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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 정의/인권

한일합의는 ‘무효’. “정권 바뀌면 폐기할 수 있다.”

"'위안부 합의' 박 대통령 탄핵 대상 될 수 있다"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12·28 합의의 법률적 문제 '한국인·재일조선인·일본인' 전문가 연쇄 인터뷰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여전히 유효, 정부 합의 최종적·불가역적일 수 없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속이 후련합니다. 지금도 '일장기'만 보면 억울하고, 가슴이 울렁울렁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요즘도 일본이 종군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1991년 8월14일. 기자들에게 말하는 내내 김학순(당시 67살) 할머니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진실을 폭로하는 자리. 할머니는 다달이 정부에서 쌀 10kg과 3만원을 받는 생활보호대상자였다. 할머니는 말하였다. "정부가 일본에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

이날 이후 지금까지 정부에 등록된 피해 할머니는 모두 238명. 무참한 세월이 지나며 192명이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46명이 생존해 있다. 모두들 아흔 안팎의 고령이다. 김학순 할머니 또한 참담한 기억을 세상에 알린 지 6년 뒤인 1997년 숨졌다.

그리고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의 두 외교장관이 기자들 앞에 섰다.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합의 타결을 선언했다.

<한겨레21>은 12·28 합의의 법률적 쟁점을 살피기 위해 한국인과 재일조선인, 일본인을 차례로 만났다. 국제법과 인권법 전문가들이다.

결론은 하나다.

"무효다." 왜 12·28 합의가 '외교 참사'이며 '굴욕적인 합의'이며 '제2의 매국적인 한-일 협정'이며 '정치적 거래'이며 '정권의 야합'인지가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_편집자

① 박찬운(54)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박찬운 한양대 교수는 "12·28 합의가 국제법의 강행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정권이 바뀌면 폐기할 수 있다." 박찬운 교수는 단호했다.

언론 보도자료만 있을 뿐 공식적인 '합의문서'가 정말 없다면, 이번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합의가 조약이라면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얘기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상당히 묘한 합의 형식을 취해놓았다. 오히려 조약의 형식으로 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박 교수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1월5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법적인 관점에서 청와대가 '외통수'에 걸렸다고 지적했다. 먼저 조약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우. "청와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인정한다면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당장 이 합의의 폐기를 요구할 수 있다. 정부 간 정치적 선언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이런 예는 국제사회에 많다."

반대로 단순한 정치적 선언은 아니라고 청와대가 주장하는 경우. 이때는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로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문서로 합의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구두만으로 법적 효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약'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문서로 합의하지 않았더라도 법적 기속력을 받을 경우가 있다.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제3조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번 합의로 대통령도 탄핵 대상 될 수 있어

그런데 이번 합의에 '법률적 효력'이 있다는 것을 청와대가 인정하게 되면, 이는 헌법 위반이고 정부는 위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이 합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상 조약으로 체결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합의문도 없이 두 나라 외교장관이 언론 발표를 하는 식으로 편법을 사용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합의를 일본과 했다. 이는 헌법 위반이다." 그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해임은 물론 대통령도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이 계속 합의의 효력을 주장한다 해도 '무효'라고 맞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강행법규(jus cogens)의 법리다. 이건 절대적 규범이어서 이것을 위반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빈 협약 제53조는 조약 체결이 강행법규에 위반되면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시 성노예 범죄는 국제법상 강행법규에 위반되는 대표적인 범죄다. 따라서 이런 범죄의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거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같은 피해자의 구제를 제한하는 국가 간 조약이나 합의는 강행법규를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12·28 합의를 법률적 성격이 있는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합의 내용이 대단히 조악하고 추상적이고 다의적이다. 어법 또한 유치한 수준이다."

② 신혜봉(50)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법학과 교수

재일조선인 신혜봉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12·28 합의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정용일 기자

"(합의 내용을 보면) 성노예라는 말도 들어 있지 않고, 위안부 문제가 국제법상 범죄였다는 인식도 없다. 그런데 마치 다 해결한 것처럼 박근혜 정권이 어떻게 이런 합의를 했는지 나로서는 실망스럽다."

국제법·국제인권법 전공인 신혜봉 교수는 한국 정부의 합의 책임을 먼저 언급했다. "두 나라 사이에서 '목에 걸린 뼈'(喉に刺さった骨) 같은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특히 일본 정부 쪽에서 더 이상 한국으로부터도, 국제적으로도 비난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다. 근데 그것은 진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결단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체면을 위한 것이었다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총리의 말에도 그런 자세가 나오고 있다."

'재일조선인 2.5'세인 신 교수는 일본 국제인권법학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제주에서, 어머니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1월4일 '제3회 국제인권동계강좌: 인권과 아시아 2016'(서울대 인권센터 주최) 첫날 초청강사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고, 이후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보충했다.

정부가 개인 권리 소멸시킬 수 없다

12·28 합의를 조약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두고 그는 어느 쪽으로 단언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국제법상 조약은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제2조 1항에서, 국가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되어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합의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번 합의에 빈 협약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빈 협약도 문서의 형식이 아닌 국제적 약속의 법적 구속력 자체는 부정하고 있지 않다(제3조). 예는 적지만 문서의 형식이 아닌 구두의 합의가 국제적 합의로서 인정받은 판례도 있다.

한-일 정부가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일본 정부에서 여전히 법적으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다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다 해결됐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일본 연구자들도 지적하고 있고, 나도 그렇게 주장해왔다."

두 나라 정부가 합의했다고 치더라도 피해 할머니들의 법적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번 합의는 구두의 합의이지만 국제적 합의로서 양국 간에는 법적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국의 책임(사실의 인정, 손해배상, 역사교육을 포함한 만족 조치)을 묻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인권침해 피해자의 박탈할 수 없는 권리다."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29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의 합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광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는 국제법으로도 문제가 많은 합의라고 했다.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해결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합의치고는 포함돼야 하는 내용이 매우 부족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가능한 한 제거하는, 국제법상 '만족'(satisfaction)이라고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또한 이번 합의는 법적 책임을 애매하게 한 채로 기금을 설립하겠다고 한 것으로 인해, 1990년대 아시아여성기금 때와 비슷한 문제점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본다. 필요한 것은 국가로서의 위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배상을 하는 일이다."

신 교수는 합의의 번복 가능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에 밀려 이번 합의를 번복할 것을 요청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는 '불가역적'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할머니들의 동의나 협의 없이 합의가 이뤄진 배경을 두고는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아베 정권을 상대로 할머니들의 요구를 그대로 관철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한 거다. 10억엔 제공의 조건으로 소녀상 문제를 언급하는 등 일본 정부의 태도도 너무 오만불손하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과 피해자 편에서 문제에 관여해온 양심적 변호사 등이 합의 발표 뒤 성명을 발표했다. 피해 할머니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과 형태의 구체적인 조처를 촉구한 것이다. 신 교수 또한 이들 성명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한국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어 외교적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위안부 문제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해온 일부 국가주의자들이 아베 정권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는 강조했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제네바 협약이 보호하는 사람의 권리를 당사국 사이의 조약으로 부정할 수 없게 돼 있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행사하는 외교 보호권은 국가의 권리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개인의 권리가 따로 있다. 정부의 합의만으로 그것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

③ 가와카미 시로(58) 일본 인권변호사

일본인 가와카미 시로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은 이번 합의와 관계없이 일본에 있다"고 했다. 홍석재 기자

가와카미 시로 변호사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평가하고 할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요구한 게 하나도 안 됐다. 이번 합의는 극히 불충분한 내용이다. 문제가 많다."

그는 12·28 합의를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타결 또는 합의를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국가 간 합의니까, 국가 입장에서 보면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 합의의 구속력 문제에 대해서는 비준이 필요한 조약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약이냐 아니냐 하는 논의 자체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일본변호사협회 인권옹호위원회 부위원장, 인권구제조사실장 등을 지냈다.

2010년부터 한국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변호사들과 교류하고 있다. 1월5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진단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 토론회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타결·합의로 해석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것으로 한국 정부의 외교권이 포기된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있다. '최종적·불가역적인 해결'이란 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외교권이 포기된 것으로 볼 거냐는 문제는 검토해볼 만한 것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되려면 일본 정부가 명예회복 등 조처를 착실하게 실행하는 걸 전제로 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 전제가 되지 않으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합의 내용을 그는 두 측면에서 분석했다. "아베 정권이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역대 내각이 줄곧 계승하겠다고 얘기해온 '고노 담화' 자체를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 자체만으로 나쁘다. 이번 합의 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아베 정권의 자세를 잣대로 보면, 이번 합의는 예상을 넘어서 (아베 입맛에 맞게)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져야 하는 책임 인정과 사죄 문제를 잣대로 하면, 과거로 돌아갔다는(후퇴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 처음이자 1212번째인 수요집회가 1월6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열렸다. 정용일 기자

일본이 먼저 소녀상 이전 말할 수 없어

가와카미 변호사 또한 피해 할머니들의 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았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1항에서도 최종적 해결이란 문구가 논란이 됐던 것이다. 국가 간 합의를 외교법상 어떻게 다뤘는지와 별개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구별해서 논의돼야 한다. 이전에도 한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위안부 피해자 개인 배상 청구권은 한-일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합의로 배상 청구권이 포기됐는지 어떤 영향이 있는지가 하나의 논점이 될 수 있겠지만, 결론은 그건 영향이 없고 포기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 문제 역시 국가 간 합의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1천 회를 기념해서 만들었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대응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생겼다. 따라서 소녀상 이전을 일본 쪽에서 먼저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번 합의와 관련해서 가와카미 변호사는 해결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의 책임은 이번 합의와 관계없이 일본 정부에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일본 외무장관이 어떻게 하겠다는 발언이 단발적(막연하게)으로 나와 있는 상태다. 다시 합의를 하면서 피해자가 요구하는 내용을 진짜 수용할지를 얘기해야 한다. 피해자와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계속 따져나가야 한다. 그 부분을 확실히 하지 않고 문제를 (얼렁뚱땅) 해결하자고 하면, 합의의 기만성이 나타날 것이다."

끝으로 그는 잘라 말했다. "이런 식의 합의는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피해자와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 더 폭넓게는 한-일 양국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최종적인 해결이 날 수 있다. 그건 국가 간 합의와 관계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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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1-14 14:47

수정 :2016-01-15 08:13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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