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를 앞당긴 혁명

 

영상 : 김재규 최후 진술

 

 

김재규 유언 詩

 

<나와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대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 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 내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드렸네.

,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 사랑하는 37백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지도자 김재규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영상 : 손석희 앵커멘트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인 1909 10 26일 바로 오늘입니다. 중국 하얼빈역.

"대한제국의 의군 참모중장으로 전쟁 중 작전을 통해 적장을 사살한 것"

그는 나라 잃은 청년이 아니라 전쟁 중인 군인이었습니다.

 

"국제법에 의거한 군사재판을 열어 달라"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항소하지 말라.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보였습니다.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렇게 해서 그로부터 36년간 계속된 치욕의 역사를 예견하고 거부했던 이들의 맨 앞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그때의 결정적인 한 장면에서만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30년 뒤인 1939 10 16일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위패가 있는 박문사에서 이토의 아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아비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와 같은 자식이라는 비난은 쏟아졌지만 그에게도 곡절은 있었지요….

▶jtbc뉴스 기사 원문보기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26 사태'

  

김재규, '유신독재' 심장에 총탄을 날리다

 

1979 10 26일 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 사태'입니다.

10·26 사태로 좀처럼 끝날 거 같지 않던 박정희 유신독재는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이 때문에 김재규를 '의사'로 칭송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의 한 축이던 그가 박 대통령을 저격한 진의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추측만 무성합니다.

 

김재규가 일으킨 '거사'의 결과도 박정희 유신독재를, 포악함과 무도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전두환 군사정권으로 바꿔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민중 학살도 이 와중에 벌어진 비극입니다.

 

CBS노컷뉴스와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함께하는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역사는 하루아침에 진보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10·26 사태를 돌아봤습니다….

………. (후략)

cbs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 머리통 속에 박혀 있는 총알이 주는 의미김재규=의인

박정희 암살당한 10.26 '올해로 38주년'...당시 국군서울지구병원장 김병수 장군의 증언

 

 

 

1026. 1979년 당시 오늘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을 암살한 날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망, 땅 속에 매장 되면 뼈가 존재한다. 특히 두개골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박정희도 김재규가 쏜 총에 의해 사살되어 절명(絶命), 국립묘지에 묻혀 있으니 그 뼈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후략)

브레이크뉴스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주권자 96%가 한 뜻, 사심 가득한 정치권만 우왕좌왕

6차 민중총궐기, 청와대 100m 앞까지..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세가지다.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등의 세가지가 바로 사전에 수록된 혁명의 의미이다.

 

어떤 경우거나 근본적, 질적으로 단번에 새로운 것으로 고쳐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주권자인 시민에 의한 혁명을 '시민혁명'으로 칭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시민혁명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다.

통상적인 시민혁명은 부패/압제 등 반민중적인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성난 군중에 의해 유혈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나 1688년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은 유혈(流血)사태가 없이 왕정과 왕권을 후퇴시키고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는 '권리선언'과 '권리장전'을 통과시켰다. 유혈사태 없는 혁명은 '명예혁명'으로 불리워진다.

 

이승만의 친일파를 앞세운 민족주의 지도자 배척과 독재 및 부정에 항거한 4.19혁명.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반민주적 헌법파괴에 대한 국민 혁명정신과 그 권리 및 권리의 행사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4.19혁명은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인해 민주정권 수립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다시 18년의 독재정권에 역사를 내 주게 되었고 박정희 피살 사건에 이어 석연치 않게 뒤를 이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변형된 형태의 반민주 압제와 독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1987년 4월 13일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4·13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사회 각계 인사들의 비난 성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해 5월 27일 재야세력과 통일민주당이 연대하여 형성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한편으로는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공식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게 되었는데, 이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에 이르고, 같은 해 6월 29일에는 마침내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의 6.29선언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 바 '6월항쟁', '610민중항쟁'이라고 불리우는 시민혁명이다.

 

4.19혁명에 이어 두번째의 시민혁명인 6.10민중항쟁도 기존 정치권력집단을 해체 또는 패퇴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궁극적인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반쪽혁명'이 되고 말았다.

 

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세번째의 시민혁명이 명예혁명으로 진행 중이다.

이번에야말로 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비루한 정치모리배들의 농간에 휘둘리고 말 것인가..?

 

 

 

이건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고 혁명이다

촛불시민들이 주인공인 '만민공동회' 여는 김제동

"정치권만 합의 못했지, 모든 국민들은 한목소리"

 

"130조까지 있는 헌법 중에서 '권력'이란 단어는 1조 2항에 딱 한번 나와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나머지는 다 '권한'이에요. 그러니 '권력을 잡는다', '권력 교체'라는 말 자체가 다 반헌법적인 표현인 거예요. 전 헌법의 최종 해석권자는 늘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헌법의 주인이 명시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방송인 김제동은 헌법의 모든 조항을 보지 않고 읊조렸고 조항별 순서와 구성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진순의 열림, '만민공동회' 김제동

 

큰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인다. 큰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고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먼저 내달리던 물이 빈 웅덩이를 채우면 뒷물이 그 곁을 스치며 새로운 선두가 된다. 부드러운 힘으로 단단한 것들을 깨고 갈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거대하고 육중한 존재로 완성된다…….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보기

 

 

 

오늘 100만 촛불, 청와대 100m 앞까지 간다!

 

법원,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 집회·행진 인용

 

 

 

법원이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지점까지 행진·집회를 허용하면서 3일 열리는 6차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청와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됐다.

 

◇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실현되다

 

전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정숙 부장판사)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서울경찰청장과 서울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조건 및 금지통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구체적으로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 '효자치안센터'까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자하문로16길 21앞'까지, 세움아트스페이스에서 '팔판동 126맨션'까지의 행진·집회를 처음으로 허용했다.

 

위에 언급한 세 곳 모두 청와대 경계 100m 지점에 속한다. 다만, 집회·행진 모두 오후 1시부터 5시 30분까지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의 행진도 교통안전 등의 이유로 금지됐다.

 

또, 이날 집회에선 오후 10시 30분까지 종로구 지하문로 푸르메재단 앞에서 집회가 허용돼 사실상 청와대와 200m정도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야간 행진도 가능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도 시민들은 법원의 인용으로 오후 9시쯤 청와대 앞 200m 지점까지 행진했다.

 

퇴진행동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항의 대상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3일 집회에서는 최대한 청와대에서 가장 인접한 곳까지 가겠다는 분명한 의사와 결의가 있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3일을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로 선포하고 종로구 팔판동과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해 탄핵국면에서도 '즉각 퇴진 요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 오늘은 문화제 아닌 '행진 집중형' 집회

 

3일 6차 촛불집회 예상 경로(자료: 서울지방경찰청)

 

이날 청와대방면 행진에 앞서 오후 2시, 퇴진행동 측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연다.

 

새누리당이 정한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이 국민이 요구하는 '즉각 퇴진'과 대치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같은 시각 보수단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집결해 국회해산을 요구할 예정이어서 시민들 사이에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회를 마치면 퇴진행동 측은 여의도역까지 행진한 뒤 지하철로 광화문광장까지 이동, 오후 4시부터 청와대방면 행진을 시작한다.

 

행진은 청운동길, 효자동길, 삼청동길 세 갈래로 나뉘어 펼쳐진다.

 

행진 도중 청와대를 포위하는 공동퍼포먼스와 집회도 진행된다.

 

이후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와 오후 6시 본대회가 1시간가량 이어진다. 이 자리에선 전교조 교사,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장애인 등이 무대에서 발언한다. 본집회는 청운동, 효자동 등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된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문화제 비중을 줄인 이유는 '청와대 100m행진'에 집중해 대통령에게 국민의 즉각 퇴진 요구를 분명히 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본집회가 끝나면 시민들은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청운동 길, 종로, 서대문 등을 거쳐 청와대를 향하는 길목인 청운동까지 행진한다.

 

주최 측은 3일 집회에도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울 것으로 내다봤다.

 

◇ '모바일 국민투표'도 등장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박종민기자

 

 

학생들도 다시 거리로 뛰쳐나온다.

 

박근혜 하야! 전국청소년비상행동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정권 퇴진 자유발언을 펼친다. 이후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한 뒤 오후 6시 본 집회에 합류한다.

 

이날 참석하는 중·고등학생 대다수가 교복을 착용하고 거리행진에 나설 예정이다.

 

이외에도 광화문광장에선 오후 1시부터 전국 풍물인 시국선언(굿판)이 진행되고, 이후 비정규직 규탄 선언 등 사전행사가 펼쳐진다.

 

수도권을 비롯한 대구, 경북, 울산, 제주 등지에서도 수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해당 지역의 번화가와 광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집회에는 지난달 30일 여러 시민단체들이 모여 선포한 '시민불복종의 날' 정신도 적극 실현된다.

 

시민불복종은 소등, 경적시위, 퇴진현수막 확대, 가방·옷에 퇴진 버튼 달기, 차량과 상점 유리에 스티커 부착, 청와대 항의전화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도 저항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퍼포먼스다.

 

이날 집회 장소에서도 오후 7시 전국민 1분 소등, 청와대 홈페이지 다운시키기 등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날 현장 집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시민들은 온라인 국민투표(설문)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1877-6605로 '#국민투표'라는 문자를 보낸 뒤 대화창 안내에 따라 질문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면 된다.

 

앞서 서울시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하철 역사, 지하철 출입구 계단난간, 환기구 주변에 총 570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또,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해 119 소방차량 39대, 구급대 등 소방관 416명이 곳곳에 대기한다.

 

이동화장실은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청계광장에 모두 11개동이 설치된다. 민간과 공공건물 화장실 210곳도 개방된다.

▶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청와대 100m 앞 행진 첫 허용…오후 6시 '촛불의 선전포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3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법원은 청와대에서 100m 거리인 효자치안센터 앞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청와대 앞 100m 인근까지 행진이 허용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3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의 선전포고,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를 개최한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오늘 '朴 즉각 퇴진의 날' 청와대 100m 촛불행진

 

청와대 인근에서 광화문 일대로 인파 집중

정치권 적극 행동 촉구 차원 여의도 집회

보수·극우단체도 집회…안전·교통 지원↑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는 첫 주말 대규모 촛불집회가 3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이번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촛불집회가 진행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오후 4시 청운동길과 효자동길, 삼청동길 등 3방향으로 행진한 뒤 오후 5시께 청와대에서 100m 지점에 모여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퇴진행동이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겠다고 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시스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맹자와 이성계 소개

맹자(孟子)의 사상은 공자(孔子)의 사상하고는 매우 다르다.

공자는 체제의 변혁 보다 인간의 심미적 완성에 관심이 컸던 반면에

맹자는 철두철미한 사회적 관심 속에서 혁명(革命)을 논한다.

정몽주로부터 맹자를 받은 정도전은 하루에 반쪽 이상을 읽지 않는 정독을 하며 맹자를 공부했다. 정도전의 혁명에 대한 의지는 이 때에 시작된 것이다.

정몽주(鄭夢周 1337 ~ 1392)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경제적 토대가 빈약하면 그 나라는 흔들린다. 정치라는 것은 경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고려 말의 경제상황은 매우 불합리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관리도 퇴임 후에 수조권(收租權)이 계속 유지되는 불법적 관행이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심지어 한 토지에 9명이 불법 수조권을 주장하며 수탈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므로 소작농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있었다.

고려말의 불합리한 정치 및 경제구조에 대한 변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개혁파의 중심에는 정몽주가 있었다. 정몽주는 남달리 비상한 정도전을 이성계에게 소개하고, 정도전은 함경도 함주의 막사로 이성계를 찾아 가서 구체적인 혁명안을 제안한다. 위화도 회군 5년 전인 1383년 가을이었다.

조준(趙浚 1346 ~ 1405)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고려 말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개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전 후로 이방원의 세자책봉을 주장했으며, 태종을 옹립하였다. 토지제도에 밝은 학자로 《경제육전(經濟六典)》을 편찬하였다.

정도전은 사전을 폐지하고 모든 토지를 공전으로 하는 균전제를 주창했는데, 모든 자영농자가 땅을 골고루 분배 받는 개인수전(個人授田)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것은 최초의 완벽한 토지공개념이었다.

이에 대하여 조준은 토지에 대한 수조권만을 문제시하여 수조권을 현직관리에만 한정시켜서 권문세가의 모든 불법적 수탈을 박탈했다. 과전법(科田法)의 시행이었다.

과전법(科田法)

고려 말기에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 개혁파 사대부들이 사전(私田)의 폐단을 없애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1391년(공양왕 3)에 제정한 토지제도이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계승되어 1556년(명종 11) 직전법(職田法)을 폐지하고 녹봉제(祿俸制)를 실시할 때까지 조선의 양반관료사회를 유지하는 제도적 기초가 되었다.

정몽주는 고려왕조를 유지하는 개혁사상을 구상했다. 혁명노선에 반대했던 정몽주에 의해 정도전은 영주 봉화에서 체포되어 보주(甫州 예천)의 감옥에 갇힌다.

그러던 중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 중에 낙마하여 부상을 입자 혁명파는 크게 타위축되고 정몽주가 득세한다. 바로 이 때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활약이 시작된다. 이방원이 26세 때였다.

방원이 이성계를 개성 집으로 모셔 들이자 정몽주가 문병을 한다.

이 때에 방원은 하여가(何如歌)를 불러 정몽주의 속 마음을 떠보려 했고, 정몽주는 역성혁명의 뜻이 없음을 단심가(丹心歌)로 화답한다.

하여가(何如歌)

此亦何如 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百年)지 누리리라

 

단심가(丹心歌)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역사의 아이러니, 비정함이란 여기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선 건국에 성공한 이씨왕조는 충절의 표상으로써 정몽주를 우대하고 혁명의 1등 공신이며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던 정도전을 '역적' 내지는 '권력투쟁의 패자'로 각인시키고 만다.

조선 초기부터 진행된 정도전에 대한 이런 작업들로 인해서 조선은 진취적이지 못하고 낙후되어 갔으며 보수적인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바로 지배자의 역사왜곡이며 민중의 불행이었던 것이다.

정몽주가 자기 신념에 따라 충절을 지킨 비장한 인물로 평가되듯이 정도전 또한 자기 이념에 따라 비장한 최후를 맞은 성공적 혁명가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삼봉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는 철학이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민본주의적이며 철저하게 개혁적인 것이었다. 성종 때에 편찬된 경국대전은 지배력 유지와 강화를 위한 통치수단일 뿐, 이러한 철학이 빠져버린 것이다. 위대한 혁명가를 배척한 결과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광범위한 노예제도를 배제한 그리스의 민주주의 사상과 달리 동양의 공자와 맹자의 민본주의는 신분의 차별이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였다. 다만 '민의'를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을 뿐이다.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1215년의 대헌장. 이것은 왕권으로부터 귀족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귀족헌장에서 발전한 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왕권과 의회의 대립에서 왕의 전제(專制)에 대항하여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최대의 전거(典據)로서 이용되었다.

한국은 서구의 선거제도가 가장 빨리 정착된 나라다. 이것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일인데, 그 이유는 한국민에게는 이미 유구한 민본, 민주의 사상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라는 개념에 있어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민족이고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하지만 민주라는 용어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애매하고 국민을 기만하기 쉬운 용어다. 여기에 속으면 안된다.

민주는 치세(治世)의 방법에 관한 것이며 역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민주는 그것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고 항상 무엇인가를 위해서 존속하는 정치방법론일 뿐이다.

포은이나 삼봉이 가장 고뇌하고 가장 이루고자 했던 역사의 목표는 '반부패'였다. 역사의 목표는 '반부패'인 것이다.

동학의 이념은 보국안민이었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보호하자는 보국(保國)이 아니라 그릇된 것을 바르게 하고 썩은 것을 도려내야 한다는 보국(輔國) 안민(安民)이었던 것이다.

조선경국전 정보위 (正寶位)에서 인용한 주역(周易) 계사(繫辭) 하전(下典)의 인용문에 정도전의 혁명사상이 드러나 있다.

天地之大德曰生이요 聖人之大寶曰位니 何以守位오 曰仁(人)이요 何以聚人고 曰財니 理財하며 正辭하며 禁民爲非曰義라

천지(天地)의 큰 덕(德)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聖人)의 큰 보배를 위(位)라 하니, 무엇으로써 지위를 지키는가? 사람이며, 무엇으로써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 하며 백성들의 비행(非行)을 금함을 의(義)라 한다.

정도전은 주역 계사 하전 본문의 순서를 바꾸고 편집하여 인용했다.

즉 조선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서 국가 보다도 군주를 앞에 두고(聖人之大寶曰位), 뒤에 군주의 자리를 지키는 덕목으로서 백성의 마음을 생생하게 하는 인(何以守位曰仁)을 두었으며 그 사이에 천지 대덕인 생(天地之大德曰生)을 배치함으로써 위(位)→생(生)→인(仁)의 '국가통치철학'을 정리한다.

통치자는 언제 새롭고 새로와져야 하며, 민중의 마음도 언제나 새롭고 새로와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도전이 세운 조선의 통치이념이자 국가철학이었다.

우리가 정도전을 공부하고 논하는 것은 역사의 생명력을 새로 느끼자는 것이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만 할 일은 역사의 혁명, 가치관의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Posted by 망중한담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