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잘못을 세번 반복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다.


두번의 반쪽혁명, 미완의 역사를 계속할 것인가?

 

 

 

"선(善)이란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良心 양심)으로 통한다."고 했다.

우리 민족정서의 근본은 바로 이 善에 있고, 그러므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 즉 양심과 측은지심이 지극한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사악한 자들은 善을 악용한다.

 

짓밟고 유린하고 농락하고 회유하다가도 선한 양심의 분노가 끓어 올라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굴한 자기변신을 시도하고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 측은지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 온다.

'피의 광주학살'을 밀어 붙이던 모습과 6.10민중항쟁, 즉 두번째 시민혁명 직후 "이 사람, 믿어 주세요."라고 하던 두 모습 모두 그들의 근본이다.

국민주권을 유린하고 서민을 개돼지 취급하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하는 익숙한 모습도 모두 같은 부류다.

 

그들의 생존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들은 친일파를 대표적으로 하며 반민주 독재세력으로 뒤를 잇는다. 민족반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친일과 독재의 대가로 얻은 권력과 금력, 그리고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자들의 추종을 기반으로 세력화하고 유지되어 왔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본바탕으로 하는 한민족의 현대사에는 두 번의 시민혁명이 있었다. 첫번째는 4.19혁명, 두번째가 6월항쟁이다.

두 번의 혁명 모두 저 사악한 자들의 변신과 농간에 휘둘려서 궁극적인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미완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6년, 세번째의 시민혁명이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무엇을 바꾸어야만 하는지 누구를 단죄해야만 하는지, 어떤 것을 없애고 어떤 것을 존치시켜야 하는지,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선함과 측은지심의 틈을 타고 들어와 또아리를 틀고 말 저 사악한 자들로 인하여 민족과 국가와 아이들을 다시 생지옥에 빠뜨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박근혜, 역사상 가장 부끄럽게 내려오길 바란다"



 

60만명 집결한 6차 촛불집회, "언론도 공범, 대통령 담화문 하나에 입장 바꾸지 말고 국가 위한 정치하라"

 

…….. 단원고 2학년1반 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인 이금희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본행사 단상에 서서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며 "세월호 인양은 미수습자에게는 가족을 만나는 일이며 희생자에게는 침몰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생존자들에게는 모두가 다 돌아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이며 국민에게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금희씨는 2014년 4월16일을 회상하며 "은화가 배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파도가 쳐서 배멀미하는 줄 알았다. 은화가 45도 기울었다고, 선생님이 구명조끼 입고 있으라고 한다며 전화가 왔는데 두 번 다시 전화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게 4월16일을 보냈고 지금도 4월16일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 기사 원문보기

 

 

 

청와대 코앞, 횃불이 던진 메시지 "명예퇴진 없다, 즉각 물러나라"

 

전국서 사상최대 232만 시민들 거리로 나와... "탄핵못하는 정치권도 용납못해"

 

"촛불은 지지 않는다"

 

▲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의 바다와 적막한 청와대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3일 오후 촛불로 밝혀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뒤로 적막한 모습의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촛불은 결코 지지 않았고, 횃불이 됐다.'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은 몸소 보였고, 광장의 숫자는 이를 증명했다. 이날 집회에 모인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메시지는 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아닌 '4월 퇴진' '명예퇴진' '탄핵 보류' 등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모든 것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후 9시 30분 기준, 주최 측은 전국 232만 명이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광화문 집회에 170만 명, 지역에서 62만 명이 참가해 사상 최대 인파가 참가했다는 것. 특히, 부산, 광주, 대구 등 지역에서의 참가가 많이 늘어났다. 경찰이 오후 7시 10분에 집계한 인원은 서울 32만 명, 지역 10만4000명 역시 역대 최고치다…….

▶오마이뉴스 기사 원문보기

 

 

 

국민도 놀랐다… 민주주의 역사 새로 쓴 6차 촛불

 

서울 170만 등 전국 232만명 거리로… 시민집회 사상 최다

경찰도 "서울 32만 역대 가장 많아"

 

▶한국일보 기사 원문보기

 

 

 

횃불로 타오른 232만 촛불 "박근혜 즉각 퇴진"

 

대통령 퇴진거부 꼼수·정치권 탄핵주저에 민심 분노

새누리 당사앞 첫 규탄집회…416개 횃불 청와대로 향해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보기

 

 

 

대구 민심 르포…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국정을 사유화했다."

"계속 거짓말 하는 모습에 실망했다."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부패한 대통령일 뿐이었다."

 

▶뉴스타파 기사 원문보기

 

 

 

광장을 넘어 일상으로 번지는 朴퇴진 요구…결혼식에 전단지까지

 

결혼식에서도 '박근혜 하야' 피켓 단체사진

정권 퇴진 일상 움직임 인터넷에도 투영돼 각종 사이트 개설

 

▶세계일보 기사 원문보기

 

 

 

232만 분노의 외침···뜻을 거스르는 자가 '공범'이다

 

232만 촛불, 그들의 요구는 탄핵안 가결이었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232만 '탄핵 민심' 대폭발…탄핵안 가결시키나?

 

야권, 대여 '가결 압박' 강화…여당 비주류 등은 부담 가중

 

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주말 촛불 집회에서 횃불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노컷뉴스 기사 원문보기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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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자연에 대한 도전과 극복, 서양 문명의 이면에는 파괴가 있다

 

 

문명은 선(善)이고 야만은 악(惡)인가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야만의 사전적 의미는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나 그런 종족 또는 교양이 없고 무례하거나 그런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명이란 자연상태 또는 자연을 벗어나는 것이고 야만이란 자연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문명국 또는 문명인은 야만에 대해 매우 비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들 사고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문명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 형이하학적인 오만은 문명을 선으로, 야만을 악으로 단정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고 그 오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역사는 야만(자연)에 대한 파괴와 정복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문명을 자랑하고 문화인임을 자부하는 '서양문명인'들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서양문명은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도 있다. 그 공로는 다름 아닌 '편리함'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류생활의 편리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문명이 가져다 준 편리함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문명의 역사는 결코 선(善)이 아니었다.

 

 

 

선(善)이란 목적과 방법이 선해야 한다. 그래서 침략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타인을 죽게 만들며 사회를 파괴하는 전쟁은 목적과 방법 모두가 악(惡)이다.

 

원시와 고대사회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대문명과 산업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유럽 신지식 문명인이었던 신교도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야만에 대한 태도는 어떤 것이었던가?

그들은 원주민들을 적대시하였고 학살하였으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재산과 문화까지도 모두 파괴했다. 자연을 경외하며 자연과 동화적인 삶을 영위하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문명인인 신교도 이주민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개척'이라는 문명적 수식어로 꾸며졌다.

유럽 문명과 아메리카 문명의 야만에 대한 역사는 잔혹하고 반 인륜적이며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훼손한 역사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사냥해서 전 유럽과 미국 대륙에 유통시킨 '대륙적 인신매매'의 주범도 바로 이들 문명인이었다.

문명화된 도구를 이용한 제국주의는 지구상의 상대적 비문명,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약소국들에 대한 경쟁적 침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주의적 관념을 중시하던 동양, 아시아 세계를 침략하고 약탈과 수탈을 한 것도 바로 그 문명국, 문명인들이었다.

이들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패권주의로 양상을 바꾸었을 뿐, 오늘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서양문명)이란 이질적인 것에 대한 파괴와 유린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문명이란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일 뿐

 

 

 

문명이란 현실세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 중 물질계를 중심으로 한다. 서양문명의 근간에는 자연을 극복과 개척의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연을 인간 삶을 위해 존재하는 피지배의 대상 쯤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동서양의 관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불후의 예술작품들에 대하여 서양인들은 '위대한 창조'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예술작품, 조형물을 창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자연이 담고 있는 모습에서 나머지 부분을 덜어 냈다'는 것이 동양적 관념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문명이 비하하고 침략의 대상으로 삼았던 '야만', 동양의 관념이다. 어떤 것이 더 문명적이고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관념인가?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편리함 만으로는 개인이 행복하거나 만족한 삶을 누릴 수도 없고 인류의 화합과 공존에 보탬이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공통의 생존기반인 자연, 환경에 이롭지도 않다.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편리함일 뿐이다.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시절 구산스님(1910~1983)은 반야심경강의 서문에서 '과학문명은 서양수하고 정신개발은 동양기하다(科學文明 西洋秀 精神開發 東洋基)'고 설파했다. 이 말을 이해한다면 문명과 야만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오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육신과 정신은 인간을 이루고 있는 두 요소다.

육신은 물질로써 형상을 이루고 정신이 원리로써 내면을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은 무엇일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쾌락과 만족, 형상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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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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