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을 방법은 이 것뿐이다

  

 

 

 

광복 이후 정부수립과 함께 서양식 국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시스템이 도입된 후 70년이 지났지만 미리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 아니었고, 국민적 총의와 합의 과정이 없이 극소수의 정치세력에 의해 채택된 시스템이기에, 우리는 계속 간단치 않은 정서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 시스템은 절대 왕정이었다.

절대 왕정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 관점, 권력 구조적 관점에서 보자면 왕권(王權)과 신권(神權)의 끊임없는 충돌과 배분의 역사였다.

하지만 권력의 근간은 언제나 민중(백성)이었고 그것은 국가 시스템이 어떤 권력으로 교체되건 변하지 않는 원칙이고 원리였다.

 

한반도의 역사는 민본(民本)의 역사이며 국가 시스템 역시 민중이 근본인 민본주의였다. 지배세력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신분제도와 계급제도는 국가의 근본 이념과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혁명 정부가 들어서고 정도전에 의해 진보된 민본주의가 주창되었지만 왕족 방원에 의해 실현되지 못하고 500년이 흐르고 만다. 진보란 늘 수구(守舊)의 저항을 받는 것이다.

 

역사는 획일적이거나 편향적이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조금씩 방향을 바꾸면서 거대한 뿌리의 순을 틔워 나간다.

 

돌연한 이종교합으로 인해 한반도는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100여 년 동안을 근본이 부정되고 무시되었으며 주객이 뒤바뀌고 온갖 모략과 협잡과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말세적 현상이 정당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획일적이거나 편향적이지 않으며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역사는 거대한 뿌리다.

 

 

 

반성 없는 박근혜의 '인권' 운운,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 마주하라

 

 

 

진정 배웠어야 했던 건 '독재의 추억' 말고 '독재의 처참한 말로'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신의 새로운 법무팀인 국제법률 자문회사 MH그룹이 CNN을 통해 '당신(박근혜 전 대통령)의 감옥 생활에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고 한다.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 살고 있으며,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불을 계속 켜놓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 '침대도 없이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에 위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법무부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신은 일반인 수용자 열 명이 쓰는 공간에 해당하는 10.08, 3.2평의 독실에 거주하는 '특혜수용자' '바닥 난방 시설과 텔레비전, 관물대,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된 적정 면적의 수용실에 수용돼 있다.', '충분한 진료 기회와 운동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고 하고 '계속 불을 켜놓고 있다'는 인권 침해 제기에 대해서는 '수용자 관리와 보호를 위해 (야간에도) 수용실 내 전등 3개 가운데 1개를 켜놓고 있으며, 밝기는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정도로만 조도를 조절하고 있'기에 '수면에 불편함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대로 된 침대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국내 모든 수용자들은 침대 대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도록 돼 있'고 당연히 매트리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 중략 ……….

 

 

 

당신이 국내 변호인단을 위장 사임케 하고 선임했다는 영국의 로펌 MH그룹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당신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로드니 딕슨 변호사가 그간 변호했던 이들은 대체로 수많은 이들의 '인권'을 짓밟은 자들이었다. 대량학살로 사형선고를 받은 리비아의 전 대통령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카다피와 세르비아 내전 당시 민간인 살해 혐의 전범으로 기소된 하라디나이 코소보 총리, 그리고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반군에게 군수품을 제공하고 부당 이득을 취득한 라이베리아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와 방글라데시 테러범 하스나트 카림 등이 로드니 딕슨 변호사가 그간 변호해 온 이들이다. 혹 그런 무시무시한 '인권'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던 것인가. '인권'을 미끼로 유엔 등에 국제적인 백색 로비를 해서 신의 한 수라도 얻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건강 악화로 병보석을 따내고, 가택 연금 등을 무기로 구속을 면하는 정치 협상의 국면이라도 열고 싶은 것인가.

 

당신의 죄질은 일반 재소자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어떤 재소자도 청와대를 왕궁으로 만들고 한 나라의 역사책을 개인들의 족보책으로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아무런 권한도 부여한 바 없는 비선 실세들에게 국가 정보와 권력을 부당하게 넘기지 않았다. 국가 재산을 빼돌려 착복하거나, 화이트리스트들을 육성하는 데 불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국에 저항하는 공무원을 부당하게 내쫓고 재벌에게 특혜를 주며 거액의 삥을 듣지도 않았다. 1만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철저히 인권을 유린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는 법조계와 보건복지계 방송언론계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존재했다는 게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 어떤 범죄자도 헌정을 유린하고 총체적인 국정 농단과 파탄으로 한 나라를 무정부 상태의 혼란으로 이끌지 않았다. 당신의 파면을 둘러싼 찬반 집회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만 네 명이다. 당신의 죄를 묻기 위해 170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까지 생업을 놓고 거리로 뛰쳐나와야 했다. 그 죄과를 일반 재소자들의 기준으로 물으려면, 미안하지만 '천년의 형'을 언도해도 부족할 것이다.

 

………. 중략 ……….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배웠어야 했던 건 '독재에 대한 달콤한 추억'이 아니라 당신 아버지가 걸은 '썩은 독재의 처참한 말로'였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부터라도 배워야 할 것은 당신이 짓밟은 수많은 '천부인권의 시간'에 대한 반성과 이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이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정말 최소한의 시민의식이다. 세상의 모든 부의 원천은 자연에서 빌려 온 물질과 그 물질을 가공해내는 모든 인간의 협업과 노동을 통해서만 나오기에 그 주인 또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깨달음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예속과 굴종이 아닌 자주가, 억압이 아닌 자유가, 독점이 아닌 나눔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게 당신이 진정으로 얻어야 할 '인권'은 당신 바깥에 있지 않고 당신 안에 있다. 시종에게 둘러싸인 비운의 왕녀처럼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인생 안에 있다. 이제라도 나는 당신이 '과거의 감옥'에서 나와 오늘의 햇빛을 환하게 쐬었으면 좋겠다. 감옥의 시간을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1700만 명의 촛불의 시간을 얻어 사는 거라고 여겨도 좋겠다.

 

세상의 작은 빛 하나, 작은 바람 한 점, 작은 씨앗 하나, 작은 날갯짓 하나에서도 생명의 거룩함을 보게 되는 값진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없이 낮아지고 작아져 비로소 당신의 겸허한 삶 하나가 도리어 크고 귀한 '인권' 하나가 되어 다가오는 그런 날, 우린 비로소 당신을 용서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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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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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만들려는 공포의 정치

아랍인이 작성한 것일까, 아니면 아랍인이 작성했어야만 하는 것일까?

 

최근 인천공항이 연이어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일은 지난 30일 인천공항 1층 한 화장실에서 갑자기 발견되었다고 하는 이른바 '폭발물'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화장실 안에 있던 종이상자 겉 부분에는 "부탄가스 1개, 라이터용 가스통 1개, 500ml짜리 생수병 1개"가 테이프로 감겨 조잡한 상태로 부착돼 있었고, 종이 상자 안에는 "기타줄 3개, 전선 4조각, 건전지 4개, 브로컬리, 양배추, 바나나껍질"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월 30일 : 소위 "폭발물", "무시무시한 아랍어 협박 편지"

과연 위와 같은 물체를 과연 기폭이 가능한 폭발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심히 의문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흉흉한 추가보도가 이어졌는데, 그것은 폭발물과 함께 '아랍어로 쓰여진 협박성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언론사의 타임라인들에는 '테러범', '이슬람국가(IS)'를 언급하는 뉴스가 엄청나게 폭주하였습니다. '세상에! 아랍어 협박 편지라니! IS와 같은 단체가 한국에서도 암약하며 드디어 한국도 테러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 되었나?'

이후 위 쪽지는 국민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일으키며,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테러방지법 통과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틀 후엔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마저 '아랍어 협박 메모'가 걱정된다며, 갑자기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다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일까지 발생하였습니다.

1월 30일(2) : "인터넷 번역기를 돌린 것 같다"는 발표

하지만 위 폭발물은 그 내용의 조잡성은 물론이거니와, 문법도 안맞고 뜻도 파악하기 어려워 과연 아랍어를 정상적으로 구사하는 아랍인이 작성한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이미 당일 인천국제공항경찰대에서는 인터넷 번역기를 돌린 것이 아닌가 하며 모방범죄일 수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번역기를 돌려서 협박 편지글을 작성하고, 심지어 이를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프린트하여 폭발물에 첨부할 '아랍인 테러리스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래서 일까요? 위와 같은 발표 이후 이 사건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여론이 넘쳤고 어느덧 관심은 시들해졌습니다.

2월1일 : "아랍어 유창 가능성을 조사"한다는 경찰

그런데 2월 1일, TV에서 "폭발 의심물 용의자 아랍어 유창 가능성 조사"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한 유명 방송사의 보도로, 제목은 '경찰, "폭발 의심물 용의자 아랍어 유창 가능성 조사"'였습니다.

무슨 보도인가 싶어 직접 검색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원문을 찬찬히 읽어보자 이게 과연 앞뒤가 맞는 기사인가 싶었습니다. "아랍어에 유창한 사람이 작성했을 가능성"이란 판단의 이유가 "아랍어 문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글이 인쇄"되었기 때문이라는게 논리적으로 말이 될까요?

더욱이 그 아래 문장에는 심지어 "인터넷 번역기 프로그램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아랍어로 번역되 경찰은 용의자가 번역기를 사용했을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고 있"다고도 써있는데,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말이 맞나요? 이런 상황에서 "아랍어 유창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뽑다니요?

아랍인이 작성한 것일까, 아니면 아랍인이 작성했어야만 하는것일까?

경찰은 위 메모를 "이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알라가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위 해석도 해석이거니와 쪽지에 쓰인 아랍어를 살펴보면 아랍어를 약간만 공부하였더라도 알 수 있는 의문점이 여럿 발견됨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 첫째줄의 문장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은 직역하면 "알라가 알라를 벌할 것이다"라는 이상한 뜻입니다. 경찰은 애매하니 목적어 알라를 빼고 뭔가 경고성 메세지로 해석한 것 같은데, 그 어떤 아랍인도 '알라가 알라를 벌한다'라는 불경건한 표현을 사용할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 '알라'라는 이슬람의 신을 언급하는 단어에 매우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대거 알리프'(6)과 이중발음을 표시하는 샷다(5)가 없습니다.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결코 아랍인들은 저런 실수를 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셋째, 두 번째 문장의 마침표가 문장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사용되었습니다. 아랍어는 한국어, 영어 등 대다수의 언어와 달리 오른쪽에 왼쪽으로 적기에 마침표는 문장 왼쪽에 사용됩니다. 번역기로 문장을 작성한 후 아랍어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이 워드프로세서에서 맨 오른쪽에 습관적으로 마침표를 찍은게 아닐까요?

 

넷째, 두번째 줄에 기재된 단어구는 그 자체로 해석이 잘 안될 뿐 아니라 يخاص라고 기재된 동사는 존재하지 않는 동사고 어근을 활용하면 يخص라고만 사용할 뿐입니다. 뒷 부분이 훼손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해석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과연 위 문서를 누가 작성한 것일까요? 아랍어 작성법을 전혀 배워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 그러나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고독했던 사람이 혼자서 타이핑을 해서 또는 번역기를 돌려서 작성한 것일까요? 아니면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이나 다른 국가 사람이 번역기를 돌려서 작성한 것일까요? 자세한 사실관계는 아직 다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비록 그 내용과 실체가 모호하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평화, 생명, 자유를 침해하는 테러는 결코 발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연말 국정원장의 난데 없는 '시리아 난민 200명 발언'이 반 외국인정서를 불러일으키고 테러방지법 제정 군불때기로 이미 활용된 일이 있습니다.

또한 법정에서 죄상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외국인들을 지칭하며 'IS 추종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고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언급하고 테러방지법 제정이 미뤄지는 것을 개탄한 일, 최근의 일련의 사고 이후 대통령이 또 다시 '아랍어 협박 편지가 걱정된다'며 테러방지법 제정을 다시한번 촉구한 일, 이런 뉴스거리들을 종편과 언론사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포함하여 자극적으로 반복해서 쏟아낸 것은 과연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일까요?

공포의 정치와 인권

국제적인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얼마 전 2015년의 90여개 국가의 인권 상황을 평가해 방대한 'World Report 2016'를 발표하였습니다. 위 보고서 서문 "쌍둥이 공포: 어떻게 공포의 정치와 시민사회 탄압이 세계 인권을 위태롭게 하는가(How the Politics of Fear and the Crushing of Civil Society Imperil Global Rights)"에서 Kenneth Roth 편집장은 테러리즘과 난민 문제에 대한 휘발성 강한 시각들이 막연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서구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각국 정부 및 다양한 기구들이 수행하고 있는 이 같은 공포의 정치는 SNS를 통해 확대되고, 이민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언행과 혐오범죄가 유럽 내에서 만연하게 되었으며, 정부들은 이 공포를 시민사회를 억압하는 빌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비록 위 보고서에서 비판하는 국가에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시사점이 크다고 봅니다.

어쩌면,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누가 저 쪽지를 작성하였는가' 보다 더 의미있는 질문은 '누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랍인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가'인지도, 그리고 '아랍인이 저 쪽지를 작성하였을까'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군가는 아랍인이 작성했어야만 했다고 믿게끔 하려는 것인가'가 아닐까요?

과연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삶의 고통이 '테러' 때문일까요?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우리들 삶의 안전이 지금 침해받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삶의 불안이 완벽한 타자인 '난민, 이주민'들 때문일까요?

공포의 정치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어느덧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시민 스스로도 자신을 옥죄어 활동영역을 축소하기 시작할 때, 우리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긍정하고 움츠리기 전에, 상식적으로 질문하고, 의문을 품는 근원적인 능력을 다시 한번 잊지 않아야할 것입니다.

 

미디어오늘 [기고]

2016년 02월 03일 수요일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media@mediatoday.co.kr

 

관련보도

YTN

연합뉴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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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3남인 김홍걸씨가 지난 2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DJ 삼남 김홍걸씨 생애 첫 인터뷰

"서운한 감정 다 버리고 야권이 힘 합쳐 정권교체하라고 당부

이번 녹취에 아버님 모셨던 분들이 개입…인간의 도리 지켜야

내가 누구 아들이니 '더민주' 찍어달라는 식으로 얘기 안할 것"

'동교동'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누가 야당의 정통성을 잇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셋째아들 김홍걸(53) 연세대 객원교수가 자리하고 있다. 1월24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 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법통'의 문제와 얽혀 있다.

김 교수를 1월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평생 처음'이란다. 그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님이 평생 노력하신 게 민주주의 인권, 한반도 평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안고 돌아가셨다. 지금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전 맨 주먹이지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려고 나섰다."

인터뷰는 <한겨레> 정치팀의 송경화 기자와 함께 1시간여 동안 진행했다.

-어머님 이희호 이사장의 건강은 어떤가?

"어제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병원에 들렀다. 골반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안 좋으신데 경과를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동교동에 인사를 갔다가 녹음을 한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뉴스를 보고 놀랐다. 녹취를 누가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왜 그걸 녹취하고, 내용이 또 밖으로 왜 나갔는지. 누가 했든지 간에 왜 내보냈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 그 일에 개입된 사람이 누구 누구일 것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분들이 대부분 저희 아버님을 모셨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머니한테는 실망하실까봐 차마 말씀을 못 드리고 있다. 얼마나 실망스러우시겠나. 그런데 그분들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

-안철수 의원 쪽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관련된 건가.

"네. 짐작을 한다는 거다. 그런 걸 다 알 수 있는 위치니까."

-아버님을 모셨던 분들이라면 복수의 사람들인가?

"그렇다. 언론 쪽에 계신 분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계시고 있더라. 뭐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국민의당이 녹취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는데, 발언의 뜻을 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제가 사과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분들의 양식에 맡기겠다." 

어머니는 제가 정치하는 걸 염려했지만 반대는 안해

-이훈평 전 의원, 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몇분이 '이희호 이사장이 아들의 정치 참여를 만류했다'고 하면서 어머님과 아드님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 어머니는 분명히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했고 제가 이번에 나선 이유 중에 하나도 어머니의 명예에 누가 가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도 있다. 지난번 (안철수 의원 관련) 오보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지금 이 한마디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어머니가 제가 정치하는 걸 반대하셨다고 하는 표현은 옳지 않고 염려를 많이 하셨다는 표현이 옳다. 제 성격이 정치에 맞지 않고 또 제가 집안 일도 챙겨야 될 것이 많고 정치판이 워낙 험하니까 제가 다칠까 봐 염려를 많이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걱정거리가 없고 모든 게 다 안정돼 있고 험난한 걸 다 헤쳐나갈 준비가 돼 있다면 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염려된다, 그렇게는 말씀하신 적은 있다. 그러나 정치를 절대 하면 안 된다, 누구 누구를 위해서 너는 정치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다.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입당하는 걸 반대하셨다는 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 전화는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시면서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드린 건데,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다고 해서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으신 것이다. 거기서도 어머니가 저에 대해 하신 말씀은 '그냥 좀 별탈 없이 아들이 지혜롭게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정도의 염려 말씀이었다. 잘 해야 할 텐데, 그런 투의 말씀을 한마디만 간단히 하신 것이다. 그것을 마치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아들을 데려가지 마라'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평소 어머니 성격을 아시는 분이라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머니를 알 만한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확인 안 해보고도 알 것이다.

제가 입당 다음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께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요즘 워낙 혼탁하고 쓸데 없는 말이 많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시고 '자기 일을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소신껏 하게 놔두라' 이렇게 말씀해달라고 하니 '어, 알았다'고 하셨다."

-이훈평·박양수 전 의원 등은 어머님을 잘 아시는 분들일텐데 왜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가?

"그분들의 마음속은 제가 알 수가 없으니까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짧게든 길게든 아버지를 모셨던 분들은 다 이제 잘 되시기를 저는 바라고 있다. 지금은 좀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분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반대하고 특정 세력을 도와주기 위한 게 아니고 통합해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갔다고 하니까 저는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약속을 지켜주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교동계가 명분은 통합이지만 사실은 더 분열의 길을 걷는다고 보지는 않는가.

"그분들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 또 제가 연락해서 따진다고 갑자기 태도가 바뀔 것도 아니다. 제 입장은 그분들 입장을 존중해줄테니 그분들도 제 입장을 존중해달라는 것이죠. 제가 평소에 과묵하고 아주 친한 사람, 편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을 많이 안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실 수 있다. 또 남의 사주를 받아서 억지로 끌려서 혹은 속아서 이런 걸로 오해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도 제 나름대로 소신이 있고 그 소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거다."

-입당할 때 '더 이상 아버님과 호남을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네거티브한 의도로 얘기한 게 아니고 포지티브한 의도로, 나아갈 방향이 이래야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따라 할 뿐이다. 제가 솔직히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충실히 잘 따랐다고 큰소리 칠만한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하고 싶다. 이제 아버지께서 과거에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시려는 그 대의를 위해서 다른 정치세력에게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시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점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또 돌아가시기 대략 두 달 전에,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안희정 이런 분들을 불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제 그 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 이런 것들은 다 버리고 다른 야권 세력까지도 다 끌어 모아서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해라, 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유지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문병호 의원 등이 지난 4일 오전 마포구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이희호 여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에 비춰볼 때 국민의당에 대한 평가는?

"그 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국민의당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누구 누구에 반대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그런 대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제가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나선 것이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나선 게 아니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나선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죄를 짓는다?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아버지 이름을 팔고 다니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권 보수 세력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성향의 사람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고 하니까…. 아버지의 정신,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을 많이 우려했다."

-입당 때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정통 본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물론 부족한 점이 많고 지지해 주셨던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부분도 많은 것을 안다. 회초리를 맞아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래도 민주 개혁 세력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은 거기밖에 없다고 봤다. 무너진 집이라도 다시 세워서 살 곳을 만들어야지, 조금 헐었다고 그래서 때려 부술 순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비판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의 주관대로 말과 행동을 할 것이다. 내편이니까 두둔해 주고 남의 편이니까 욕하고 이런 것은 안 한다. 불편부당하게 하겠다."

-국민의당은 제3의 중도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말씀드린대로 국민의당은 잘 모르고, 자꾸 뭐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 아마 언론에서도 뭐라고 딱히 규정짓기가 힘드시지 않을까 싶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나. 한때 대북송금 특검으로 갈등도 있지 않았었나.

"아버지께서도 그때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 악의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보지는 않는다. 잘못된 판단이었고, 또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에서 그렇게 압박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하셨을까 싶다. 그 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지 않나."

-두 분 정신이 같은 것이라고 보나?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 사회의 민주화, 권위주의 타파, 한반도 평화 등등. 큰 것에서 동의를 하면 작은 것에서 좀 틀리더라도 그것은 서로 조정을 해가면서 같이 손잡고 가야지, 작은 것에서 맞지 않는다고 분열해서는 안 된다. 민주 개혁 세력이 같이 뭉쳐도 이기기가 쉽지 않은데 분열하면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구겠나."

-통합과 단결을 김대중 정신의 요체로 보는 건가.

"그렇다. 아버님에 대해 한 말씀 드리자면, 아버님이 전쟁 전에 사업가이셨는데 사업가로 꾸준히 하셨으면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었는데 힘든 정치의 길로 나선 이유가 전쟁 때 동족 상잔의 비극을 보시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해서이다. 그 당시에 인민군들에 잡혀서 총살을 당하기 직전에 살아나셨는데 보통 전쟁 때 그런 경험을 겪은 분들은 극우파가 되고 강경파가 되는데 반대로 아버지는 그런 경험을 증오가 아닌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를 시키셨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영입이 아니라 자원봉사

-더민주에 입당하게 된 계기는?

"제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거래도 없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께서도 지난해 두 세번, 저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제가 '정치엔 뜻이 없다 또 상황이 좋으면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내 분란이 심한데 특정 계파, 특정인을 편드는 것처럼 보여서 곤란하다, 다만 대의명분이 있는 좋은 일이라면 나서서 도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만 얘기했다. 한참 된 얘기다."

-그럼 최근에 다시 논의가 된 계기는?

"1월5일 쯤인가 6일엔가 문재인 대표를 잠깐 뵀는데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하기 위해서 본 게 아니고 '권노갑 고문님을 탈당하지 마시라고 설득해야 겠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셔서 조금 말씀드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는 들어와라 마라 말도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문 대표가 요청을 해서 한 게 아니다. 지난번 오보 사건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 그러니까 불편부당하게 판단하는 분들 만나서 의견을 구했다. 그 분들 중에는 정치권 밖에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다들 이번엔 나서는 게 좋겠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하셨다. 또 이번에 감동을 받은 것이 그 분들 중에 한 두 분은 소위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문 전 대표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을 갖고 평소에 그리 좋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아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하니 의외로 잘 생각했다, 그렇게 해라, 하시더라. 그런 분들은 아버님처럼 개인 감정에 치우쳐서 판단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대의에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고 그런 분들이 바로 정말 김대중 정신을 제대로 계승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입당을 제안한 것인가?

"어떻게든 나서서 당을 돕겠다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가 당원이 아닌 걸 모른다. 지난 번 대선 때도 약속한대로 대선 기간 동안만 돕고 그냥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나. 당원이 아니었다. 평생 한번도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입당 형식으로 하면 어떠냐 해서 한 것이고 영입이 아니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일종의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셔간 게 아니다."

-입당 때 출마 문제는 나중에 분명하게 밝히겠다 했는데.

"출마에 별 뜻이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어쨌든 나섰으니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출마가 목적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나선 것이 아니다. 이번에 나서면서 주변 반응을 보면서 좀 놀랐달까 실망했달까 하는 게, 너무 정치판이 혼탁해지니까 순수한 의도로 뭘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예 상상을 못하더라.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아무것도 생기는 게 없다면 왜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더라. 당연히 뭘 해주면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보는 거다. 근데 이건 장사가 아니지 않냐.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절대 그런 거래하는 식의 주고 받고 하는 식의 정치를 하지 않으셨다. 1980년도에 사형을 앞두고도 그 쪽에서 우리하고 협조하면 살려주고 좋은 자리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하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3당 합당 때도 먼저 제의를 받으셨지만 거절하지 않았냐. 3당 합당 때 제의를 받아들이셨으면 대통령에 5년 빨리 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머님도, 1980년도에 아버지가 그 사람들하고 타협하고 손 잡았다면 아마 아버지를 용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저도 똑같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타협하고 살길 찾지' 이런 얘기는 꿈에도 할 수 없는 게 집안 분위기다."

-앞으로 당을 위한 구체적 활동 계획은?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상의를 더 해봐야 될 것 같다. 어떤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지를. 제가 일방적으로 내가 누구 아들인데 더불어민주당 좀 찍어주시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법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민주가 그 동안 이렇게 잘못했는데 반성을 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하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말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 

-천정배 의원이 '재산은 상속해도 정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대중 정신의 승계권이 김 교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나는 잘난 사람도 못 되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되지만 뒤늦게나마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님이 항상 말씀하신 게,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하셨다. 그러니까 제가 김대중 정신을 독점해서 제가 하는 말이 무조건 진리다 이런 뜻이 아니고, 그저 제 나름대로 과거에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되새기면서 그 길을 따라가려 하는 것 뿐이지 제 방식만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말하고 싶다. 솔직히 재산은 물려받을 게 없다. 남기고 가신 게 집밖에 없는데, 그 집도 벌써 30년 전에 저희 자식들에게 '이 집은 내 힘으로 마련한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 생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공공의 목적으로 쓸 것이다'고 아버지가 말했기에 그건 물려받을 게 없다. 대신 정신은 물려받으려고 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나.

"자식들한테야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하시진 않으셨다. 그런데 다른 분들하고 말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서 그 분의 뜻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다. 저희 부모님은, 흔히 보는 부모 자식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운동이라든가 여러가지 큰일,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신 분들이다. 자식 출세시켜야지, 재산 물려줘야지 이런 걸 생각하신 분들이 아니다.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틀리다. 과거 독립투사를 보는 것 같은 분들이라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이 틀린 분들이다."

'게이트 연루'로 부모님께 누를 끼쳐 두고두고 죄송

-아버님이 어렵지 않았나.

"당연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자식들에 다정다감하고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주시고 이러시는 타입은 아니었다."

-1980년에 아버님이 김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게 있다. '어린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 이런 미안함을 평소에 표현했나.

"1980년도 사형선고 받으신 후에 가족들이 면회를 갔을 때 한번 그런 말씀을 유언처럼 하신 적이 있다. 입원하시고 한 달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입원하기 1~2주 전에 뵀다. 그 때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신 상황이었는데 과거의 일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이해를 해주셨다. 왠지 그게 유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부분도 공격을 받고 있다.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그 당시에 사실 말이 삼십대 중반이지 사회 생활을 안 해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소심해가지고 짚고 넘어갈 것도 대충 넘어가고 말을 못 꺼내…. 말을 하자면 할 말은 있지만 그래 봐야 변명으로 밖에 더 들리겠나. 부모님께 누를 끼친 게 두고두고 죄송할 뿐이다. 아버님은 평생 바른 길만 걸어 오셨고 임기 중에도 어떠한 부정이나 편법도 배제하셨다. 70대 중반의 노구셨는데도 정신력으로 버티시면서 오직 사명감으로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 명예에 큰 손상을 입혔다. 아버지의 업적이 아들 때문에 훼손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죄송스러웠고, 사건 뒤 2년 동안은 얼굴도 들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사건 뒤 10여년이 지났는데 속죄를 하기 위해, 그냥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이번에는 뭔가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이 살아 계실 때는 효…(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함) 한 번도 효도를 못했는데… 돌아가신 후에라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번에는 한 번 하늘에서 내려다 보실 때 자랑스런 아들이 한 번 돼보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등록 :2016-01-29 01:14

수정 :2016-01-29 09:55

김의겸 송경화 기자 kyummy@hani.co.kr

 

[관련영상] '안철수 현상' 없는 '안철수 신당' / 더 정치 #7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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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종교단체 중 조계종만 침묵

천주교주교회의•사제단•예장통합•기장 등' "무효" 촉구… 불교 "신년회견 때 낼지 논의중"

병신년 벽두부터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한 국내의 대표적인 종교 교단에서 비난과 성토가 쏟아진 가운데 유독 대한불교 조계종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직 때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해명은 결국 정부의 정치적 입장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정치 이전의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숭상하고 지향하는 것을 그 존재 기반으로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국내의 불교계에 대해서도 말살정책을 폈다. 혼인하지 않는 것을 법통으로 고수해 온 불교 승려들을 강제로 결혼시켜 '대처승'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중이 결혼하는 것'이 왜 문제일까? 결혼이란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며, 세속 인연의 질곡에 빠진다는 것이다. '출가수행'이란 궁극의 진리를 탐구하고 체득하기 위해서 '모든 세속과의 인연을 끊는 것'을 의미하며, 정통 불교는 모두 이 법도를 선택하고 유지해 온 것이다.

고구려 때 처음 이 땅에 불교가 들어 온 이후로 수 많은 종사가 나와 선풍을 드날리며 모진 조선조의 억불정책과 일제의 말불정책에도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 바탕에는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던 '세속과 야합하지 않는' 한국불교의 선풍과 선지식, 조사들의 기개가 법통으로 이어져 온 뿌듯한 역사가 있었다.

오늘날의 조계종이 선풍과 조사는 자취를 감추고 권력과 부에 야합하는 배부른 사판(事判)들의 숟가락 만이 난무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과연 착시현상일까..? <편집자 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천주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 대부분이 전면 무효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과 달리 불교계에서만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에 의문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기습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한 이후 종교계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연쇄적으로 발표했다. 기장총회(12월29일), 예장통합 총회(1월4일), 천주교주교회의(1월4일) 등 보수적 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마저도 이번 합의에 목소리를 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 가장 큰 종교교단의 하나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조계종은 오는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내놓을지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윤효원 조계종 홍보팀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는 13일 예정돼 있는 신년 기자회견에 담을 내용을 보고 중이며, 확정하고 있는 단계"라며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견해를 담을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을 말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다른 종교 교단은 대부분 입장을 내놓은 것에 비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윤 팀장은 "다른 교단이 입장을 낸다고 우리도 바로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중이며, (여러) 의견을 담고 하느라 바쁘기도하며, 우리는 (결정) 단계가 다르다"라고 답했다.

윤 팀장은 "우리도 고민하고 있으며 검토, 성안 중"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 윤 팀장은 "우리가 눈치보고 하지 않는다"며 "언론 입장에서 왜 이리 늦느냐고 하는 것은 언론 입장이지만 우리 차원에서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조계종 중앙종무기관 및 산하단체 종무원의 시무식을 열었다. 사진=조계종

다른 홍보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여러 의견 수렴하는 과정에 있고, 종단의 공식적 입장은 아직 결정이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총회장 최부옥 목사교회와사회위원장 김경호 목사-이하 기장총회)는 그 이튿날인 29일 가장 먼저 성명을 내어 "위안부 문제 법적 책임 배제된 합의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라고 비판했다. 기장 총회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의 가해국으로 자인하고 법적 책임에 성실히 임하라"며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를 그치고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한 외교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기독교 교단 가운데 보수적으로 평가받아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약칭 예장 통합)도 독도영토수호 및 동북아평화위원장 유종만 목사와 총회 인권위원장 김성규 목사의 명의로 지난 4일 공식 입장을 내어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규탄했다. 예장 통합은 성명에서 이번 합의를 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참여와 그들의 정의를 구현하지 못했고,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지 못하므로 외교적 담합"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은폐와 축소를 넘어 기억의 말살의 위험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약속했다는 것 역시 이번 합의의 의도와 양국 정부의 역사관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근거"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합의"라며 "'기억과의 투쟁'을 제어하고 기억의 성찰을 위한 상징들을 말살하려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장통합 총회의 조상식 사회봉사부 실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발표한 성명을 9일자로 발행된 기독공보에 싣고, 이후 후속조치도 논의중"이라며 "오는 3월 2일 (총회 차원에서)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한 뒤 오후엔 관계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천주교도 주교회의 이름으로 입장을 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4일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 명의로 성명을 내어 이번 합의를 두고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간의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며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폐기 대책위원회 소속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교회의는 "법적 책임을 회피했기에, 진정한 회개와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종군위안부에 관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은 인류의 양심과 역사적 경험을 거스르는 위험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아직도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계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치에 의한 인권말살 정책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배상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교회의는 소개했다.

주교회의 "한일 양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외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도 지난 4일 저녁 열린 시국미사에서 전주교구의 김창신 신부(노동자·이주사목담당)가 이번 합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이분들의 인권을 돈 몇 푼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라며 "돈 줄 테니까 위안부 소녀상 같은 것을 치워버리라는 요구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우리 정부와 대통령, 여당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냐"고 반문했다. 김 신부는 "이번 합의문은 그 자체로 월권이며 원인무효"라며 "현재 우리는 일본통치의 식민지가 아닌 박근혜 통치의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고 성토했다.

미디어오늘

입력 : 2016-01-06 14:44:35

노출 : 2016.01.06 15:08:48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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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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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수배'. 우리 엄마, 결국 돈 없어 감옥 갔습니다.

 

용인시청 들어가려다 벌금

 

머리카락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 엄마가 감옥에 갔습니다. 40대 후반인 엄마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지명수배 중에 자진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엄마는, 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요.

 

엄마는 공공건조물침입죄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법원은 용인시청 로비에 들어가려 한 것이 공공건조물 침입이라며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엄마에게 가혹한 형을 내렸습니다.

 

지체장애 1급 엄마가 자진 노역형 택한 이유

 

 지난 4월 20일, 정부가 만든 장애인의 날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거리에서 외쳤던 엄마(오른쪽). ⓒ 비마이너 관련사진보기

 

엄마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입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멋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던 어느 날부터, 엄마는 전업주부 생활을 접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아침 일찍 나갔다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지켜봤습니다.

 

엄마는 한 번도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집회에 늦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시간을 잘 지키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했습니다. 지난 여름 오전 8시에 예정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그린라이트 투쟁'에 참석할 때도 오전 6시에 어김없이 집을 나서던 사람입니다.

 

어릴 적, 엄마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게 되었고, 그 이후 많은 차별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제게 들려줬습니다. 체육 시간에 벤치에만 앉아 있었고, 학교에 양변기가 없어 14시간이나 생리 현상을 참으며 생활 했던 이야기 등등. 엄마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외치는 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픔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하며 타협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과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2009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자립생활 보장 투쟁을 이끌어오면서 엄마는 수많은 재판에서 적지 않은 벌금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버틸 줄 알았습니다.

 

 지난 8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회원들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황교안 국무총리 면담 등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재정은 상근자 한 명을 두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서 함께 공공건조물 침입으로 벌금을 받은 활동가들까지, 총 500만 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종종 나에게 "이번에는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에 들어가야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벌금을 낼 수 있겠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해보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2015년 12월 21일 감옥에 들어가기 전,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자진노역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엄마도, 같이 들어가는 엄마의 친구들도, 모두 담대하게 잘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검찰청 안으로 흐르듯 들어갔습니다. 벌금에 굴하지 말고 당당해지자는 당부와 함께요.

 

2013년 용인시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을 약속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용인시는 용인경전철에 많은 예산을 사용해 장애인복지 예산을 책정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말 힘들게 얻어낸 약속인데 말입니다. 결국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엄마의 친구인 이도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무려 19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습니다. 당시 엄마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연행되었습니다. 8명이 연행되었고,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없는 '돈', 그걸로 옥죄려는 정부

 

 엄마(맨 왼쪽)가 노역에 들어가기 전 열렸던 기자회견. '진보적 장애인 운동 벌금 탄압 규탄 및 이형숙 이도건 김지태 활동가 자진노역 결의 기자회견'이었다.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련사진보기

 

아시겠지만, 대부분 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합니다. 벌금을 선고한 법원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판결문에서 꼭 벌금형을 내려야겠다고 했습니다.

용인시청에 들어간 것이 공공건조물을 침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리 엄마는 정말 공공건조물을 침입했나요? 무엇이 그런가요? 장애인들은 용인시청 로비에 한 발자국만 들어가도 공공건조물을 침입한 것이 되나요? 그렇지 않다면, 용인시도 법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장애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권력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3년 여름 용인시는 분명히 약속했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 수 200% 도입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24시간 보장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관련기사: "경기공투단, 상반기 지역순회 투쟁의 성과는?")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용인시는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연행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다수 활동가는 벌금 낼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에게는 지명수배까지 떨어졌습니다.

 

8명에게 선고된 벌금이 자그마치 500만 원입니다. 이들에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돈입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 앞으로 선고된 벌금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9년 이동권 투쟁으로 800만 원, 2014년 노동절 연대 투쟁으로 500만 원 등 총 18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중에는 아직 납부하지 못한 벌금도 남아 있습니다.

 

제게는 이런 벌금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겁주고, 억누르는 권력의 탄압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상버스 도입해서 교통약자들도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하자고,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해서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엄마가 감옥에 가야 할 만큼 큰 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게 '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1일에 엄마가 감옥에 입감된 후 구치소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제게 몸이 불편한 사람이니 빨리 나오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저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를 감옥에 보냈겠습니까. 검찰청에 출두해 경계선을 넘는 순간부터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던 우리는 잠깐의 눈빛만을 겨우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당장에라도 그 경계선을 부수고 엄마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손을 꼭 잡아주고 힘내라고 얘기할 걸.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그곳에 누워 잠도 들지 못할 엄마를 생각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앞이 흐려집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돈' 이라는 걸,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벌금으로 활동가들을 탄압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굴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가 벌금 앞에 작아져, 그렇게 이야기 했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나는 엄마와 더 열심히 세상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감옥에 있는 활동가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벌금을 모금합니다.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

15.12.23 16:12

최종 업데이트 15.12.23 16:12l

조은별(sstar0121)

○ 편집ㅣ손지은 기자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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