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자연에 대한 도전과 극복, 서양 문명의 이면에는 파괴가 있다

 

 

문명은 선(善)이고 야만은 악(惡)인가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야만의 사전적 의미는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나 그런 종족 또는 교양이 없고 무례하거나 그런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명이란 자연상태 또는 자연을 벗어나는 것이고 야만이란 자연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문명국 또는 문명인은 야만에 대해 매우 비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들 사고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문명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 형이하학적인 오만은 문명을 선으로, 야만을 악으로 단정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고 그 오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역사는 야만(자연)에 대한 파괴와 정복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문명을 자랑하고 문화인임을 자부하는 '서양문명인'들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서양문명은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도 있다. 그 공로는 다름 아닌 '편리함'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류생활의 편리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문명이 가져다 준 편리함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문명의 역사는 결코 선(善)이 아니었다.

 

 

 

선(善)이란 목적과 방법이 선해야 한다. 그래서 침략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타인을 죽게 만들며 사회를 파괴하는 전쟁은 목적과 방법 모두가 악(惡)이다.

 

원시와 고대사회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대문명과 산업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유럽 신지식 문명인이었던 신교도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야만에 대한 태도는 어떤 것이었던가?

그들은 원주민들을 적대시하였고 학살하였으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재산과 문화까지도 모두 파괴했다. 자연을 경외하며 자연과 동화적인 삶을 영위하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문명인인 신교도 이주민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개척'이라는 문명적 수식어로 꾸며졌다.

유럽 문명과 아메리카 문명의 야만에 대한 역사는 잔혹하고 반 인륜적이며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훼손한 역사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사냥해서 전 유럽과 미국 대륙에 유통시킨 '대륙적 인신매매'의 주범도 바로 이들 문명인이었다.

문명화된 도구를 이용한 제국주의는 지구상의 상대적 비문명,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약소국들에 대한 경쟁적 침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주의적 관념을 중시하던 동양, 아시아 세계를 침략하고 약탈과 수탈을 한 것도 바로 그 문명국, 문명인들이었다.

이들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패권주의로 양상을 바꾸었을 뿐, 오늘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서양문명)이란 이질적인 것에 대한 파괴와 유린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문명이란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일 뿐

 

 

 

문명이란 현실세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 중 물질계를 중심으로 한다. 서양문명의 근간에는 자연을 극복과 개척의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연을 인간 삶을 위해 존재하는 피지배의 대상 쯤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동서양의 관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불후의 예술작품들에 대하여 서양인들은 '위대한 창조'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예술작품, 조형물을 창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자연이 담고 있는 모습에서 나머지 부분을 덜어 냈다'는 것이 동양적 관념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문명이 비하하고 침략의 대상으로 삼았던 '야만', 동양의 관념이다. 어떤 것이 더 문명적이고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관념인가?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파괴를 동반한 편리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편리함 만으로는 개인이 행복하거나 만족한 삶을 누릴 수도 없고 인류의 화합과 공존에 보탬이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공통의 생존기반인 자연, 환경에 이롭지도 않다.

서양식 문명이란 물질계에 국한된 편리함일 뿐이다.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시절 구산스님(1910~1983)은 반야심경강의 서문에서 '과학문명은 서양수하고 정신개발은 동양기하다(科學文明 西洋秀 精神開發 東洋基)'고 설파했다. 이 말을 이해한다면 문명과 야만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오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육신과 정신은 인간을 이루고 있는 두 요소다.

육신은 물질로써 형상을 이루고 정신이 원리로써 내면을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은 무엇일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쾌락과 만족, 형상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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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인공아가미' 인간이 물고기 처럼 숨쉴 수 있다니

트리톤 (Triton)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어(半人半魚)의 해신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아들로서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인어의 모습이다. <사진 밀로의 판 : 테세우스를 납치하는 트리톤 네이버>

 

인간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짐승의 세계와 구분되는 것, 바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인간은 상상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끊임없는 상상을 펼친다. 이것이 인간을 자연계에서 특징 짓게 한다.

상상으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문명은 '상상력'에서 싹을 틔우고 도전에 의해 발전해 왔다.

하늘을 나는 상상과 시도가 비행기를 발명하게 했고, 물 속을 자유롭게 다니는 상상이 잠수함을 가능하게 했으며, 천리안을 꿈꾸는 공상이 통신과 레이더 기술을 발전시켰다.

상상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기술과 결합되면 현실이 된다. 어떤 것은 짧게 어떤 것은 수백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번개에 대한 '갈바니'의 궁금증과 상상력이 축전지기술로 현실화 됐고 갈바니의 상상에 도마뱀의 꼬리에 대한 의문과 상상이 '베커'를 통해 인체 내에서의 화학작용이 모두 전기적 작용임을 증명하게 했다.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며, 상상을 실현시켜 나온 곳이 인간의 역사다.

 

 

인공아가미 '트리톤'

  

 

 

산소통 없이 물고기 처럼 숨쉴 수는 없을까에 대한 상상이 '인공아가미'를 탄생시켰다. 물을 전기분해 하는 작은 장치를 입에 물고 물 속을 다니는 것이다.

30세 도전적인 청년이 실현시킨 상상력이다.

'트리톤'이라는 이름의 이 기구는 잠수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보완의견이 있는 가운데 시판에 성공했다.

 

 

문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이트 형제의 글라이더가 처음 하늘을 날 때를 생각해 보면 요즘의 비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주왕복선도 모두 그 초라한 글라이더에서 시작된 것이다.

 

'트리톤 소개영상

 

아쉽게도 아직은 사용 시간 45분에 수심 4.6M까지라는 '초라한' 발명품이다. 하지만 이 제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재 가진 기능이 아니라 '발상'에 있다는 점이다. 수요가 늘어나 사업성이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아쉬움이면서 우주왕복선의 미래를 연 라이트 형제를 만난 느낌이다.

언젠가는 입 안에 또는 코 속에 넣고 며칠씩 또는 몇 달간 물 속에서 숨쉴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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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문명은 편리함이다.

 

문명의 발달은 도시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현대의 문명을 누린다는 것은 도시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는 문명이다.

 

편리함은 육신의 영역이다.

 

육신이 편안해지면 영혼이 나태해 진다.

영육은 한 시간대 위에 표리의 관계로 접합되어 있다.

육감의 너머, 심연한 영역이 영혼의 자리다.

 

이따금씩이라도

육신의 영역으로부터 일탈할 필요가 있다.

저 심연의 중심에 있는 '참 나'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

 

 

단 한시도 내려 놓지 못하고

하늘을 이고 살면서도

도시는 저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문명은 도시인에게 편리함의 대가로 대부분의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문명으로부터 잠시 시선을 돌려

육신의 영역을 떠나 본다.

 

- 煩解 -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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