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소통'에 없는 네가지
박 대통령과 오찬 130분…'총선 민심' 모르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현장에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단의 오찬 분위기는 대체로 무거웠다.
오찬은 예정된 1시간30분을 훌쩍 넘겨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고 대통령은 매번 성실히 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공감과 접점이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했다.
대통령은 아직 소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첫째, 총선 이후 소통의 첫 단추라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 것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 아니냐는 질문에, '식물국회로 일관한 양당 체제에 대한 심판'이란 답을 내놓았다. 이에 기자는 총선 이후 <한겨레>가 실시한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에서 새누리당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이유가 '연금, 세월호, 메르스, 국정교과서, 경제 등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으로 나온 결과를 소개하며 총선 민의를 되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런저런 다양한 분석이 있다"고 두루뭉술 넘어갔다. 총선 민의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별로 없다. 이는 보수 언론조차 동의하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다면 이후 행보 역시 종전과 다를 것 같지 않다. 소통의 전제는 나도 변하는 것인데 나는 그대로인 채 상대방에게만 타협하자면 될 일이 없다.
둘째, 총선 패배 뒤끝이어서인지 대통령에게서 여유를 찾기 어려웠다. 모든 사안을 꼼꼼히 설명하지만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조급함, 강박관념 같은 게 엿보였다.
"파견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만 국회가 처리해줘도 일자리가 늘어서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목에선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돼서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고도 했다. 얼마나 절실하면 이리 말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야당과 접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혀 평정심을 잃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의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나가려는 여유를 느낄 수 없었다.
셋째, 대통령이 여러 문제를 개별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사안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참석자는 사교육비 문제를 들어 주변 참모들이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엉뚱한 대책들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공교육 강화, 자유학기제 도입 등 사교육비 대책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다. 국정을 법안 중심 또는 개별 사안 중심으로 분리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 일하는 구조, 일을 맡은 사람들의 문제를 보지 않고 특정 사안 중심으로만 접근하면 일머리가 잡히지 않는다. 대통령은 차곡차곡 마음속에 '한'을 쌓고 있을 뿐 전체를 보지도, 일머리를 틀어쥐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백기철 편집국장 |
넷째, 대통령은 지금의 민심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는 오찬 말미에 "20대 국회가 19대와 같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이 간다면 민심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지 않을까"라고 흘리듯 말했다.
20대 국회 역시 3당이 물고 물리면서 별 볼 일 없어지면 민심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레임덕 대통령' '여소야대 대통령'에겐 이런 희망조차 사치스러워 보인다.
산을 가다 보면 내려올 때도 있고, 올라갈 때도 있다. 어느 때건 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걸어야 한다. 자신이 밟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산을 타는 것조차 위태로울 수 있다.
등록 :2016-04-26 21:33
수정 :2016-04-26 23:39
백기철 편집국장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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