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난 염치있는, 부끄러운 보수"

'박의 칼잡이' 민감한 물음에 눈으로 답하다

 

"아, 정치BAR에 실리는 거군요."

<정치BAR> 역사상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다. 우리를 알고 있다.

"'언니가 보고 있다'도 챙겨 들어요. 근데 누가 언니에요?"

이 정도면 우리 기준으로 '팬'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하다 밀려났고, 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문건 파동'의 한가운데 섰다가 이제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 된 정치신인 조응천씨. 인터뷰 내내 "에이, 말 안 할래"를 연발했지만 눈으로는 다 대답해준 남자. 그를 4일 서울 상암동 롯데리아에서 만났다. 커피숍 자리를 잡아놓고 기다렸는데 "롯데리아가 넓잖아"라며 옮기자 했다. 햄버거와 커피를 시켰다. 비교적 빽빽한 롯데리아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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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영업자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장사 1년 남짓하셨죠. 해보니 어떻던가요? (*그는 지난해 3월말부터 서울 서교동에서 '별주부'라는 해물집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 해서 먹고 사는 건 진짜 힘든 거다…."

-적자였나요?

"우리 가게는 그 골목에서 제일 잘되는 가게였는데도. 적자가 날 때도 흑자가 날 때도 있지만 인건비가 안 빠진다. 주방 아줌마, 아르바이트생 안 쓰면 그나마 낫지. 생존이지 생활은 아니야. (*가게 운영을 하며 '생존'할 순 있지만 생활인으로 살긴 힘들다는 뜻) 약속이 없었어. 매일 거기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나 보고 싶으면 니네들이 와.' 그 정도 시건방은 있었으니까."

-가게 운영이 힘들었던 구조적 이유가 있을까요?

"인건비•임대료•카드수수료, 그리고 세금…. 부가가치세, 소득세 내고 종업원들 4대 보험료 내주고 나면…. 재료비 점점 오르지, 농수산물은 그때그때 가격이 굉장히 변하는데 가격에 반영할 수도 없고…."

-'장사 안돼서 정치한 거 아니냐'는 댓글도 있던데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햄버거를 계속 먹는다)"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세요?

"내가 이중적인 존재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지적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각성하고 바삐 움직일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은 가능할 수 있다. 전혀 다른 쪽의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정치인 조응천으로서의 꿈•비전•가치는 아니잖아요.

"정치를 하겠다고 한 지 며칠 안 됐잖아. 도와달래서 도와준다는 거지. (그런 질문은) 생후 2개월 된 놈한테 대학입시 치르라는 꼴이야."

-생각을 정리하는 중인가요?

"시간을 안 주잖아. 잠도 못 자게 만들고. 저녁에 계속 장사해야 하고.(웃음) 특별히 가치 거창하게 내세워야 정치인가. 얼마 전에 프레시안 기사 감명 깊게 읽었어. '남의 신발 신어본 국회의원을 갖고 싶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본다는 걸 영어에서 그렇게 표현한다며? 야당에서 훌륭한 사람 영입했다고 치자. 그렇지만 그들이 영세상공인, 백수, 청년, 생활보호대상자 이런 사람들에 대해 관념적 이해 말고 진짜로 이해할 수 있냐는 거야.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난 강점이 있지. 그냥 코스프레 하려고 식당 한 거 아니니까."

 

이 '정치 신인'은 '신인'인데도 아직 정치인으로서의 포부가 없다. '소상공인 출신'이라는 점을 주특기 삼을 수 있을까 두드려보는 정도가 그의 현주소다. 식당 얘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식당 얼마나 하셨죠?

"10개월. 사람들이 물어요. 계속할 거냐? 계속한다. 내가 좀더 모난 게 깎여야 한다고 생각해. 모자란 부분 채우고 있어.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자리에 서서 당하고 노출이 돼야지. 소위 '을'의 입장을 실감할 수 있는 게 뭐야. 서비스 업종이잖아. 그래서 택한 거야. 지난해 너무 힘들고 외로웠으니까. 내가 누구 만나자고 하기 힘들고. 열어놓으면 올 거 아니야. 단순한, 큰 생각 필요없는 육체노동에 몰입하다 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냐. 몸 힘들게 해서 마음을 맑게 하자…."

-정말 계속할 거에요?

"계속 하려고 해. 쇼라고 얘기할 텐데, 더불어민주당에 '영업방해 좀 최소화해달라'고 얘기하고 있어. 나 아니면 청소할 사람이 없어. 당에서 필요로 하는 일은 맞춰서 하겠지만 내 가게는 어떻게 되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공직자 비위감찰, 인사검증, 대통령 측근 관리를 맡는 자리다. 장•차관 인사평가까지 한다. 청와대의 모든 비서관을 합친 것보다 더 센 자리로 불린다. 사실상 청와대 수석급 이상이다.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식당에 여러번 찾아와 간곡히 부탁'한다고 해서 '전향'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입당 이유로, '변화의 진정성 봤다'고 했는데, 김종인 위원장의 영입을 말하는 건가요?

"(끄덕) 그거 하나가 아니고 그동안 계속 실점 포인트였던 것이 득점 포인트로 돌아섰다. 문 대표가 물러난 것, 김 위원장 모셔온 것, 새로 오시는 분들도 신선했고."

-일련의 인재영입을 말씀하시는 거죠? 표창원 교수, 양향자 상무 등?

"다 긍정적으로 된 거죠."

-김 위원장은 만나보셨죠? 뭐라고 하시던가요? (*조 전 비서관은 김종인 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정작 김 위원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어제(3일) 인사만 했다."

-선대위원장이니까 총선 때 모종의 역할을 그 분이 부여해줘야 하는데, 명확히 못 들었나?

"없었다."

-문자도 있고 전화도 있고 따로 연락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맘에 안 들어하는 거 아니에요?

"그쪽으로 몰고 싶죠? 그쪽으로 몰고 싶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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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희 변호사…터질 게 있었다

 

진짜 인터뷰는 지금부터다. 현 정권 초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앞에 두니 묻고 싶은 게 산더미다.

-'정윤회 문건 파동' 말이에요. 1심에서 무죄는 났는데 사실 큰 틀에서 밝혀진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깊이 끄덕끄덕)"

-문건은 사실이었나요. '6할론'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2014년 11월 <세계일보>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한 보고서가 보도됐다. 박근혜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측근 정윤회씨가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과 만나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 국정을 논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와 정씨는 "찌라시를 모아 놓은 수준"이라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당시 보고서의 신빙성에 대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나 싫어. 과거 얘기하지 말자."

-세계일보에 그 문건이 왜, 그 시점에 보도됐는지도 규명되지 않았어요.

"난 이해 안 돼. 친분 있는 기자한테 소스를 줄 순 있더라도 종이를 통째 넘기진 않거든. '이런 얘기가 있는데 한번 알아봐' 정도라면 몰라도. (한아무개 경위가) 뭉텅이로 하드카피를 줬다는 거 아니야. 왜 줬을까. 기자에게 약점이 잡혔나. 이해가 안 간다."

-박지만 회장과는 어떻게 친해졌어요? 1994년 박 회장의 마약 사건 수사 때 친해졌다는 설이 있고,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네거티브 담당하면서 친해졌다는 설이 있어요.

"1994년에 피의자와 주임검사로 만났지. 안타까웠어. 국격을 위해서라도 이 사람이 재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희화화되는 건 국민들에게도 좋지 않아 보이고. 나름대로 진심으로 충고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좋게 봤다."

-수사 뒤 연락하고 지낸 건 아니고?

"전혀. 그러다 2012년 대선 캠프에서 네거티브 담당했는데 박 회장이 기억을 해낸 거지. '그 사람 괜찮은 검사였어'라고."

-박 회장과의 인연으로 대선 캠프에 들어간 게 아니군요.

"아니야. 내가 검사할 때 각종 청문회 대비를 꽤 많이 했다. 그걸 알고 캠프 쪽 인사가 요청을 해서 맡게 됐지."

-정권 초기에 '만사올통'이라는 말이 있었죠? (*박 대통령의 올케 서향희 변호사를 통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뜻)

"…(끄덕)"

-결과적으로 큰 문제는 아직 안 불거졌는데, '만사올통'이 실체 없는 소문이라서 그런 건가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잘해서 그런 건가요?

"(굳은 표정으로) 후자지 후자. 그냥 놔뒀으면 몇 개 터질 우려가 있었어."

-외국에 나가있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우리가 하도 못살게 구니까 그렇게 하신 것 같고."

-세게?

"제가 좀 무식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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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에게 섭섭하다는 그의 눈빛…

 

'정윤회 문건 파동'이 일었을 때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내부 사정을 알렸다.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직접 못 올리고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해야 한다. 보고서를 내면 피드백도 없어서 수석들은 3인방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요지였다. 청와대 각 비서관실 인사도 모두 '3인방'이 좌지우지하는데 본인은 이에 저항하다가 찍혔다고 했다.

-2014년 4월 청와대 관둔 이유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어쨌거나 다들 나를 아끼고 맞춰주려고 하는데 난 그걸 못해. 아닌 거 아니라고 하고 표현도 스트레이트하게. 집사람도 말 부드럽게 하라고 하는데."

-당시 상관이 홍경식 민정수석, 김기춘 비서실장이었죠. 김 실장은 '3인방'과 당신, 어느 쪽에 힘 실어줬나요? 초기엔 '3인방' 견제하는 역할을 하다가 결국 '3인방' 쪽 손을 들어주면서 당신을 잘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얘기 안 할래."

-제 말이 틀렸나요?

"아니, 얘기 안 할래."

-김 실장에게 섭섭한 게 있으세요?

"아니, 얘기 안 할래. (잠시 말을 멈춘 뒤) 제가 1심 무죄 받고 나왔을 때 (기자들이) '하실 말씀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때 툭 나올 뻔 했는데 꾹 참았다. 얘기 안 할래요. 제가 그런 얘기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잖아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웃음)"

-당시 인사 참사가 많았는데 인사 실무를 하는 자리가 공직기강비서관 자리잖아요. 본인이 인사참사의 책임을 지기엔 억울한 일이 많았던 거죠?

"얘기 안 할래요.(웃음)"

-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눈빛으로 많은 답을 했다. 눈빛을 글로 옮기기 힘들어 아쉽다.)

"하하하."

-저희가 최순실씨 취재를 오래했어요. 청와대에 굉장히 자주 들락날락하시는 것 같던데요. (*최순실씨는 정윤회씨의 전 부인이자, 1970년대 후반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당시 측근이었던 최태민씨의 딸. 관련기사: http://goo.gl/cmTJKD)

"(끄덕끄덕) 왜 취재한 걸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 안의 얘기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 안 하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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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씨 '조준살수' 당해…사과 받아내야

 

조응천이라는 이름에 붙는 '야당 정치인' 수식어가 입에 붙질 않는다. '사상 검증'을 해보기로 했다.

-더민주에서 비서관님을 간절하게 영입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국민들께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데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 중도로 외연 확장하는데 도움된다고 봤겠지."

-본인으로 인해 중도로 외연이 확장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 물어볼게요. 북한에 대한 입장은 어떠세요?

"종북은 안된다.(웃음)"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상대적이다. 왜냐면 북한 정권이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저쪽이 계속 욕하는데 받아주는 거 이상하고, 그 반대도 이상하고."

-화해와 대화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네요?

"전 공안검사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파견 근무도 했다. 보수지만 염치 있는 보수, 부끄러운 보수라고 생각해. 합리적 보수인지는 모르겠고. '언니가 보고 있다', '장윤선의 팟짱' 같은 팟캐스트도 듣는다. 항상 시각차를 교정하기 위해서."

-박근혜 정권이 뭘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곰곰 생각한 뒤) 예산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4대강처럼?

"국책 사업으로 크게 돈 낭비 한 게 없잖아."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이네요?

"…(웃음)" (*배석한 한정우 부대변인 "표정으로 말씀하시네요")

-더민주 입당이 양날의 칼이 될 거란 비판도 있어요.

"왜?"

-결이 다르니까?

"결이 다르니까 여기 있는 거잖아. 며칠 같이 다녀봤지만 아직 차이점 못 느끼겠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아. 관점이 다를 뿐. '참고하십시오'하면 된다."

-최근 집회•시위 문제 많았잖아요. 백남기씨 사건에 대한 현 정부 태도는 어떻게 보세요?

"백남기씨가 사실 거의 조준 살수 당하시고 아마 그때 장시간 노출됐죠? 도대체 야당은 뭐하는가 생각했어요. '우리도 이 시위 동참했다'고 눈도장만 찍으려고 했지. '불법한 공권력'까지는 안 된다면 최소한 '불의한 공권력'이라고 규정하고, 마땅히 야당이 지적을 하고 최소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얻어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근데 내무반에서 서로 수류탄 까고 있으니."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하기도 했죠?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경찰은…."

-청와대에서 밀어붙이면 경찰은 버티지 못한다는 뜻?

"(소요죄 적용한다기에) 설마했다. (그런데 결국) 어쩔 수 없더만. 소요죄 쉽지 않거든. 득보다 실이 훨씬 클 텐데. 정무적 판단 조금만 하면…."

 

1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 그는, 할 말은 시원하게 했고, 못 할 말은 단호하게 그었다. (그러나 눈으로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박 대통령 주변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아줌마들' 얘기를 물었을 때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단호한 입, 너그러운 눈'.

 

한겨레신문 [정치바 인터뷰]

등록 :2016-02-05 15:55

수정 :2016-02-06 10:28

글·사진 김원철 김지은 기자 wonchul@hani.co.kr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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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박근혜 대통령의 전 비서관 야당행

 

▲ 조응천 구속영장 기각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2014년 12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개입 혐의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돼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없는 걸 만들어서 저한테 덮어씌우고 탄압하더니 슬그머니 그 사건(정윤회 문건) 없어졌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청와대에선) 저에 대해 그런 비토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두고) 불순한 의도라고 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2일 자신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에 대해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응한 청와대에 대해 내놓은 입장이다. '애초부터 없는 걸 덮어씌우고 탄압했던 이들'이니 그렇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였다.

앞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결국 청와대에서 정치적인, 불순한 의도로 일을 하면서 문건을 유출한 것임이 드러났다"라고 조 전 비서관의 더민주 행을 비난한 바 있다. 즉, 조 전 비서관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에 입당하면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 등 청와대 내부 문건을 유출시킨 것을 자인한 것이란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자신을 '정윤회 문건' 유출 주범으로 모는 청와대의 행태를 '제2의 윤필용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윤필용 사건'은 유신 정권 당시 군내 실세였던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과 만찬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의심을 받고 그를 비롯한 그의 군내 세력들이 숙청당한 권력스캔들이다. 윤 전 사령관은 당시 업무상 횡령 등 10가지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대법원 재심을 통해 대부분의 혐의를 벗었다.

이와 관련, 그는 구체적으로 "재작년 12월 소위 말하는 그 사건(정윤회 문건) 때 청와대에서는 '7인회'라는 걸 만들었다, 비밀결사라고 당시 민경욱 대변인이 직접 발표했다, 거기 수장이 저라고 지목했다"라며 "그 때 일부 언론에서 묻길래, '어떻게 없는 걸 만드느냐, 제2의 윤필용 사건 아니냐'라고 했다"라고 지적했다.

즉, 자신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 옭아매려 했던 청와대가 자신의 더민주 입당에 대해 '불순한 의도' 운운한 것에 대한 불쾌감을 재차 토로한 셈이다.

"문재인 대표가 수시로 찾아와, 잘못된 권력 바로 세우겠다"

조 전 비서관은 이번 더민주의 영입 제안 전에는 정치 입문을 생각한 적도 없다고도 밝혔다.

앞서 '정윤회 문건' 사태를 두고 불거졌던 청와대 내 권력암투설 그리고 'K(김무성)•Y(유승민) 배후설' 등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그는 "조 전 비서관이 대구 출마를 위해서 (정윤회 문건을) 유출시켰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연관 있다는 의혹이 보도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김 대표는 한 번도 뵌 적 없다, 개인적으로도 알지 못한다"라면서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어, "더민주의 입당 권유를 받고서야 '과연 내가 정치권에 들어와야 하느냐', 처음으로 고민하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라면서 "그 전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설득한 것은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라고도 밝혔다.

그는 "제가 식당을 하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서 입당의 변을 말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며 "(문 대표가) 수시로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또 영입 제안 당시 지역구 출마나 비례대표 등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라면서 일각에서 불거졌던 서울 마포갑 출마설도 부인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본 현 정부의 내밀한 속사정과 비선개입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배신자'로 지목됐던 그의 첫 일성은 "잘못된 권력과 국정을 바로 세우겠다"라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입당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구 출신 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당', '미래가 불확실한 당'이라는 이유로 만류하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다"라면서 "현실 정치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누군가는 그 진흙탕에 뛰어 들어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것이 잘못된 권력을 바로 세우고 국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가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라면서 "중도에 서서 야당을 혁신하고,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데 미력이라도 보태겠다, 온당(穩當)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과감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처절한 반성과 혁신을 통해 새로 거듭나고,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부끄럽고 아픈 곳도 드러내며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았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마지막 결정 과정에 저희 부부 마음을 움직인 말이 있었다"라며 "'내가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정치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덧붙였다. 조 전 비서관은 회견문에 인용한 '말'들은 모두 문재인 대표의 말이라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 (기사 일부 인용)

16.02.02 09:10

최종 업데이트 16.02.02 12:36

글: 이경태(sneercool) 편집: 장지혜(jjh9407)

조응천 입당 기자회견문 전문

저는 오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합니다.

'대구 출신 現정부 청와대 비서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黨', '미래가 불확실한 黨'이라는 이유로 만류하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내는 정치 입문이 몰고 올 파장을 두려워하며 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레테의 강"을 건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90년대 초 검사 임관 이래 법무장관 정책보좌관, 국정원장 특보, 변호사, 청와대 비서관까지 얕은 지식으로 법조에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파사현정(破邪顯正)',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초심이 있었고, '부정'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정의'와 '진실'을 세우고자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최근 1년간 아내와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자영업자들의 삶과 애환을 직접 겪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정치는 무시와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먹고서야 '그래도 정치가 희망이다' '세상의 큰 변화와 발전은 정치를 통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의한 권력과 잘못된 정치는 우리 모두를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절망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것도 정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정치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누군가는 그 진흙탕에 뛰어 들어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권력을 바로세우고 국정을 바로세우고 나라를 바로가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희망을 일구고 싶습니다.

그동안 여당뿐 아니라 야당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수권(授權) 보다는 한줌도 안되는 당내 헤게모니에 골몰하는 사람들, 긍정보다는 부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에게서 안정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절박한 살림살이에 대한 공감도 없는 사람들, 암울한 경제 현실에 대한 해법도 없고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야당은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입만 열면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외교안보에 무능하다고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무기력한 야당 때문에 정작 국민들이 기댈 곳은 어디도 없었습니다.

사회전반의 정치 불신, 희망의 상실, 무기력의 원인 중 상당부분은 야당의 몫입니다. 강한 야당만이 강한 여당, 강한 정부, 그리고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야당은 바로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야만 브레이크없는 역주행을 막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의 '더불어민주당'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처절한 반성과 혁신을 통해 새로 거듭나고,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부끄럽고 아픈 곳도 드러내며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대안세력,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제가 살아온 일생을 모두 맡기기로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혁신과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성공의 밀알이 되고자 합니다.

공자(孔子)께서는 '선비의 본무(本務)인 사회정의의 실현에는 아무 관심없이 이쪽, 저쪽의 가운데에 서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사이비 지식인" 즉 "향원(鄕原)"이라고 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의 가운데가 아니라, 의로운 쪽에 서는 것이 옳은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중도(中道)입니다.

저는 그 中道에 서서 야당을 혁신하고,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데 미력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온당(穩當)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과감히 맞설 것입니다.

그리고 자영업자로 살면서 겪은 서민들의 아픔에도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지겹도록 그리고 진심으로 저희 부부를 설득한 몇 분이 있습니다. 현실정치 참여를 주저하는 저와 혹시 제가 결심할까봐 두려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 수없이 저희 식당을 찾아주셨습니다. 마지막 결정 과정에 저희 부부 마음을 움직인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정치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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