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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시사

‘핵 보유’, 냉정하게 분석해 보자

다시 묻는다. 한국, 핵무장 해야 하는가?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는 한국, 방향을 돌려야 한다

 

아래 글은 <글로벌아시아>에 실린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 연구소 소장과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의 기고문입니다. 2014년 7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기고문'을 현 상황에 맞게 일부 수정한 글임을 밝힙니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한국 국민들은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보다 더욱 큰 무력감과 좌절감을 넘어 심지어 분노에 찬 반응을 보였다. 이런 민심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발언에 반영되었다. 1월 11일 원유철 의원은 "북한의 공포와 파멸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 이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과 미사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 28일 한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일간지인 <조선일보>의 한 논설은 "한국은 핵무장을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월 11일 <중앙일보>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68%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음날 <연합뉴스> 조사결과의 경우 응답자의 52%가 독자 핵무기 개발을 선호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 선호 경향이 일반 대중과 엘리트 계층을 가릴 것 없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한국은 이제 와서 핵무기에 이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그들은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올랐고 이는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대칭적 핵억지력만이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견해다. 수소탄 소형화 및 두 번째 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이 논거를 뒷받침해준다.   

 

둘째, 한국의 핵무장이 대북 비핵화 협상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기 보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중국이 북한에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미국 핵 및 재래무기의 확장억지력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 보수인사들은 북한이 한국에 대해 크고 작은 핵 위협을 가해오더라도 미국이 이에 핵무기로 맞대응 할 가능성에 대해 다분히 회의적이다. 미국의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거나 약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한국이 자체적인 핵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체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에 대한 전통적인 불신이 친핵 정서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은 모두 핵무기 보유국들이다. 아베 내각이 최근 보인 전략적인 행보 또한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의 핵무장이 시간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친핵론자들은 한국이 지역 내의 유일한 비핵국가로 남게 되어, 그 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월 6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리춘희 아나운서 ⓒAP=연합뉴스

 

독자적 핵무장은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까?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독자적 개발이든 미국 전술 핵의 재배치든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실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정치, 법, 제도적 제약과 신뢰성의 한계 때문에 한국의 핵 보유는 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군사적인 결과 또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과 같이 적대적인 국가들이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핵무장을 할 경우 상호 억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일방이 보유한 핵탄두가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의해) 파괴되기 전에 선제 핵공격을 감행해야만 한다는 인센티브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지난 60년간 목격했던 것보다 훨씬 경직되고 치열한 심리전이 남북간에 초래될 것이다.

 

핵무장은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한국군의 공격전력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래식 전력이 이미 구축하고 있는 전쟁억지력 마저 저해할 뿐 아니라 북한의 공격에 대응할 재래식 전력 활용능력까지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가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에 끼칠 문제점 또한 지대하다. 그 어느 미군 통수권자도 자국의 정치군사적 지휘통제권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한 한국에서 미군을 위험에 노출시키려 할리 없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제약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 (NPT)이라는 다자, 한미원자력 협정이라는 양자, 그리고 핵연료 공급 그룹(Nuclear Supply Group)과 조약 또는 협약을 맺고 있다.

만일 한국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게 되면 이들 국제 조약을 파기하게 되는 것이고 그에 따른 비용은 엄청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맹국인 한국은 조약 제2조에 따라 핵기폭 장치나 핵무기의 획득, 제조와 관련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세이프가드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북한이 그랬듯이 한국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할 경우, NPT와 IAEA를 탈퇴해야만 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와의 원자력 협력이나 무역관계가 미미한 북한과 달리 한국은 통상국가 일 뿐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한 지도적 국가다.

이런 나라가NPT와 IAEA를 탈퇴하여 북한과 같이 유엔안보리 제재나 개별국가들의 제재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원자로 수출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미국, 호주, 러시아, 프랑스 등 원자력원료공급그룹(NSG)은 우라늄을 포함한 원료 공급, 농축 서비스, 그리고 원자력 관련 민군 겸용기술 제공 등을 중단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일본이 전국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지했던 2011년보다 더 심각한 전력난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폐연료봉 재처리와 파이로 프로세스 요청을 거부하는 동시에 연구 목적의 우라늄 농축활동마저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한국의 농축관련 핵 연구개발을 제지한 바 있는 IAEA로서는 한국의 핵확산 조짐을 보이는 즉시 이에 대한 경고를 보내게 될 것이다. 

 

미국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가능한가?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추진하는 대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한국의 독자 핵개발만큼이나 허황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이 소수의 공중 투하용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핵무기 독자개발의 경우처럼 핵 억지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한국을 '이판사판'의 딜레마에 빠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2009년 4월 5일 프라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상' 연설을 행한 이후 미국은 안보태세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해 왔다.

셋째,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 했을 경우, 이는 북한에 한국의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기는커녕 미군에의 군사적 종속이 재개됨을 알림과 동시에 한국군은 미국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는 북한과 중국의 견해를 입증하는 꼴이 될 것이다.

 

더구나 현재 미국의 재정긴축 상태를 감안 할 때,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하기 위하여 수천의 인력과 막대한 군사예산을 투입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본토기반 전략핵전력이 한국에 대한 확장억지력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연성 낮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이중의 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지난 1월 10일 한반도에 전개된 미국 전략 폭격기 B-52(왼쪽). ⓒAP=연합뉴스

 

재배치의 정치·군사적 효과는?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한다 해도 북핵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전술핵 재배치를 빌미로 6자회담을 무효화하고 핵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북한과의 군사관계를 강화하여 한국의 불안을 가중시킬 공산도 크다.

 

특히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술핵 재배치의 유용성은 극히 제한적이라 하겠다. 한국에 재배치된 전술핵의 첫 번째 임무는 북한 핵과 재래식 공격에 대한 사전억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심적인 대남 전쟁억지력은 비무장지대에 전진 배치된 군사력과 서울 북부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포 및 로켓 전력에 있다. 김정은이 대규모 남침을 통하여 군사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핵무기를 떠나서 남북은 이미 비무장지대(DMZ)에 엄청난 재래식 군대를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보유하고 있는 핵전력으로는 재래식 전력이 유지하고 있는 것 이상의 억지력을 제공하기 힘들다. 솔직히 북의 핵 억지력이 자신들의 군사목표에 부합하는지조차 다분히 회의적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수많은 시스템들(로켓, 분리단계, 재돌입체, 유도체계, 기폭장치, 핵탄두)을 고려할 때 북한이 핵미사일을 통해 목표를 성공적으로 타격할 확률은 1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령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한미연합 전력이 북한군을 완전히 제압하고 북한체제를 괴멸시키는 동시에 지도자들을 처단하거나 전범재판에 넘길 것은 뻔한 일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러시아와 중국마저 한미연합 전력과 공조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핵실험은 3차 핵실험과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북한의 핵무기 배치 능력 상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은 2020년에 완전한 킬체인을 갖추게 되지만, 이미 미사일전력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F-16, F-15기와 추후 도입될 F-35 전투기를 통해 제공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미군의 재래식 전력까지 포함시키면 한미연합군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제공권의 완벽한 장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산악지대에서의 비정규전을 제외하면 북한의 주요 시설물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 할 수 있다.

 

미국 전술핵 재배치의 두 번째 군사목적은 김정은이 섣부른 결단을 내려 전면전을 감행할 때를 대비해 이를 억제하고 더 나아가 퇴패시키는데 있다. 물론 김정은이 진정으로 비이성적이라면 핵이든 재래식이든 전쟁억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럴 경우 핵 전력의 유용성을 고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전술핵무기의 군사적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1980년대 중반 주한 미군야전군사령관이었던 잭 쿠시만 장군 등은 주한미군 산하 전술핵 배치를 반대한 바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은 엄청난 참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북한군의 진격을 지체시키기 위해 침입경로에 핵무기를 투하할 경우 거대 방사능 구름이 형성되어 한반도 전체가 황폐화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은 1991년 전세계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 및 전역핵무기를 철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러한 군사임무에는 핵무기보다 공대지 정밀유도탄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이 핵무기로 북한 지도부를 타격한다면 무고한 북한 주민들의 대량살상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이 설령 선제 핵공격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들은 이러한 과잉대응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북한 지도부와 대량살상무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B61 핵폭탄을 군사목적에 국한시켜 정밀하게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궁극적인 문제는 한국에 재배치된 미국 전술핵무기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저울질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어떠한 영향을 발휘할지 여부다.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는 오히려 북한 지도부의 군사적 모험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미국 핵무기의 존재는 미북 쌍방의 선제 핵공격 위험성을 높인다는 북한의 정치선전에 장단을 맞춰주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북한의 전략이 먹혀 들려면 미국이 북한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군사적 인센티브를 김정은에게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의 핵 확장억지력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개발을 정당화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는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구비할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확장억지력에 대한 신뢰가 소멸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질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느 일방이 군사적 도발이나 공격을 해 온다 해도 살상 정도에 있어서의 비 대칭성, 전장에서의 역효과, 그리고 도덕적, 정치적인 비판 때문에 이에 대한 핵보복은 타당하지 않은 선택일 때가 많다. 적대국가의 미국 타격 여부와 관계 없이 확장억지를 제공받는 동맹국이 이 모든 문제점들을 떠 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중반의 중국이나 가까운 미래의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미 본토에 핵 위협을 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한 핵 공격이 미국의 국가존립 자체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핵폭발이 가지는 위력 때문에 미국이 서울이나 도쿄를 지키기 위해 괌이나 로스앤젤레스를 내주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북한이나 중국이 미국의 전략핵전력으로부터 확장억지를 제공받는 한국과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한국, 이 둘 중 어느 것을 더 위협적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느 것이 핵위협의 신뢰성을 제고시켜 주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핵위협의 신뢰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역량'과 '의지'다. 미국에 의한 확장억지와 독자적 핵 보유 시, 어느 선택이 역량과 의지 모두를 충족시키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한국의 핵위협에 대해 신뢰성을 가지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 위협의 역량 또는 능력을 살펴 보자. 어느 누구도 미국이 결심만 한다면 잠수함이나 지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의 일부분만으로도 몇 시간 만에 북한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미사일은 수많은 실험으로 검증된 바 있으며 정밀타격 또한 가능하다. 미국의 핵역량에 대한 신뢰성의 결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적 핵무기 보유를 선호 할 경우, 그러한 무기를 개발, 시험, 제조, 배치하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이다. 그 와중에 북한의 핵위협을 상쇄할 전력에 공백이 생길 것은 뻔하다. 미국이 핵 무기를 보유하겠다는 한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더라도 순수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전력만큼 우수할 수는 없다. 한국은 기동표적의 정밀 타격이나 수시로 출몰하는 북한 지휘통제체계 좌표의 재입력에 필수적인 우주·기반고고도 정찰전력 및 기타 정보수집체계를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변수인 핵위협을 현실화할 의지는 어떤가? 북한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이름에서 미국의 핵 무기사용 의지를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한국에 핵공격을 가해 오고 이에 대한 보복타격을 한다고 가정해 하자. 이 경우에도 한국의 독자핵전력이 미국의 핵전력보다 신뢰할 만한지 불분명하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거나 핵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공격도 뒤따를 것이라는 신호이기 때문에 핵 보복 타격은 아닐지라도 미국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발 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한국이 미국의 핵 우산에 있는 한 한미 양국 전력은 구분하기 어렵고, 북한도 이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더하여 미국은 한국전 참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자원을 희생한 한국의 혈맹일 뿐 아니라 역동적인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큰 국가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중 전략관계(한반도와 양안문제를 둘러싼 핵문제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2012년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그리고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대남 핵위협은 미중관계에도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한국의 선택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 움직임은 북한의 강압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핵위협을 상쇄하려는 열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북한은 전쟁의 '억지'(deterrence)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관철하려는 '강요'(compellence) 목적의 핵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의 '강요' 위주 핵전략에 핵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미동맹과 대립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 지난 16일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독자적인 핵보유에서 얻는 안도감이 한미동맹을 파기시킬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또한,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했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억지력이 불안정하고 비생산적인 정치군사적인 효과들을 상쇄할만큼 큰지도 의문이다.

 

한국에게 있어서 최선의 군사적 선택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동맹국 미국과 함께 재래식 전력을 확보하고 지역 내 국가들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순보복을 피하고 한미연합사령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한미 연합전력의 절대적·상대적 우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작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 대상 선제공격이나 대북 전면전을 암시하는 군사 배치 및 훈련을 자제해야 한다(여기에는 해외주둔 미군도 포함된다).

 

특히, 인민군 지휘통제체계와 지도부의 붕괴를 목표로 한 훈련이나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 전략전력이 표적인 훈련은 북한이 선제 핵공격을 하지 않으면 핵전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는 인식을 심을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할 것이다. 그 대신에 미사일 요격능력과 핵공격에 대비한 전투사령부(CP) 보강으로 한미 방어태세를 강화함으로써 핵무기로 한미 연합군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단념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핵 군사태세는 외교적인 노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빈사상태인 6자회담을 소생시켜 북한 비핵화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안보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대북 포용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북한이 평화통일까지 이어질 진정한 화해절차를 개시할 때까지 전략적으로 인내할 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다. 여기에 핵무기가 설 자리는 없다.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핵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과 더불어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은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신뢰외교 구축과 남북 화해·협력 및 평화적이고 상호 합의된 통일 모색의 종말을 뜻한다. 20년간의 대북정책을 폐기함으로 인해, 한국 내에서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핵)전쟁의 위험성을 줄이는데 필요한 전략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40년 전 시도했던 핵 확산 재고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과거에도 그랬듯, 이 문이 열리면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뿐이다. 한국은 반드시 방향을 돌려 현실적인 차원으로 진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피터 헤이즈는 호주 시드니 대학교의 국제안보연구센터 겸임교수이자 캘리포니아 버클리 소재 노틸러스 연구소 소장이다. 피터 헤이즈의 주요 연구 분야는 복합 안보, 환경, 에너지 정책 부문이다. 헤이즈 소장은 혁신과 협력을 통한 대북 포용 전략으로 잘 알려진 국제 안보 및 지속 가능성 문제들에 대한 단기적인 해법 개발에 힘써 왔으며 이를 동아시아, 호주, 남아시아 지역에 적용해왔다 그는 유엔개발프로그램, 아시아개발은행, 지구환경기금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활동하였다. 헤이즈 소장은 1975년 케냐에 국제환경연락센터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문정인은 현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영문 계간지 <Global Asia> 의 편집인으로 있다. 또한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그리고 장관급인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문정인은 40여권의 국, 영문 저서와 편저를 비롯, World Politics, International StudiesQuarterly, The World Development 등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와 각종 논문집에 250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문정인은 2000년과 2007년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한 유일한 학자이다. 문 교수는 오랫동안 국가안보위원회, 외교통상부, 국방부, 통일부 등 주요 정부부처 정책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프레시안 [글로벌 아시아 포럼]

2016.02.21 16:25:20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 연구소 소장·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키는 힘입니다

"우리 사회에 프레시안 같은 매체는 하나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3년 6월,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이 언론 협동조합이 됐습니다. <프레시안>의 기사에 만족하셨다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도전에 주목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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