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가 독재국가라면 더민주는 부족국가"
너무나도 다른 양당 문화, '시키면 한다' vs '내 의견은 이래'… 상명하복식 체계 한계, 당내 분열 수습도 관건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새누리당이 싫어서 새정연(새정치민주연합) 뽑는 사람들의 심정"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올라왔다.
이 그림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구도를 "나쁜 놈 vs X신"이라고 표현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울면서 새정치연합을 향해 "힘내라!" "너라도 힘내!"라고 외친다. 새누리당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야권 지지층이 새정치연합을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이 그림을 퍼 나르며 공감을 표했다.
이는 야당을 바라보는 사회 일각의 시선을 대표한다.
야권 지지층조차 새정치연합을 계승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무능하다' '지리멸렬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치단결"하는 새누리당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 2014년 지방선거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새누리당이 싫어서 새정연 뽑는 사람들의 심정'. 출처 : 오늘의유머(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164480) |
싸우다가도 단결 vs 결정하고도 계속 이견
새누리당이라는 조직과 더민주라는 조직의 차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 정치부 기자는 "새누리당이 독재국가라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족국가"라고 표현했다. 새누리당이 지도부의 판단이 조직 전체의 판단으로 이어지는 '상명하복'식 조직인데 반해 더민주는 지도부의 판단이 조직 전체의 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2015년 7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어내기' 당한 이후 새누리당이 상황을 수습하는 모습은 새누리당의 조직적 특징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7월 8일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거쳐 유승민 의원에게 원내대표직 사퇴를 권고했다.
다음날인 9일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또 한 번의 절제하는 협조를 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묵언이다. 애당심으로 협조해주시기 바란다"고 의원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 전날까지 유승민 원내대표를 두고 고함까지 치며 싸웠던 의원들은 조용해졌다. 분란을 조장해보려는 기자들의 전화에도 의원들은 말을 아꼈다.
관련 기사 : 납작 엎드린 김무성, 의원들에게 입단속 당부
반면 더민주는 새누리당에 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부족하다. 나름의 절차와 총의를 모아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거나 반발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문재인 대표 체제 하에 당 혁신안을 만들었고 이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솟구쳐 나왔다.
논리는 늘 비슷하다. 특정 계파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였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일했던 보좌관 A씨는 "새누리당은 서로 싸우다가도 한 번 결정되면 일사분란하게 따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 당은 한 번 정해진 것을 두고도 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에서 모두 일한 보좌관 B씨는 "처음 더민주에 왔을 때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선 의원들이 막 공개적으로 대표를 들이받고 그러더라.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됐다"고 밝혔다. B씨는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의원들이 지도부를 비판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을 아끼다 정치적 타이밍을 맞춰서 한 번씩 공세를 가하는 편인데 여기는 SNS나 언론을 통해 바로바로 말들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 2015년 5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도중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공찰치는 것이 문제"라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발언에 반발해 퇴장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
"정당 같지 않은 상가번영회 수준의 정당"
더민주를 일컫는 또 다른 용어가 있다. '자영업자 정당' '상가번영회 정당'이다.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철희 전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12월1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새정치연합은 정당 같지 않은 정당, 상가번영회 수준의 정당으로 규율도 없고 지켜야 할 선도 없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갈등을 빚다 당을 뛰쳐나간 상황이었다.
'상가번영회' 정당이라는 표현은 더민주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약한 고리로 뭉쳐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함축한다.
이철희 소장은 '찍어내기 당한' 유승민 의원이 당적을 지킨 반면 안철수 의원은 당을 나가버린 것을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차이로 꼽았다. 새누리당은 보수 세력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하나의 '조직'으로 작동하기에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이 새누리당을 버리고 나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 '나가면 죽는다'가 통한다. 공천에 불복해 탈당한다 해도 새누리당에 돌아오는 걸 전제로 탈당한다.
하지만 더민주의 법칙은 '나가면 산다'이다. 이철희 소장은 "(더민주는) 수틀리면 언제든지 나가고 언제든지 다시 불러들이려 노력하는, 탈당도 쉽고 입당도 쉬운 정당이다. 당 싫다고 나간 사람을 통합이란 이름으로 유혹하는데 당 나가는 게 왜 두렵겠나"라며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한 기대치가 최근 커지고 있는데, 그 분이 당에 있을 때는 그런 열망이 없었다. 당 밖에 있으니 몸값이 더 커지는 웃기는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보좌관 A씨는 "더민주는 자영업자 정당이다. 의원들이 각자 개인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예컨대 우리당의 환노위 소속 의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데, 현장에서 자영업자 목소리를 많이 듣는 의원들은 이 주장을 반기지 않는다. 진선미 의원 같은 분이 소수자 관련 법안을 내면 더민주의 모든 의원들이 다 좋아할까?"라고 반문했다.
자연스럽게 이슈를 주도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난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에서 이슈를 만들고 이를 의제화 하지만 더민주는 '스타 의원들'이 이슈를 주도한다.
A씨는 "새누리당은 지도부가 결정하면 다 따르다보니 지도부에서 상징성 있는 인물을 비례대표로 영입하면 당 차원에서 확 밀어주는 게 있다"며 "하지만 더민주는 김기식·은수미 의원 같은 상징성 있는 인물을 영입하고도 '저 사람은 너무 왼쪽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목표는 집권이지만 더민주의 목표는 재선"이라는 여의도 정가의 유명한 말도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에서 모두 일해 본 보좌관 C씨는 "상대당의 입장이 절대 바뀔 리 없는 상임위에서는 당 차원의 단일한 주장이 이루어진다. 예컨대 환노위의 경우 새누리와 더민주의 의견차가 심해서 야당 환노위 보좌진들이 단합해도 여당이 움직일까 말까다"라며 "하지만 그 외의 공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C씨는 "예컨대 기재위의 경우 정부 출신, 학자 출신, 시민단체 출신들이 다 섞여 있어서 보좌진들이 모여서 의제를 정하고 방향을 통일해도 의원들 입맛에 따라 방향이 다 틀어진다"며 "롯데 면세점 문제를 상임위에서 다루는데도 롯데를 칭찬하는 의원, 비판하지만 힘을 실어주는 의원, 롯데를 죽일 듯이 비판하는 의원으로 나누어져 중구난방이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사무적, 더민주는 동지적"
정치권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조직적 차이를 일컫는 또 다른 말이 있다. 더민주 보좌관 D씨는 "흔히 새누리당 조직문화는 사무적, 민주당 조직문화는 동지적이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동지끼리 모여서 하는 일이란 정책과 가치관을 둘러싼 토론이다.
D씨는 "초선, 중진 방에 다 있어보고 인턴도 해봤는데 더민주는 어딜 가나 보좌진이랑 대화를 많이 하는 문화가 있다. 인턴시절 어떤 의제 때문에 의원총회가 열렸는데, 의원에게 당장 올라와서 설명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중진 의원이 바로 지역에서 달려왔다"며 "토론이 활발하고 받아들여지는 조직 문화"라고 말했다.
보좌관 C씨는 "새누리당 조직에는 공무원 조직 같은 사무적 분위기가 있다.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당에 새로운 집단과의 통합이 거의 없어서 고유의 문화가 있다"며 "집권여당을 오래하다 보니 정부나 청와대 쪽으로도 많이 오고 가고 해서 사무적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더민주는 정책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바꾸려는 분위기가 있다면 새누리당은 지도부나 중앙에서 만들려고 하는 정책이나 특정 사안을 '공무원처럼' 주어진 대로 처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 2015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4.29 재보궐 선거 공약 발표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새줌마(새누리당 아줌마) 퍼포먼스를 위해 안상수 후보 등의 앞치마를 매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
보좌관 B씨는 당장 카카오톡 대화방의 분위기도 다르다고 전했다. B씨는 "하다못해 선거 때 현수막을 붙이자는 말을 하더라도 새누리당 카톡방에서는 누가 인쇄하고 누가 어디에 붙일 것인지에 관한 실무적인 논의가 바로 이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더민주 카톡방에서는 현수막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이 쏟아진다"고 밝혔다. B씨는 "'내가 이런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차이의 원인으로 조직의 역사가 꼽힌다.
새누리당은 지역이나 계층 면에서 지지기반이 비교적 확고한 상태에서 선거 때 좌측 행보를 하는 식으로 조직을 확장해왔다. 반면 더민주는 연대나 통합을 통해 당의 몸집을 키우고, 외부에서 세력을 끌어들이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문재인 의원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세력과 민주당의 통합과정에서 더민주에 들어왔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4년 민주당과 새정치 세력의 합당 과정에서 더민주에 왔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지난해 12월14일 토론회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당내에 여러 가지 이질적 세력들이 섞여 계파로 나뉘면서 서로를 거부하는 '비토크라시', '거부권 정치'가 일상화됐다"고 설명했다.
지지층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새누리당의 지지층은 '안정감 있어 보이는' 정치인을 선호한다. 말을 아끼며 정치력을 행사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다. 반면 더민주와 야권의 지지층은 안정감보다는 자유로운 토론, '할 말을 하는' 이미지의 정치인들을 선호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 사례다. 양측 모두 이런 지지층의 기대에 맞출 수밖에 없다.
2017년 대선, 체질을 바꿔야 이긴다
2016년 총선을 전후로 이런 양 당 조직에 변화의 조짐이 드러났다.
더민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영입이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여러 차례 '당의 체질'을 바꿔야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주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더민주를 새누리당처럼 만들어야'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 파동 때 대표직 사퇴까지 걸며 칩거에 들어간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문제없다'는 비대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발표한 비례대표 공천안이 중앙위에서 보이콧 되는 상황을 '불필요한 당내 분란'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김 대표는 3월23일 당 잔류 기자회견에서 "근본적으로 이번 총선, 대선 임하는 마당에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자신의 결정에 반기를 든 당내 인사들의 비판을 '일부 세력의 정체성 문제제기'라고 지칭한 것이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그동안 '일치단결'하던 조직의 모습을 상실했다.
대통령의 '찍어내기'에도 당을 나가지 않았던 유승민 의원은 탈당을 선택했다. 지지층이 보기에 이러한 갈등은 당이 수습할 수 있는 차원을 벗어났고, 이에 실망한 많은 지지층이 새누리당 대신 국민의당을 찍거나 투표를 포기했다.
▲ 김문수 새누리당 수성구갑 후보가 4월6일 오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새누리당 공천 잘못과 대구 경제 못 살린것을 사죄한다며 절을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그동안 새누리당의 장점으로 작용했던 상명하복식 체계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에서는 심상치 않은 바닥 민심을 파악했으나 중앙당으로부터 '왜 지역구 관리를 잘못했느냐'는 질책을 들을까봐 입 밖으로 이런 내용을 꺼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양 당 조직의 변화가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김종인 대표는 새누리당과 다른 구성원, 새누리당과 다른 지지층을 지닌 더민주를 '새누리당화'하는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또 새누리당은 수습 불가능한 갈등을 조율하며 다시 새누리당 조직의 장점을 승리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까.
2016년 05월 21일 토요일
조윤호·김유리 기자 ssai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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