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중의 막장 노부리

 

<광부 아리랑>

니기미 씨부랄 것 농사나 짓지 강원도 탄광에는 x빨러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노부리 고개를 넘어 간다

산지사방이 일터인데 그리도 할 일 없어 탄광에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을 넘어 간다

이판저판이 공사판인데 한 많고 살움 많은 탄광에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탄광은 말도 많다

 

('노부리'는 본항에서 탄맥을 쫓아 가지 처럼 뻗은 경사진 갱도를 말한다. 통상 본항 보다 더 좁고 낮은 열악한 환경이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

 

 

매일 매시(每時)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지내는 동안 한 달이 지나갔다.

'만근'을 했다. 만근은 한달 중에 이틀만 빼고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임금의 두배 가량 수입이 늘어 난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만근' 제도는 광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몹쓸 제도다.

문제는 '가다가와리 (반 교대)' 때에 심각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을반 작업이 끝나는 시각은 자정이다. 반이 바뀌지 않으면 이튿날 오후 네시 출근이므로 퇴근 후에 자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빼고도 열두 시간 쯤 된다.

만근을 하려면 일주일에 한번은 열두 시간의 휴식을 네시간으로 줄여야만 한다. 예를 들자면 자정에 작업을 끝내고 아침 여덟시까지 출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극한 노동 현장에서 피로와 수면부족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동료들과는 마치 가족과 같은 신뢰와 정이 쌓여 갔다.

어색하기만 했던 그들의 말투와 습관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판단 기준도 그들과 동화되어 갔다. 가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면 혼자 소리없이 웃기도 한다.

 

이반 데미소비치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1918. 12. 11~ 2008.08.03)과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1963초판 발행)

 

매일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살며 세 번의 만근 수당을 받았다. 첫 월급을 받던 날에는 동료들에게 제대로 '햇돼지 신고'도 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계층'이 없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잘 생긴 자나 못 생긴 자나 다 비슷하다.

소득도 비슷하다 기술자 격인 선산부와 후산부의 소득 차이는 별로 없다.

한 달에 한번, 탄광촌은 '돈의 홍수'를 만난다. 상가는 북새통을 이루고 술집마다 만원사례다. 며칠 간은 하숙집도 잔치 분위기다.

힘들인 것에 비해 허무하다 싶을 만큼 물 쓰듯이 돈을 쓴다. 하지만 고단한 광부의 삶에서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부슬부슬 이슬에 내리던 갱구 400m 지점에 문제가 생겼다.

상단을 가로 지른 동발(하리)하나가 꺾어져 갈매기 모양으로 처진 것이다.

보수할 때를 놓친 것인지, 별 문제가 없어서 보수를 안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인다.

그 지점은 광차를 타고 나오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광차에 타고 있는 동안에도 머리를 완전히 들 수는 없다. 그런데 동발이 처져 있으니 자세를 더 낮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덜커덕 달달달달..

가속이 붙은 광차는 귓전에서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의 속력이다.

"이 쯤일텐데.."

살짝 머리를 내미는 순간, 번쩍! 우지끈! @#!$%......

. . . . . . . . . .

. . . . . . . . . .

암흑이다. 귀에서 웽웽 거리며 마치 작은 모터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사고 임을 느꼈다.

캐프불(캡라이트)이 나갔다. 박살이 난 것이다. 코에서는 비릿하고 찐득한 것이 흘러 나오고 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누워 있다가 불현듯이 생각 났다.

"굴진 팀이 나온다!"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애지중지하던 휘발유 라이터, 입항 때 마다 감시를 피해 몰래 감추어 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탄광에서는 매탄 등 천연가스와 석탄 등에 의한 화재 및 폭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입항 시 담배와 성냥, 라이터 등을 휴대하지 못하게 한다.

 

충돌 시 광차가 탈선해서 왼쪽 동발을 들이 받고 레일과 비스듬하게 서있다. 삿대가 진 것이다.

꺾어졌던 동발 부분에서 탄과 괴탄, 잡석들이 쏟아져 내려와 있었다.

오른 손에 라이터를 켜 들고 막장 쪽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자빠지고 넘어지고 뛰면서 소리질렀다. "사고! 사고!"..

 

다행히 크게 다친데는 없었다.

그것 보다 더 다행한 것은 사고에 대해 별다른 질책이나 문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문이 날 경우, 마땅히 보수해야 될 것을 방치한데 대한 책임 추궁이 염려 때문일까? 감독은 전에 없이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일이 나에게서 이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사고 지점 보수 때문에 이틀째 쉬고 있는데 'J'가 왔다.

"상동에 품때기 갈래?"

품때기란 일정한 작업량을 할당 받아서 하는 일종의 한시적 도급이다.

 

막장 중의 막장

 

노부리 입구. 실제로는 어둡고 맨 바닥이거나 경사면에서 석탄을 밀어 내리기 위해 바닥에 U자형 철판을 깔았다..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턴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59항'은 문어발 같은 노부리로 악명이 높은 덕대탄광이라고 한다.

노부리는 본항에서 비교적 약한 탄맥을 쫓아 파 들어간 경사진 갱도다. 대체로 본항에 비해 더 낮고 더 좁다. 낮고 좁은 노부리를 보는 순간에 지옥문이 있다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 호기심 섞인 공포를 느낀다.

자세를 낮추어도 일어설 수가 없기 때문에 작업은 허리를 구부린 채로 하거나 기어 다니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석탄을 퍼 담은 철제 상자에 쇠줄을 달고 그 쇠줄을 멜빵에 연결해서 사람이 끌고 나온다. 쟁기 진 소가 연상된다. 쟁기 대신 철제 쓰레받이를 사람이 메고 기어서 운반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가 막힌다.

마치 지옥으로 들어 가는 문을 보는 것 같다.

1096항에서 몇 달 간 단련되지 않았다면 59항 노부리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일제 시기의 조선인 광부들이 작업했던 방식이라고 한다.

(노부리 중에는 갱도 가운데에 U자형 철판을 깔고 경사를 이용해 석탄을 흘러내리게 해서 조구(석탄 집하지점)까지 운반하는 곳도 있다.)

인간이 위대한 걸까, 아니면 잔인할 걸까.

 

사북사태 (사북 노동항쟁)

 

사북사태 : 10·26사태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으로 고조된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발생하여 80년대 노동자투쟁의 발화점이 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산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탄광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며칠 전부터 '어용노조'에 대한 불만이 태백산맥 일대를 뒤 덮고 있다.

덕대탄광 광부들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노조 문제와 임금문제가 '노동자 탄압과 착취'라는 불만으로 전체 광부들 사이에 들불 처럼 번지고 있었다.

어용노조로 비난의 대상이 된 노조지부장에 대한 불만과 비난의 여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자리에서는 험악한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서울 소식도 심상치 않다.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을 주축으로하는 정치군인들이 집권을 도모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도 전해진다.

"하늘이 이 민족을 또 내치실 것인가..?" 숨막히는 번민이 찾아 왔다.

"뭔가 해야만 된다.."

 

사고는 예고없이 찾아 온다.

 

며칠 만에 정든 1096항으로 복귀했다. 마치 고향에 온 것만 같다. 컴컴한 갱 내의 동발 하나하나가 다 반갑다. 사고가 났던 400m 지점은 말끔하게 보수가 되어 있었다.

반장 박씨가 과묵한 입을 뗀다. "보수기간 중의 반은 '기본칸' 인정해 준다네." 5일 중에 이틀 반을 기본급 유급처리 해 준다는 말이다.

나머지 이틀 반에 대해서는 무급 휴가 처리했다고도 한다. 만근을 할 수 있게 한 일종의 배려다.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다.

 

사고는 초보 때 보다 조금 숙달된 시기에 더 많이 발생한다. 운전도 완전 초보 때 보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시점에 더 사고율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일종의 '방심' 때문일 것이다. 작은 교만일 수도 있다.

흩어져 있는 석탄을 광차에 퍼 담기 좋게 한 군데로 모으는 작업을 한다. '니구리'라고 하는 작업이다. 삽을 사용해야 하지만 때대로 발로 당기고 밀면서 작업하기도 한다.

'니구리' 작업 중에 오른쪽 대퇴부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통증이 왔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하반신을 움직이는 것이 만만치 않다. '대퇴부 탈골'이다.

"큰 병원에 가 보셔야 될 것 같은데.."

동네 건강검진 지정 병원을 갔더니 통증을 진정시키는 주사를 놓아 주고 나서 큰 병원을 가라고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여인숙 아가씨

 

기억 재현. 머리카락을 뒤로 올린 다음에 고정시킨 커다란 헤어브로치가 인상적이다.

 

두시반 서울행 특급열차를 탔다. 특급열차는 완행열차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지정좌석도 있다. 옆자리에 젊은 여인이 앉는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어 올려서 손바닥 만한 브로치로 고정시킨 여인을 보자 목선이 희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어? 안녕하세요?"

여인숙에서의 고마운 기억, 지나가는 판매원을 세워 이것 저것 주문했다.

나이가 네살 더 많은 그녀에게서는 마치 큰 누이를 대하는 것처럼 연륜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시크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나는 XX년이예요."

 

산다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끔 한숨을 쉬기도 하고 화가 난 듯이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기도 하고 한숨을 쉬거나 소리없이 웃기도 하면서 말을 이어 간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다.

"목욕 좀 하세요. 처음 봤을 때는 얼굴이 하얗고 예뻤는데.."

거의 햇볕을 보지 못하고 굴 속에서 일했지만 얼굴이 까맣다. 더 정확하게는 얼룩덜룩하다. '탄때'가 낀 것이다. 탄때는 비누칠을 해서 닦아도 말끔하게 없어지지 않는다. 묵은 빨래 불리듯이 더운 물에 푹 불린 다음에 닦아야 어느 정도 지워진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광부'가 된 것이다.

절뚝거리며 목욕탕을 찾아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근다.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 온다, 눈을 감는다. 활동사진 처럼 지난 일들이 펼쳐 진다.

잠이 온다.

두 시간 뒤에 그녀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 빠진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⑤ 인생은 선택의 과정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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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끝, 세상 끝

한 줄기 캐프불, 빛의 소중함,

 

슬레이트는 석면으로 만들어 진다. 지금은 인체 유해성 때문에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지붕을 얹기도 했고 심지어는 불판 대용으로 고기를 얹어 구워 먹기도 했다.

 

하숙집은 산동네의 중간 쯤에 자리한 단층 슬레이트 집이다.

'산동네'라는 말이 우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고한에서 딱히 '산'이라는 것을 따로 구분하는게 재미있다.

산 중턱을 깎아 낸 다음 낮은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 블록과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탄광촌 서민주택의 모습이다.

주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택을 운영하지 않는 덕대 광부들이 하숙생이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40대 초반의 퉁퉁한 볼에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여섯명이 함께 쓰는 '하숙방'은 모두 세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좌측에 있는 방이 배정됐다.

호차가 달려서 옆으로 밀면 '드르륵' 소리가 나는, 중간에 갓유리가 끼워진 한지 바른 여닫이 문이다.

"여기서 일할 사람 같이 안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요? 하도 사연들이 많아서리.."

나 같은 사람들, 탄광은 커녕 삽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를 '허여멀건' 사람들이 때때로 탄광을 찾았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을 실감하는데는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첫 출근을 앞둔 저녁에 함께 일하게 될 선산부 김씨와 박씨, 그리고 후산부 'J'와 고한시장 안의 삼겹살 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병'반 작업을 끝내고 내일부터 '을'반으로 바뀌는 덕을 본 것이다. 갑반은 오전 여덟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작업이다. 원래는 오전 여덟시에 병반 작업이 끝나고 당일 오후 네시에 을반 작업에 나가야 된다. 그래야만 '만근'을 할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달에 쉴 수 있는 이틀 중에 '상견례 날'이 포함된다는 것도 복이다. 그 보다 더 큰 복은 원래 상견례 따위는 없다고 한다. 'J'의 덕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다.

 

반장 박씨는 30년의 화려한 경력이다.

내로라 하는 광산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정작 말 수가 적었다. 광부의 아들인 동년배 'J'의 입담으로 마치 오랜 이웃을 만난 것 처럼 친밀감이 생겼다.

178cm의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진 'J'는 (광부들 대부분이 마른 체형이다) "비쩍 말랐어도 제삿상의 북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탄광촌에서의 회식. 지금까지의 이질감은 시작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돌았다. 아니, 술주발이다. 지금의 음식점에서 밥을 담는 그릇 보다 두배쯤 큰 그 시절의 '밥주발'에 찰랑거리게 '백주'를 따랐다. '백주'는 그 시절 잠깐 유행했던 30도 짜리 소주다.

냉수 들이키듯 들이킨 백주 한 주발에 눈알이 돌고 혀가 말린다.

"젊은 친구가 술이 삐리하네" 반장 박씨가 술을 바꾼다. 댓병 막소주. 점입가경이다.

 

눈을 뜨니 열두시다.

하숙방 사람들은 일 나가고 다른 덕대 을반인 허씨와 함께 양은 개다리 소반에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30대 중반의 허씨도 과묵한 사람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힘이 좀 쪼마 들낀데.."가 고작이다.

김치와 취나물, 어묵조림, 두부조림, 고등어 조림에 북어국이다. 아주머니 요리 솜씨가 하숙집 보다 음식점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가 쥐색 작업복과 방수복 각각 두 벌을 준다. '허여멀건' 사람들이 야반도주하면서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한다. 거의 새것이지만 하숙비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옷들이다.

작업복 위에 방수복까지 입고 목에 수건 두르고 방문 앞 신발장 위에 나란히 놓여진 충전기에서 배터리를 빼 허리 뒤춤에 차고 장화 신고 나서니 가로로 좁은 마당에 섰던 아주머니가 목욕가방 하나를 건네 준다. 도시락이다.

"내일부터는 방문 앞에 놓아 둘께요. 일 갔다 오면 빈 도시락도 문 앞에 놓아 두고 빨래는 속옷만 각자하고 나머지는 저기 광주리에 던져 놓으세요."

마당 한 켠에 매달린 거울을 들여다 보니 어색한 광부가 서있다.

 

오늘은 세칸도리

 

하숙집에서 '1096항'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의 거리다. 버스는 하루에 여덟번 다닌다. 버스를 놓치면 '탄차'를 얻어 타거나 걸어야 된다. '탄차'는 석탄을 운반하는 화물차다. 탄광촌에서는 광부들이 '탄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다행히 버스를 탔다.

 

첫 출근이라 그런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이 몇마디 한다. '백바가지'라고 불리우는 '감독'이다. 백바가지는 탄광에서 지존이다.

갱구에서 삼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에 모였다. '고야집'이다. 안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난로가 후끈거린다. 탄광답게 최상급 석탄을 불쏘시개로 쓴다. 최상급 석탄을 성냥불로도 불을 붙일 수 있다.

고야집은 여섯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벤치와 난로 뿐인 간이 휴게실이다.

도시락 가방을 선반에 올려 놓고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서 방수복을 꺼내 입는다.

방수복을 입은 채 출근한 것도 '햇돼지'의 순진함이다.

 

 

"오늘은 햇돼지가 있으니까 세칸도리만 하자구"

반장인 박씨가 작업량을 결정하고 일어 선다. ('햇돼지'는 신참이라는 뜻의 탄광 은어). 어제 삼겹살집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묘한 위엄이 느껴 진다. 선산부 두 사람은 쇠막대(데꼬), 톱, 도끼 따위의 작업공구를 한쪽 어깨에 메고 갱구로 들어가고 'J'가 따라 오라고 한다.

'J'가 일반 리어카 세배쯤 크기로 보이는 쇠구루마(광차)를 가리키면서 "저게 당신 차야"라고 일러 준다.

갱구 좌측편 야적장에서 통나무(동발)와 널판지(다루끼)를 골라 싣는다. 세칸이면 동발이 총 아홉개, 다루끼가 서른개 쯤이다. 자재를 골라 광차 두대에 나누어 실었다.

 

광차와 자재의 무게를 합치면 약 2톤에서 2.5톤 정도 된다고 한다. 앞서 가는 'J'의 뒤를 따라 광차를 밀었다. 광차 높이는 약 120cm 쯤 되는 것 같다.

 

'광차' 당시 사진이 없어서 석탄 박물관 사진을 빌려 왔다.

 

 

갱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100미터쯤 지나자 외부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안전모에 부착한 캡램프 불빛 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고 판단해야만 된다.

갱도는 높이가 160cm정도다. 바른 자세로 허리를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쪽을 향해서 약간 경사진 갱도를 따라 광차를 밀고 올라갔다.

200미터쯤 지나면서부터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다. 앞 선 'J'는 건들건들 잘도 간다.

500미터쯤 되는 곳 오른편에 해골마크가 선명하게 반사되는 시커먼 굴이 있다. 동발 세개를 가로로 질러 입구를 막은 '폐갱'이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가스로 인해 폐쇄된 굴이다.

 

 

갱구에서 막장까지는 2km 쯤 된다고 한다.

경사진 갱도를 2톤이 넘는 광차를 밀고 올라가는 것이 준비작업이다. 철로(궤도)위에 올려져 있지만 용을 써야만 광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막장까지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탈진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야반도주 했다는 '허여멀건' 사람들 생각이 났다.

나중에 터득하기는 했지만 광차를 미는 것도 '힘' 보다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j'의 응급조치와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갱도는 900미터쯤 되는 위치에서 Y자 형으로 두 갈레로 갈라진다. 오른쪽이 탄맥을 찾아 굴을 파는 '굴진' 막장, 왼쪽이 석탄을 캐는 '채탄' 막장이다. 그 사이에 터득한 쥐꼬리 만한 요령으로 몸을 틀어 광차를 왼쪽으로 돌린다.

 

드디어 막장이다. 광차를 밀고서는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던 막장에 온 것이다. 막장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전 작업반이 세워 놓은 동발과 파내다 만 탄맥 사이에 골방 하나 크기 정도의 공터가 있다.

막장에서는 먼저 입항한 선산부 둘이서 폭파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쇠막대기로 위에 세개, 아래에 세개, 지름 약 5cm에 깊이 약 30cm의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떡'이라고 부른다)를 채운 다음 쇠막대기로 다지고 있었다. 겁이 난다. "저렇게 쾅쾅 쑤셔대다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 어쩌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뇌관('비스'라고 불렀다)을 폭발시키지 않으면 쇠막대기 충격으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지 않는다.

 

'떡'을 다지고 각 구멍에 도화선이 달린 뇌관('비스')를 연결한 반장 박씨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규정상으로는 담배를 소지하고 입항할 수 없다.)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도화선에 갖다 대기 전에 '발파'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막장으로부터 30미터쯤 바깥 쪽에 구부러진 곳으로 나와 다른 선산부 김씨가 나누어 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땅 속 2천미터의 막장에서는 속눈썹에 바짝 갖다 댄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암흑이다. 그래서 그런가, '캐프불(캠램프)'은 생각 보다 밝다.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면서 금새 담배연기 자욱해진 갱도를 비춘다. 환상적이다. 실신했던 몸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다. 담배가 '백해무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나온 반장도 한쪽에 앉는다. 갱도는 네 사람이 뿜어 내는 담배연기와 도화선이 타면서 내는 연기로 뿌옇다.

 

 

"떵.." "떵.." "떵.."

여섯번의 폭발음과 함께 갱도 전체가 흔들린다. 캐프불에 비친 연기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동발 사이로 가루가 떨어진다. 공포가 밀려 왔다. '탄광붕괴', '매몰' 따위 기사들이 머리 속에서 요동친다.

 

여섯 번의 폭발이 끝나고 나서도 굴은 무너지지 않았다. 막장 채탄작업은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시작된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서 보니 연기들이 갱도 바깥 쪽을 향해 서서히 밀려 나가고 있다.

막장에는 발파로 쏟아져 내린 석탄이 수북하고 한쪽에 깔린 지름 약 10cm정도의 고무호스에서 쉴새 없이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외부에서 콤푸레서로 보내 주는 공기였다. 이 바람 덕분에 연기가 밀려나가고 광부들이 질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기호스는 잠수부의 그 것처럼 광부의 생명줄이다.

 

"자, 시작해 보지"

 

이제부터 채탄작업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③ 갱도에 내리는 이슬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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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관념의 씨앗

'까망세상' 탄광촌 고한에서 다른 세상을 보다

고한 박심리 전경. 당시 사진이 없어서 1996년 사진을 빌려왔다. 이 무렵만 해도 동네가 비교적 밝은 느낌이다. '까망세상'에서 벗어 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동네에 '동원탄좌 영일 덕대 1096항'이 있었다. 이후에 '스몰카지노'가 생겼다가 사북의 '본카지노' 개장과 함께 문을 닫고 현재는 '하이원 리조트'가 영업 중이다.

 

1979년 말, 대한민국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두어 달 전에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과 12.12 사태 등으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시기입니다.

청량리 역에서 심야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에 내린 곳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지금은 고한읍)입니다.

1979년 말에는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친절하게도 객석 마다 재떨이가 붙어 있었고 겨울에는 열차 안이 늘 담배 연기로 자욱했던 시절입니다. 심야열차를 타면 술과 담배를 나눠 마시고 피우며 낯선 이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었던 특유의 '서민문화'가 있었지요.

강원랜드가 들어 선 사북과 똬리굴(추전터널)로 유명한 추전의 중간에 위치한 고한은 전형적인 탄광촌입니다.

고한역은 고한의 양쪽으로 늘어 선 야산 중 한쪽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네를 기준으로 야산이지, 해발 고도는 서울 근교의 산 정상쯤 됩니다.

새벽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신선합니다. 대부분 불이 꺼진 고한역 아래 시장의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개월 간의 '까망세상'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탄광촌 여인숙, 옆방의 잠꼬대 소리까지 들리는 개방형 방음시설

 

여인숙은 2층구조였고, 1층에는 접수창구와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공간, 2층에 10여개의 작은 방들이 객실입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두 장의 목재 합판 중간에 스틸로폼을 채운 '샌드위치 판넬'입니다. 옆 방에서 잠꼬대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매우 개방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점심 무렵에 약속이 되어 있는 'O'를 만나기 위해 여인숙을 나서자마자 별천지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을 전체가 까만색입니다. 산도 거리도 도로도, 심지어는 개천에 흐르는 물까지도 온통 까만색인 '까망세상'인 것입니다.

본래는 흰털을 가진 강아지들도 모두 '쥐색'입니다.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주로 여성들의 옷 만이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별천지'가 바로 말로만 듣던 탄광촌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한 번화가'에는 유난히 술집이 많았습니다. 지방색이 나는 '요정'도 있고 룸쌀롱을 비롯해서 고깃집까지 마치 '술꾼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풍경입니다.

베이지색 바지에 콤비 상의와 감청색 코트를 입고 있던 저는 한 눈에 봐도 이방인이었습니다. 까망세상의 이방인에게 베이지색 옷이 검은 '탄 때'로 얼룩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

 

'O'로부터 탄광 소개를 들었습니다. 경험 삼아 하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것과 그런 만큼 수입은 제법 짭짤하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일반 근로자 수입에 비해 평균 1.5배, 많게는 두배 이상의 수입도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탄광촌은 세 개의 반으로 나뉘어 1일 3교대로 일합니다.

'갑을병' 세 개의 반이 역순으로 교대를 하는데, 갑반은 오전 여덟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을반은 네시부터 열두시까지, 병반은 열두시부터 다음날 오전 여덟시까지 일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갑반이 병반으로, 병반이 을반으로, 을반이 갑반으로 작업시간이 바뀝니다. '가다 가와리'라고 불렀던 '반 교대'가 일주일 간격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일반 근로자의 두배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려면 '만근'을 해야 됩니다. 한달에 이틀만 빼고 출근하는 것이 바로 만근입니다.

거기에 '채탄실적'이 가감됩니다. 정해진 채탄량 보다 많으면 '성과급'으로 추가 수입이 생기는 것입니다.

월 58만원에 연탄 백장 교환권, 당시 사무관급 공무원 월급이 40만원 안팎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입입니다. 일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지에 대한 생각 없이 "와~~ 많다"고 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숙하고 천진한 백면서생 다운 모습인지요.

일할 탄광과 기거할 하숙집을 정해 놓고 내일 여인숙으로 오겠다는 'O'와 헤어져 돌아와 외출한지 두어 시간 만에 얼룩무늬가 된 베이지색 바지를 벗어서 여인숙 여종업원에게 세탁소에 맡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O'가 내일 올 때 임시로 입을 옷가지를 챙겨 오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O'는 다음날 오지 않았고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고한의 세탁소는 옷을 맡기면 3~4일 뒤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주야로 들리는 옆 방의 소음을 음악 삼아 주인 아주머니와 여종업원이 '양은 쟁반'에 얹어다 주는 조촐한 밥을 먹으면서 지낸 3일, 까망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소위 '창녀'로 불리우던 이 고마운 여종업원과는 훗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만들어집니다.

3일 뒤에 'O'가 왔습니다. 제가 일하게 될 곳은 '박심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곳에 있는 '동원탄좌 영일 덕대 1096항'이라고 합니다.

덕대란 당시의 대표적인 석탄 채굴권자인 동원탄좌 또는 삼척탄좌로부터 하청을 받아서 운영하는 영세 채탄업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원탄좌나 삼척탄좌에 비해 작업 환경이나 조건이 매우 나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일단 기대감과 호기심에 설레었습니다.

하숙집은 후불제로 월 만오천원에 여섯명이 한 방을 쓰고 도시락도 싸 주는 조건입니다.

'O'가 가져온 옷은 요즘 같으면 재활용에도 내놓기 어려울 만큼 헌, 파랑색 바탕에 양 팔과 다리 측면에 본래는 흰색이었을 잿빛 두줄이 박힌 '츄리닝' 한 벌입니다. 이 츄리닝으로 까망세상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야호~ 내일이면 나도 막장 후산부다!


탄광 막장 작업은 석탄을 캐서 운반해 나오는 일입니다.

선산부 두명, 후산부 두명의 총 4명이 1개 반을 이룹니다. 선산부는 다이너마이트 발파 작업과 동발 설치 작업을 전담하고 후산부는 선산부를 보조하는 동발 등 작업 자재 나르기와 다이너마이트 발파작업으로 쏟아져 내린 석탄을 삽으로 퍼서 '광차'에 싣고 갱도 밖 '조구'까지 운반하는 일을 전담합니다.

선산부는 비교적 전문적인 일을, 후산부는 막일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두 명의 선산부 중 한 사람이 '반장'입니다.

작업에 들어가기(입항) 전에 '고야집(본항 입구에 설치된 두평 가량의 목조 함석지붕의 가건물)'에 모여 가방을 내려 놓고 반장으로부터 그 날의 작업 계획을 듣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네 칸 도리"

 

네칸은 세워질 동발의 칸수 입니다. 동발은 한 개의 무게가 40~50K쯤 되는 통나무인데 양 옆에 기둥 두개를 가로질러서 질러서 위에 한 개, 총 세 개의 통나무를 사용합니다. 세 개의 통나무가 바로 '한 칸'의 기준이 되는 거지요.

한 칸의 동발을 세우고 나면 위에 널판지('다루끼'라고 부름)를 촘촘히 올려서 지붕을 만들어 줍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석탄과 잡석들을 막아 주고, 그 것들이 쌓이고 채워지면 하중에 의해 동발의 지탱력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못이나 철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끼와 톱과 끌만으로 조립하는 일종의 '대목 작업'이 선산부의 기술입니다.

기본 작업량이 세 칸이라고 합니다. 세 칸 이상부터 '성과급', 가외 수익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칸 작업에 보통 4톤~5톤, 광차 2~3대 정도 분량의 석탄을 실어 냅니다.

동발 <자료출처 : 한겨레신문>

 

동원탄좌나 삼척탄좌 같은 큰 업체는 갱도 입출항 및 채탄 운반 작업을 모두 '전차'로 하지만 '덕대'는 사람이 광차를 직접 밀고 다닙니다.

쇠붙이로 된 작은 수동기차, 광차의 자체 무게가 1톤이 넘는데 한번에 2톤 가량의 석탄을 삽으로 퍼 담고 본항 밖의 '조구'까지 운반하는 것이 '후산부'의 일입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동원탄좌 영일덕대 1096항'은 '본청'인 동원이나 삼척탄좌와 달리 본항 갱도의 높이가 160cm정도인데, 왠만한 남자 어른은 안전모를 쓴 채로 똑바로 서지를 못하고 양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30도 정도 옆으로 숙여야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입니다.

'본항'은 중간에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크로스'라고 불렀던 이 지점에서 하나는 탄맥을 찾아서 굴을 파는 '굴진작업' 막장으로 가고 하나는 찾은 탄맥에서 석탄을 캐는 '채탄작업' 막장으로 가게 됩니다.

 

덕대 탄광 막장 후산부의 복장

막장 광부의 장비 <자료출처 : 석탄박물관>

 

막장 선산부의 뒷모습(방진 마스크는 없었음. 작업복도 실제는 방수복을 겉에 입었음) <자료출처 : 석탄박물관>

 

덕대 탄광 막장 후산부의 복장은 위로부터 ①안전모(광부는 노랑색, 감독은 백색 안전모) ②안전모 전면에 거는 캡램프('캐프 불'이라고 불렀음) ③목에 두르는 땀 닦는 수건 ④방수복('탄가루' 방진용으로 입은 '땀복'과 비슷한 옷) ④충전용 축전지(허리벨트 뒤에 착용, 캡라이트와 고무피 전선으로 연결, 무게 약 2kg, 한번 충전으로 20시간 정도 사용한다고 했지만 하루 여덟시간 이상 사용해 본 적은 없음) ⑤면장갑 ⑥면장갑 위에 끼는 고무장갑 ⑦고무장화

방진 마스크나 안전화가 지급되지 않았고 의무화 되어 있지도 않았던 때라 진폐증과 안전사고에 노출된 채로 하루 여덟시간 씩 작업을 했던, 그야말로 '막장 광부'의 복장인 셈입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막장에서 본 세상 ② '막장의 빛'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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