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과 인과(因果)

 

윤회라는 것은 것은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이다.

대승불교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선불교(禪 佛敎)는 윤회조차 인간 사고의 유희로 간주할 수 있다. 윤회의 현실이 곧 열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생사즉열반 生死卽涅槃)

꼭 삼봉 정도전의 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불교의 원래 교리는 윤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동양인들은 기(氣)라는 것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한다.

 

청탁수박(淸濁秀薄)

(氣)가 맑고(淸) 탁하고(濁) 빼어나고(秀) 천박하다(薄) 유교는 이렇게 기의 편차로 '차별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머리가 나쁜 학생과 머리가 잘 돌아가는 학생 사이에는 기의 차이가 있다. 나 도올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호를 '돌-도올'이라 지었다.

유교는 인간이나 만물의 차별을 기의 편차로 설명하고 있다. 윤리적 업보의 결과로 간주하지 않는다.

 

'주역(周易)'에

건도변화(乾道變化) 각성정명(各性定命)

하늘의 길이 변하여 각각의 성(性)과 명(命)을 정한다.

선유왈(先儒曰) 천도무심이보만물(天道無心而普萬物)

(그렇지만) 하늘의 도는 (특정한) 의도가 없이 만물을 두루 덮고 있다.

정도전은 이 차별의 세계가 인간의 업의 결과로 빚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儒敎)와 도가(道家)에서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자연 自然)을 본받는다(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동양의 도는 서양의 하느님에 해당된다. 도(道)란 스스로 그렇게 될 뿐, 인과응보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자연을 영어의 Nature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동양적 세계관 속의 자연은 명사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술부적(述部的) 상태이다.

 

도(道)는 서양의 God에 해당되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을 본받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도의 세계는 인과응보로 설명될 수 없다.

 

음양의 세계는 결정론적 법칙(Determination Law)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응보의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정도전 불교비판의 핵심은 결정론 비판에 있다. 인간의 삶이 운명이나 업보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인도문명에서는 왜 윤회사상이 생겼는가?

인도에는 카스트제도(혈통, 결혼, 직업으로 규정되는 고정적 사회계층)라는 것이 있다. 이 제도는 아주 복잡하고 엄격하다. 부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족, 군인), 바이샤(상인), 수드라(장인, 노예)의 4계층이 있다. 불가촉천민(Untouchable Human) 수드라(노예)보다도 더 하층의 천민.

이 사람들은 장사도 못한다. 그들이 만졌던 것은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고 사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들의 지위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했다.

 

카스트제도를 정당화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윤회적 세계관이다.

"수드라(노예, 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前生)의 업보 때문이니까 너는 그 운명에 따라 순응하면서 살아라."

카스트의 결정론적 숙명을 정당화하는데 윤회나 업보의 이론이 사용되었다.

 

원래의 불교의 출발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적 개념을 뒤엎는데 있었다. 싯다르타(悉達多 실달다)의 혁명은 윤회의 숙명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동적인 계(戒), 정(定), 혜(慧)를 강조하였다. 집(執)은 멸(滅)될 수 있고, 멸(滅)하는 데는 방법(道)이 있다.

윤회설은 불교의 핵심적 이론이 아니라 아주 통속화된 이론이다. 인도 불교의 타락한 모습을 우리는 받아들인 것이다. 동양문화권에 이 타락한 모습이 들어와서 불교가 백성들을 종교적으로 협박하고 위협하는데 인과응보의 이론이 쓰였다.

 

고려왕조에서도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은 과거의 업보 때문인 것이니 다 순응하고 받아들여라.'라고 했다. 고려 때의 혹독한 농민 수탈, 소작료로 10분의 9를 수탈하면서도 '이것은 업보이므로 참고 살아라'고 했다. 불교의 이 업보론은 민중의 봉기나 혁명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정삼봉은 불교가 이렇게 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불교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는데, 그가 전라도 나주에 귀양 갔을 때 나주 소재동(消災洞 현재 소재동 표지비가 건립되어 있다.)의 황연(黃延)의 집에서 살았다.

 

정도전은 귀양 중 나주 사람들의 인심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인순박무외모(居人淳朴無外慕) 역전위업(力田爲業) 연기우야(延其尤也)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바깥으로 부러워하는 것 없이 살고, 힘들여 밭을 가는 것으로써 생업으로 하였으며 (황)연(延)이라는 사람도 그러한 면에서 특출한, 전통적인 농부였다.

 

나주(羅州)란 곳은 淳朴無外慕(순박무외모) 力田爲業(역전위업), 즉 이 고장 사람들은 순박하고 다른 곳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농사에 힘쓰고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주 사람들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고장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 '술과 인과' 1/4>

 

가선양(家善釀) 연우희음(延又喜飮) 매주숙(每酒熟) 선필상여(先必觴予) 객지(客至) 미상불치주(未嘗不置酒) 일구익공(日久益恭)

그 사람은 술을 잘 빚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매번 술이 익게 되면 반드시 먼저 나(정도전)에게 술잔을 들고 찾아왔다. 손님이 오기만 하면 술을 내어놓지 않는 때가 없으며, 사람들은 오래 사귈수록 더욱 공손해졌다. 지금도 나주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다.

(일제 시대에는 술 빚는 것을 밀주로 불법화시키고 양조 釀造를 전매화 專賣化하여 우리 민족을 수탈했다. 해방 후에도 이 법을 풀지 않고 양조업자들을 보호했었다.

 

유김성길자파식자(有金成吉者頗識字) 기제성천능담소(其弟成天能談笑) 개역선음(皆亦善飮) 형제동거(兄弟同居)

동네에 김성길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글을 꽤 알고 있었다. 그의 동생 성천(成天)은 담소를 잘하는 재능이 있었는데, 두 사람도 술 마시기를 좋아했으며 형제가 한 집에 살았다.

 

유서안길자노위승왈안심(有徐安吉者老爲僧曰安心) 고비장면(高鼻長面) 용의궤괴(容儀詭怪) 범방언리화(凡方言俚話) 향정여항지사(鄕井閭巷之事) 무불기(無不記)

서안길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늙어서 중이 되고 호는 안심(安心)이라 했다. 코가 높고 얼굴은 길어 생긴 것이 궤괴(詭怪)했다. 온갖 방언과 이화(俚話)는 물론 항간에 떠도는 소문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유김천부자(有金千富者) 조송자(曺松者) 기음역성길(其飮亦成吉) 연지유야(延之流也) 일종여유(日從予遊) 매득시토물(每得時土物) 필지주장이래(必持酒漿而來) 진환내거(盡歡乃去)

김천부와 조송이라는 자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성길(成吉)과 연(延)처럼 술을 잘 마셨다. 날마다 나에게 놀러 오고 토산물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술을 가지고 와서 끝까지 놀다가 갔다.

 

여한일구(予寒一) 서일갈(暑一葛) 조침안기(早寢晏起) 흥거무구(興居無拘), 음식유의(飮食惟意) 금이지절이이견자비지(今以至切而易見者比之)

나는 추울 때면 갓 옷 한 벌로 살고, 더울 때는 갈포 하나로 살면서도,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즐겁게 사는데 거침이 없었고, 먹고 마시는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절실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써 비유하고자 한다.

 

정도전은 천민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불교의 인과론을 부정을 술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酒之爲物也(주지위물야), 麴之多寡(국얼지다과), 瓷甕之生熟(자옹지생숙), 日時之寒熱久近(일시지한열구근), 適相當(적상당), 則其味爲甚旨(즉기미위심지)

술의 물건 됨은 누룩과 고두밥의 많고 적음과 옹기가 성긴 것이냐 밀도가 높은 것이냐, 술을 빚는 시기가 추은 때냐 더운 때냐, 빚은 후 오래 두었느냐 짧게 두었느냐 등등, 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질 적에 그 술 맛이 매우 좋다.

 

조박(糟粕)=술지게미.

糟糠之妻(조강지처)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糟糠之妻不下堂(조강지처불하당) 貧賤之交不可忘(빈천지교불가망)

조강지처는 내치면 안 되고 빈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된다.<후한서 後漢書>

 

약얼다칙미감(若多則味甘) 국다칙미고(麴多則味苦) 수다칙미담(水多則味淡) 수여국얼적상당(水與麴適相當) 이자옹지생숙(而瓷甕之生熟) 일시지한열구근(日時之寒熱久近) 상위이불상합(相違而不相合) 즉주지미유변언(則酒之味有變焉)

만약에 찐 밥이 많으면 맛이 달고 누룩이 많으면 맛이 쓰고 물이 많으면 맛이 싱겁다. 물과 누룩과 찐 밥의 양이 서로 적당하고, 옹기의 생숙(구운 정도)가 어떤가. 술을 빚은 시기의 일기가 추운지 더운지 오래 두었는지 짧게 두었는지 이런 것들이 서로 어울려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그 술 맛은 완전히 변해버린다.

 

삼봉은 하물며 좋은 술이 되는 데도 수 많은 변수가 있는데 결정론적인 인과업보론(因果業報論)은 잘못 된 것이라고 예를 들어 비판 것이다.

나의 불행한 현실이 나타난 것에는 수 많은 함수가 작용했을 것인데, 이것들을 따져보지도 않고 전생의 업보라고 단정하는 것은 미친 생각인 것이다.

모든 복합적인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 술 맛이 적당하게 되는 것 처럼 불행의 원인을 따져보지도 않고 업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삼봉의 사고는 매우 과학적이다.

삼봉은 술을 비유로 들어 인과응보는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상 '술과 인과' 2/4>

 

此喩雖賤近鄙俚(차유수천근비리), 亦可謂明日盡矣(역가위명일진의)

나의 이런 비유는 비록 천하고 비속한 것 같지만 참으로 명료하고 잘못됨이 없는 정확한 비유다.

 

정삼봉은 이론적 구성을 해서 소재동(유배지)에서 느낀 생생한 삶의 체험을 이런 어마어마한 이론을 혁파하는데 쓰고 있다.

삶의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所謂陰陽五行之氣(소위음양오행지기) 相推迭運(상추질운) 參差不齊(참차부제) 而人物之萬變生焉(이인물지만변생언) 其理亦猶是也(기리역유시야)

소위 음양오행의 氣라는 것은 서로 밀고 서로 엇갈리면서 운행해 가는데, 그렇게 제멋대로 우연과 필연이 섞여 있는 데 따라서 사람과 만물의 모든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 이치 또한 옳지 않는가?

 

이 말은 과학적인 사고를 강조한 것이다. 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은 너무도 우연적인 요소가 많고,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므로 모든 요소를 살피고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방금운화(方今運化) 현재의 당면한 천지의 변화.

삼봉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법칙을 규명하자, 즉 현실만 해도 고민하고 분석할 것이 많으므로 전생까지 분석하는 것은 말자고 했다.(여기에 삼봉의 처절한 현실주의가 있는 것이다)

 

聖人說敎(성인설교) 使學者變化氣質(사학자변화기질) 至於聖賢(지어성현)

(성인이 나타나서) 가르침을 준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과응보를 가르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기질을 배우게 하여 성현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기질(變化氣質) 유교에 있어서 교육의 당위성의 근거

유교의 매우 중요한 논리다. 위성지학(爲聖之學)이란 '기질을 변화시켜 성인이 되는 배움'이라는 뜻인 바, 이는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켜 성인을 만드는 가에 관한 명제인 것으로써 동양사상의 핵심에 속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읽은 칸트(Kant)의 저서는 어려웠지만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 때는 콤프렉스(Complex)가 많아서 죽어라고 읽었다. 그리고 칸트나 플라톤(Plato)은 나와 관계가 없는 아주 대단한 학자로만 생각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이 있는데, 중국, 당시의 대만에 갔었는데, 대만 교수들은 대륙의 사방에서 온 사람으로 대가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강의를 할 때 이태백의 이야기, 주자 이야기를 해도 자기 친구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주자처럼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들은 주자를 자기 전통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미국에 가니까, 하바드의 대석학들이 칸트를 비판하고, 자기가 칸트 보다 나은 것처럼 강의를 했다. 그때 "아! 저 사람이 칸트 보다 나은 사람이구나!"하고 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변화이다. 대가들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세상의 성인이나 대단한 철학자들보다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성인이 될 수 있다.

누구든지 공자가 되고 플라톤이 되고 칸트가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건방져서는 안 되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칸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칸트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하고, 나는 영원히 칸트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하고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20세기에서 학문을 하면서 "우리는 선대의 학자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예술가는 피카소 같은 화가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人皆可以爲堯舜(인개가이위요순) 子服堯之服(자복요지복) 誦堯之言(송요지언) 行堯之行(행요지행) 是堯而已矣(시요이이의)

사람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 누구든 요임금 옷을 입고 요임군의 말을 외고, 요임군의 행동을 하면 그가 요임금이니라. <맹자>

 

유교적 인간관에는 인도의 카스트적인 고정성이 없다. 그래서 윤회가 불필요하다. 인간을 업보로 구속시키지 않았다. 누구에게든지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을 뿐이다.

 

治國者(치국자) 轉衰亡而進治安(전쇠망이진치안)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쇠락하고 망해가는 국운을 전환시키고 편안하게 다스리는 데 힘써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쇠망해 가는 나라를 전환시켜 흥하게 하는데 인과응보로써 가능할 것이냐라고 역설하고 있다.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지 않고는 고려사회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고려의 사대부들의 사고는 불교에 물들어 있었다. 그들 세력을 붕괴시키는 데는 무력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도전은 종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오직 불씨잡변(佛氏雜辯)이라는 이론으로 불교를 비판하기만 했다.

 

조선조에 와서 유교가 경직되어 척불숭유(斥佛崇儒)를 하면서 정도전에게 불교탄압의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한 때 부처의 목을 자르는 사건도 있었다. 요즘은 단군 동상의 목을 자르는 자도 있다는데, 모두 미친 짓이다.

 

<영상 '술과 인과' 3/4>

 

중용(中庸) 제 22장

可以贊天地之化育(가이찬천지지화육) 則可以與天地參矣(즉가이여천지삼의)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게 되면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

삼(參) 사람(人)이 하늘(天)과 땅(地)과 더불어 셋이 된다. 유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사상.

 

此聖人所以廻陰陽之氣(차성인소이회음양지기) 以致參贊之功者(이치삼찬지공자) 佛氏因果之說(불씨인과지설) 豈能行於企間哉(기능행어기간재)

성인은 음양지기(陰陽之氣)로 돌려서 삼찬지공(參贊之功)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인과지설이 그 사이에 어찌 끼어들 수 있겠는가

삼찬지공(參贊之功) 인간이 천지와 한 몸이 되고 천지의 화육을 돕는 공력. 중용의 22장의 구문을 인용한 삼봉의 인과론 비판 논리.

 

오늘 강의는 어려웠는데, 강의의 핵심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일인일과(一因一果), 즉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가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인일과(多因一果), 즉 우주의 모든 사건(Event)은 다양한 원인의 소산이다. 1대1의 대응은 과학적 사유가 아니다. 우주는 필연(Necessity)과 우연(Chance)의 복합체이다.

 

우리는 오늘의 사태를 항상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회음양지기(廻陰陽之氣) 즉 우리는 음양의 시간도 창조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쇠망이진치안(轉衰亡而進治安) 즉 쇠망해가는 나라(Nation in Disorder)를 전환시켜 치안이 있는 나라(Nation in Order)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여기서 치안(治安)이란 나라의 안정의 뜻이 아니고, 나라가 편안하게 다스려짐의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운명적으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항상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모든 함수를 분석해서 역사의 목표인 미래를 창조하여야 한다. 쇠망한 나라를 치안(治安)의 나라로 바꾸고, 자기가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 있으면 운명을 극복해서 행복한 운명으로 바꾸고, 지식이 부족하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을 늘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간됨을, 나의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는 '인간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금수'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여러분, 젊은이들이 최고의 사상가요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여러분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갖고,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스스로의 인간됨을 비하시키지 말고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해 주기 바랍니다.

<영상 '술과 인과' 4/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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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은 상하 2권의 필사본이다. 조선왕조의 헌법(憲法)이라 할 수 있는 책으로서 개국 초 정도전(鄭道傳)이 지었으며 '경국전(經國典)'이라고도 한다. '삼봉집(三峯集 권 7, 8'에도 수록되어 있다.

예(禮)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하는 것이다.

혼인 청첩장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을 쓰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살아 계시던 돌아 가셨던 부모님은 변함없는 부모님일 뿐이다. 살아있는 청첩인만 따로 밝히면 된다.

태묘(太廟)

주나라의 시조 격인 주공(周公) 단(旦)과 그 아들을 모신 사당. 이 사당이 노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공자는 주나라의 적통인물로서 자처했다.

자문지 왈(子聞之 曰) 시예야(是禮也)

공자가 듣고 말하기를 "이것(묻는 것)이 바로 禮다."

禮란 묻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예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며, 禮가 사람을 구속할 수는 없다. 禮는 동적 과정(dynamic process)인 것이다.

좌묘우사(左廟右社)

왕이 앉은 자리 왼쪽에 종묘를 두고 오른 족에 사직을 둔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의 성베드로 사원을 베드로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일본식민지 하의 '조선얼 말살정책'이 남아 있는 예다.

종묘사직이란 곧 국가를 말한다. 정도전이 설계하고 만들었다.

종묘(宗廟) 조상숭배 : 수직적(vertical)

사직(社稷) 국토숭배 : 수평적(horizontal)

사(社)=(示:신)+(土:땅)=땅의 신

민간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으뜸 가는 신은 땅의 신이었다. 땅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생명이 곧 하느님이다. 사직단을 우리민족 최고 의 성전이다.

사직(社稷)이 최고의 신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나라를 '종묘사직'이라고 부른 것이다. 유교국가의 국교(國敎)를 말한다면 사직 이상이 없다. 오늘날 사직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조선경국전 <1/4>

맹자(孟子)는 종교의 최고 신도 인간이 갈아 치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변치(變置)의 논리는 백성(민)은 갈아 치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下

孟子曰民爲貴(맹자왈민위귀) 맹자가 이르기를 백성은 귀중하고

社稷次之(사직차지) 사직은 그 다음 가고

君爲輕(군위경) 제후(왕)는 대단치 않다.

是故(시고) 그렇기 때문에

得乎丘民(득호구민) 밭일 하는 백성들의 마음에 들게 되면

而爲天子(이위천자) 천자가 되고

得乎天子爲諸侯(득호천자위제후) 천자의 마음에 들면 제후가 되고

得乎諸侯爲大夫(득호제후위대부) 제후의 마음에 들면 대부가 된다

諸侯危社稷(제후위사직)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則變置(즉변치) 갈아 치우고

犧牲旣成(희생기성) 희생의 제물이 살찌게 마련되고

盛旣潔(자성기결) 제물로 괴어 놓은 곡식이 깨끗하게 마련되고

祭祀以時(제사이시) 제사를 제 때에 지내는데

然而旱乾水溢(연이한건수일) 그래도 한발과 수해가 나면

則變置社稷(즉변치사직) 사직을 갈아 치운다

유교적 합리주의 (儒敎的 合理主義 Confucian rationalism)

유교적 합리주의는 모든 종교적 권위 조차도 불복하는 민본사상이다.

유교는 통치자들이 종교를 빙자하여 백성을 기만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儒敎는 윤리며, 교육이며, 상식의 합의일 뿐이다.

제도적 종교에 구애 받지 않고도 인간은 얼마든지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닌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뛰어 넘는 상식의 종교다.

한국인의 극단적 종교성향에도 불구하고 종교갈등이나 종교전쟁이 없는 것은 유교적 합리주의의 상식적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칼맑스 : 계급 없는 사회 (class-less society)

정도전 : 종교 없는 사회 (religionless society)

儒敎的 合理主義는 과거가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과제상황(perennial theme)이다.

然所謂得其心者(연소위득기심자)

그렇다면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非以私意苟且爲之也(비이사의구차위지야)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서 구차하게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니

非以違道于譽而致之也(비이위도우예이치지야)

도를 어기면서까지 명예를 구하는 그런 치사한 짓을 하지 말라 (명신 익(益)이 순(舜) 임금에게 간언한 내용으로써, 서경(書經)에 나온다.)

亦曰仁而已矣(역왈인이이의)

인이란 무엇인가

人君以天地生物之心爲心(인군이천지생물지심위심)

천지가 모든 만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내 마음으로 삼고

行不忍人之政(행불인인지정)

사람이기 때문에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

 

통치자의 인(忍)한 마음은 천지의 생물지심과 같은 것이다.

불인(不忍)이란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조선경국전 <2/4>

맹자가 성선(性善)을 입증하기 위하여 유자입정(孺子入井:어린이가 아무 생각없이 엉금엉금 우물로 기어 가고 있다)을 보기로 들었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맹자왈 인개유불인인지심)

맹자가 이르기를 인간들에게는 차마 어찌하지 못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皆有惻隱之心(개유출척측은지심)

누구나 깜짝 놀라는 측은지심을 내는데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비소이내교어유자지부모야)

그런 측은지심이 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비소이요예어향당붕우야)

향당(동네사람들)과 교분을 맺어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惡耳聲而然也(비오이성이연야)

잔인하다는 명성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러 나오는 것이다

 

程子曰(정자왈)

정자가 이르기를

滿腔子是惻隱之心(만강자시측은지심)

인간의 창자에는 가득 찬 것이 측은지심이다

使天下四境之人(사천하사경지인)

천하 사경의 모든 사람들이

皆悅而仰之若父母(개열이앙지약부모)

자기 부모를 믿고 따르듯이 우러러 보고 기뻐할 것이다

則長享安富尊榮之樂(칙장향안부존영지락)

그렇게 되면, 안부존영지락은 길이길이 누리게 될 것이요

而無危亡覆墜之患矣(이무위망복추지환의)

거꾸러지고 넘어지는 그러한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守仁以仁(수인이인) 不亦宜乎(불역의호)

인을 인으로써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恭惟(공유) 主上殿下(주상전하)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順天應人(순천응인)

하늘의 뜻에 따르고 백성들의 요구에 응하여

驟正寶位(취정보위)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순천응인(順天應人)

조선왕조의 혁명이 무력적 전복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에 의한 순리적 과정이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구문

공민왕(恭愍王 1351~1374 재위)

고려 제31대 왕으로써 개혁에 힘썼으나 집권 말기에는 실정을 거듭하였고 퇴폐적인 삶을 살다가 불행하게 살해되었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미상~1365)

몽골여자. 본명은 보탑실리. 1365년(공민왕 14년)에 출산 중 사망했다. 노국대장공주가 죽고 난 후 실의에 빠진 공민왕은 귀족의 아들들로 구성된 김홍경, 홍윤 등과 변태적이고 난삽한 음행을 일삼았다.

익비 한씨는 공민왕의 협박에 의해 홍륜, 한안에게 강간 당하여 아기를 낳았다. 익비의 아이를 자기 자식인 것 처럼 꾸미기 위해 그들을 해하려 하자 내시 최만생, 홍윤 일당이 침전에 만취 상태로 잠들어 있는 공민왕을 살해한다.

공민왕의 사당이 조선왕조의 종묘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 개창이 고려왕조의 선양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1393년 공민왕의 부인 정비(定妃) 안씨가 이성계 옹립의 전교를 내렸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1388)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러 갔던 10만 대군을 철수 시킨 사건. 이로서 고려왕조 멸망의 대세가 결정되었다.

위화도 회군의 4대 명분

명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외교적 오판 농번기 왜구의 침입을 유도 전염병

위화도 회군으로 죽음의 전쟁터로 끌려 나갔던 10만명의 청년과 그 가족들은 환호하였고 이성계는 크게 민심을 얻었다.

이성계의 혁명 성공은 고령왕조의 실정에 항거한 농민군사의 지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농민봉기이기도 했다.

정비 안씨(定妃 安氏)

죽성군 안극인의 딸. 공민왕이 강간시키려 했지만 자살로 위협하여 몸을 지켰다. 이성계에게 선양의 전교를 내렸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도 살아 남았다.

조선왕조의 혁명은 방벌(放伐)이 아닌 선양(禪讓)이었다.

정도전, 조준, 남은 등 50여 명의 대소신료들이 공양왕으로부터 옥새를 받아 내어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보위에 오를 것을 간청한다. 이성계는 세번을 고사한 후에 이 청을 받아 들인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고려왕조의 최고 정무기관. 이성계의 추대를 인준했다.

선양 → 추대 → 인준

이렇게 하여 조선왕조는 세계 혁명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지식인 집단에 의한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무혈혁명으로 추진되었으며,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정궁에서 이성계가 옥좌에 앉음으로써 개창되었다.

조선왕조 성립은 권력의지를 가진 개인의 혁명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시대적 요구를 실현한 사상가 그룹에 의한 집단적 혁명인 것이다.

 

恭惟主上殿下(공유주상전하) 順天應人(순천응인) 驟正寶位(취정보위)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순천응인 했으니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知仁爲心德之全(지인위심덕지전)

인이 심덕의 온전함이 되는 걸 알고

愛乃仁之所發(애내인지소발)

모든 백성을 사랑한다함은 인을 아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愛 = 사랑한다<X> 아낀다<O>)

 

於是正其心以體乎仁(어시정기심이체호인)

이와 같이 몸으로써 그 마음을 바르게 함이 인이다

推其愛以及於人(추기애이급어인) 仁之體立而仁之用行矣(인지체립이인지용행의)

그 아끼는 마음을 백성에게 미치게 하면 인의 본체가 서고 인의 쓰임이 행하여졌다

嗚呼(오호) 保位其位(보위기위) 以延千萬世之傳(이연천만세지전)

不信歟(거불신여)

오! 그 위를 유지하여 천만세에 뻗혀 전하여질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리오

조선경국전 <3/4>

체(體) : 본체적 측면

용(用) : 기능적 측면

조선왕조의 500년 장수(longevity)는 단순히 행운의 결과는 아니다. 그 내면에 장수를 가능하게 한 합리적 질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왕조의 패러다임은 500년 동안 그 나름대로 잘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이 지난 19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여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변혁의 시기에 들어서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정도전이 고민했던 그와 같은 혁명의 기운이 지금 우리사회에도 똑같이 있다고 생각할 적에, 앞으로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또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 과거 이러한 분들의 생각을 우리가 한번 더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정도전이 구체적으로 불교를 어떻게 비판했는가? 정도전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불씨잡변'이라는 위대한 논술을 살펴 보기로 한다.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종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고려라고 하는 썩은 체제를 유지했던 모든 부패세력의 근원으로서의 불교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지 않으면 조선왕조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조선경국전 <4/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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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풍부하고 위대하며 심오한 사상의 맥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통하여 단절되었다

역사를 올바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잃어버린 위대한 것들에 대한 회복의 가치도 지닌다

삼권분립의 개념은 몽테스키외(C.S.Montesquieu 1689~1755)의 <법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국회의 독립된 기능은 헌법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나라 국회의 수준은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 국회는 대화와 설득의 장이지 투쟁의 장이 아니다.

한영우(韓永雨 1938~)

서울대학교 사학과 출신의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을 거쳐 현재 명예교수. <정도전 사상의 연구 1973>로 삼봉학 개척

이익주(李益柱 1962~)

서울대학교 국제사학과(졸). 박사학위논문 <고려 원 관계의 구조와 고려 후기 정치체제>.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정도전 관련 논문 발표

 

공민왕(恭愍王 1330~1374)

고려 제31대 왕 재위 기간은 1351~1374년. 왕위에 오른 뒤 신돈을 등용하여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고,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였으며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였으며 경제를 개혁하고 성균관을 중심으로 유교를 진흥시킴. 노국공주와의 로맨스로도 유명함.

공민왕 통치 당시는 원나라(몽골)의 지배 하에 있었다. 1356년에 공민왕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을 폐지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철폐한다. ㅇ 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신돈 (辛旽, ? ~ 1371)

승명은 편조(遍照). 공민왕 14년에 국사로 등용되어 토지와 노비를 돌려 주는 등 과감한 개혁정책을 폈다. 그에 관한 항간의 나쁜 소문은 모두 그의 개혁을 왜곡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 정도전 개혁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개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 즉 개혁담당의 주체세력이 확실해야 한다.

공민왕은 과거를 통하여 임박, 정몽주, 김구용, 이숭인, 윤소동, 박상충, 정도전 등 젊은 엘리트를 대거 진출시켰다.

말하자면 신진 유생(성리학자)들을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삼아 궁극적으로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들게 되었다.

이색(李穡 1328~1396)

고려말 성리학의 대학자. 원나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였고 한림원에까지 등용되었다.

고려말 개혁을 주도한 엘리트들의 큰 스승이었다.

신진 유생들은 상대적으로 고려사화에서 확고한 토지기반을 가진 계층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개혁에 보다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개혁을 시도한 사람은 그 개혁이 완성됨으로써 역할을 다 하는 것.

홍윤 등에 의해 공민왕이 처참한 최후를 맞은 후, 우왕을 옹립한 권세가들은 기존의 배원친명(排元親明)정책을 파기하고 다시 원나라와의 관계를 도모하였고, 이 것은 결국 개혁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신진 유림 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답전보(答田父) 1/4>

당시 유림들 중 가장 개혁의 목소리가 높고 강직했던 정도전의 나주 유배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정도전의 배원 성향은 우왕 원년의 원나라 사신 영접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원의 사신을 영접하라는 명을 받자 정도전은 "내가 사신의 목을 베어 오거나 아니면 체포하여 명나라로 보내겠다"고 할 정도였다.

조선 개국 혁명의 주도자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잠재된 채로 겉으로 드러난 이방원과 정몽주의 갈등은 '사병혁파' 과정에서 극을 달리다가 결국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1398년 태조 7년 8월 26일 서울 송현(松峴)의 늦은 밤에 정몽주가 피살되고 만다,

고려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했다. 유교, 불교, 도교 등 모든 사상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고려말 지식인들의 사상적 깊이는 조선왕조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가들 보다 더 심오할 수도 있었다.

그 중 삼봉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패러다임을 창출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이 위대하고 풍부한 사상의 맥은 안타깝게도 식민지배라는 과정을 통하여 단절이 생기게 된다.

일제식민지 역사는 우리사회의 많은 근대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가 가치적으로 긍정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배반의 역사이고 단절이며, 반성되어야만 하는 왜곡의 역사였다.

답전보(答田父) 해설 계속

"네놈은 필시 장수라, 평시에는 거드름과 공갈로 지새우며 상전의 비위나 맞추다가 전쟁이 나면 접전이 되기도 전에 도망쳐 백성의 생명을 적의 칼날에 버려두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는 놈이로구나"

"그게 아니라면 네 놈이 재상의 신분이지만 괴팍하여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아첨하고 추종하는 놈은 벼슬을 주고 바른 소리는 듣지 않고 바른 사람은 배척하고.."

<답전보(答田父) 2/4>

"법을 농단하여 사리사욕을 채움으로 그 악(惡)이 무르익은, 앉아서 죄를 지은 놈이구나"

삼봉 왈 "그건 아니올시다.."

"그렇다면 알겠다. 네 놈은 힘이 부족한 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고 때를 살피지 못하고 직언만 좋아하고 이 시절을 살면서 옛 것만 숭상하고 윗 사람에 거역하길 좋아하는 놈이로구나."

<답전보(答田父) 3/4>

삼봉의 답전보는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과도 한 맥을 이루는 대단한 철학이 있는 문학 세계이며.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답전보(答田父) 4/4>

 

답전보(答田父) 전문(全文) 해설 

 

寓舍卑側隘陋(우사비측애루) :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고 좁고 더러워서

心志鬱陶(심지울도) :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했다

一日出遊於野(일일출유어야) : 하루는 들에 나가 노닐다가

見一田父(견일전부) : 농부 한 사람을 보았는데

眉皓首(방미호수) : 눈썹이 기다랗고 머리가 희고

泥塗霑背(니도점배) : 진흙이 등에 묻었으며

手鋤而耘(수서이운) :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予立其側曰(여립기측왈) : 내가 그 옆에 다가서서 말하기를

父勞矣(부노의) : 노인장 수고하십니다

田父久而後視之(전부구이후시지) : 농부는 한참 후 나를 보더니

置鋤田中(치서전중) : 호미를 밭이랑에 두고는

行原以上(행원이상) : 언덕으로 걸어올라와

兩手據膝而坐(양수거슬이좌) :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으며

予而進之(이여이진지) : 턱을 끄덕이어 나를 오라고 했다

予以其老也(여이기노야) : 나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趨進拱立(추진공립) : 추창해 가서 팔짱을 끼고 섰더니

田父問曰(전부문왈) : 농부가 묻기를

子何如人也(자하여인야) :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子之服雖(자지복수폐) : 그대의 의복이 비록 해지기는 하였으나

博袖(장거박수) :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行止徐徐(행지서서) :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其儒者歟(기유자여) : 혹 선비가 아닌가?

手足不胼胝(수족부변지) : 또 수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腹(풍협파복) : 뺨이 풍요하고 배가 나온 것을 보니

其朝士歟(기조사여) :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닌가?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吾老人(오노인) : 나는 노인이며

生於此老於此(생어차노어차) : 여기서 나서 여기에서 늙었기 때문에

荒絶之野(황절지야) : 거친 들과

窮僻瘴癘之鄕(궁벽장려지향) : 장기()가 가득찬 궁벽한 시골에서

魅之與處(리매지여처) : 도깨비와 더불어 살고

魚鰕之與居(어하지여거) : 물고기와 더불어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朝士非得罪放逐者不至(조사비득죄방축자부지) : 조정의 벼슬아치라면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는데

子其負罪者歟(자기부죄자여) :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인가?

曰然(왈연) : 그러합니다

曰何罪也(왈하죄야) : 무슨 죄인가?

豈以口腹之奉(개이구복지봉) : 아니 구복(口腹)의 봉양과

妻子之養(처자지양) : 처자의 양육과

車馬宮室之故(차마궁실지고) : 거마(車馬)ㆍ궁실(宮室)의 일로써

不顧不義(부고부의) : 불의(不義)를 돌아보지 않고서

貪欲無厭以得罪歟(탐욕무염이득죄여) : 한없이 욕심을 채우려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抑銳意仕進(억예의사진) : 아니면 벼슬을 꼭 해야겠는데

無由自致(무유자치) : 스스로 이를 능력이 없어서

近權附勢(근권부세) : 권신을 가까이하고, 세도에 붙어

奔走於車塵馬足之間(분주어차진마족지간) : 거진 마족(車塵馬足)의 사이에 분주하면서

仰哺於殘杯冷炙之餘(앙포어잔배냉자지여) : 찌꺼기 술이나 먹고, 남은 고기 같은 것을 얻어 먹으려고

聳肩笑(용견도소) :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을 떨며

苟容取悅(구용취열) : 구차하게 즐거움을 취하는 데에

一資或得(일자혹득) : 애를 썼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 자급(資級)을 얻으니

衆皆含怒(중개함노) : 여러 사람이 모두 성을 내어

一朝勢去(일조세거) : 하루 아침에 형세가 가버려서

竟以此得罪歟(경이차득죄여) : 결국 이렇게 죄를 얻게 된 것인가?

曰否(왈부) : 그런 게 아닙니다

然則豈端言正色(연칙개단언정색) : 그러면 어찌 말을 단정하게 하고 얼굴 빛을 바르게 하여

外示謙一本作廉(외시겸일본작염) : 겉으로 겸손한 체하여 (어떤 본에는 겸(謙)이 염(廉)으로 되었음)

退盜竊虛名(퇴도절허명) : 물러나서는 헛된 이름을 훔치고

昏夜奔走(혼야분주) : 어두운 밤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作飛鳥依人之態(작비조의인지태) : 새가 사람에게 의지하는 태도를 지어

乞哀求憐(걸애구련) : 애걸하고, 가엾게 보여

曲邀橫結(곡요횡결) : 굽게 결탁하고 횡으로 맺아

釣取祿位(조취록위) : 녹위(祿位)를 낚아서

或有官守(혹유관수) : 혹 관수(官守)에 있거나

或居言責(혹거언책) : 혹 언책(言責)을 맡거나

徒食其祿(도식기록) : 녹만을 먹고

不思其職(부사기직) : 그 직책은 돌아보지 않으며

視國家之安危(시국가지안위) : 국가의 안위와

生民之休戚(생민지휴척) : 생민(生民)의 휴척(休戚)과

時政之得失(시정지득실) : 시정(時政)의 득실과

風俗之美惡(풍속지미악) : 풍속의 미악(美惡)에 있어서는

漠然不以爲意(막연부이위의) : 막연히 뜻을 두지 않아

如秦人視越人之肥瘠(여진인시월인지비척) : 진나라 사람이 월나라 사람의 살찌고 여원 것 보듯이 하며

以全軀保妻子之計(이전구보처자지계) : 자기 몸만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偸延歲月(투연세월) : 세월을 보내다가

如見忠義之士不顧身慮(여견충의지사부고신려) : 만일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以赴公家之急(이부공가지급) : 국가의 급한 일에 나아가

守職敢言直道取禍(수직감언직도취화) : 직분을 지키고 바른말을 하거나 곧은 도를 행하다가 화를 당하게 된 것을 보면

則內忌其名(칙내기기명) : 안으로는 그 이름을 꺼리고

外幸其敗(외행기패) : 밖으로는 그 패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

誹謗侮笑(비방모소) : 비방하고 비웃으며

自以爲得計(자이위득계) : 스스로 계책을 얻은 듯하였다

然公論騰(연공론훤등) : 그러나 공론이 비등하고

天道顯明(천도현명) : 천도가 무심하지 않아

詐窮罪覺以至此乎(사궁죄각이지차호) : 그만 간사한 것이 드러나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曰否(왈부) : 그것도 아닙니다

然則豈爲將爲帥(연칙개위장위수) : 그렇다면 장수가 되어서

廣樹黨與(광수당여) : 널리 당파를 만들어

前驅後擁(전구후옹) : 앞에서 몰고 뒤에서 옹위하며

在平居無事之時(재평거무사지시) : 아무 일도 없을 때에는

大言恐唱(대언공창) : 큰 소리로 공갈을 쳐서

希望寵錫(희망총석) : 왕의 은총을 받아

官祿爵賞(관록작상) : 관록(官祿)과 작상(爵賞)을 뜻대로 이루어

惟意所恣(유의소자) : 자만심이 가득차고

志滿氣盛(지만기성) : 기운이 성하여

輕侮朝士(경모조사) : 조사(朝士)들을 경멸하다가

及至見敵(급지견적) : 적군을 만나게 되면

虎皮雖蔚(호피수울) : 범 가죽은 비록 아름답지만

羊質易慄(양질역율) : 본질이 양이라 겁을 잘 내어

不待交兵(부대교병) : 교전을 하지 않고

望風先走(망풍선주) : 적의 풍진(風塵)만 보아도 먼저 달아나

棄生靈於鋒刃(기생령어봉인) : 생령(生靈)을 적의 칼날에 버리고

誤國家之大事(오국가지대사) :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였는가?

否則豈爲卿爲相(부칙개위경위상) : 아니면 경상(卿相)이 되어서

狼愎自用(낭퍅자용) : 제 마음대로 고집을 세우고

不恤人言(부휼인언) : 남의 말은 듣지 않으며

己者悅之(녕기자열지) : 자기에게 아첨하는 이는 즐거워하고

附己者進之(부기자진지) : 자기에게 붙는 이는 들어 쓰며

直士抗言則怒(직사항언칙노) : 곧은 선비가 말을 거스르면 성을 내고

正士守道則排(정사수도칙배) : 바른 선비가 도를 지키면 배격하며

竊君上之爵祿爲己私惠(절군상지작록위기사혜) : 임금의 작록(爵祿)을 훔쳐 자기의 사사 은혜로 만들고

弄國家之刑典爲己私用(농국가지형전위기사용) : 국가의 형전(刑典)을 희롱하여 자기의 사용으로 삼다가

惡稔而禍至(악임이화지) : 악행이 많아 화가 이르러

坐此得罪歟(좌차득죄여) : 이러한 죄에 걸린 것인가?

曰否(왈부) : 그것도 아닙니다

然則吾子之罪(연칙오자지죄) :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我知之矣(아지지의) : 나는 알겠도다

不量其力之不足而好大言(불량기력지부족이호대언) : 그 힘의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좋아하고

不知其時之不可而好直言(부지기시지부가이호직언) : 그 시기의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을 좋아하며

生乎今而慕乎古(생호금이모호고) : 지금 세상에 나서 옛사람을 사모하고

處乎下而拂乎上(처호하이불호상) : 아래에 처하여 위를 거스른 것이라면

此豈得罪之由歟(차기득죄지유여) : 이것이 어찌 죄를 얻은 원인이 아니리오

昔賈誼好大(석가의호대) : 옛날 가의(賈誼)가 큰소리를 좋아하고

屈原好直(굴원호직) : 굴원(屈原)이 곧은 말을 좋아하고

韓愈好古(한유호고) : 한유(韓愈)가 옛 것을 좋아하고

關龍逢好拂上(관룡봉호불상) : 관용방(關龍)이 윗사람에게 거스르기를 좋아했다

此四子皆有道之士(차사자개유도지사) : 이 네 사람은 다 도(道)가 있는 선비였는데도

或貶或死(혹폄혹사) : 혹은 폄직(貶職)되고 혹은 죽어서

不能自保(부능자보) :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거늘

今子以一身犯數忌(금자이일신범수기) : 그대는 한 몸으로서 몇 가지 금기(禁忌)를 범하였는데

僅得竄逐(근득찬축) : 겨우 귀양만 보내고

以全首領(이전수령) : 목숨은 보전하게 하였으니

吾雖野人(오수야인) : 나 같은 촌사람이라도

可知國家之典寬也(가지국가지전관야) : 국가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 수가 있도다

子自今其戒之(자자금기계지) :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庶乎免矣(서호면의) : 화를 면하게 될 것이오

予聞其言(여문기언) : 나는 그 말을 듣고서

知其爲有道之士(지기위유도지사) : 그가 도가 있는 선비임을 알았다

請曰(청왈) : 그리하여 청하기를

父隱君子也(부은군자야) : 노인장께서는 은군자(隱君子)이십니다

願館而受業焉(원관이수업언) : 객관(客館)에 모시고 글을 배우고자 합니다

父曰(부왈) : 노인이 말하기를

予世農也(여세농야) : 나는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이오

耕田輪公家之租(경전륜공가지조) : 밭을 갈아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餘以養妻子(여이양처자) : 나머지로 처자를 양육하니

過此以往(과차이왕) : 이 밖의 것은

非予之所知也(비여지소지야) : 나의 알 바가 아니오.

子去矣(자거의) : 그대는 물러가서

毋亂我(무란아) : 나를 어지럽히지 마오

遂不復言(수부부언) : 다시 말하지 않았다.

予退而歎之(여퇴이탄지) : 나는 물러나와 탄식하기를

若父者(약부자) : 저 노인 같은 분은

其沮溺之流乎(기저닉지류호) : 장저와 걸익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탄식하였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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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학문의 시대, 보편적인 것을 추구했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국학의 시대, 주체적 사고를 해야 할 시대가 왔다.

최근에 국내 영화계는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다. 이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현상이다.

영화 실미도의 두 주인공, 안성기와 설경구 씨를 초대했다.

 

안성기 : 1952년생. 5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 70편이 넘는 영화를 통해 국민배우로 자리잡았다.

설경구 : 1968년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 '꽃잎'으로 영화계 입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부터 강렬한 성격배우로서 이미지가 각인됨. "나는 연기를 잘 모른다. 현장의 팀웤 속에서 나의 연기가 살아 날 뿐이다."

실미도사건 : 1971년 8월 23일, 한국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역사적 사실. 현대사의 굴절된 모습들이 이 사건에 얽혀 있다. 684부대는 김신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중앙정보부가 만든 특수부대였다. 31명 전원 사망. 실미도사건은 국가권력의 횡포와 역사왜곡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는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될만한 사건들이 많다. 하지만 정치적 속박으로 인해 예술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정치적 속박은 예술의 빈곤으로 나타난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억압되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적 기능을 외면할 수 없다. 영화 '실미도'는 왜곡된 역사의 실상을 일깨우는 강렬한 도덕적 기능이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민주의 축복이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적인 사상가들이 기라성 같이 포진되어 있는 역사다.

우리가 '위대한 정치가'라고 할 때에 링컨이나 처칠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로 떠올려야 할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 : 1342~1398. 조선왕조를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 사상가며 정치가.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支) 호는 삼봉(三峯)

처칠에게는 위대한 정치가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치가인 삼봉 정도전은 떠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조선왕조의 사상은 방대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6개월 동안에 다룰 수 있는 조선시대 사상은 '처음'과 '끝' 정도에 국한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변혁'을 떠올리라고 하면 흔히 구한말, 개화기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 시기 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큰 엄청난 변혁기가 있었다.

바로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넘어 가는 시기'야말로 구한말 개화백경(開化百景)의 격변을 능가하는 시기였다.

국가와 사회와 가족, 친족관계를 비롯하여 종교와 사상과 문화까지 모두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였던 것이다.

혁명(革命)이라고 할 때의 혁은 간다,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의 혁(革)으로써 주역의 49번째 괘(卦)를 말하며 정(井)괘의 다음에 온다. 서괘(序卦)는 "우물이 썩으면 물을 퍼내어 갈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 동학혁명(東學革命), 4.19혁명, 5.16 등 세가지 사건 정도가 있는 것 같다.

혁명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첫째 주체가 있어야 하고 둘째 왕조 또는 지배세력이 바뀌어야 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왕의 성이 바뀐다는 뜻이다.

일본 역사에는 혁명이 없다. 천황제 하에서 신하의 변화만 있다.

왕의 권력과 비슷한 권력을 가진 막부의 우두머리 조차도 '왕'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쇼군(將軍)' 즉 장군이라고 칭했다. 물론 이 쇼군은 우리나라의 '장군'과는 그 쓰임이나 의미가 전혀 달랐다. 일종의 '왕'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역사상 혁명이 없었던 일본은 연속성이라는 특징은 있지만 그만큼 부패하기도 쉬운 나라이다.

동학(東學)은 정치사적으로 명(命)을 갈지 못한 좌절된 운동이었다. 그러나 조산왕조의 가치관을 근원적으로 뒤엎은 사건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근대적 자아(自我)의 출발이었다.

5.16은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命)을 갈고자 하는 혁명의 주체세력은 바로 4.19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5.15은 4.19의 혁명정신과 주체세력으로부터 정권 만을 강취하였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하지 않고 '군사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하륜, 조준, 남은, 이숭인 등 공민왕 때 득세한 고려말 개혁파 신진유생들은 개혁정책을 주창하고 시도하였으나 계속되는 실패로 좌절하게 되었으며, 이 중 정도전의 주도로 이성계를 옹립하여 조선이 개국하게 된다.

1383년에 정몽주의 주선으로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고 1388년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1392년에 조선왕조를 개창하게 된다.

조선건국을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뚜렷한 근거는 정권교체 보다도 분명한 개혁의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건국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정도전은 1398년 태조 7년 8월에 사병혁파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세자였던 방석과 함께 척살된다.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정도전의 고려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1. 토지개혁 2. 종교개혁 3. 군사개혁

3가지로 요약되는데, 이 개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정도전의 개혁사상은 애초에 많은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삼봉 정도전은 34세 때인 1375년부터 2년간 나주목 회진현 거평부곡 소재동(消災洞)에서 유배생활을 한다(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 이 유배생활을 통해 삼봉은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고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된다.

또한 '답전보' 같은 유배문학을 남긴다.

답전보(答田父) : 밭 가는 이에게 답함(애칭이나 존칭의 의미로 父를 '보'로 읽는다).

정도전의 이 유배문학은 고려말 우리 민중들의 소리를 알려 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600여년 전의 소리를 지금 우리가 이자리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요 감격이다.

유배지 생활을 통해 정도전은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 민중의 갈망하는 바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 시대와 더룸어 호흡해 온 사상가이자 의사, 극작가, 교육자입니다. 고려대학교, 국립대만대학교, 일본 동경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서양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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