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떠날 수 없는 유족들 - 동거차도 움막 아빠들의 하루

그 바다를 지키는 이유…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전해야죠"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움막 안에서 지난 6일 세월호 유가족 최경덕씨와 강병길씨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난 6일 오전 올라탄 한림페리3호. 남해바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갑판에서 담소를 나누는 관광객 30여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형색색 나들이복 차림이었다. 뱃길이 시작되자 아기자기한 무인도가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진도 팽목항을 떠난 지 2시간30분. 멀리 7번째 섬 동거차도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담당 승무원이 나직이 "여기가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바다"라고 안내했다. 갑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대화도 뚝 끊겼다.

"아이구, 세상에나…." 한숨이 터져나오고 안타까운 듯 가슴을 치는 사람도 보였다. 더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금방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동거차도에 내렸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딸린 2.91㎢ 크기의 섬엔 35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다 만난 할머니는 "산 잔등에 가느냐. 저 세월호 사람들 좀 제발 도와달라. 너무 불쌍한 아비들 아니냐"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산자락을 가리키며 "노란 리본이 조롱조롱 달려 있으니 따라가라"고 일러줬다.

산벚꽃이 환히 핀 마을 뒷산 대나무숲과 동백 군락지를 지나 30여분 비탈을 올랐다. 산마루엔 소형 몽골텐트 2개와 움막 하나가 강풍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작은 인기척이 움막에서 흘러나왔다. 다가섰다. 비닐 바람막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세 남자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제각기 열여덟 살 아들을 잃은 단원고 2학년 4반 학부모들이었다. 승묵이 아버지 강병길씨(50), 하용이 아버지 빈운종씨(47), 성호 아버지 최경덕씨(47).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들은 10㎡ 남짓한 움막 안에서 모포로 한기를 쫓고 있었다. 장소가 마땅찮아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 패널을 깔고 지은 터라 움막은 계속 뒤뚱거렸다.

 

세월호 인양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움막에 설치한 카메라 렌즈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왔으니 하룻밤 묵고 가시오."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기자 양반도 천장에 묶어내린 밧줄 하나 몸에 붙들어 매시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렸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6일째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은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구난구조회사인 '상하이 샐비지'가 시작한 인양 광경과 과정을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세월호 선박 자체가 참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 증거물이라고 판단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이 일을 맡고 있다. 강씨 등은 벌써 4번째 동거차도에 왔다고 했다.

바다는 '4·16' 그날보다 더 험했다. 갑자기 높아진 파도가 발 아래 절벽을 때렸고, 짙은 안개가 섬을 칭칭 휘감았다. 시계가 뿌연 속에서도 강씨는 영상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화면을 확대해 살핀 뒤 그때그때 4·16가족협의회에 보고한다고 했다. 항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단다. 빈씨는 찬밥과 라면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물을 끓였다. 냄비에서 막 김이 올라오던 오전 11시20분, 강씨가 소리쳤다. "하얀 선박이 샐비지 바지에 접근하고 있어. 못 보던 배인데, 저게 뭐야. 바지에서 크레인으로 큰 짐짝을 옮겨 싣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배 난간에 '德意'(더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중국에서 새로 온 작업선이었다. 이렇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인양 현장은 오후 4시20분 파란색 컨테이너가 작업선에 내려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관측되지 않았다. 강씨는 "바지 위에서 수많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뱃머리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고 뒤편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감춰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정성껏 상황 하나하나를 모아 나중에 진상을 밝히는 검증자료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해질녘부터는 폭우가 쏟아졌다. 100㎜ 이상 내린다는 예보를 전해줬지만, "그보다 더 큰비도 맞아봤다"며 느긋해했다.

저녁식사는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칫국과 깻잎, 멸치볶음, 김 등이 아이스박스 뚜껑에 차려졌다. 밑반찬은 안산집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다고 했다. 움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입에 떠넣던 국물을 쏟기도 했다. 밥을 먹은 뒤엔 '부처손 차'가 나왔다. 1㎞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다 바위틈에서 캐왔다고 했다. 빈씨와 최씨는 차 대신 약봉지를 꺼내 털어넣었다. 빈씨는 지난해 초 어깨를 수술했고, 무릎과 허리까지 무리가 가면서 진통제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도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땀을 많이 흘려 약을 끊을 수가 없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최경덕씨가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요.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만나 정부가 한 거짓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빈씨도 "그동안 받은 온갖 박해와 냉담, 악의적 오해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304명 그 아까운 목숨들을 산 채로 수장시켜 놓고도 거짓말을 해대고, 반성도 할 줄 모르는 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도록 놔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소시민적 생활자세를 탄식하기도 했다. 최씨는 "월급 잘 받고,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하고 드라이브하면 그게 최고 행복인 줄 알았다"면서 "이웃과 사회, 국가에 무관심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고 결국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운명이었다. 예산과 조사기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시작된 특조위 활동이 6월이면 정지된다는 것이다.

빈씨는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4·13 총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여전히 세월호 사고가 단순 해상 교통사고이거나 선사 측의 탐욕, 선장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정도로 보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건전한 비판세력이 선택받도록 도와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씨도 "지금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세월호로부터 의미있는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촘촘한 국가안전망을 짜려면 특조위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정을 넘겨 잠시 비가 그치자 바다로부터 '쿠웅~ 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소리가 뭐냐'고 묻자 "왜 그런지, 작업을 주로 야간에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니 움막을 찾은 어머니들이 "인양을 낮에 해야지, 밤에 하느냐"고 벽에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선체 인양 작업은 2014년 11월 수색이 중단된 뒤 281일이 지난 지난해 8월19일 시작됐다.

미수습자 9명과 선체 인양 비용으로 851억원을 받기로 하고 상하이 샐비지가 맡았다. 이 회사는 세월호 침몰지점 바로 위에 1만t급 바지를 베이스캠프로 차려 놓고, 최대 7000t급의 작업선 4척을 동원하고 있다. 투입된 잠수사만 96명이나 된다. 그동안 선체 안에 남아 있는 유류를 제거하고 유실방지망을 보완한 후 지난달 2일부터 세월호 주변을 가로 200m, 세로 160m, 높이 3m로 감싸는 펜스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미수습자나 각종 유품의 유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달 초부터는 수중 선체 무게를 줄이는 부력 만들기에 나섰다. 선체에 구멍을 뚫어 내부로 대형 공기주머니 27개를 넣고, 선체 바깥엔 대형 풍선 9개를 다는 작업을 이달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이렇게 부력을 만들게 되면 현재 8300t에 이르는 선체 중량을 3300t으로 줄일 수 있어 인양하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밑에 여러 개의 리프팅 빔을 설치한 뒤 인양 밧줄을 바지 크레인에 잇게 된다. 이어 수중에 플로팅도크를 가라앉힌 후 세월호를 약간 끌어올려 도크에 앉힌 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다. 정부는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육지에 끌어온다는 로드맵을 짜고 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동거차도를 오가면서 본 팽목항에는 추모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방파제엔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바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새로 걸렸다. 단원고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인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얼굴과 그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평소 하루 10여명이 찾던 분향소 추모객도 30~40명으로 늘고, 주말엔 100명이 넘고 있다. 7일 경남 양산에서 온 김춘희씨는 "늦게나마 가신 영령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기 당일인 16일엔 전남도·진도군·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추모식과 종교·문화단체가 여는 추모제가 열린다. 참사 후 내내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60)"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 안전장치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4명이 돌아오지 못한 팽목항에 다시 노란색 물결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4.10 22:56:00

수정 : 2016.04.11 09:37:00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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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세월호 특조위 실패한다면, '중립성' 덫 때문"

이호중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

 

제1차 세월호 청문회 이호중 위원 정리발언 영상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고 경위와 해경 등 정부의 구조활동은 참사 당시부터 계속 비난을 받았고 '음모론'에 휩싸여 있다.

세월호 진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명제를 넘어 생명권과도 직접 맞닿아 있는 이 진실은 무엇일까? 세월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가 있었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마지 못해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신설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특별법 제정 직후 대통령령(시행령)을 제정하여 특조위의 권한과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피조사기관인 해수부 직원들까지 특조위에 강제 편입시킴으로써 특조위의 활동을 무력화 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런 와중에도 야당추천위원들로만 제1차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참사 당시 해경의 구조활동은 대부분 허위 아니면 조작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월호 진실은 무엇일까?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세월호 운항궤적, 즉 항적도 조차도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김어준의 파파이스'가 밝혀냈다.

과연 세월호 음모론은 루머에 불과한 것일까? 정부의 조치와 발표들 중 상당 부분이 왜 곡, 조작,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으므로 음모론은 더 이상 루머가 아닌 것이다. 이 것이 국정원과 청와대에 대한 청문조사를 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편집자 주>

 

· "박 대통령은 왜 특조위 임명장도 직접 안 줬나"

· "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 "'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 운명 가른 58초? 불행은 대기 중이었다

· "세월호 한 달 뒤...내게도 재앙이 왔다"

'대체 세월호 특조위는 뭐하나' 싶었던 차였다. 지난해 12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개최한 사흘간의 청문회는 서서히 잊혀가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별것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전망과 달리, 특조위는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 (☞관련기사 : "세월호 청문회 다음 타깃은 청와대, 국정원")

참사 당시 구조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는 청문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과거 "잠수사 500명 투입" 발언에 대해 "잠수 세력이 아닌 동원 세력"이라며 말 바꾸기 한 장면은 이번 청문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김 전 청장의 발언에 모두가 가슴을 치던 그 순간, 질의를 하던 이호중 특조위원은 "이런 사람이 해양경찰청 전 직원을 챙기는 청장 자리에 있었다는 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며 질책해 피해자 가족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 위원은 그 외에도, 꼼꼼하면서도 '사이다'처럼 속을 뻥 뚫는 시원스러운 질의로 여러 번 갈채를 받았다.(☞관련기사 : 전 해경청장, '잠수사 500명 투입' 거짓말 발각)

이 위원은 서강대 법학대학원 교수를 겸직하는 비상임위원이다. 한 발은 특조위에, 또 한 발은 바깥에 두고 있는, 말하자면 '중간자' 같은 위치에 있다. 내외부의 시선으로 특조위를 두루 바라보는 그에게, 특조위 '심폐소생술'을 위한 의견을 부탁했다. 다음은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나 이 위원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인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세월호 특조위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이호중 : 계속 인권 운동 쪽에 몸담고 있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안전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안전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안전이라는 건 대체로 치안 내지는 공안의 의미에서의 안전, 억압적인 국가 권력을 강화해나가는 안전 이데올로기였다. 안전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주제로 한 책을 쓰려고 준비했다. 그게 2014년 2~3월의 즈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인권시민 단체 사이에 공동 기구를 만들어 대응하자는 움직임이 있어서 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됐고, 거기서 같이 일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아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광화문 농성장을 함께 지키면서 같이 비닐 덮고 자기도 했다.

유가족 추천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다른 활동에 대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해양 전문가도 아니고, 법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상 조사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가족분들이 나에게 기대한 게 있다면, 시민 사회 진영과 특조위 간 다리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받아들였다.

▲여당 특조위원들의 빈자리. ⓒ연합뉴스)

"여당 특조위원들, 방해하러 온 사람들 같았다"

프레시안 : 비상임위원이다.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이호중 : 비상임위원은 겸직이다 보니, 실제 특조위 업무는 상임위원 중심으로 돌아간다. 회의에서는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똑같은 권한을 갖고 진행된다. 회의 참여 외엔 큰 역할이 주어져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물론 회의가 아닌 때에도 여러 논의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일이다. 저 같은 경우, 좀 더 많은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게 어려운 구조다.

비상임위원에게 좀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굵직한 일들은 상임위원이 맡고, 세세한 부분은 비상임위원이 챙기면서 조사 과정에 더 깊숙이 개입할 수도 있다. 그건 위원회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다르다. 세월호 특조위 같은 경우는 비상임위원에게 역할을 주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당 특조위원들 때문이다.

초반에, 여당 추천 비상임위원들이 "직접 사건 조사에 관여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조사와 같은 정부 책임 문제와 관련 직접 개입하기 위한 의도가 보였다.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형평성을 맞추다 보니, 자연히 다른 비상임위원들에게도 역할과 권한이 줄어들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합의제 기구 구성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세월호 특조위의 경우 과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과 비교하면 근본적인 정치적 환경이 다르다. 박근혜 정권은 워낙 특별법부터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그렇다면 여당 추천 인사의 역할이란 뻔했다. 유가족 추천으로 들어간 내 역할마저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회의 분위기가 궁금하다. 여당 특조위원들의 태도는 어땠나.

이호중 : 여당 특조위원들도 말로는 "진상 규명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는 했다. 그런데 민감한 몇 개 쟁점에 대해서 보이는 반응만 놓고 보면, 거의 방해하러 온 것 같은 태도였다.

초반 예산 작업이 봄에 진행됐는데, 여당 특조위원들이 들고나온 논리는 "예산을 펑펑 쓰는 기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절감 이야기를 하면 맞서서 예산의 필요성을 피력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예산 절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재부 공무원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서서히 '특조위원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직원 구성 논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행령 제정 작업 때, "인원을 처음에는 90명으로 맞추자"고 했다. 정부 시행령 안과 똑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청와대나 다른 정치적 사안과 결부되는 일부 쟁점에서는 아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뭔가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청와대나 다른 컨트롤타워가 있는 것 같았다. 해수부 문건 등이 공개되면서 느낌이 사실로 굳어졌다.

▲세월호 특조위 전원회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팀장급 파견 공무원, 민간 조사관 통제"

프레시안 : 특조위원뿐 아니라 실무진 구성에서도 파견 공무원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이호중 : 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청 등에서 직원을 파견 받는 일이 시행령 작업 중에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소한 참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처에서는 파견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부처 자체가 조사 대상이 되는 기관인데, 배제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부가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는 모른다. 해수부나 해경이 참사 당시 어떤 식으로 보고하고 업무를 했는지를 알려면, 파견 공무원 도움이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력을 받기로 한 거다. 그런데 그런 내부 논의가 무색하게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내서 파견 공무원을 무더기로 보냈다.

저는 안전사회소위원회 소속인데, 우리 소위 안에서도 파견 직원이 있다. 해경의 재난 구조 시스템 과제를 담당하는 일을 하는데, 조금 우려된다. 해경의 재난 구조 시스템 문제를 제대로 성찰하려는 의지가 정말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다. 다른 파견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민간 조사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파견 공무원들의 행태는 과거 위원회 때와 비슷한 것 같다. <프레시안> 앞선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대로다.(☞관련기사 : "'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적당히 시간 채우다가 돌아가겠다는 태도가 눈에 보인다.

프레시안 : 파견 공무원들과 실무적으로 손발을 맞추는 민간 조사관들의 경우 더욱 곤혹스러울 것 같다.

이호중 : 그렇다. 겉도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파견 공무원들을 배제하고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민간 조사관이 팀장이나 과장급이면 상황이 좀 낫지만, 반대 경우는 업무 소통이 잘 안 된다. 팀장이나 과장급 직위의 파견 공무원들이 아래 조사관들을 통제한다. 안전사회소위 같은 경우 종합대책을 이야기하려면, 국민안전처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경계한다. 함께 일을 하기 힘든 구조다.

 

"안전 대책 만드는 데 정부 자문위원 위촉...보고서 걱정스럽다"

프레시안 : 조사 과정에서뿐 아니라, 향후 활동 기간이 끝난 뒤 보고서 작성 때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이호중 : 세월호 특별법에 진상 규명뿐 아니라 안전사회 종합대책을 권고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권고지만, 이행 여부를 국회에 보고를 해야 한다. 굉장한 의미가 있는 기능이다. 권고 가운데 최상급에 해당한다. 이런 기능을 잘 활용하려면 우리 소위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안전 대책이라는 것은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해 규제 완화를 하고 안전 감독 업무도 민영화시키는 시스템이다. 말로만 안전을 외칠 게 아니라, 실제 일상 생활, 작업장에서의 안전을 과연 담보할 수 있는가를 비판이 있어야 하고, 시민사회에서의 비판적 논의를 수렴해야 한다. 그게 특조위 역할이다.

그리고 나아가 제안해야 한다. 산업재해 관련 작업중지권 문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문제, 지역사회 알권리 문제 등등 할 이야기가 많다. 안전소위만 놓고 본다면, 향후 그런 내용을 종합보고서에 생명력 있게 담아내는 게 관건이다.

현재 안전사회과 직원 10명 정도다. 이 인력으로 안전 사회 대책을 다 만들기는 힘들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직원들과 협업하는 식의 전문위원 시스템을 만들었다. 민간 조사관들은 시민사회 쪽 전문가를 데려오는데, 파견 공무원들은 정부 자문위원들을 데리고 온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보고서가 어떤 수준일지 우려스럽다.

우리가 안전 대책을 제안하면, 정부와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같은 단체의 저항을 막고 싸워나가야 할 거다. 그런데 보고서를 쓸 때부터 이미 내부에서 내용을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특조위 '실패' 평가 받는다면, 이유는 '중립성' 덫"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특조위가 안팎으로 압박을 많이 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진상 규명, 안전 사회 대책 마련 등의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호중 : 특조위 내에는 중립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덫'이 있다. 독립적인 행정기관으로서 중립을 지키고, 상임위원은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중립성을 지킨다며 정부 의견도 반영하고 기업 의견도 반영한다면, 대책다운 대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

특별법을 만들고, 특조위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윤보다 생명'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 아닌가.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해선 대척점과의 싸움이 불가피하다. 진상규명소위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치권력과의 싸움을, 안전사회소위는 자본과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정부 등 의견을 듣고 절충하면 당장은 비판을 모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특별법을 만든 대의를 저버리게 된다. 정부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특조위의 위상을 축소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특조위가 향후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평을 받는다면, 가장 큰 원인은 중립성이라는 잘못된 테제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당 특조위원들이 사사건건 방해활동을 한다. 그래서 위원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저는 이게 특조위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특조위는 정치적 합의체다. 여당 특조위원들의 꼭두각시 역할, 훼방은 '상수'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위원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제를 던져 특조위 권위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 특조위 주최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는 김석균 전 해경청장.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수입부터 출항, 청와대국정원 관련 청문회 추가 개최해야"

프레시안 : 청문회 이야기를 해보자. 이호중 위원 질의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이호중 : 개인적으로는 불만족스러웠다. 조사한 내용이 없었고, 시간도 부족했다. 처음 9월 말, 10월 초 청문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심지어 감사원 자료와 수사 재판 기록도 다 들어오지 않았었다. 처음엔 피해자들이 나와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식으로 청문회를 꾸리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굳이 '청문회' 이름을 걸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나마 해경 등 구조 관련 지휘부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할 수 있고, 의미도 있겠다 싶었다. 기소도 안 되면서 사회적 지탄도 받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다.

저는 안전사회소위니까 사실은 매뉴얼이나 훈련에 관한 문제를 질의하려 했다. 그런데 다른 질의를 듣던 도중 좀 더 문제제기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들이 보였다. 참사 초기 구조 인력 문제나, 대통령이 진도에 방문하던 날 구조 작업이 안 됐던 문제 등을 추궁했다. 그래서 정작 제가 원래 준비한 질문은 하지 못했다.

시간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세월호가 일본에서 수입되면서 실제 운항되고 참사 발생할 때까지 점검 상태를 살펴야 한다.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기는 쉽지 않더라도 구조적인 침몰 원인을 드러내고, 그와 관련해 관피아의 문제, 규제 완화의 문제 등에 대해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청와대와 국정원 관련 조사를 했으면 한다. 물론 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엄청난 뒷받침이 있지 않고서야 어렵다. 하지만 그 부분은 그간 많은 의혹 제기가 있었던 부분이다. 반드시 규명돼야 하는데,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청문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특조위의 후반기 역할이 무엇인가.

이호중 :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정부 예산이 6월말이면 끝난다. 그간 제기된 의혹을 모두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 신청 받은 조사들도 만족할 만한 결과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특조위의 역사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최소한 무엇에 매진할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적어도, 저는 특조위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제2, 제3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조위가 밝힌 부분은 어느 정도 까지고, 밝히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제안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특조위만 고민할 게 아니라 유가족, 시민 사회 진영이 함께 보조를 맞춰줘야 할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2016.01.22 07:14:21

서어리 기자

 

<세월호, 어디로 가나>

(1)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세월호 시작도 안 했다"

(2) "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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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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