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가면

 

 

 

박정희 스위스비자금(600) ‘월남전 전투수당오바마 회신 접수

 

영상 :

 

 

스위스 비밀계좌누가? 어떻게? 얼마나?

 

영상 : jtbc

 

 

 

“박정희 스위스 비자금 수조원대최순실이 세탁

1978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가 발행한프레이저 보고서’(원제한국-미국 관계에 대한 조사’)

 

 

 

…. (노웅래 의원은) “보고서를 보면 박정희 정권은 해외 차관이나 투자 자금을 들여오면서 전체 자금의 10~15%를 커미션(수수료)으로 가로채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이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스위스 최대 은행인 유니언뱅크 등에 여러 사람 명의의 비밀계좌에 개설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이어 “(재미 언론인이었던) 문명자 기자는, 1979 10·26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보안 요원 5명과 함께 스위스를 방문해 비밀계좌의 예금주 이름을 변경했고, 동행한 이들에게 사례비로 5만달러씩 줬다는 것을 제보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도 이 비자금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보기

뉴스 보도 바로보기 <노웅래 "박정희 3조원대 부정축재... 특별법으로 환수해야">

 

 

 

박정희 권력에 기생한 최태민 일가

 

 

 

특검최순실 은닉 재산’ 100억원대 찾았다대부분 차명

최태민 일가 등 국내외 최씨 인맥 광범위 추적 조사

영장 불승인 취소, 항고 포기청 압수수색 결국 무산

박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시한부 기소중지방침

 

 

 

23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수 특검, 이규철·양재식·박충근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씨(61)가 차명 등의 방식으로 은닉한 재산 규모가 최소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소를 중지하는시한부 기소중지처분을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은 사실상 무산됐다.

 

2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특검은 그동안 최씨 재산추적 전담팀을 구성해 최씨의 부친인 최태민 일가 등 국내외 인맥을 조사하는 것은 물론, 국세청·금융감독원·법원 등 관련 기관의 자료도 받았다. 이를 통해 최씨가 숨겨놓은 재산은 100억원대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박근혜·최태민 관계 밝힌 10년 전조순제 녹취록전문(全文)

“모친(母親) 임선이, ‘여자라서 박근혜·최태민 관계에 갈등 겪었지만 돈 때문에 참아

 

 

 

박근혜 비판기자회견 이틀 전 동생 최순영이 돈 봉투 들고 와 회유

김재규 중앙정보부가 감청 등 모든 수단 동원해 최태민 내사

최순실 자매, 10·26 이후 들어온 뭉칫돈 사돈의 팔촌에까지 분산시켜

최순실 자매, 돈 때문에 모친 임선이 사망 사실 숨겨

최태민, 모친 임선이 만난 덕에 인간 돼임선이는 남자였다면 재벌 됐을 것

신군부가 최태민 의혹 조사할 때 수사단장 이학봉이 친구라서 덕 많이 봐

나라 잃지 않으려면 이명박이 돼야 한다. 박근혜는 안 된다

박근혜·최태민, 고기와 물의 관계두 평 규모 방에 들어가 3~4시간 동안 안 나와

 

조순제는 최태민(崔太敏)의 의붓아들이다. 조순제 모친 임선이(林先伊) 1955년 최태민과의 혼인 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조순제(1940년생), 조순영(1947년생)을 낳았다. 이 중 조순영은 의부(義父)인 최태민의 성을 따라 최순영(崔順英)이 됐다. 조순제는 개성(改姓)을 하지 않았다.

 

조순제는 성인이 된 후 최태민을 보좌하며 대한구국선교단 실무를 챙겼다. 1980년대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학교와 육영재단 업무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이었던 한국문화재단 일도 사실상 총괄했다고 알려졌지만, 나중 그는 무슨 이유인지 최태민 일가의 내부고발자가 됐다….

디어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 정권 초기 거액비자금 조성

중정 주가조작-워커힐-새나라차 등 개입

김종필 (중정)부장 주 500만환 쓴걸로 전해져

주한 미대사관 비밀보고서 공개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63년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조성 내막을 포함한 당시 한국 권력 핵심부의 부패상을 상세히 언급한 비밀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무 참사관이 작성하고 서명한 보고서는 빽빽이 기록된 모두 13장 분량으로 미 당국의 정보 공개원칙에 따라 올해 초 비밀해제됐다.

<한국의 부패문제>란 제목의 지난 63 2 20일자 이 보고서는 부패의 구조적 성격  박정희 정권의 군사혁명정신 퇴색상  김종필 중앙정보부장(현 자민련 총재)을 비롯한 일부 권력핵심부 인사의 주변 상황과 동향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공직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고 있다특정인이 너무 오랫동안 케이크를 먹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한국정부의 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패를 척결하려는 군사정부의 시도가 예상대로 대부분 실패, 요정들이 다시 문을 열고 군정과 중정 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했다고 지적한 보고서는 김종필 중정부장의 경우 이런 곳에서 일주일에 5백만환 상당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또 군사정권이 이전 정권처럼 직접적으로 민()을 압박하지는 않으나 스케일이 큰 공작들을 통해 비자금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면서 중정은 지난 62 2월부터 5월까지 주가파동을 조작, 40~50억 환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이 증권조작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10억환이란 이익을 봤다는 설도 있으나 학인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중정은 또 약 5백만 달러가 투입된 워커힐 건설에도 관여했으며 새나라자동차 회사는 중정의 밀접한 대일(對日) 사업과 연계돼 세워졌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일보 기사 원문보기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60억 달러 계좌 명의, 10.26 이후 박근혜로 변경

 

 

 

 

….

“박정희 정권, 스위스 비자금 계좌 있었다

재미 언론인, 미 의회문서 공개...20만 달러 입금 계좌도 명시.

 

박정희 정권이 스위스에 비자금 계좌를 개설해 운용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전면 부정했다. 하지만 이 비밀계좌 명의는 10.26사태 이후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그동안 심심찮게 나온 바 있어 대선 정국에서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7, 1978년도 미국 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 문서 공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와 구체적인 입금 사실을 폭로했다. 이 문서는 1978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묻는 미 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소위원회 설문에 대한 걸프사의 답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안치용 씨는메이저 오일컴퍼니인 걸프사가 지난 1969년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스위스 UBS(유니언뱅크)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1969년 걸프사가 흥국상사 주식 25% 2백만 달러에 인수하려 하자 계약 직전에 이후락이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요구해 이를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서정귀 계좌로 송금했고, 이 돈은 이후락이 찾아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걸프사는 입금 경위를 2페이지에 걸친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 것은 물론,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스위스 유니언뱅크의 입금서류 등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서정귀의 스위스 유니언뱅크 계좌번호는 626,965.60D였으며 199750달러는 1969 12월 인출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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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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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소득불평등 심화됐다"    

ㆍ홍민기 노동연구원 박사, '불평등 완화' 통설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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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1963~1979년)에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1960~1970년대 고도성장을 하면서도 불평등이 감소했다는 경제학계의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3일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경제발전학회의 학회지 '경제발전연구'에 지난해 말 게재한 '최상위 소득 비중의 장기 추세(1958~2013년)' 논문을 보면, 최상위 10% 소득 비중은 1960년대 초반 약 17%였다가 1979년 35.1%에 이르러 이 기간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비중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 동안 35% 수준에서 큰 변화 없이 일정하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2006년 이후에는 46~47%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문을 보면 1961~1979년 사이에 상위 10% 집단의 실질소득은 연평균 15.6% 증가했고, 하위 90%의 실질소득은 9.4% 증가했다. 상위 10% 집단의 실질소득은 20년 동안 13.5배 늘어난 반면 하위 90%의 실질소득은 5.0배 증가한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1960~1970년대 한국은 무역개방을 하고 고도성장을 하면서도 불평등이 감소하는 기적을 이룬 나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한국이 소득 불평등도가 매우 낮은 수준에서 급격히 경제성장을 한 것은 맞지만, 소득분배가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자, 중간 관리자, 생산직 등으로 조직 내 역할 분화가 일어났다"며 "관리자와 같이 상위 직급에 있는 이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많아지면서 평균 노동자 대비 관리자 임금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분석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 경제가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세계은행 등의 관점과 배치되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1960~1970년대 성장과 분배의 동시 달성이라는 통념은 그간 한국에서 낙수효과 모델(대기업 성장의 효과가 저소득층 혜택으로도 돌아간다는 논리)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돼 왔다"며 "이 논문은 학계에서 한국경제의 신화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논문은 국세통계 자료를 이용해 1958년부터 2013년까지 최상위 소득 비중을 계산했고, 원천세 자료가 없는 1986~1994년은 고용노동부 조사통계인 '임금구조 기본통계자료'와 국세통계의 관계를 이용했다. 홍 연구위원은 이 논문으로 학현학술상을 받았다.

 

■일제·전쟁 겪은 한국…재산보다 임금격차가 소득불평등 핵심 원인

 

논문은 또 서구에 비해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선 재산소득보다 노동소득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고 짚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전쟁 등을 겪으면서 재산소득이 형성될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최상위 소득 중 노동소득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 경향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외환위기로 이자율이 매우 높았던 1990년대 후반을 제외하면 1970년 이후 이자·배당·임대료 등 재산소득의 비중은 개인소득의 10% 미만이다. 재산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가 미국과 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미국에선 스톡옵션의 발전, 매우 높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모든 지대를 가져간다는 슈퍼스타 이론, 최고소득세율의 영향 등이 불평등 심화의 원인으로 거론된다""하지만 한국에선 일자리 양극화, 비정규직 증가, 자영업자의 쇠락 등이 소득 불평등을 이끈 요소"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순자산세(부유세) 강화라는 '피케티식 해법'보다 노동시장에서의 1차 분배가 더 평등해야 한다는 해법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수저계급론'이 고착화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노동소득보다 상속재산을 비롯한 자본소득의 불평등을 꼽았다. 이에 세제개혁을 통한 재분배(2차 분배)를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임금격차가 소득불평등의 주요인인 한국에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3.04 06:00:36

수정 : 2016.03.04 07:00:50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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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 빼앗긴 아버지, 남겨진 아들이 말한다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지난 2015년 9월 26월(수) 오전 10시 정동 프란치스코성당 1층에서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 박정희 정권에 빼앗긴 아버지, 남겨진 아들이 말한다' 대담회가 열렸다. 방송인 김미화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대담회에는 박정희 유신시대에 아버지를 빼앗겨 빨갱이 혹은 간첩의 자식으로 40여년을 살아내야 했던 장호권 씨(장준하 선생 자제), 최광준 씨(최종길 교수 자제)가 참여하여 2시간여 동안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루어졌으며 유가족으로서 단호한 어조로 유신의 부활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올해, 선거혁명,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이 보내는 신년 메시지

 

새해, 갑오농민혁명 때 농민들이 불렀던 민중가요 "갑오세(甲午)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병신)되면 못가리"를 되새기며 올해, 선거혁명,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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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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