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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시사

뉴스에도 안 나가는 데 왜 카메라는 늘 집회현장에 있을까 – ‘찌라시’와 ‘기레기’ 감별법

미디어가 지닌 침묵의 힘…

언론의 시간차 공격, 시차적 관점으로 방어하라

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3부 'How to read 뉴스 초급편'에서 소개할 3개의 글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미디어의 힘은 침묵에서 나온다

정치학에는 'Two face of decision power'라는 개념이 있다. 권력에 두 가지 속성이 있다는 뜻이다. 언론의 힘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언론과 미디어가 어떤 뉴스를 생산했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진짜 미디어의 힘은 보도하지 않는 힘에 있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흔히 명시적인 힘에 집중돼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남을 강제하는 '명시적' 권력은 눈에 잘 띠는 힘이다. 언론도 이런 명시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본인들이 원하는 이슈를 의제로 설정하고 특정한 프레임의 틀 안에서 사안을 인식하도록 보도하는 힘이다.

하지만 묵시적 권력도 있다. 침묵의 힘이다. 사회 지배계층에게 불리한 이슈는 아예 의제로 만들지 않는 것으로, 정치학에서는 이를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이라 부른다.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결정한다는 뜻이다. 언론도 이런 묵시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언론은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결정한다

백혈병 환자들이 자신들이 일한 직장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메체를 제외한 미디어가 이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의 산업재해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 된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제발 보도해 달라"고 외치며 제대로 된 기사 한 줄에 목매는 이유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에 대해 규정한 방송법 제6조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객관성을 떠올린다면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이다. 왜 소수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편향'을 발휘하라고 법에 규정한 것일까.

▲ 세월호참사특조위가 1차 청문회를 연 15일 서울 YWCA 건물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미디어의 '묵시적 힘' 때문이다. 다수의 위치를 점하고 있거나 이미 자신의 이익추구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는 계층은 법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자신의 입장을 밝힐 스피커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반면 소수자는 미디어가 침묵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할 방법이 없다,

국정원 해킹의혹, 지상파 보도는 5일 간 0건

지난해 여름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불법감청프로그램인 RCS를 구입해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7월 9일에 처음 세상에 드러났으나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에는 7월 13일까지 RCS 관련 보도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7월 13일까지 지상파 3사 메인뉴스만 보는 사람들에게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 의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

JTBC 메인뉴스인 뉴스룸이 같은 기간 관련 사안을 11건에 걸쳐 보도한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이처럼 JTBC에 '손석희 뉴스'가 등장한 이후 매체 비평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지상파 뉴스의 비교기준이 '손석희 뉴스'가 됐다. 미디어오늘이 '손석희 뉴스' 1년을 맞아 2013년 9월 16일부터 2015년 9월 15일까지 JTBC 메인뉴스 뉴스룸과 방송3사 메인뉴스 보도를 비교한 결과 보도량의 차이는 컸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경우 1년 간 JTBC는 122건을 보도한 반면 같은 시기 KBS는 35건, MBC는 44건, SBS는 50건이었다.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의 경우 JTBC가 1년 간 82건 보도한 반면 KBS는 36건, MBC는 40건, SBS는 48건 보도했다.

이러한 차이는 지상파의 보수성과 JTBC의 상대적인 진보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뉴스의 성격 차이에서 오는 탓이 크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 리포트는 평균 1분 30초 안팎에 리포트 수는 평균 25꼭지 내외다. 이를 백화점식 나열뉴스라 한다. 그 날 벌어진 여러 뉴스를 1-2건씩 60분 안에 끼워 넣는 방식이다.

반면 JTBC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제1이슈, 제2이슈에 압도적 비중을 두고 하나의 주제를 적으면 3-4개, 많으면 10개 이상의 꼭지로 다룬다. 뉴스 꼭지가 단일 이슈로 덩어리를 이루는 '덩어리 뉴스'다. 한 이슈에 대한 뉴스 꼭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JTBC 뉴스만 보는 사람과 지상파 3사 뉴스만 보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며 JTBC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지상파 3사 뉴스가 침묵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어떤 사안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묵하는 나쁜 뉴스'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뉴스가치라는 마법의 칼 덕분이다. '너희는 왜 이런 중요한 걸 다루지 않냐'고 비판하면 아마 "다른 뉴스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거나 "팩트 확인이 더 필요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고의로 특정 뉴스를 은폐한 정황이 없는 한 이런 설명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뉴스 소비자들이 미디어가 지닌 '침묵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침묵하던 미디어가 갑자기 보도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지난해 7월 14일 지상파 메인뉴스는 일제히 국정원 해킹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보도를 시작했을까.

7월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해킹 의혹이 다뤄졌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의원들에게 해킹 의혹에 대해 보고했다. 3사의 메인뉴스 이 보고에 집중해 '발생 기사'로 해당 사안을 다뤘다.

해킹 의혹을 국회 정보위 보고라는 '발생기사'로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초점은 국정원의 해명에 맞춰졌다. 7월 14일 지상파 3사의 리포트 제목은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구입…"북 대비용"'(KBS) '"대북 정보전용 해킹 프로그램"'(MBC), '"프로그램 샀지만 해킹 안 했다"'(SBS) 등 국정원의 해명 내용이었다.

지상파 뉴스만 보면 해킹 의혹이 발생한 곳은 국회다. 자연스럽게 해킹 의혹은 여야 간 쟁점이 된다. '진상조사위 구성…"정치공세다"' '야 해킹 시연 공세…여 정치쇼 비판' '야 해킹 시연…여 "정쟁 유발하려"' 등의 제목이 등장했다. (관련 기사 :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국정원 해킹, 지상파는 축소•침묵>

MBC는 7월 15일 뉴스 데스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대선과 연계시켜 공세를 벌였다. 새누리당은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을 방문해 현장 확인까지 하도록 결정했는데도 야당이 또 다시 무분별한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의혹이 발생한 지 며칠이나 침묵하던 지상파 뉴스가 보도를 시작했지만 그 초점은 국정원의 해명과 여야의 정쟁에 맞춰졌다.

▲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국정원 감청의혹' 보도.

 

침묵 속에 마침내 입을 여는 보도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며칠 간 해킹 의혹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됐음에도 지상파 등 메이저 언론은 이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혹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뉴스를 잘 보지 않던 사람들마저 "국정원이 해킹했다는데?"라는 어렴풋한 인식을 가지게 될 즈음, 국정원의 해명과 여야 간 정쟁이라는 뉴스가 쏟아진다. 그럼 사람들은 "아, 간첩들 잡으려 한 거구만" 아니면 "저것들 또 싸우네"라고 생각하고 그 뉴스를 머리에서 지운다. 미디어의 힘이다.

"뉴스엔 안 나가지만 혹시 충돌할 수도 있으니까"

지난해 12월 14일 세월호 참사 청문회가 열렸다. 참사 이후 1년 8개월 만에 열렸지만 메이저 언론 중에 이를 생중계한 언론사는 없었다. 이해는 간다. 방송에서 생중계하기에는 '그림'이 안 나온다.

청문회 위원들은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참사 책임자들의 입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나 참사를 해결할 단서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그림을 위해 생중계하기엔 세월호 청문회는 너무 지루하고 늘어지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청문회 첫 날 미디어가 원하던 '그림'이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알려졌던 김동수씨가 답답한 마음에 청문회 도중 자해를 시도했다. 언론의 카메라는 그곳으로 향했다. 청문회 첫날인 12월 14일 KBS 메인뉴스는 20초 단신으로 청문회 내용을 처리했는데, "여당 추천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의인 김동수씨가 자해를 시도했다"는 멘트가 전부였다.

같은 날 MBC 메인뉴스는 김씨의 자해 사건을 중심으로 청문회 소식을 단신 처리했고 SBS 메인뉴스는 리포트 기사를 배치했으나 김씨의 자해 사건이 중심이었다. 보도전문채널인 연합뉴스 TV는 청문회 쟁점과 함께 김씨의 자해 시도를 각각 단신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도 비슷했다. 12월 15일 12면 기사제목은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첫날 자해 소동'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6면에서 청문회 소식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지만 제목은 역시 '세월호 의인, 특조위 청문회 첫날 자해 시도'였다. 12월 16일 조선·중앙·동아일보에는 청문회 기사가 없었다. 전날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 난다"는 해경 측 증인들의 발언이 이어졌는데도 말이다.

언론은 청문회 내용에서 새롭게 드러난 의혹, 진상규명을 위해 밝혀내야할 것들에 대해 침묵했다. 그 긴 청문회에서 많은 언론들이 뽑아낸 핵심은 '자해'였다.

집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집회현장에는 수많은 카메라들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그 카메라를 향해 "왜 내보내지도 않으면서 카메라만 갖다 놓느냐"고 따진다. 집회 취재를 많이 다녀본 기자들은 그 답을 안다. "뉴스에는 안 나가지만 혹시나 충돌이 있을지도 몰라서"다.

누가 왜 집회를 하고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행진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보도한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가진 침묵의 힘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침묵하다가 입을 여는 순간, 미디어에 비친 시위대의 모습은 경찰과 드잡이질 하는 폭력시위꾼들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열린 집회를 취재하는 언론의 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4월 11일 집회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다 유가족이 연행되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을 뿌렸지만 4월 11일에도 12일에도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는 관련 뉴스가 등장하지 않았다. '침묵'이다. (관련 기사 : <유족들에 최루액 쏘는 경찰, 지상파는 축소·외면>

 

▲ 지난 14일부터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현장에서의 취재진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메인뉴스가 아닌 오전뉴스, 정오뉴스에서는 관련 소식이 등장했다. MBC는 12일 오전 뉴스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인양계획 발표 등을 요구하며 어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집회를 벌인 참가자 가운데 일부가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캡사이신 최루액 이야기는 없었다.

지상파 뉴스를 본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집회가 있었는지 아예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알았다고 해도 해당 뉴스를 보고 머리에 남는 것은 집회 내용보다는 "드잡이질 하다 경찰에 연행 됐구나" 정도의 정보 뿐이다. 경찰이 캡사이신을 쏘았다는 점을 아예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생중계도 안 할 거면서 수많은 카메라를 세월호 청문회장에 갖다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뉴스에는 안 나가지만 혹시 충돌이 있을지도 몰라서"다. 그리고 자해가 벌어지자 언론의 카메라는 그곳을 향했다.

텍스트를 읽는 시차적 관점

배구에는 '시간차 공격'이라는 게 있다. 공격의 속도를 조절하며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다. 미디어의 텍스트도 시간차 공격을 쓴다.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조용하다가 어느 순간 보도를 시작한다. '탐사보도'를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어오는 시간차 공격은 상대를 흐트러트린다.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시간차 공격도 뉴스를 보는 우리의 인식을 흐트러트린다. "이것은 정쟁이야" "이들은 폭력시위꾼들이야"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해야"

시간차 공격에 대비하려면 하나의 매체에서 같은 쟁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바라보는 '시차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어제의 뉴스와 오늘의 뉴스가 다른가?

분명 어제 발생한 일인데 어제 뉴스에 없다가 오늘 뉴스에 갑자기 등장했는가?

모든 변화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아래 항목별 링크)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아래 항목별 링크)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3, How to read 뉴스, 초급편 : 텍스트 읽기 (아래 항목별 링크)

(1)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 의제설정과 프레임

(2) 뉴스 읽기의 기본 :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제조건을 보라

 

미디어오늘

입력 : 2016-01-07 23:47:27

노출 : 2016.01.09 13:37:39

조윤호 기자 ssai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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