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세계

목욕탕이야기

목욕탕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왼손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오른 손바닥으로 옮기는 사람이 없더라. 이 돌멩이만 옮기면 세상이 다 끝날 텐데 이것을 옮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 라고 했다. 나는 그 손바닥의 돌을 집어서 다른 손바닥으로 옮겨버렸다.

돌멩이 하나를 옮기는 것이 종교적 진리인가?

종교가 존재하는 의미가 인간의 어떠한 기적을 과시하고 어떠한 신적인 세계를 과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이고 논리이다.

종교적 진리는 이적을 행함에 있지 않다. 종교가 건강한 상식으로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도록 인간을 독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불씨잡변

 

정도전의 불교비판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의 저서 불씨잡변(佛氏雜辯)은 불교의 잡스러운 것을 변별해서 비판한다는 책이다.

불씨잡변 정도전이 지은 불교비판서. 1398년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살해되기 3개월 전에 요동정벌 준비로 바쁜 와중에 완성한 최후의 유작.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辯)

'불씨잡변'의 제1장 '불씨윤회지변'에서 윤회설을 비판했다.

윤회는 인도어로 Samsara, 영어로 Transmigration이다.(중국어 輪廻)

윤회설에서는 영혼과 육체가 따로 있다.

輪廻는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 body-mind dualism), 영혼불멸론(靈魂不滅論 the immortality of the soul)을 전제로 한다. 즉, 육체는 썩어도 영혼은 썩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천당에 한 번 가면 그곳에 계속 사는데 비해 불교의 윤회는 그곳에서 다시 살아온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동일하게 사후세계(死後世界 afterlife)와 영혼불멸(靈魂不滅 immortality of soul)을 인정한다.

기독교는 희랍어를, 불교는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데, 둘 다 동일한 인도유러피언(Indo-European) 어군(語群)의 언어 문화권이다. 그러나 유교문명은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에서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물(水)이 생명(Life)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근대인들의 세계관에 있어서 윤회의 주체는 영혼이 아닌 물이다.

천(天) 복야(覆也) 지(地) 재야(載也) 즉 하늘은 덮는 것이고 땅은 만물을 싣는다. (중용 中庸)

이것은 마치 하늘인 남자가 비를, 즉 정액을 내려, 땅인 여자의 자궁에 생명을 잉태케 한다. 우주를 천지의 교감으로 보았던 것이다.

고대인의 유기체적 우주관은 항상 인간의 생식과정과 비유된다.

주역(周易)에서 천(天) 건(乾) 양(陽) 혼(魂)→기의 무형적 상태, 지(地) 곤(坤) 음(陰) 백(魄)→기의 유형적 상태로 말한다.

하늘(天)

건괘(乾)

양(陽)

혼(魂)

땅(地)

곤괘(坤)

음(陰)

백(魄)

동양 사람이 말하는 하늘은 기(氣)의 무형적 상태, 즉 무형(無形)이고 땅은 기(氣)의 유형적 상태, 즉 유형(有形)으로 생각했다.

하늘(天)

기의 무형적 상태

無形

땅(地)

기의 유형적 상태

有形

無形은 비존재(非存在)가 아니다. 단지 우리 감관에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기의 충만함이다.

無形은 기의 입자가 미세하고(細), 有形은 기의 입자가 굵다(粗).

 

주역(周易) 계사(繫辭)

형이상자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

형이상자를 도라 하고 무형인 것, 초월적 세계를 말하며

형이하자위지기(形而下者謂之器)

형이하자를 기라 하여 구체적 사물의 형태. 유형인 것, 감성적 세계를 말한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 형(形)이 있고 나서 위에 있는 것을 상(上)이라하고 아래 있는 것을 하(下)일 할 뿐이다.

형이상자=도(道)=하늘=무형

형이하자=기(器)= 땅 =유형 이 양자는 모두 形이고 氣이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가 잘 섞여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형이상자와 형이하자,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잘 배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인간생명

하늘

형이상자

+

+

+

형이하자

 

혼백(魂魄)

인간의 존재는 하늘 쪽인 혼과 땅 쪽인 백이 만날 때 비롯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움직이는 유형적인 부분은 백이고 나의 존재를 움직이는 무형적인 존재는 혼이다.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인간 관념은 음양(陰陽)으로 되어 있다.

 

도올영상 '음양의 세계' <1/4>

 

우리가 정신(精神)이라는 말을 쓰는데, 인간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현대 한국어는 한자를 빌리고 있어도 서양어의 번역일 뿐이다. 현대 한국어의 정신은 Soul, Mind, Spirit일 뿐이다. 한자의 원뜻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정(精)=쌀. 즉 우주의 생명력이 우리 몸의 하초(下焦)에 저장된 것.

땅이 쌀이 되었다. 쌀은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다.

쌀을 먹으면 생명의 근원, 정자(精子)가 된다는 것이다. 쌀을 먹으면 생명력을 내는 것처럼 내 몸의 정자도 생명력을 낸다고 믿은 것이다. 쌀은 우리 몸에서 유형적인 존재인즉, 백(魄)에 해당된다.

신은 아주 미세하고, 우리가 신적이라는 것은 혼(魂)적이고 하늘적이라는 것이다. 신(神)=하늘=혼

정(精)= 땅 =백

한문의 언어는 음양론적으로 간결하게 해석되는 것이다. 이 요점을 깨닫지 못하고 신비함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귀신(鬼神) 또한 서양의 고스트(Ghost)가 아니다. 그것은 음양론적으로 해석되는 우리 고유의 세계관의 소산이다.

귀신(鬼神)

귀(鬼)=귀(歸 돌아간다)=땅으로 돌아간다. 신(神)=신(伸 펼친다)=하늘로 펼친다.

귀신이라는 말 또한 음양론적으로 따져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죽으면 육신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귀()라 했고, 혼은 하늘로 펼쳐간다고 봐서 신(神)이라 하여 귀신이라 했다.

인간의 영혼(형이상자)은 신체(형이하자)와 분리될 수 없다.

영혼은 초월적 실체(Supernatural Entity)일 수가 없다. 그것은 몸의 일부일 뿐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천지 전체가 하나의 형의 세계이고, 하나의 기의 세계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동양인에게는 이 천지 바깥에 천당이 있을 수 없다. 천지(天地)의 밖에는 어떠한 초월적 실체도 상정(想定)할 수 없다. 천당도 신(神 God)도 천지내적 존재일 뿐이다.

 

죽음이란 혼과 백이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죽은 뒤에 육신은 백(魄)이므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도 백이다. 혼(魂)은 육신을 떠난다. 늙는다는 것은 백이 노쇠해짐에 따라서 혼도 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급사하는 경우 혼은 절별(絶別)했다가 액귀(厄鬼)가 되는 것이다. 액귀란 불의의 죽음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영혼을 말한다.

"혼이 났다."라는 말은 혼이 잠깐 나갔다 돌아 온 것이다. 급사(急死)의 경우는 백이 급작스럽게 완전히 망가져서 혼이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게 된다. 백을 찾지 못하는 혼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굿은 진혼(鎭魂), 위혼(慰魂)의 의미가 있다. 즉 혼이 서서히 백을 떠나게 하는 것이 진혼이다.

동양사상, 즉 중국적인 세계관에서는 혼과 백은 하늘과 땅으로 각기 돌아갈 뿐, 초자연적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즉,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지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백(魄), 즉 육체는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는데, 혼(魂)은 하늘로 흩어지는 것이다. 육체는 땅에 묻혀서 썩어 가고 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해지다가 소멸된다.

단지, 혼은 영활(靈猾)하므로 스스로 존재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어서 소멸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주를 모셔두고 사대봉사(四代奉祀) 하는 제례가 생긴 것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하면 4대는 120년이 된다. 동양의 합리적인 사상에서는 4대의 봉사를 받으면 혼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대봉사를 받고 있는 동안은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되고 봉사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윤회설과 같이 생명이 태어날 때 원래 혼의 모습이 딴 개체(魄)로 갈 수가 있겠는가? 우리 동양 사상의 천지 대자연의 생생지덕(生生之德)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천지는 끊임없이 기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장이다. 여기서 동일한 영혼의 지속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윤회설 비판에서 정도전은 "어떻게 인간의 아이덴티티(Identity 동질성)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가?"라고 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의하면 공중에 혼이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며 계속 떠다니면 수천수만 명의 혼이 일정하게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억겁(億劫)년을 윤회하게 되면 공중에서 충돌이 생길 것이니 교통순경이라도 세워두어야만 할 것인데, 그런 이치가 어디 있는가?

釋氏却謂人死爲鬼(석씨각위인사위귀) 鬼復爲人(귀복위인) 如此(여차), 則天地之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去(칙천지지간상지시허다인내내거거)

'석씨각'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죽어서 귀신이 되고 귀신은 다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면 천지간에는 항상 혼이 넘쳐나고 억겁년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도올영상 '음양의 세계' <2/4>

 

내 영혼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곧 아집이요, 잘못된 고집이요, 잘못된 기대이다.

그러나 동양인에게는 천지, 우주 밖에는 어떤 존재도 허락되지 않는다. 동양의 천지론적 우주관에서는 천지 밖의 어떠한 존재도 허락하지 않는다. 천지(Heaven and Earth)가 곧 신(God)이다. 즉 천당을 설정해도 이 천지 안에 설정해야 한다. 하느님을 말해도 이 산천초목 안에서 말해야 한다. 여러분은 과연 불교의 윤회론을 믿겠는가? 아니면 정도전의 천지간의 생생지도(生生之道)를 믿겠는가? 오늘날 불교비판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天地間如烘爐(천지간여홍로) 雖生物(수생물) 皆鎖已盡(개쇄삭이진) 安有已散者復合(안유이산자복합) 而已往者復來乎(이이왕자복래호)

천지간은 거대한 용광로와 같아 만물을 생하기도 하지만 모든 만물을 녹여 없애기도 한다. 어떻게 하여 흩어진 것이 다시 똑 같이 합쳐지고 이미 떠난 것이 다시 돌아 올 수 있겠는가?

今且驗之吾身(금차험지오신) 一呼一吸之間(일호일흡지간) 氣一出焉(기일출언) 謂之一息(위지일식) 其呼而出者(기호이출자) 非吸而入之也(비흡이입지야)

지금 내 몸으로 실험을 해보겠는데, 한번 숨을 들이 키고 한번 내품으면, 기가 한번 나간다. 이것을 일식(一息)이라 한다. 내 뱉었던 그것이 다시 흡입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의 윤회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그의 실험은 과학적이다. 인간의 윤회론은 이런 수준의 것이며 불가능하지 않느냐?

然則人之氣息(연칙인지기식) 亦生生不窮(역생생불궁) 往者過來者續之理可見也(왕자과래자속지리가견야)

그러한 즉 인간의 氣息은 역시 생기고 또 궁함이 없이 생기고,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은 또 이어진다는 이치를 볼 수 있다.

동일자(同一者)의 지속은 천지생성(Becoming)의 법칙에 어긋난다. 천지라는 공적인 장에 대한 믿음이 조선왕조혁명의 성립근거였다.

이것은 정도전의 불교비판인 동시에 정치철학이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 준비 중인 그 와중에도 이 글을 썼다. 그는 당대의 위대한 정치가요 철학자였으며 동시에 무인이기도 했다. 당대의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外面驗之外物(외면험지외물) 凡草木自根而幹而枝而葉而華實(범초목자근이간이지이엽이화실) 一氣通過( 일기통과)

산천초목에서 이것을 시험해보자! 모든 초목은 뿌리로부터 시작하여 둥치로, 가지로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해서 일기(一氣)가 통과한다.

當春夏時(당추하시) 其氣滋至而華葉暢茂(기기자지이화엽창무) 至秋冬(지추동) 其氣收斂而華葉衰落(기기수렴이화엽쇠락) 至明年春夏(지명년춘하) 又復暢茂(우복창무) 非已落之葉(비이락지엽) 返本歸源而復生也(반본귀원이복생야)

봄이 되고 여름에 이르면 그 기는 자양분이 극에 이르러 꽃과 잎들이 무성해 진다. 가을과 겨울에 이르면, 그 기를 수렴하여 꽃과 잎은 쇠락했다가, 명년 봄과 여름이 되면 또 다시 잎은 무성해진다. 어떻게 지난 가을에 떨어졌던 잎이 원래로 돌아가서 다시 생겨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지난해에 떨어졌던 잎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엉터리 거짓말이다.

 

又井中之水(우정중지수) 朝朝而汲之(조조이급지) 飮食者(표음식자) 火煮而盡之(화자이진지) 濯衣服者(탁의복자), 日曝而乾之(일폭이건지) 泯然無跡(민연무적)

또 우물속의 물도 매일 아침 길러내고, 음식을 만들고, 불에 삶아 끄려 물을 없애고, 의복을 세탁하는 사람이 그것을 햇볕에 쪼여 말려, 물의 흔적도 살아지고 마는데

而井中泉(이정중천) 源源而出(원원이출) 無有窮盡(무유궁진) 非已汲水之水(비이급수지수) 返其故處而復生也(반기고처이복생야)

우물속의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나서 다함이 없다. 그런데, 어찌 이미 길러낸 물이 옛 곳에 돌아가서 다시 생겨난다는 말인가?

 

윤회라는 거짓말에서 깨여나야 한다. 생생지도의 산천초목에 우리가 참여해서 우리의 문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정도전이 '주역'의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고려왕조의 정체성(停滯性:Stagnation)에 대한 비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모든 개체가 나라고 하는 개체의 지속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적 천지라는 사회전체가 끊임없이 생생, 샘에서 물이 쏟는 것처럼 끊임없이 재화가 생산되고, 물류가 유통되고, 끊임없이 국가경제가 잘 돌아가는 시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삼봉은 이러한 경제철학을 '주역'의 생생지덕(生生之德)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도전의 철학은 단순히 불교비판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불교는 정도전의 비판만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있다. 불교적 세계관의 윤회라고 하는 것은 인도문명의 독특한 상황에서 성립한 세계관이며 윤리적 요청에 의한 형이상학적, 신화적인 구성(Mythical Construction)이다.

신화적 구성을 사실의 체계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신화를 신화로서 해석할 때 오히려 신화의 의미가 들어난다.

종교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신화적 체계를 사실로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종교가 인간을 기만하고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불교의 윤회설은 인도의 갈마(鞨磨 karma 카르마) 즉, 업(業)과 같은 것으로써 행위와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윤회라는 것은 윤리적인 요청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선업(善業)을 쌓으면 선과(善果 즐거운 결과)가 오고 악업(惡業)을 지으면 고과(苦果 괴로운 결과)가 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세상에서 보면 좋은 일 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나쁜 짓 하는 놈들이 더 잘 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카르마의) 원칙이 우리 현실에서 괴리되어 있다.

이 괴리 현상을 풀기 위해서는 현재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전생의 업보이며 지금 좋은 일을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선과가 온다고 한 것이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현실에서 윤리적 인과(業 karma)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인간을 독려하고 끊임없이 선행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윤회 이상으로 좋은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도올영상 '음양의 세계' <3/4>

 

인도문명에서 윤회설은 인륜적 요청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본다.

즉, 불교의 윤회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윤리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 왜 천당이 필요한가? 네가 비록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괴로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훗날 하늘나라에서 보상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천당도 현실적 인간의 선업(善業)에 대한 보장 때문에 있는 것이다.

칸트(Immanuel Kant:1724~1804)'신(God)은 존재의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요청(Postulation)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칸트의 사상은 위대한 사상이나 서양 종교에서는 그렇게 받아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유교적 입장에서 보면, 동양인의 세계관에는 윤회나 천당이 필요 없다.

동양의 윤리적 보상은 어디서 받느냐?

우리의 보상은 현실에서 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받아야 한다.

나의 존재는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도 있고, 내 제자도 있을 것이고, 내가 여기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당했다 하더라도 여기 있는 사람이 내 진실을 알았다면 누가 이 역사를 왜곡을 할 수 있겠는가?

 

구태여 형이상학적인 천당이니 윤회니 하는 이런 요사스런 것을 만들지 않더라도 영원히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윤리적으로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새로운 우리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

삼봉 정도전에게는 이러한 확신이 있었지만 위화도회군 이전에는 불교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고려조의 지식인은 모두 불교신자였으며, 종교와 정치가 서로 엉켜 있었던 시대였다.

정도전은 위화도 회군 이후부터 불교비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불교를 비판하지 않으면 새로운 왕조는 탄생할 수 없고, 여태까지 고려왕조를 유지해왔던 불교사상은 이미 썩었는데, 썩은 체제를 옹호하는 이론에 불과하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민족에 있어서도 우리 삶을 뒤돌아보면서 20세기를 잘 못 살았다면, 너무도 생각 없이 살아왔다면 이제는 가차 없이 비판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정신문화의 뿌리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21세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명의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비판이며, 종교는 우리의 건강한 상식에서 비판 받지 않으면 그 종교는 금방 썩어 버린다.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비판을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고 감시하여야만 한다. 시민단체들이 정치인들만 감시할 것이 아니라, 더 썩고, 이 사회의 정신적 뿌리를 좀먹고 있는 종교의 무서운 해악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의 눈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요즘, 젊은 학생들이 내 강의를 더 많이 듣는 것으로 안다. 다음 시간 계속해서 정도전이 불교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가를 공부하기로 하자. 이러한 비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어서 유교적 세계관을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도올영상 '음양의 세계' <2/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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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은 상하 2권의 필사본이다. 조선왕조의 헌법(憲法)이라 할 수 있는 책으로서 개국 초 정도전(鄭道傳)이 지었으며 '경국전(經國典)'이라고도 한다. '삼봉집(三峯集 권 7, 8'에도 수록되어 있다.

예(禮)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하는 것이다.

혼인 청첩장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을 쓰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살아 계시던 돌아 가셨던 부모님은 변함없는 부모님일 뿐이다. 살아있는 청첩인만 따로 밝히면 된다.

태묘(太廟)

주나라의 시조 격인 주공(周公) 단(旦)과 그 아들을 모신 사당. 이 사당이 노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공자는 주나라의 적통인물로서 자처했다.

자문지 왈(子聞之 曰) 시예야(是禮也)

공자가 듣고 말하기를 "이것(묻는 것)이 바로 禮다."

禮란 묻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예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며, 禮가 사람을 구속할 수는 없다. 禮는 동적 과정(dynamic process)인 것이다.

좌묘우사(左廟右社)

왕이 앉은 자리 왼쪽에 종묘를 두고 오른 족에 사직을 둔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의 성베드로 사원을 베드로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일본식민지 하의 '조선얼 말살정책'이 남아 있는 예다.

종묘사직이란 곧 국가를 말한다. 정도전이 설계하고 만들었다.

종묘(宗廟) 조상숭배 : 수직적(vertical)

사직(社稷) 국토숭배 : 수평적(horizontal)

사(社)=(示:신)+(土:땅)=땅의 신

민간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으뜸 가는 신은 땅의 신이었다. 땅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생명이 곧 하느님이다. 사직단을 우리민족 최고 의 성전이다.

사직(社稷)이 최고의 신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나라를 '종묘사직'이라고 부른 것이다. 유교국가의 국교(國敎)를 말한다면 사직 이상이 없다. 오늘날 사직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조선경국전 <1/4>

맹자(孟子)는 종교의 최고 신도 인간이 갈아 치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변치(變置)의 논리는 백성(민)은 갈아 치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下

孟子曰民爲貴(맹자왈민위귀) 맹자가 이르기를 백성은 귀중하고

社稷次之(사직차지) 사직은 그 다음 가고

君爲輕(군위경) 제후(왕)는 대단치 않다.

是故(시고) 그렇기 때문에

得乎丘民(득호구민) 밭일 하는 백성들의 마음에 들게 되면

而爲天子(이위천자) 천자가 되고

得乎天子爲諸侯(득호천자위제후) 천자의 마음에 들면 제후가 되고

得乎諸侯爲大夫(득호제후위대부) 제후의 마음에 들면 대부가 된다

諸侯危社稷(제후위사직)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則變置(즉변치) 갈아 치우고

犧牲旣成(희생기성) 희생의 제물이 살찌게 마련되고

盛旣潔(자성기결) 제물로 괴어 놓은 곡식이 깨끗하게 마련되고

祭祀以時(제사이시) 제사를 제 때에 지내는데

然而旱乾水溢(연이한건수일) 그래도 한발과 수해가 나면

則變置社稷(즉변치사직) 사직을 갈아 치운다

유교적 합리주의 (儒敎的 合理主義 Confucian rationalism)

유교적 합리주의는 모든 종교적 권위 조차도 불복하는 민본사상이다.

유교는 통치자들이 종교를 빙자하여 백성을 기만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儒敎는 윤리며, 교육이며, 상식의 합의일 뿐이다.

제도적 종교에 구애 받지 않고도 인간은 얼마든지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닌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뛰어 넘는 상식의 종교다.

한국인의 극단적 종교성향에도 불구하고 종교갈등이나 종교전쟁이 없는 것은 유교적 합리주의의 상식적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칼맑스 : 계급 없는 사회 (class-less society)

정도전 : 종교 없는 사회 (religionless society)

儒敎的 合理主義는 과거가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과제상황(perennial theme)이다.

然所謂得其心者(연소위득기심자)

그렇다면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非以私意苟且爲之也(비이사의구차위지야)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서 구차하게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니

非以違道于譽而致之也(비이위도우예이치지야)

도를 어기면서까지 명예를 구하는 그런 치사한 짓을 하지 말라 (명신 익(益)이 순(舜) 임금에게 간언한 내용으로써, 서경(書經)에 나온다.)

亦曰仁而已矣(역왈인이이의)

인이란 무엇인가

人君以天地生物之心爲心(인군이천지생물지심위심)

천지가 모든 만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내 마음으로 삼고

行不忍人之政(행불인인지정)

사람이기 때문에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

 

통치자의 인(忍)한 마음은 천지의 생물지심과 같은 것이다.

불인(不忍)이란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조선경국전 <2/4>

맹자가 성선(性善)을 입증하기 위하여 유자입정(孺子入井:어린이가 아무 생각없이 엉금엉금 우물로 기어 가고 있다)을 보기로 들었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맹자왈 인개유불인인지심)

맹자가 이르기를 인간들에게는 차마 어찌하지 못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皆有惻隱之心(개유출척측은지심)

누구나 깜짝 놀라는 측은지심을 내는데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비소이내교어유자지부모야)

그런 측은지심이 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비소이요예어향당붕우야)

향당(동네사람들)과 교분을 맺어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惡耳聲而然也(비오이성이연야)

잔인하다는 명성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러 나오는 것이다

 

程子曰(정자왈)

정자가 이르기를

滿腔子是惻隱之心(만강자시측은지심)

인간의 창자에는 가득 찬 것이 측은지심이다

使天下四境之人(사천하사경지인)

천하 사경의 모든 사람들이

皆悅而仰之若父母(개열이앙지약부모)

자기 부모를 믿고 따르듯이 우러러 보고 기뻐할 것이다

則長享安富尊榮之樂(칙장향안부존영지락)

그렇게 되면, 안부존영지락은 길이길이 누리게 될 것이요

而無危亡覆墜之患矣(이무위망복추지환의)

거꾸러지고 넘어지는 그러한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守仁以仁(수인이인) 不亦宜乎(불역의호)

인을 인으로써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恭惟(공유) 主上殿下(주상전하)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順天應人(순천응인)

하늘의 뜻에 따르고 백성들의 요구에 응하여

驟正寶位(취정보위)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순천응인(順天應人)

조선왕조의 혁명이 무력적 전복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에 의한 순리적 과정이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구문

공민왕(恭愍王 1351~1374 재위)

고려 제31대 왕으로써 개혁에 힘썼으나 집권 말기에는 실정을 거듭하였고 퇴폐적인 삶을 살다가 불행하게 살해되었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미상~1365)

몽골여자. 본명은 보탑실리. 1365년(공민왕 14년)에 출산 중 사망했다. 노국대장공주가 죽고 난 후 실의에 빠진 공민왕은 귀족의 아들들로 구성된 김홍경, 홍윤 등과 변태적이고 난삽한 음행을 일삼았다.

익비 한씨는 공민왕의 협박에 의해 홍륜, 한안에게 강간 당하여 아기를 낳았다. 익비의 아이를 자기 자식인 것 처럼 꾸미기 위해 그들을 해하려 하자 내시 최만생, 홍윤 일당이 침전에 만취 상태로 잠들어 있는 공민왕을 살해한다.

공민왕의 사당이 조선왕조의 종묘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 개창이 고려왕조의 선양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1393년 공민왕의 부인 정비(定妃) 안씨가 이성계 옹립의 전교를 내렸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1388)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러 갔던 10만 대군을 철수 시킨 사건. 이로서 고려왕조 멸망의 대세가 결정되었다.

위화도 회군의 4대 명분

명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외교적 오판 농번기 왜구의 침입을 유도 전염병

위화도 회군으로 죽음의 전쟁터로 끌려 나갔던 10만명의 청년과 그 가족들은 환호하였고 이성계는 크게 민심을 얻었다.

이성계의 혁명 성공은 고령왕조의 실정에 항거한 농민군사의 지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농민봉기이기도 했다.

정비 안씨(定妃 安氏)

죽성군 안극인의 딸. 공민왕이 강간시키려 했지만 자살로 위협하여 몸을 지켰다. 이성계에게 선양의 전교를 내렸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도 살아 남았다.

조선왕조의 혁명은 방벌(放伐)이 아닌 선양(禪讓)이었다.

정도전, 조준, 남은 등 50여 명의 대소신료들이 공양왕으로부터 옥새를 받아 내어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보위에 오를 것을 간청한다. 이성계는 세번을 고사한 후에 이 청을 받아 들인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고려왕조의 최고 정무기관. 이성계의 추대를 인준했다.

선양 → 추대 → 인준

이렇게 하여 조선왕조는 세계 혁명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지식인 집단에 의한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무혈혁명으로 추진되었으며,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정궁에서 이성계가 옥좌에 앉음으로써 개창되었다.

조선왕조 성립은 권력의지를 가진 개인의 혁명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시대적 요구를 실현한 사상가 그룹에 의한 집단적 혁명인 것이다.

 

恭惟主上殿下(공유주상전하) 順天應人(순천응인) 驟正寶位(취정보위)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순천응인 했으니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知仁爲心德之全(지인위심덕지전)

인이 심덕의 온전함이 되는 걸 알고

愛乃仁之所發(애내인지소발)

모든 백성을 사랑한다함은 인을 아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愛 = 사랑한다<X> 아낀다<O>)

 

於是正其心以體乎仁(어시정기심이체호인)

이와 같이 몸으로써 그 마음을 바르게 함이 인이다

推其愛以及於人(추기애이급어인) 仁之體立而仁之用行矣(인지체립이인지용행의)

그 아끼는 마음을 백성에게 미치게 하면 인의 본체가 서고 인의 쓰임이 행하여졌다

嗚呼(오호) 保位其位(보위기위) 以延千萬世之傳(이연천만세지전)

不信歟(거불신여)

오! 그 위를 유지하여 천만세에 뻗혀 전하여질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리오

조선경국전 <3/4>

체(體) : 본체적 측면

용(用) : 기능적 측면

조선왕조의 500년 장수(longevity)는 단순히 행운의 결과는 아니다. 그 내면에 장수를 가능하게 한 합리적 질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왕조의 패러다임은 500년 동안 그 나름대로 잘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이 지난 19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여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변혁의 시기에 들어서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정도전이 고민했던 그와 같은 혁명의 기운이 지금 우리사회에도 똑같이 있다고 생각할 적에, 앞으로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또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 과거 이러한 분들의 생각을 우리가 한번 더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정도전이 구체적으로 불교를 어떻게 비판했는가? 정도전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불씨잡변'이라는 위대한 논술을 살펴 보기로 한다.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종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고려라고 하는 썩은 체제를 유지했던 모든 부패세력의 근원으로서의 불교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지 않으면 조선왕조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조선경국전 <4/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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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위(正寶位)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의 '총론'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헌법 전문과 유사한 것으로써 건국의 정당성과 통치철학을 담고 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유가와 법가의 철학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조선통치질서의 모범(憲法)이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지 않고도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로움의 결여'로 나타난다.

교육은 '이용'이 아니라 '실천'이다.

중앙대학교 첫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준 모티브는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중앙대학교 강의가 진행되는 중에 동양고전의 정수를 뽑아 중앙대훈(中央大訓)을 정해서 학생들에게 주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명하는 것이 나의 본래 모습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나의 본래 모습을 따르는 것이 나의 길이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나의 길을 닦는 것이 나의 배움이다....

강의에 임하면 학생들이 이 중앙대훈을 읽게 하고 나서 '노자' 강의를 시작했다.

중앙대학교에서의 강의를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의 위대한 힘을 발견했다.

한국의 젊은이는 어린 것 같고 버릇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순수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다양한 문화를 개방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정치혁명에 이어 우리사회는 앞으로 교육혁명이 일어 나야만 한다.

이런 강의를 하고 있는 것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고, 우리 자신의 숨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의 젊은 싹들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삼봉 정도전을 공부하는 소이연(所以然)이 되는 것이다.(所以然 : 까닭이라는 의미로써 신유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

삼봉은 정보위에서 주역을 인용하되 본래의 순서인 生→位→仁을 바꾸어서 位→生→仁으로 하였다.

易曰 聖人之大寶曰位, 天地之大德曰生, 何以守位曰仁

'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다. 무엇으로써 그 위를 지킬 것인가? 인(仁)이라 하였다

天子享天下之奉, 諸侯享境內之奉, 皆富貴之至也

천자는 천하사람의 받듦을 향유하고, 제후는 (자신이 지배하는)국경 내의 사람들의 받듦을 향유하니, 이 모두가 부귀의 지극함이다.

賢能效其智, 豪傑效其力

현능한 자들이 그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그 힘을 바치며,

民庶奔走, 各服其役, 惟人君之命是從焉

일반 서민들은 분주히 살며, 그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게 복무하며 오직 인군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다.

以其得乎位也, 非大寶而何

이것은 위를 얻었기 때문이니, 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랴

<位(position) = 大寶(great treasure)>

민주주의도 位가 없는 질서가 아니라 位가 正名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주란 모든 조직의 형태를 규정하는 말이 아니라 인권의 기본을 보장하는 추상적 장치인 것이다. 비민주적인 조직들이 각자 효율성 있게 운영될 데에 그 사회의 민주적 원리는 순조롭게 작동될 수 있다.

정보위란 그 位를 바르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天地之於萬物, 一於生育而已

천자가 만물을 대하는 것은 그 생육에 있어 한결같을 뿐이다.

蓋其一原之氣, 周流無間, 而萬物之生, 皆受是氣以生

만물의 근원인 기가 끊임없이 주류(순환)하며, 만물이 태어나는 것도 모두 이 기를 받아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氣라는 것은 만물을 생성하는 방향으로 운행되어야 한다.

유교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까닭을 도덕적 본성(moral nature)으로 본다.

洪纖高下, 各形其形, 各性其性

어느 것은 굵고, 어느 것은 가늘며, 어느 것은 높고, 어느 것은 낮으니,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제각기 다른 저마다의 본성을 갖는다.

故曰天地以生物爲心, 所謂生物之心, 卽天地之大德也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지는 만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 하였으며, 이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 곧 천지의 큰 덕이라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며, 天地는 生하므로 (천지에도) 마음이 있을 것이며 그 天地의 마음은 모든 것을 生하는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

 

人君之位, 尊則尊矣, 貴則貴矣

人君(지배자)의 지위라는 것은 높기로 말하자면 한없이 높은 것이요, 귀하기로 말하자면 한없이 귀한 것이다.

然天下至廣也, 萬民至衆也

그러나 아무리 인군의 지위가 존귀하다고 해도 天下 처럼 넓은 것은 없고, 백성은 너무도 많다.

一有不得其心, 則蓋有大可慮者存焉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정도전은 주려(周廬)라는 문헌에 입각하여 재상의 지위를 확보하고 왕권을 제약하려 했다. 오늘날의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에 상응하는 발상이었다)

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至愚也, 不可以智欺之也

천하의 지극히 많은 백성은 지극히 약하게 보이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는 것이요,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지만 지혜로써도 그들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得其心則服之, 不得其心則去之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마음은 곧 떠나 버린다.

去就之間, 不容毫髮焉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붙는 것이 터럭 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맹자(孟子)는 지배자들에게 경원 시 된 책이었다. 그래서 외롭게 파묻혀 있었고 주석도 거의 없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 四書로 된 것은 12세기 朱子의 사서집주(四書集注) 이후의 사건이다. 四書는 중국 고전의 형태가 아니다.

• 孔子 : 심미적 : 예술가 • 孟子 : 사회적 : 혁명가

맹자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을 통해 민의 본성은 선한 것이라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민의를 따라야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확립했다.

정도전은 '맹자'를 통하여 (사회혁명의) 의식화가 되었다.

중국 제선왕(齊宣王 재위 B.C 319~B.C 301)이 맹자에게 탕과 주 시해 사건에 대해 질문하자 맹자가 답변한다.

 

적인자(賊仁者) 위지적(謂之賊)

적의자(賊義者) 위지잔(謂之 謂之殘)

잔적지인(殘賊之人) 위지일부(謂之一夫)

문주일부주시(聞誅一夫紂矣) 미문살군야(未聞弑君也)

 

仁을 해치는 자를 도둑놈이라고 하고

義를 해치는 자를 잔학한 놈이라 하며

이 도둑놈과 잔학한 놈을 일컬어 일개 필부라 한다.

일개 필부인 주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仁과 義를 해치는 자는 왕이 아니라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시해가 아니라는 의미로써 맹자의 사상이 드러나 있다.

정도전은 25세 때 영주 봉화에서 시묘살이를 하면서 맹자를 탐독했는데, 그 과정에서 심중에 혁명사상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서양사상은 기본적으로 증오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진정한 혁명적 사상이 부족하다. 또한 진정하게 과격한 사상도 부족하다.

모든 래디칼리즘 (radicalism 급진주의)은 동양사상에 내재한다.

 

然所謂得其心者 非以私意苟且而爲之也 非以違道干譽而致之也 亦曰仁而已矣

人君以天地生物之心爲心 行不忍人之政

그러나 이른바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사사로운 의도로써 구차스럽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요, 도에 어긋나게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여 이르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일 뿐이다. 군주는 반드시 천지생물지심으로 그 마음을 삼아야 하고, 사람이기에 차마 해치지 못하는 인내의 정치를 행하여야 한다.

使天下四境之人 皆悅而仰之若父母 則長享安富尊榮之樂 而無危亡覆墜之患矣

守位以仁 不亦宜乎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여 임금을 우러러 보기를 친부모처럼 한다면 그러한 임금은 편안한 부유함과 고귀한 번영의 즐거움을 오래 누리게 될 것이며 위태롭게 망하거나 전복되어 추락하는 우환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仁으로써 그 位를 지킴이 마땅치 아니한가.

 

恭惟 主上殿下 順天應人 驟正寶位

삼가 생각컨대 주상전하께서는 하늘을 따르고 사람에 응하여 신속히 보위를 바르게 하셨으니

知仁爲心德之全 愛乃仁之所發

仁하심이 심덕의 온전함이 되고 어여삐 여기심은 仁이 발한 것임을 알겠노라.

於是正其心以體乎仁 推其愛以及於人 仁之體立而仁之用行矣

이에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仁을 체득하고, 어여삐 여기심을 미루어 온 백성들에게 미쳤으니, 인의 體가 섰고 인의 用이 행하여지는구나.

嗚呼 保有其位 以延千萬世之傳 不信歟

오호라 그 位를 보지하여 천만세로 뻗쳐 전하여지리라는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리오.

 

재상은 왕을 보좌하여 방국을 균하게 한다(均防國). 삼봉의 가슴을 사로잡은, 국가질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바로 이 均이었으며, 그것은 바로 평등주의적 이상(egalitarian ideal)이었다.

 

 

정보위(正寶位)

易曰 聖人之大寶曰位 天地之大德曰生 何以守位曰仁

'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다. 무엇으로써 그 위를 지킬 것인가? 인(仁)이라 하였다

天子享天下之奉 諸侯享境內之奉 皆富貴之至也

천자는 천하사람의 받듦을 향유하고, 제후는 (자신이 지배하는)국경 내의 사람들의 받듦을 향유하니, 이 모두가 부귀의 지극함이다.

賢能效其智 豪傑效其力

현능한 자들이 그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그 힘을 바치며,

民庶奔走 各服其役 惟人君之命是從焉

일반 서민들은 분주히 살며, 그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게 복무하며 오직 인군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다.

以其得乎位也 非大寶而何

이것은 위를 얻었기 때문이니 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랴.

 

天地之於萬物 一於生育而已

천자가 만물을 대하는 것은 그 생육에 있어 한결같을 뿐이다.

蓋其一原之氣 周流無間 而萬物之生 皆受是氣以生

만물의 근원인 기가 끊임없이 주류(순환)하며, 만물이 태어나는 것도 모두 이 기를 받아 생성되는 것이다.

洪纖高下 各形其形 各性其性

어느 것은 굵고, 어느 것은 가늘며, 어느 것은 높고, 어느 것은 낮으니,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제각각 다른 저마다의 본성을 갖는다.

故曰天地以生物爲心 所謂生物之心 卽天地之大德也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지는 만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 하였으며, 이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 곧 천지의 큰 덕이라는 것이다.

 

人君之位 尊則尊矣 貴則貴矣

人君(지배자)의 지위라는 것은 높기로 말하자면 한없이 높은 것이요 귀하기로 말하자면 한없이 귀한 것이다.

然天下至廣也 萬民至衆也

그러나 아무리 인군의 지위가 존귀하다고 해도 天下 처럼 넓은 것은 없고, 백성은 지극히 많다.

一有不得其心 則蓋有大可慮者存焉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정도전은 주려(周廬)라는 문헌에 입각하여 재상의 지위를 확보하고 왕권을 제약하려 했다. 오늘날의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에 상응하는 발상이었다)

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至愚也 不可以智欺之也

천하의 지극히 많은 백성은 지극히 약하게 보이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는 것이요,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지만 지혜로써도 그들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得其心則服之 不得其心則去之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마음은 곧 떠나 버린다.

去就之間 不容毫髮焉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붙는 것이 터럭 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然所謂得其心者 非以私意苟且而爲之也 非以違道干譽而致之也 亦曰仁而已矣

人君以天地生物之心爲心 行不忍人之政

그러나 이른바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사사로운 의도로써 구차스럽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요, 도에 어긋나게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여 이르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일 뿐이다. 군주는 반드시 천지생물지심으로 그 마음을 삼아야 하고, 사람이기에 차마 해치지 못하는 인내의 정치를 행하여야 한다.

使天下四境之人 皆悅而仰之若父母 則長享安富尊榮之樂 而無危亡覆墜之患矣

守位以仁 不亦宜乎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여 임금을 우러러 보기를 친부모처럼 한다면 그러한 임금은 편안한 부유함과 고귀한 번영의 즐거움을 오래 누리게 될 것이며 위태롭게 망하거나 전복되어 추락하는 우환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仁으로써 그 위位를 지킴이 또한 마땅치 아니한가

 

恭惟 主上殿下 順天應人 驟正寶位

삼가 생각컨대 주상전하께서는 하늘을 따르고 사람에 응하여 신속히 보위를 바르게 하셨으니

知仁爲心德之全 愛乃仁之所發

인仁하심이 심덕의 온전함이 되고 어여삐 여기심이 인仁이 발한 것임을 알겠노라.

於是正其心以體乎仁 推其愛以及於人 仁之體立而仁之用行矣

이에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인仁을 체득하고, 어여삐 여기심을 미루어 온 백성들에게 미쳤으니, 인의 체體가 섰고 인의 용用이 행하여지는구나.

嗚呼 保有其位 以延千萬世之傳 不信歟

오호라 그 위位를 보지하여 천만세로 뻗쳐 전하여지리라는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리오.

 

삼봉 정도전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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