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呼吸)은 생각 (의식 意識)과 육신 (감각 感覺)을 연결하는 다리

'생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생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생각(의식)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말은 그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의 이론과 실험들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물질의 세계에는 거시적인 세계도 존재하고 미세한 세포의 세계도 존재합니다. 더 미세한 원자와 핵의 세계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각자가 모두 다른 세계입니다. 그 세계들은 나름의 언어와 수학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크거나 더 작은 세계가 아니라 각자가 모두 다른 세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세계들은 서로 연결되고 서로 보완해줍니다. 왜냐하면 한 생명(존재)은 원자이기도 하고 세포이기도 한 동시에 눈에 보이는 생리학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각자 진실입니다. 단지 다른 단계의 진실일 뿐입니다. 과학과 철학에 의해 밝혀진 가장 심오한 진실은 '단일성'이라는 기초적인 진실입니다. 현실의 가장 기초적인 소립자적 단계에서는 모두가 글자 그대로 하나입니다.

생각 하나 만으로도 몸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인 방식으로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의지를 적어 내려 가다가도 지워버립니다. 그게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적 평균을 따져 보면 그 의지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그 의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변해 버립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면 그것을 다시 더 확고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그 확고한 틀 안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동일한 현실에 갇혀 버립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현실이라면 분명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고 실제 현실은 바꿀 수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나의 가능성, 즉 의식 자체의 가능성이라면 그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장할 수 있을까요?

고전적 관념에서는 나는 어떤 것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에서 어떤 역할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이미 존재하고 나름대로 움직이는 물질적인 존재입니다. 결정적인 법칙에 의해서 말이죠. 그리고 수학은 주어진 환경에서 사물이 움직이는 것을 결정합니다. 경험자인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점에 따르자면 수학이 어떤 것을 알려줄 수도 있고, 어떤 움직임들이 취하는 여러 가능성을 알려줄 수도 있지만, 나의 의식 내부에서 일어 나는 실질적인 경험은 알려줄 수 없습니다. 내가 그 경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내가 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물리학 같은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뉴에이지 류의 폭탄선언 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양자물리학이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올바른 호흡법은 점차적으로 의식의 단계를 높여 주고, 이 높은 단계의 의식을 운용함으로써 미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영상 '생명전자의 비밀'

'상단전 수련'과 '심화된 관법'은 후일 안내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망중한담

폭넓은 생각이 올바른 관점을 만든다

생각은 인간의 감각, 오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바른 관점'이란 시야와 맹점의 한계를 극복하여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정확하고 폭넓게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점 (觀點 view point)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시야 (視野 visual field) 어떤 한 점을 응시하였을 때 눈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볼 수 있는 범위. 사물을 볼 때 시선방향 안에 있는 것은 뚜렷하게 보이고, 주변에 있는 것이라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물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이 경우 전자를 중심시야라고 하고, 후자를 주변시야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색채용어사전

맹점 (盲點 blind spot) 망막에서 시세포가 없어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는 부분. 통상 관점의 밖에 있는 부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현상을 지칭합니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위 그림의 X를 보면서 점점 눈을 가까이 접근시키다 보면 X에서 까지의 약 3배쯤 위치에서 가 보이지 않고 양쪽의 두 선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눈으로는 보았지만 의 상이 맹점에 맺혔기 때문에 뇌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양안(兩眼), 두 눈으로 볼 때에 이 맹점의 한계가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 외에 우리는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봅니다. 본 것을 토대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가끔 충돌이 일어 나기도 합니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봤다" 또는 "저렇게 봤다"고 서로 주장하는 충돌 말입니다.

'봤다는 것' 또는 '본 것'이 과연 확신할 만큼 정확했던 것일까?

인간의 시야는 정말 보잘 것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중심시야'는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체 360° 중에 고작 2° 라니..?

주변시야까지 다 합쳐도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같은 시간에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주변에 있는 사물들 중에서 36분의 1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표면'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맹점'의 한계가 보태지고 '시력'의 차이까지 더하고 나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보고 그 '본 것'을 토대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관점 (觀點 view point)이란 이렇게 불충분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동안에 쌓아 온 사물에 대한, 그리고 상황에 대한 판단 기준, 즉 관점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다 폭 넓은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곧 보다 폭 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다 폭넓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보다 올바른 관점을 갖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시야를 넓히는 것은 고정된 시각을 움직이는 것이다. 안구의 움직임은 물론, 공간적 이동과 시간적 이동을 모두 포함한다.

이 움직임은 안구의 움직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사물과 현상을 보는 노력입니다. 공간적, 시간적 개념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 겨울에 따뜻함을 주던 난로가 여름철에도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면 겨울과 여름이라는 시간적 이동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 처럼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보는 각도나 시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생각과 느낌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생각과 느낌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봤다", "못봤다", "이렇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다"..

보잘것 없는 시각(視覺)과 시각 보다 더 형편없는 시각적 기억(記憶)에 의한 다툼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공감하신다면 '올바른 관점'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 다음에는 감각과 생각, 감정, 마음 그리고 감각의 확장을 통해서 생각과 관점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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