기는 게 없다면 왜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더라. 당연히 뭘 해주면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보는 거다. 근데 이건 장사가 아니지 않냐.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절대 그런 거래하는 식의 주고 받고 하는 식의 정치를 하지 않으셨다. 1980년도에 사형을 앞두고도 그 쪽에서 우리하고 협조하면 살려주고 좋은 자리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하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3당 합당 때도 먼저 제의를 받으셨지만 거절하지 않았냐. 3당 합당 때 제의를 받아들이셨으면 대통령에 5년 빨리 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머님도, 1980년도에 아버지가 그 사람들하고 타협하고 손 잡았다면 아마 아버지를 용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저도 똑같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타협하고 살길 찾지' 이런 얘기는 꿈에도 할 수 없는 게 집안 분위기다."

-앞으로 당을 위한 구체적 활동 계획은?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상의를 더 해봐야 될 것 같다. 어떤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지를. 제가 일방적으로 내가 누구 아들인데 더불어민주당 좀 찍어주시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법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민주가 그 동안 이렇게 잘못했는데 반성을 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하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말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 

-천정배 의원이 '재산은 상속해도 정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대중 정신의 승계권이 김 교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나는 잘난 사람도 못 되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되지만 뒤늦게나마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님이 항상 말씀하신 게,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하셨다. 그러니까 제가 김대중 정신을 독점해서 제가 하는 말이 무조건 진리다 이런 뜻이 아니고, 그저 제 나름대로 과거에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되새기면서 그 길을 따라가려 하는 것 뿐이지 제 방식만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말하고 싶다. 솔직히 재산은 물려받을 게 없다. 남기고 가신 게 집밖에 없는데, 그 집도 벌써 30년 전에 저희 자식들에게 '이 집은 내 힘으로 마련한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 생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공공의 목적으로 쓸 것이다'고 아버지가 말했기에 그건 물려받을 게 없다. 대신 정신은 물려받으려고 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나.

"자식들한테야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하시진 않으셨다. 그런데 다른 분들하고 말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서 그 분의 뜻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다. 저희 부모님은, 흔히 보는 부모 자식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운동이라든가 여러가지 큰일,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신 분들이다. 자식 출세시켜야지, 재산 물려줘야지 이런 걸 생각하신 분들이 아니다.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틀리다. 과거 독립투사를 보는 것 같은 분들이라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이 틀린 분들이다."

'게이트 연루'로 부모님께 누를 끼쳐 두고두고 죄송

-아버님이 어렵지 않았나.

"당연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자식들에 다정다감하고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주시고 이러시는 타입은 아니었다."

-1980년에 아버님이 김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게 있다. '어린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 이런 미안함을 평소에 표현했나.

"1980년도 사형선고 받으신 후에 가족들이 면회를 갔을 때 한번 그런 말씀을 유언처럼 하신 적이 있다. 입원하시고 한 달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입원하기 1~2주 전에 뵀다. 그 때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신 상황이었는데 과거의 일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이해를 해주셨다. 왠지 그게 유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부분도 공격을 받고 있다.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그 당시에 사실 말이 삼십대 중반이지 사회 생활을 안 해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소심해가지고 짚고 넘어갈 것도 대충 넘어가고 말을 못 꺼내…. 말을 하자면 할 말은 있지만 그래 봐야 변명으로 밖에 더 들리겠나. 부모님께 누를 끼친 게 두고두고 죄송할 뿐이다. 아버님은 평생 바른 길만 걸어 오셨고 임기 중에도 어떠한 부정이나 편법도 배제하셨다. 70대 중반의 노구셨는데도 정신력으로 버티시면서 오직 사명감으로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 명예에 큰 손상을 입혔다. 아버지의 업적이 아들 때문에 훼손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죄송스러웠고, 사건 뒤 2년 동안은 얼굴도 들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사건 뒤 10여년이 지났는데 속죄를 하기 위해, 그냥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이번에는 뭔가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이 살아 계실 때는 효…(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함) 한 번도 효도를 못했는데… 돌아가신 후에라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번에는 한 번 하늘에서 내려다 보실 때 자랑스런 아들이 한 번 돼보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등록 :2016-01-29 01:14

수정 :2016-01-29 09:55

김의겸 송경화 기자 kyummy@hani.co.kr

 

[관련영상] '안철수 현상' 없는 '안철수 신당' / 더 정치 #7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불평등에 대하여

오늘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과 설렘으로 새해를 맞을까.

이 사회를 이끄는 정계, 종교계, 재계, 문화계 각 부문 지도자들은 신년사를 통해 행복한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보통 시민들도 오늘만은 힘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는 새해를 꿈꾸고는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새해 소망은 배신당했다.

2015년 새해 첫날의 꿈이 바로 어제 12월31일 깨졌음을 확인했듯이 2016년 12월31일도 그런 날이 되리라는 불안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

2016년은 고립된 시간도, 미지의 시간도 아니다. 올해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는 지난해, 그리고 지난 3년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이래 8년간 반복된 것을 다시 목격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새해 첫날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희망이 너무 닳아 버렸다.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린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대도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더 멀리는, 민주화 이후 28년간 이 사회를 규율했던 질서도 2016년에 영향을 미친다.

새해에 계속될 고통들은 이렇게 켜켜이 쌓인 과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새해란 저 깊은 지층 위에 얹혀진 작은 돌멩이와 같은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러 번의 정권 교체에도 하나의 경로를 따라갔다. 돌멩이 하나 치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랄 것 없다.

새해에 목격될 고통들은 1년 전, 3년 전, 8년 전, 38년 전부터 이중삼중으로 겹쳐지면서 단단히 굳어진 하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 모순이란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린 바로 그것,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어떤 지표로도 가릴 수 없는 한국의 실상이다. 최상위층 1%의 부는 전체 부의 18%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0대 그룹 상장사 임원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의 10.8배이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25.1%이다. 남녀 임금차, 노인 빈곤율은 OECD 34개국 중 1위이다.

대로에서 남이 버린 박스를 가득 실은 채 위태롭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본 일이 있는가. 그런 이들이 왜 점점 더 자주 눈에 띌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왜 내 주변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내 주변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주변 젊은이들이 대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보고 듣는 일상 경험들이 사실은 지표보다 더 생생하게 불평등한 세상을 증언해 준다.

왜 거리에 가련한 청춘들이 저렇게 넘쳐나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가난에 허덕인다고 노인 문제가 아닌 것과 같다. 사회로 처음 진입하는 좁은 문 앞에 저들끼리 부대끼는 청춘들의 아우성이 노인 때문이 아니듯, 노인의 절반이 가난한 것 역시 청년 때문이 아니다.

부자는 부자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는 세습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부모의 부를 대물림하지 못한 불운한 이들은 어느 세대에 속하든 사회 밑바닥에서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흔히 세대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같은 여러 갈등이 혼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모두 빈부갈등, 즉 불평등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갈등들이 과잉 부각된 것은 많은 경우 불평등 문제를 가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동원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식으로도 은폐되지 않을 만큼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불평등은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앗아간다.

불평등은 중소기업 종사자, 여성, 지방 출신,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더 적은 기회를 준다.

희망은 바닥나고 있다.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계층 유동성을 막고, 사회 갈등을 조장,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건강, 인간의 자존감도 해친다. 균형을 잃은 채 늙고 병들어 가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필요한 활력을 빼앗아 간다. 보수적 관점에서도 한국이 비효율적인 사회가 되었다면 그것 역시 불평등 때문이다.

민주화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의 뒤에 도사리던 불평등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주기적인 선거, 정권 교체 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국가가 후원하는 시장의 자유가 이 사회에 소득 격차, 사회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불러낼 때도 우리는 방심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불평등해졌고 이제 그 불평등이 자유까지 제약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곳일 수 없다. 이제 한국은 호모 사피엔스가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 되었다.

이런 절망감은 불평등이란 지층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 사회를 하루아침에 구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깊어진다. 이게 한국 사회 앞에 가로 놓인 진짜 현실이다.

불평등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불평등에 대한 인내심도 커진다. 절망과 체념 때문이다. 불평등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야 불평등을 관용하는 정도 또한 낮아진다. 불평등의 역설이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요즘 시민들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불평등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정부는 탈규제, 민영화, 감세, 재벌 중심 성장과 같은 불평등 확대 정책을 지속한다.

기우뚱한 이 사회를 바로잡을 분배 정책과 재분배 제도에 무관심하다. 정치는 거대 양당 체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안주한 채 소외된 서민의 목소리를 배제한다.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이 말해주듯 시민들도 점차 정치로부터 떠나고 있다. 체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은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니 하는 우울한 언어가 횡행한 해였다.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는 사회 현실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청년 실업,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시민들이 다 포기한 채 무조건 참고 견디기로 마음먹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념과 거부의 경계선에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정치가 다시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불평등은 정치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냐에 따라 불평등 완화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지금 한국 정치가 바로 그런 갈림길에 있다.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동안 정치는 불평등 해소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불평등 체제를 재생산했다. 이런 체제는 민주주의라기보다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라 해야 옳다.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평등의 원리에 기반을 둔다. 반면 시장은 1원 1표의 논리를 따른다.

가진 만큼 권리가 부가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을 우상화할 경우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막는 게 정치의 과업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시장이 초래하는 불균형을 바로잡는 능동적 역할을 해야 할 주체가 바로 정치이고, 정당이고 정부다.

4월 총선을 한다. 총선은 불평등을 바로잡고 모두 승리하는 길로 갈지 시험하는 무대다.

오랜 시간 축적된 불평등은 어느 한쪽의 역량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난적이다. 만일 이 싸움에서 진다면 패자는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총선이 정치의 실패를 확인하는 마당이 아니라, 정치의 비전을 펼치는 장이 되려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모두의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특히 집권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권세력은 광복 70년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인식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승리자의 관점을 반영하려고 한다. 집권세력이 70년의 역사를 이끈 주체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70년이 남긴 그늘인 불평등 체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래리 바텔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수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투표한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불평등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이 공화당 정권 때 더 불평등해진 사실을 규명, 보수의 각성을 촉구했다.

불평등에서 탈출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 다음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자세, 불평등이 초래한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열정,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이 불평등에 패배하는 위기의 순간은 불평등이 해소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퍼질 때이다. 불평등에 익숙해지고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이다.

불평등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명백한 실체이다.

 

경향신문 사설

입력 : 2015.12.31 19:50:36

수정 : 2015.12.31 19:53:03

Posted by 망중한담

댓글을 달아 주세요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