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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4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2강 ‘정도전의 유배생활’

서양학문의 시대, 보편적인 것을 추구했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국학의 시대, 주체적 사고를 해야 할 시대가 왔다.

최근에 국내 영화계는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다. 이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현상이다.

영화 실미도의 두 주인공, 안성기와 설경구 씨를 초대했다.

 

안성기 : 1952년생. 5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 70편이 넘는 영화를 통해 국민배우로 자리잡았다.

설경구 : 1968년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 '꽃잎'으로 영화계 입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부터 강렬한 성격배우로서 이미지가 각인됨. "나는 연기를 잘 모른다. 현장의 팀웤 속에서 나의 연기가 살아 날 뿐이다."

실미도사건 : 1971년 8월 23일, 한국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역사적 사실. 현대사의 굴절된 모습들이 이 사건에 얽혀 있다. 684부대는 김신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중앙정보부가 만든 특수부대였다. 31명 전원 사망. 실미도사건은 국가권력의 횡포와 역사왜곡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는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될만한 사건들이 많다. 하지만 정치적 속박으로 인해 예술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정치적 속박은 예술의 빈곤으로 나타난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억압되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적 기능을 외면할 수 없다. 영화 '실미도'는 왜곡된 역사의 실상을 일깨우는 강렬한 도덕적 기능이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민주의 축복이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적인 사상가들이 기라성 같이 포진되어 있는 역사다.

우리가 '위대한 정치가'라고 할 때에 링컨이나 처칠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로 떠올려야 할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 : 1342~1398. 조선왕조를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 사상가며 정치가.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支) 호는 삼봉(三峯)

처칠에게는 위대한 정치가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치가인 삼봉 정도전은 떠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조선왕조의 사상은 방대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6개월 동안에 다룰 수 있는 조선시대 사상은 '처음'과 '끝' 정도에 국한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변혁'을 떠올리라고 하면 흔히 구한말, 개화기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 시기 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큰 엄청난 변혁기가 있었다.

바로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넘어 가는 시기'야말로 구한말 개화백경(開化百景)의 격변을 능가하는 시기였다.

국가와 사회와 가족, 친족관계를 비롯하여 종교와 사상과 문화까지 모두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였던 것이다.

혁명(革命)이라고 할 때의 혁은 간다,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의 혁(革)으로써 주역의 49번째 괘(卦)를 말하며 정(井)괘의 다음에 온다. 서괘(序卦)는 "우물이 썩으면 물을 퍼내어 갈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 동학혁명(東學革命), 4.19혁명, 5.16 등 세가지 사건 정도가 있는 것 같다.

혁명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첫째 주체가 있어야 하고 둘째 왕조 또는 지배세력이 바뀌어야 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왕의 성이 바뀐다는 뜻이다.

일본 역사에는 혁명이 없다. 천황제 하에서 신하의 변화만 있다.

왕의 권력과 비슷한 권력을 가진 막부의 우두머리 조차도 '왕'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쇼군(將軍)' 즉 장군이라고 칭했다. 물론 이 쇼군은 우리나라의 '장군'과는 그 쓰임이나 의미가 전혀 달랐다. 일종의 '왕'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역사상 혁명이 없었던 일본은 연속성이라는 특징은 있지만 그만큼 부패하기도 쉬운 나라이다.

동학(東學)은 정치사적으로 명(命)을 갈지 못한 좌절된 운동이었다. 그러나 조산왕조의 가치관을 근원적으로 뒤엎은 사건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근대적 자아(自我)의 출발이었다.

5.16은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命)을 갈고자 하는 혁명의 주체세력은 바로 4.19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5.15은 4.19의 혁명정신과 주체세력으로부터 정권 만을 강취하였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하지 않고 '군사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하륜, 조준, 남은, 이숭인 등 공민왕 때 득세한 고려말 개혁파 신진유생들은 개혁정책을 주창하고 시도하였으나 계속되는 실패로 좌절하게 되었으며, 이 중 정도전의 주도로 이성계를 옹립하여 조선이 개국하게 된다.

1383년에 정몽주의 주선으로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고 1388년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1392년에 조선왕조를 개창하게 된다.

조선건국을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뚜렷한 근거는 정권교체 보다도 분명한 개혁의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건국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정도전은 1398년 태조 7년 8월에 사병혁파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세자였던 방석과 함께 척살된다.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정도전의 고려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1. 토지개혁 2. 종교개혁 3. 군사개혁

3가지로 요약되는데, 이 개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정도전의 개혁사상은 애초에 많은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삼봉 정도전은 34세 때인 1375년부터 2년간 나주목 회진현 거평부곡 소재동(消災洞)에서 유배생활을 한다(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 이 유배생활을 통해 삼봉은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고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된다.

또한 '답전보' 같은 유배문학을 남긴다.

답전보(答田父) : 밭 가는 이에게 답함(애칭이나 존칭의 의미로 父를 '보'로 읽는다).

정도전의 이 유배문학은 고려말 우리 민중들의 소리를 알려 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600여년 전의 소리를 지금 우리가 이자리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요 감격이다.

유배지 생활을 통해 정도전은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 민중의 갈망하는 바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 시대와 더룸어 호흡해 온 사상가이자 의사, 극작가, 교육자입니다. 고려대학교, 국립대만대학교, 일본 동경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서양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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