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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03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9강 '술과 인과'

술(酒)과 인과(因果)

 

윤회라는 것은 것은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이다.

대승불교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선불교(禪 佛敎)는 윤회조차 인간 사고의 유희로 간주할 수 있다. 윤회의 현실이 곧 열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생사즉열반 生死卽涅槃)

꼭 삼봉 정도전의 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불교의 원래 교리는 윤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동양인들은 기(氣)라는 것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한다.

 

청탁수박(淸濁秀薄)

(氣)가 맑고(淸) 탁하고(濁) 빼어나고(秀) 천박하다(薄) 유교는 이렇게 기의 편차로 '차별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머리가 나쁜 학생과 머리가 잘 돌아가는 학생 사이에는 기의 차이가 있다. 나 도올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호를 '돌-도올'이라 지었다.

유교는 인간이나 만물의 차별을 기의 편차로 설명하고 있다. 윤리적 업보의 결과로 간주하지 않는다.

 

'주역(周易)'에

건도변화(乾道變化) 각성정명(各性定命)

하늘의 길이 변하여 각각의 성(性)과 명(命)을 정한다.

선유왈(先儒曰) 천도무심이보만물(天道無心而普萬物)

(그렇지만) 하늘의 도는 (특정한) 의도가 없이 만물을 두루 덮고 있다.

정도전은 이 차별의 세계가 인간의 업의 결과로 빚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儒敎)와 도가(道家)에서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자연 自然)을 본받는다(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동양의 도는 서양의 하느님에 해당된다. 도(道)란 스스로 그렇게 될 뿐, 인과응보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자연을 영어의 Nature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동양적 세계관 속의 자연은 명사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술부적(述部的) 상태이다.

 

도(道)는 서양의 God에 해당되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을 본받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도의 세계는 인과응보로 설명될 수 없다.

 

음양의 세계는 결정론적 법칙(Determination Law)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응보의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정도전 불교비판의 핵심은 결정론 비판에 있다. 인간의 삶이 운명이나 업보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인도문명에서는 왜 윤회사상이 생겼는가?

인도에는 카스트제도(혈통, 결혼, 직업으로 규정되는 고정적 사회계층)라는 것이 있다. 이 제도는 아주 복잡하고 엄격하다. 부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족, 군인), 바이샤(상인), 수드라(장인, 노예)의 4계층이 있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 Human) 수드라(노예)보다도 더 하층의 천민.

이 사람들은 장사도 못한다. 그들이 만졌던 것은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고 사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들의 지위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했다.

 

카스트제도를 정당화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윤회적 세계관이다.

"수드라(노예, 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前生)의 업보 때문이니까 너는 그 운명에 따라 순응하면서 살아라."

카스트의 결정론적 숙명을 정당화하는데 윤회나 업보의 이론이 사용되었다.

 

원래의 불교의 출발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적 개념을 뒤엎는데 있었다. 싯다르타(悉達多 실달다)의 혁명은 윤회의 숙명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동적인 계(戒), 정(定), 혜(慧)를 강조하였다. 집(執)은 멸(滅)될 수 있고, 멸(滅)하는 데는 방법(道)이 있다.

윤회설은 불교의 핵심적 이론이 아니라 아주 통속화된 이론이다. 인도 불교의 타락한 모습을 우리는 받아들인 것이다. 동양문화권에 이 타락한 모습이 들어와서 불교가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협박하고 위협하는데 인과응보의 이론이 쓰였다.

 

고려왕조에서도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은 과거의 업보 때문인 것이니 다 순응하고 받아들여라.'라고 했다. 고려 때의 혹독한 농민 수탈, 소작료로 10분의 9를 수탈하면서도 '이것은 업보이므로 참고 살아라'고 했다. 불교의 이 업보론은 민중의 봉기나 혁명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정삼봉은 불교가 이렇게 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는데, 그가 전라도 나주에 귀양 갔을 때 나주 소재동(消災洞 현재 소재동 표지비가 건립되어 있다.)의 황연(黃延)의 집에서 살았다.

 

정도전은 귀양 중 나주 사람들의 인심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인순박무외모(居人淳朴無外慕) 역전위업(力田爲業) 연기우야(延其尤也)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바깥으로 부러워하는 것 없이 살고, 힘들여 밭을 가는 것으로써 생업으로 하였으며 (황)연(延)이라는 사람도 그러한 면에서 특출한, 전통적인 농부였다.

 

나주(羅州)란 곳은 淳朴無外慕(순박무외모) 力田爲業(역전위업), 즉 이 고장 사람들은 순박하고 다른 곳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농사에 힘쓰고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주 사람들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고장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 '술과 인과' 1/4>

 

가선양(家善釀) 연우희음(延又喜飮) 매주숙(每酒熟) 선필상여(先必觴予) 객지(客至) 미상불치주(未嘗不置酒) 일구익공(日久益恭)

그 사람은 술을 잘 빚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매번 술이 익게 되면 반드시 먼저 나(정도전)에게 술잔을 들고 찾아왔다. 손님이 오기만 하면 술을 내어놓지 않는 때가 없으며, 사람들은 오래 사귈수록 더욱 공손해졌다. 지금도 나주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다.

(일제 시대에는 술 빚는 것을 밀주로 불법화시키고 양조 釀造를 전매화 專賣化하여 우리 민족을 수탈했다. 해방 후에도 이 법을 풀지 않고 양조업자들을 보호했었다.

 

유김성길자파식자(有金成吉者頗識字) 기제성천능담소(其弟成天能談笑) 개역선음(皆亦善飮) 형제동거(兄弟同居)

동네에 김성길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글을 꽤 알고 있었다. 그의 동생 성천(成天)은 담소를 잘하는 재능이 있었는데, 두 사람도 술 마시기를 좋아했으며 형제가 한 집에 살았다.

 

유서안길자노위승왈안심(有徐安吉者老爲僧曰安心) 고비장면(高鼻長面) 용의궤괴(容儀詭怪) 범방언리화(凡方言俚話) 향정여항지사(鄕井閭巷之事) 무불기(無不記)

서안길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늙어서 중이 되고 호는 안심(安心)이라 했다. 코가 높고 얼굴은 길어 생긴 것이 궤괴(詭怪)했다. 온갖 방언과 이화(俚話)는 물론 항간에 떠도는 소문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유김천부자(有金千富者) 조송자(曺松者) 기음역성길(其飮亦成吉) 연지유야(延之流也) 일종여유(日從予遊) 매득시토물(每得時土物) 필지주장이래(必持酒漿而來) 진환내거(盡歡乃去)

김천부와 조송이라는 자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성길(成吉)과 연(延)처럼 술을 잘 마셨다. 날마다 나에게 놀러 오고 토산물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술을 가지고 와서 끝까지 놀다가 갔다.

 

여한일구(予寒一) 서일갈(暑一葛) 조침안기(早寢晏起) 흥거무구(興居無拘), 음식유의(飮食惟意) 금이지절이이견자비지(今以至切而易見者比之)

나는 추울 때면 갓 옷 한 벌로 살고, 더울 때는 갈포 하나로 살면서도,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즐겁게 사는데 거침이 없었고, 먹고 마시는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절실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써 비유하고자 한다.

 

정도전은 천민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불교의 인과론을 부정을 술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酒之爲物也(주지위물야), 麴之多寡(국얼지다과), 瓷甕之生熟(자옹지생숙), 日時之寒熱久近(일시지한열구근), 適相當(적상당), 則其味爲甚旨(즉기미위심지)

술의 물건 됨은 누룩과 고두밥의 많고 적음과 옹기가 성긴 것이냐 밀도가 높은 것이냐, 술을 빚는 시기가 추은 때냐 더운 때냐, 빚은 후 오래 두었느냐 짧게 두었느냐 등등, 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질 적에 그 술 맛이 매우 좋다.

 

조박(糟粕)=술지게미.

糟糠之妻(조강지처)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糟糠之妻不下堂(조강지처불하당) 貧賤之交不可忘(빈천지교불가망)

조강지처는 내치면 안 되고 빈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된다.<후한서 後漢書>

 

약얼다칙미감(若多則味甘) 국다칙미고(麴多則味苦) 수다칙미담(水多則味淡) 수여국얼적상당(水與麴適相當) 이자옹지생숙(而瓷甕之生熟) 일시지한열구근(日時之寒熱久近) 상위이불상합(相違而不相合) 즉주지미유변언(則酒之味有變焉)

만약에 찐 밥이 많으면 맛이 달고 누룩이 많으면 맛이 쓰고 물이 많으면 맛이 싱겁다. 물과 누룩과 찐 밥의 양이 서로 적당하고, 옹기의 생숙(구운 정도)가 어떤가. 술을 빚은 시기의 일기가 추운지 더운지 오래 두었는지 짧게 두었는지 이런 것들이 서로 어울려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그 술 맛은 완전히 변해버린다.

 

삼봉은 하물며 좋은 술이 되는 데도 수 많은 변수가 있는데 결정론적인 인과업보론(因果業報論)은 잘못 된 것이라고 예를 들어 비판 것이다.

나의 불행한 현실이 나타난 것에는 수 많은 함수가 작용했을 것인데, 이것들을 따져보지도 않고 전생의 업보라고 단정하는 것은 미친 생각인 것이다.

모든 복합적인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 술 맛이 적당하게 되는 것 처럼 불행의 원인을 따져보지도 않고 업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삼봉의 사고는 매우 과학적이다.

삼봉은 술을 비유로 들어 인과응보는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상 '술과 인과' 2/4>

 

此喩雖賤近鄙俚(차유수천근비리), 亦可謂明日盡矣(역가위명일진의)

나의 이런 비유는 비록 천하고 비속한 것 같지만 참으로 명료하고 잘못됨이 없는 정확한 비유다.

 

정삼봉은 이론적 구성을 해서 소재동(유배지)에서 느낀 생생한 삶의 체험을 이런 어마어마한 이론을 혁파하는데 쓰고 있다.

삶의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所謂陰陽五行之氣(소위음양오행지기) 相推迭運(상추질운) 參差不齊(참차부제) 而人物之萬變生焉(이인물지만변생언) 其理亦猶是也(기리역유시야)

소위 음양오행의 氣라는 것은 서로 밀고 서로 엇갈리면서 운행해 가는데, 그렇게 제멋대로 우연과 필연이 섞여 있는 데 따라서 사람과 만물의 모든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 이치 또한 옳지 않는가?

 

이 말은 과학적인 사고를 강조한 것이다. 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은 너무도 우연적인 요소가 많고,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므로 모든 요소를 살피고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방금운화(方今運化) 현재의 당면한 천지의 변화.

삼봉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법칙을 규명하자, 즉 현실만 해도 고민하고 분석할 것이 많으므로 전생까지 분석하는 것은 말자고 했다.(여기에 삼봉의 처절한 현실주의가 있는 것이다)

 

聖人說敎(성인설교) 使學者變化氣質(사학자변화기질) 至於聖賢(지어성현)

(성인이 나타나서) 가르침을 준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과응보를 가르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기질을 배우게 하여 성현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기질(變化氣質) 유교에 있어서 교육의 당위성의 근거

유교의 매우 중요한 논리다. 위성지학(爲聖之學)이란 '기질을 변화시켜 성인이 되는 배움'이라는 뜻인 바, 이는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켜 성인을 만드는 가에 관한 명제인 것으로써 동양사상의 핵심에 속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읽은 칸트(Kant)의 저서는 어려웠지만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 때는 콤프렉스(Complex)가 많아서 죽어라고 읽었다. 그리고 칸트나 플라톤(Plato)은 나와 관계가 없는 아주 대단한 학자로만 생각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이 있는데, 중국, 당시의 대만에 갔었는데, 대만 교수들은 대륙의 사방에서 온 사람으로 대가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강의를 할 때 이태백의 이야기, 주자 이야기를 해도 자기 친구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주자처럼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들은 주자를 자기 전통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미국에 가니까, 하바드의 대석학들이 칸트를 비판하고, 자기가 칸트 보다 나은 것처럼 강의를 했다. 그때 "아! 저 사람이 칸트 보다 나은 사람이구나!"하고 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변화이다. 대가들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세상의 성인이나 대단한 철학자들보다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성인이 될 수 있다.

누구든지 공자가 되고 플라톤이 되고 칸트가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건방져서는 안 되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칸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칸트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하고, 나는 영원히 칸트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하고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20세기에서 학문을 하면서 "우리는 선대의 학자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예술가는 피카소 같은 화가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人皆可以爲堯舜(인개가이위요순) 子服堯之服(자복요지복) 誦堯之言(송요지언) 行堯之行(행요지행) 是堯而已矣(시요이이의)

사람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 누구든 요임금 옷을 입고 요임군의 말을 외고, 요임군의 행동을 하면 그가 요임금이니라. <맹자>

 

유교적 인간관에는 인도의 카스트적인 고정성이 없다. 그래서 윤회가 불필요하다. 인간을 업보로 구속시키지 않았다. 누구에게든지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을 뿐이다.

 

治國者(치국자) 轉衰亡而進治安(전쇠망이진치안)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쇠락하고 망해가는 국운을 전환시키고 편안하게 다스리는 데 힘써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쇠망해 가는 나라를 전환시켜 흥하게 하는데 인과응보로써 가능할 것이냐라고 역설하고 있다.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지 않고는 고려사회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고려의 사대부들의 사고는 불교에 물들어 있었다. 그들 세력을 붕괴시키는 데는 무력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도전은 종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오직 불씨잡변(佛氏雜辯)이라는 이론으로 불교를 비판하기만 했다.

 

조선조에 와서 유교가 경직되어 척불숭유(斥佛崇儒)를 하면서 정도전에게 불교탄압의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한 때 부처의 목을 자르는 사건도 있었다. 요즘은 단군 동상의 목을 자르는 자도 있다는데, 모두 미친 짓이다.

 

<영상 '술과 인과' 3/4>

 

중용(中庸) 제 22장

可以贊天地之化育(가이찬천지지화육) 則可以與天地參矣(즉가이여천지삼의)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게 되면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

삼(參) 사람(人)이 하늘(天)과 땅(地)과 더불어 셋이 된다. 유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사상.

 

此聖人所以廻陰陽之氣(차성인소이회음양지기) 以致參贊之功者(이치삼찬지공자) 佛氏因果之說(불씨인과지설) 豈能行於企間哉(기능행어기간재)

성인은 음양지기(陰陽之氣)로 돌려서 삼찬지공(參贊之功)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인과지설이 그 사이에 어찌 끼어들 수 있겠는가

삼찬지공(參贊之功) 인간이 천지와 한 몸이 되고 천지의 화육을 돕는 공력. 중용의 22장의 구문을 인용한 삼봉의 인과론 비판 논리.

 

오늘 강의는 어려웠는데, 강의의 핵심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일인일과(一因一果), 즉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가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인일과(多因一果), 즉 우주의 모든 사건(Event)은 다양한 원인의 소산이다. 1대1의 대응은 과학적 사유가 아니다. 우주는 필연(Necessity)과 우연(Chance)의 복합체이다.

 

우리는 오늘의 사태를 항상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회음양지기(廻陰陽之氣) 즉 우리는 음양의 시간도 창조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쇠망이진치안(轉衰亡而進治安) 즉 쇠망해가는 나라(Nation in Disorder)를 전환시켜 치안이 있는 나라(Nation in Order)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여기서 치안(治安)이란 나라의 안정의 뜻이 아니고, 나라가 편안하게 다스려짐의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운명적으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항상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모든 함수를 분석해서 역사의 목표인 미래를 창조하여야 한다. 쇠망한 나라를 치안(治安)의 나라로 바꾸고, 자기가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 있으면 운명을 극복해서 행복한 운명으로 바꾸고, 지식이 부족하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을 늘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간됨을, 나의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는 '인간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금수'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여러분, 젊은이들이 최고의 사상가요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여러분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갖고,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스스로의 인간됨을 비하시키지 말고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해 주기 바랍니다.

<영상 '술과 인과' 4/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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