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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3 세월호 2년-이제 나의 문제다 ①

아파도 떠날 수 없는 유족들 - 동거차도 움막 아빠들의 하루

그 바다를 지키는 이유…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전해야죠"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움막 안에서 지난 6일 세월호 유가족 최경덕씨와 강병길씨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난 6일 오전 올라탄 한림페리3호. 남해바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갑판에서 담소를 나누는 관광객 30여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형색색 나들이복 차림이었다. 뱃길이 시작되자 아기자기한 무인도가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진도 팽목항을 떠난 지 2시간30분. 멀리 7번째 섬 동거차도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담당 승무원이 나직이 "여기가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바다"라고 안내했다. 갑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대화도 뚝 끊겼다.

"아이구, 세상에나…." 한숨이 터져나오고 안타까운 듯 가슴을 치는 사람도 보였다. 더러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금방 눈물을 찍어내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동거차도에 내렸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딸린 2.91㎢ 크기의 섬엔 35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다 만난 할머니는 "산 잔등에 가느냐. 저 세월호 사람들 좀 제발 도와달라. 너무 불쌍한 아비들 아니냐"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산자락을 가리키며 "노란 리본이 조롱조롱 달려 있으니 따라가라"고 일러줬다.

산벚꽃이 환히 핀 마을 뒷산 대나무숲과 동백 군락지를 지나 30여분 비탈을 올랐다. 산마루엔 소형 몽골텐트 2개와 움막 하나가 강풍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작은 인기척이 움막에서 흘러나왔다. 다가섰다. 비닐 바람막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세 남자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제각기 열여덟 살 아들을 잃은 단원고 2학년 4반 학부모들이었다. 승묵이 아버지 강병길씨(50), 하용이 아버지 빈운종씨(47), 성호 아버지 최경덕씨(47).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들은 10㎡ 남짓한 움막 안에서 모포로 한기를 쫓고 있었다. 장소가 마땅찮아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 패널을 깔고 지은 터라 움막은 계속 뒤뚱거렸다.

 

세월호 인양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움막에 설치한 카메라 렌즈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왔으니 하룻밤 묵고 가시오." "지붕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기자 양반도 천장에 묶어내린 밧줄 하나 몸에 붙들어 매시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렸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6일째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은 2.6㎞ 앞 바다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인양 현장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구난구조회사인 '상하이 샐비지'가 시작한 인양 광경과 과정을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세월호 선박 자체가 참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 증거물이라고 판단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이 일을 맡고 있다. 강씨 등은 벌써 4번째 동거차도에 왔다고 했다.

바다는 '4·16' 그날보다 더 험했다. 갑자기 높아진 파도가 발 아래 절벽을 때렸고, 짙은 안개가 섬을 칭칭 휘감았다. 시계가 뿌연 속에서도 강씨는 영상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화면을 확대해 살핀 뒤 그때그때 4·16가족협의회에 보고한다고 했다. 항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단다. 빈씨는 찬밥과 라면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물을 끓였다. 냄비에서 막 김이 올라오던 오전 11시20분, 강씨가 소리쳤다. "하얀 선박이 샐비지 바지에 접근하고 있어. 못 보던 배인데, 저게 뭐야. 바지에서 크레인으로 큰 짐짝을 옮겨 싣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배 난간에 '德意'(더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중국에서 새로 온 작업선이었다. 이렇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인양 현장은 오후 4시20분 파란색 컨테이너가 작업선에 내려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관측되지 않았다. 강씨는 "바지 위에서 수많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뱃머리를 우리 쪽으로 돌려놓고 뒤편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감춰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정성껏 상황 하나하나를 모아 나중에 진상을 밝히는 검증자료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해질녘부터는 폭우가 쏟아졌다. 100㎜ 이상 내린다는 예보를 전해줬지만, "그보다 더 큰비도 맞아봤다"며 느긋해했다.

저녁식사는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칫국과 깻잎, 멸치볶음, 김 등이 아이스박스 뚜껑에 차려졌다. 밑반찬은 안산집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다고 했다. 움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입에 떠넣던 국물을 쏟기도 했다. 밥을 먹은 뒤엔 '부처손 차'가 나왔다. 1㎞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다 바위틈에서 캐왔다고 했다. 빈씨와 최씨는 차 대신 약봉지를 꺼내 털어넣었다. 빈씨는 지난해 초 어깨를 수술했고, 무릎과 허리까지 무리가 가면서 진통제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도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땀을 많이 흘려 약을 끊을 수가 없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최경덕씨가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요.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만나 정부가 한 거짓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빈씨도 "그동안 받은 온갖 박해와 냉담, 악의적 오해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304명 그 아까운 목숨들을 산 채로 수장시켜 놓고도 거짓말을 해대고, 반성도 할 줄 모르는 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도록 놔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소시민적 생활자세를 탄식하기도 했다. 최씨는 "월급 잘 받고,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하고 드라이브하면 그게 최고 행복인 줄 알았다"면서 "이웃과 사회, 국가에 무관심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고 결국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운명이었다. 예산과 조사기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시작된 특조위 활동이 6월이면 정지된다는 것이다.

빈씨는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4·13 총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여전히 세월호 사고가 단순 해상 교통사고이거나 선사 측의 탐욕, 선장의 무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정도로 보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건전한 비판세력이 선택받도록 도와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씨도 "지금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세월호로부터 의미있는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촘촘한 국가안전망을 짜려면 특조위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정을 넘겨 잠시 비가 그치자 바다로부터 '쿠웅~ 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소리가 뭐냐'고 묻자 "왜 그런지, 작업을 주로 야간에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니 움막을 찾은 어머니들이 "인양을 낮에 해야지, 밤에 하느냐"고 벽에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선체 인양 작업은 2014년 11월 수색이 중단된 뒤 281일이 지난 지난해 8월19일 시작됐다.

미수습자 9명과 선체 인양 비용으로 851억원을 받기로 하고 상하이 샐비지가 맡았다. 이 회사는 세월호 침몰지점 바로 위에 1만t급 바지를 베이스캠프로 차려 놓고, 최대 7000t급의 작업선 4척을 동원하고 있다. 투입된 잠수사만 96명이나 된다. 그동안 선체 안에 남아 있는 유류를 제거하고 유실방지망을 보완한 후 지난달 2일부터 세월호 주변을 가로 200m, 세로 160m, 높이 3m로 감싸는 펜스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미수습자나 각종 유품의 유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달 초부터는 수중 선체 무게를 줄이는 부력 만들기에 나섰다. 선체에 구멍을 뚫어 내부로 대형 공기주머니 27개를 넣고, 선체 바깥엔 대형 풍선 9개를 다는 작업을 이달 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이렇게 부력을 만들게 되면 현재 8300t에 이르는 선체 중량을 3300t으로 줄일 수 있어 인양하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밑에 여러 개의 리프팅 빔을 설치한 뒤 인양 밧줄을 바지 크레인에 잇게 된다. 이어 수중에 플로팅도크를 가라앉힌 후 세월호를 약간 끌어올려 도크에 앉힌 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다. 정부는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육지에 끌어온다는 로드맵을 짜고 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동거차도를 오가면서 본 팽목항에는 추모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방파제엔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바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새로 걸렸다. 단원고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인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얼굴과 그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평소 하루 10여명이 찾던 분향소 추모객도 30~40명으로 늘고, 주말엔 100명이 넘고 있다. 7일 경남 양산에서 온 김춘희씨는 "늦게나마 가신 영령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기 당일인 16일엔 전남도·진도군·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추모식과 종교·문화단체가 여는 추모제가 열린다. 참사 후 내내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60)"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 안전장치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4명이 돌아오지 못한 팽목항에 다시 노란색 물결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입력 : 2016.04.10 22:56:00

수정 : 2016.04.11 09:37:00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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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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