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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시사

‘어버이연합’ 폭력을 이념대립으로 호도한 언론의 책임

언론이 그들을 괴물로 키웠다

극우 폭력단체 관제시위, 여론으로 포장… 최악의 여론조작 사건, 어버이게이트에 언론도 공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의 청와대 집회 개최 지시 및 돈줄 의혹과 관련해 이들의 스피커 역할을 했던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06년 5월 결성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정치적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등 극우적 성격을 띄었지만 언론이 이들을 보수단체로 포장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영향력이 커졌고 정치·자본 권력과 결탁해 여론을 왜곡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어버이연합이 공개적인 활동으로 최초 주목을 받았던 것은 지난 2007년 7월로 거슬로 올라간다.

언론은 어버이연합을 '박근혜 지지 모임'이라고 소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쟁 상대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단체로 이름을 알렸다.

어버이연합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방식은 폭력을 동반한 과격한 집회와 시위였고 언론은 어버이연합의 폭력성을 활용해 이슈를 확대 재생산시켰다. 어버이연합은 언론 보도를 힘으로 폭력성을 더욱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0년 1월에 벌어진 '이용훈 대법원장 계란 투척 사건'이다. MBC PD수첩 제작진이 허위보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선고를 받자 어버이연합 등 회원 50여명은 공관 정문을 막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관용차에 계란을 던졌다. 법조계와 일부 언론은 사법부 판결이 폭력으로 물들었다며 엄단을 주문했지만, 대부분 언론은 어버이연합의 행동을 이념 대결의 장으로 끌고 왔다.

2010년 1월22일 중앙일보는 계란투척 사건을 사회면에 짧게 다뤘고 동아일보도 검찰이 수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문에 그치는 등 심각한 사안으로 보지 않았다. 인터넷 보수 신문들은 '좌파 판결' 법원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며 오히려 어버이연합의 행동을 두둔했다. 언론이 어버이연합의 행위를 극우단체의 폭력이 아닌 아닌 보수단체의 일탈 쯤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행동하는 보수'로 정당화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박아무개씨를 각목으로 구타한 사건을 비롯해 2009년에는 국립현충원 정문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곡괭이로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고 2010년 대법원장 관용차 계란 투척 사건, 2010년 국가인권위 군대 내 동성애 인정 의견에 회의장 난입 등 어버이연합의 폭력은 갈수록 과격해졌다. 하지만 언론은 어버이연합의 폭력성을 방치하거나 이를 활용하는 데만 골몰했다.

 

▲ 지난 4월21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집회를 지시했다는 의혹의 보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V조선은 지난 2013년 8월8일 "보수 성향 어버이연합 회원들 서울광장서 경찰과 대치"라는 리포트에서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등 시위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광장 상황이다. 종북 척결 모형 화형식을 준비하는 상황"이라며 속보로 관련 화면을 내보냈다. TV조선은 북핵 시험 등 안보 관련 이슈가 터졌을 때도 속보 형식으로 어버이연합의 북한 규탄 시위를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어버이연합 회원이 경찰서장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터졌지만 '도 넘은 극우단체'의 행위를 비판하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대신 언론은 이들의 행위를 '충돌'로 보도했다.

 

지난 2011년 8월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어버이연합 회원이 충돌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현장에선 어버이연합 측의 일방적인 폭력이 난무했지만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와 진보의 충돌로 몰아갔다. 지상파 3사의 리포트 제목엔 어김없이 '충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 사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버이연합 돈줄 의혹이 시사저널 보도를 시작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고 있지만 지난 2015년 4월 오마이뉴스는 이미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과 관련한 보수 집회에 탈북자들이 동원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탈북자 단체의 '수상한 거래'가 포착됐는데도 언론은 대수롭지 않게 이들의 활동을 받아 적으면서 주요한 여론의 흐름처럼 보도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어떤 이슈에 대해서 찬반이 있을 수 있고 보수와 진보가 합리적인 경쟁을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수없이 시민사회단체나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어버이연합과 같은 단체는 돈이나 권력에 의해 움직이고 실체도 없다고 지적했고, 언론도 알고 있었지만 마치 찬반 여론이 있는 것처럼 여과 없이 어버이연합의 활동을 과잉 거짓 대표되게 반영해버렸다. 이번 사태도 언론이 공범으로서 키우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사무처장은 "어버이연합의 집회 시위는 마치 국론이 분열돼서 청와대와 여당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작용했고 언론도 뻔히 알고 있었다"며 "누가 보기에도 다른 생각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자행하는 극우단체인데 마치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몰고갔고 약자를 동원해 여론을 조작한 부도덕한 집단을 마치 여론이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언론 스스로 무능을 드러낸 것이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2016년 04월 26일 화요일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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